Chapter 1 of 1

Chapter 1

하지만 그 그립고 추억 깊은 크리스마스 영감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일까. 뒤에 남은 것은 그 성성한 백발과 턱수염뿐인가. 그렇다면 그것이라도 받아 두자. 그 밖에 크리스마스 영감님이 남기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 크리스마스를 좇는 소리

그 시절 크리스마스에는,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었지.

추위를 쫓는 불도 따스하게 타오르고,

고기 잔칫상이 산처럼 쌓였네, 귀한 이에게나 천한 이에게나.

이웃들은 모두 부름을 받고,

진심 어린 환대를 받았네.

가난한 이라도 문 앞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었지.

그것은 이 낡은 모자가 아직 새것이던 무렵의 일.

— 옛 노래

영국에서 내 마음을 가장 즐겁게 매혹하는 것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축제일의 풍습과 시골의 놀이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아직 어렸을 적 내 공상이 그려 낸 수많은 그림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세상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서만 알았고, 세상이란 시인들이 그려 낸 그대로의 모습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그림들과 함께, 소박했던 옛 시절의 향기가 되살아난다. 그것 또한 같은 착각일지 모르나, 그 무렵 세상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소박하고 다정하며 늘 들떠 있었던 듯하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것은 하루하루 희미해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점점 닳아 사라질 뿐 아니라, 새로운 유행에 밀려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이 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고딕 건축의 아름다운 유적이 시대의 풍화에 맡겨져 무너지거나, 후대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고 개축되어 본디 모습을 잃어 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시는 전원의 놀이와 축일의 잔치에서 많은 소재를 얻었으니, 지금도 그것을 그리워하며 한사코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담쟁이가 낡은 고딕 문이나 허물어져 가는 탑에 풍성한 잎을 휘감으며, 자신을 버텨 준 은혜에 보답하고, 흔들리는 폐허를 끌어안아, 말하자면 그 푸른 새잎으로 언제까지나 향기롭게 지켜 주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갖가지 옛 축제 가운데서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그윽한 연상을 일깨운다. 그 안에는 엄숙하고 정결한 정감이 깃들어, 우리의 들뜬 기분에 녹아들어 마음을 신성하고 고결한 즐거움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교회 예배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가슴을 울린다. 그리스도교 기원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그 밤 들판의 정경이 차분하게 설해진다. 그리고 강림절(아드벤트) 동안 예배에는 점차 열기와 애틋함이 더해지다가, 마침내 인류에게 평화와 선의가 전해진 그 크리스마스 아침에 환희의 외침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교회에서 성가대 전원이 울려 퍼지는 오르간에 맞추어 크리스마스 성가를 부르고, 그 의기양양한 화음이 대성당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만큼, 음악이 사람의 도덕적 정감에 장엄하게 다가오는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예부터 이어져 온 아름다운 관습에 따라, 사랑과 평화의 종교가 펼쳐졌음을 기리는 이 축제일에는 일가가 한자리에 모이고, 같은 핏줄을 나눈 이들조차 세상사의 고생과 기쁨과 슬픔에 떠밀려 늘 갈라지기 쉽던 사람들이 다시금 한곳으로 끌려온다. 또 자식들은 이미 세상에 발을 내디뎌 멀리 흩어져 떠돌고 있더라도, 한 번 더 부모님 댁 난롯가로 불려 돌아가, 그 사랑의 모임에 둘러앉아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 속에서 다시금 젊어지고 서로를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계절 자체도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에 매력을 더한다. 다른 계절에 우리는 즐거움의 대부분을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얻는다. 마음은 바깥으로 뛰쳐나가, 햇살이 따스한 자연 속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우리는 “들녘 곳곳에서 살아간다”. 새들의 노래, 시냇물의 속삭임, 숨결처럼 풍기는 봄의 향기, 부드러운 여름의 관능, 황금빛 가을의 장관, 산뜻한 푸른 옷을 두른 대지, 상쾌한 짙푸른 하늘, 그리고 호화로운 구름이 무리 지은 하늘. 모든 것이 우리 마음을 말없이, 형언할 수 없는 환희로 채우고, 우리는 끝없는 감각의 일락에 잠긴다. 그러나 겨울이 깊어지고 자연이 모든 매력을 빼앗긴 채 온통 눈의 수의에 싸이면, 우리는 마음의 만족을 정신적인 원천에서 구하게 된다. 자연의 풍광은 거칠고 쓸쓸하며, 해는 짧고 음울하고 밤은 캄캄하여, 바깥나들이는 묶이고 감정조차 밖으로 떠돌지 못한 채 안에 갇히니, 우리는 서로의 정담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사색은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한결 깊어지고, 우정도 샘솟듯 흘러나온다. 우리는 사람과 친밀하게 어울리는 일이 얼마나 매혹적인지를 사무치게 느끼고, 서로 기쁨을 나누며 가까이 다가앉는다. 마음은 마음을 부르고, 우리는 가슴 깊은 고요한 자리에 있는 사랑의 샘에서 기쁨을 길어 올리는데, 이 샘은 청한 이에게 가정의 행복이라는 맑은 물을 베풀어 준다.

밤이면 바깥은 칠흑같이 어둡고 음산한지라, 난롯불이 따스하게 빛나는 방으로 들어서면 마음은 활짝 펴진다. 붉은 불꽃은 인공의 여름과 햇빛을 방 안 가득 풀어놓고, 어떤 얼굴이든 환한 환대의 빛으로 빛난다. 사람을 맞이하는 진실한 얼굴이 부드러운 미소로 풀어지는 것은 겨울 난롯가가 으뜸이다. 수줍게 슬며시 상대를 바라보는 사랑의 눈길이 갖가지 사연을 달콤히 속삭이게 되는 것도 겨울 난롯가에 견줄 곳이 없다. 겨울의 마른바람이 현관을 휩쓸고 멀리 있는 문을 덜컹대게 하며, 창가에 휘이휘이 울리고 굴뚝을 타고 내려올 때, 깊숙하고 아늑한 방에서 한 가족이 단란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차분히 안심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만큼 고마운 것은 없으리라.

영국에서는 본래 어느 계층에나 시골의 풍습이 깊이 배어 있어, 사람들은 예부터 늘 축제일과 휴일로 시골 생활의 단조로움이 끊기는 것을 반겼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종교 의례와 사회 관습을 유난히 잘 지켜 왔다. 옛적에 크리스마스를 기릴 때면 사람들은 고풍스럽고 익살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광대 같은 행렬을 꾸려 환락에 빠진 채 서로 완전히 벗이 되었다 하는데, 그러한 일들에 대해 옛 풍속 연구가가 적어 둔 자세한 기록은, 무미건조해 보일지라도 읽어 보면 자못 흥미롭다. 크리스마스에는 어느 집이나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은 모두 가슴속을 풀어 헤친 듯했다. 농부도 귀족도 한데 어울리고, 갖가지 계층의 사람이 따스하고 너그러운 한 줄기 기쁨과 친절의 흐름으로 녹아들었다. 성과 장원 저택의 큰 홀에서는 하프가 울리고 크리스마스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너른 식탁에는 환대의 잔치 음식이 산처럼 쌓여 그 무게에 식탁이 신음 소리를 낼 정도였다. 몹시 가난한 농가에서도 푸른 월계수와 호랑가시나무로 한껏 장식해 축일을 맞이했다. 난로는 흥겹게 타올라 격자 사이로 불빛이 깜박이고, 길 가던 사람은 누구라도 부름을 받고 빗장을 풀고 들어가, 난롯가에 둘러앉아 세상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무리에 끼어, 옛적부터 내려오는 익살스러운 이야기와 몇 번이고 되풀이된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긴긴 겨울밤을 보내곤 했다.

근대의 세련된 풍습이 가져온 가장 달갑지 않은 일은, 정겹기 그지없던 옛 휴일의 풍속을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이 근대의 진보 탓에 그러한 생활의 장식물이 지녔던 또렷한 끌 자국은 사라지고, 활기 넘치던 부조 무늬는 깎여 나갔다. 세상은 옛날보다 한결 매끈하고 잘 닦여졌으나, 그 표면은 보다시피 이렇다 할 특징 없는 것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놀이와 의례 가운데 여럿은 아예 사라져 버려, 폴스타프 영감의 스페인 백포도주가 그러했듯 부질없이 주석가들의 연구거리, 논쟁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놀이와 의례가 융성하던 시대는 기력과 활력이 흘러넘쳐, 사람들의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 거칠기는 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활기로 가득했다. 그 시절은 야성적이면서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대로, 시에는 풍부한 소재를 안기고, 희곡에는 매혹적인 인물과 풍속을 수없이 보태 주었다. 세상은 예전보다 한결 더 세속적인 것이 되었다. 기분 전환은 늘었으나 기쁨은 줄었다. 쾌락의 흐름은 폭이 넓어졌어도 깊이는 얕아져, 한때 차분한 가정생활의 깊은 자리에서 잔잔히 흐르던 그 깊고 고요한 물길은 사라져 버렸다. 사회는 개화하고 우아해졌지만, 두드러졌던 지방의 빛깔도, 가족의 정도, 소박한 난롯가의 즐거움도 대부분 잃어버렸다. 마음 너른 옛사람들의 전통적 관습이며, 봉건시대의 환대며, 왕후 같은 향연도 사라졌고, 그것이 펼쳐지던 귀족의 성과 웅장한 장원 저택도 함께 운명을 맞았다. 그러한 향연은 어둑한 큰 홀이며, 커다란 떡갈나무 회랑이며, 태피스트리로 꾸민 응접실에는 어울리되, 근대 별장의 환하고 말끔한 홀이며 화사한 응접실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듯 옛 축전의 면모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지금도 즐겁고 마음 설레는 시절이다. 모든 영국 사람의 가슴에 가정의 정이 솟아올라 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은 보기에 흐뭇하다. 친목의 식탁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지고, 벗과 친지들이 다시금 한자리에 모인다. 잔치 음식의 선물이 활발히 오가며 존경의 표시가 되고, 우정을 두텁게 하는 매개가 된다. 상록수가 집에도 교회에도 장식되어 평화와 기쁨의 상징이 된다. 이 모든 것 덕분에 살가운 사귐이 맺어지고, 자비로운 동정심이 활활 타오른다. 한밤중에 노래를 부르며 거니는 이들의 목소리는, 비록 솜씨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겨울 한밤에 솟아올라 더없는 화음을 빚어낸다. “깊은 잠이 사람들 위에 내려앉은” 고요하고 엄숙한 시각, 나는 그들의 노랫소리에 깨어 마음에 기쁨을 머금고 귀 기울이며, 이는 다시금 천사의 노래가 땅에 내려와 평화와 선의를 인류에게 알리는 것이라고까지 여겼다. 상상력이란 이런 도덕적인 힘이 더해지면 참으로 멋들어지게 모든 것을 선율과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수탉이 우는 소리가 깊이 잠든 마을에 이따금 들려와 “날개 달린 마님들에게 한밤중을 알리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거룩한 축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누가 이르기를,

구주의 나심을 기리는 무렵이 되면,

동틀 녘을 알리는 이 닭이 밤새도록 노래한다 하니,

잡귀들도 두려워 헤매어 나오지 못하고,

평온한 밤에 별도 사람을 홀리지 못하며,

짓궂은 요정도 얌전해지고, 마녀는 신통력을 잃으니,

더없이 정결하고 축복으로 가득 찬 때라 일컬으리.”

주위 사람들이 모두 행복을 외치며 들떠 서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크리스마스란 바로 정감이 다시 젊어지는 때이며, 친목의 불을 방 안에 활활 피워 올릴 뿐 아니라, 친절하고 자비로운 불을 마음속에 지펴 올리는 때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사랑하던 정경이 다시금 새로워져, 노년의 메마른 황야에 되살아난다. 그리고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정의 즐거움이 풍기는 향기로 가득 차, 시들었던 기력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마치 아라비아 사막에 부는 산들바람이, 멀리 떨어진 들판의 신선한 공기를 실어 와 지친 순례자에게 가져다주는 것과도 같다.

나는 이방인으로 영국에 머무는 사람이라, 벗들과 정을 나눌 난롯불이 나를 위해 타오르지도 않고, 환대의 문이 열리지도 않으며, 우정의 따스한 악수가 현관에서 나를 맞아 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즐거운 얼굴에서, 크리스마스의 감화력이 환히 빛나 내 마음에 빛을 부어 주는 것만 같다. 분명 행복이란 서로 비추는 것이라, 마치 하늘의 빛과도 같다. 어떤 얼굴이든 미소로 환히 빛나고 무구한 기쁨으로 빛나며, 거울처럼 영원히 빛나는 지고한 사랑의 빛을 다른 이에게 되비춘다. 동무들의 행복을 헤아리려 들지도 않고, 둘레가 기쁨에 잠긴 한가운데 홀로 어두이 앉아 푸념을 늘어놓는 비루한 사람도, 어쩌면 격하게 감격하여 자기 본위의 만족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매력인 그 따스한 동정 어린 사람과의 사귐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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