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본문은 1913년 메수언 사(社) 판본을 David Price(ccx074@pglaf.org)가 옮겨 적은 것이다. 『심연으로부터』의 후대 판본들은 더 많은 본문을 담고 있음에 유의하라. 가장 완전한 판본들은 아직 미국에서 저작권이 소멸되지 않았다.
심연으로부터
. . . 고통은 하나의 기나긴 순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계절로 나눌 수 없다. 다만 그 기분을 기록하고, 그것이 돌아오는 자리를 연대기로 남길 따름이다. 우리에게 시간 자체는 나아가지 않는다. 시간은 회전한다. 하나의 고통의 중심을 맴도는 듯이 보인다. 삶의 온갖 사정이 변할 길 없는 양식에 따라 다스려지는 이 마비시키는 부동(不動)의 상태 — 우리는 불변의 철칙에 따라 먹고 마시며, 눕고, 기도하거나, 하다못해 기도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 가장 사소한 세목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하루하루를 제 형제처럼 닮게 만드는 이 부동의 성질은, 쉼 없는 변화야말로 그 존재의 본질인 바깥의 힘들에게까지 전염되는 듯하다. 씨 뿌릴 철이나 추수의 때, 이삭 위로 몸을 굽힌 추수꾼, 포도 덩굴 사이를 누비는 포도 따는 이들, 꺾인 꽃들로 하얗게 뒤덮이거나 떨어진 열매로 어지러운 과수원의 풀밭 — 이런 것들에 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며, 또한 알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계절, 슬픔의 계절이 있을 뿐이다. 해와 달마저 우리에게서 거두어진 듯하다. 바깥은 낮이 푸르고 금빛일지 모르나, 두텁게 가려진 유리와 철창을 덮은 작은 창 — 그 아래 앉은 이에게 스며 내려오는 빛은 잿빛이요 인색하다. 감방 안은 늘 어스름이다. 마음속이 늘 어스름인 것과 같이. 그리고 사유의 영역에서도, 시간의 영역에서와 다름없이, 더는 움직임이 없다. 그대가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잊었거나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으며, 내일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를 기억하라. 그러면 그대는 내가 어찌하여 이 글을 쓰며, 또 이러한 방식으로 쓰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 . .
일주일 뒤 나는 이곳으로 이감되었다. 그로부터 석 달이 더 흐르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얼마나 깊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공경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게 참혹했다. 그러나 한때 ‘언어의 영주(領主)’였던 나는 이제 나의 비통과 수치를 표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이 드높이고 명예롭게 일군 이름 하나를 내게 물려주셨다 — 문학과 예술, 고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내 조국의 공적 역사와 한 민족으로서의 진화 속에서도 그러한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영원토록 더럽혔다. 나는 그 이름을 천한 자들 사이의 천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진창 속으로 끌고 다녔다. 짐승들에게 넘겨주어 짐승같이 쓰게 하였고, 어리석은 자들에게 내주어 어리석음의 동의어로 바꾸게 하였다. 그때 내가 겪은 고통,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고통은 붓으로 쓰거나 종이에 새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내게 다정하고 온화하던 아내는, 내가 그 소식을 무관한 입술로부터 듣게 되느니 차라리 제가 전하겠다 하여, 병든 몸을 이끌고 제노바에서 영국까지 먼 길을 건너와 어쩔 수 없고 회복할 길 없는 그 상실의 소식을 제 입으로 내게 알렸다. 아직 내게 애정을 품고 있던 모든 이에게서 조의의 글이 내게 닿았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던 이들조차, 새로운 슬픔이 내 삶에 들이닥쳤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들의 애도를 내게 전해 달라며 편지를 써 보냈다. . . .
석 달이 흐른다. 내 감방 문 바깥에 내 이름과 형기가 적힌 채 걸려 있는, 나의 일상 품행과 노역의 책력(冊曆)이 지금이 5월임을 알린다. . . .
번영과 쾌락과 성공은 결이 거칠고 섬유가 범상한 것일지 모르나, 슬픔은 창조된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예민하다. 사유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어떤 것에도 슬픔은 끔찍하고도 정묘한 떨림으로 공명한다. 보이지 않는 힘의 방향을 기록하는, 얇게 두들겨 펴낸 떨리는 금박조차 이에 비하면 거칠다. 슬픔이란 사랑의 손이 아닌 어떤 손이 닿아도 피를 흘리는 상처이며, 사랑의 손이 닿을 때에도 다시 피를 흘려야 하는 상처다 — 다만 아픔 속에서는 아닐지언정.
슬픔이 있는 곳에 거룩한 땅이 있다. 언젠가 사람들은 그 말뜻을 깨달으리라. 깨닫기 전까지는 삶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 그와 같은 품성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감옥에서 파산법원으로 끌려 내려오던 날, 내가 두 순경 사이에 끼여 있을 때, 그는 저 길고 음산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토록 다정하고 단순한 행동에 숨죽여 침묵에 빠진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제 곁을 지나가는 내게 정중히 모자를 벗어 보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이보다 사소한 일로도 천국에 갔다. 바로 이러한 정신, 이러한 사랑의 방식으로 성인들은 가난한 자의 발을 씻기려 무릎을 꿇었고, 나병 환자의 뺨에 입 맞추려 몸을 굽혔다. 나는 그가 행한 바를 두고 그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넨 적이 없다. 그가 내 의식에 닿았음을 그 자신이 아는지조차 나는 이 순간까지도 알지 못한다. 격식 갖춘 말로 격식 갖춘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내 마음의 보물 창고에 간직한다. 결코 갚을 길 없으리라 여겨 도리어 기쁜, 은밀한 빚으로 그곳에 간직해 둔다. 숱한 눈물의 몰약과 계피로 그것은 방부되어 향기롭게 보전되고 있다. 지혜가 내게 무익하고, 철학이 헛되며, 나를 위로하려 애쓰던 이들의 잠언과 문구가 내 입에 티끌과 재와 같을 때, 그 자그맣고 사랑스럽고 말 없는 사랑의 행위를 떠올리는 기억이 내게 연민의 모든 샘물을 열어 주었다. 사막을 장미처럼 피어나게 하였으며, 외로운 유배의 쓰라림에서 나를 이끌어 내어, 상처 입고 부서진 나를 위대한 세상의 심장과 조화 이루게 하였다. 사람들이 ---의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뿐 아니라, 그것이 어찌하여 내게 그토록 큰 뜻이 되었고 또 언제나 그럴 것인지를 이해하게 될 때, 아마 그들은 어떻게, 또 어떤 정신으로 내게 다가서야 할지 깨닫게 되리라. . . .
가난한 자들은 우리보다 현명하고, 더 자비로우며, 더 친절하고, 더 섬세하다. 그들의 눈에 감옥이란 한 사람의 삶에 닥친 비극이요, 불운이며, 어쩌다 일어난 일이고, 남들의 공감을 청하는 무엇이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이를 두고 그저 ‘곤경에 처해 있는(in trouble) 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들이 늘 쓰는 표현이며, 그 말 속에는 사랑의 완전한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와 같은 신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감옥은 사람을 천민으로 만든다. 나와, 또 나와 같은 자들은 바람과 햇빛을 누릴 권리조차 거의 갖지 못한다. 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남들의 즐거움은 더럽혀진다. 우리가 다시 나타나면 우리는 반기는 대상이 아니다. 다시금 달빛을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마저 우리에게서 빼앗긴다. 인간됨을 잇는 그 사랑스러운 고리들이 끊어져 버린다. 아들들이 버젓이 살아 있음에도 우리는 홀로 지내도록 운명지어진다. 우리를 낫게 하고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것, 멍든 가슴에 향유를 부어 주고 아픔에 잠긴 영혼에 평화를 줄 그 단 하나의 것을 우리는 빼앗긴다. . . .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나를 파멸시킨 것은 나 자신이요, 위대하든 하찮든 어떤 사람도 제 손이 아니면 파멸당하지 않는다고. 기꺼이 그렇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당장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 가차 없는 기소를 나는 나 자신을 향해 가차 없이 제기한다. 세상이 내게 행한 바가 참혹했다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행한 바는 그보다도 훨씬 참혹했다.
나는 내 시대의 예술과 문화와 더불어 상징적 관계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나는 청년기의 새벽녘에 스스로 깨달았고, 후에는 내 시대로 하여금 그것을 인정하도록 강제하였다. 살아 있는 동안 그러한 지위에 서고 또 그 지위를 인정받는 이는 드물다. 대개 그것은 알아보는 이가 있다 해도 역사가나 비평가가 훗날, 그 사람과 그 시대가 이미 사라진 뒤에야 알아보는 법이다.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는 스스로 그것을 느꼈고, 남들로 하여금 그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바이런은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나, 그가 상징한 것은 제 시대의 격정과 그 격정에 겨운 권태였다. 내 것은 그보다 더 고귀한 것, 더 지속적인 것, 더 긴요한 것, 더 폭넓은 것이었다.
신들은 내게 거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무의미하고 관능적인 안락의 긴 사슬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말았다. 나는 플라뇌르로, 댄디로, 유행을 좇는 한량으로 스스로를 즐겼다. 나는 나보다 작은 품성과 비천한 정신의 무리로 나 자신을 에워쌌다. 나는 나 자신의 천재성을 탕진하는 자가 되었고, 영원한 젊음을 낭비하는 데에서 기이한 기쁨을 얻었다. 높은 곳에 머무는 일에 지친 나는, 새로운 감각을 찾아 일부러 심연으로 내려갔다. 사유의 영역에서 역설이 내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격정의 영역에서는 도착(倒錯)이 내게 어떤 것이 되어 갔다. 욕망은 끝에 가서 하나의 병이었거나 광기였거나, 혹은 그 둘 다였다. 나는 남들의 삶에 관해 무심해졌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쾌락을 취하고는 지나쳐 버렸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작은 행위 하나하나가 품성을 만들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밀실에서 행한 일을 언젠가는 지붕 위에서 외쳐야 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잊었다. 나는 내 자신의 영주(領主)이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영혼의 선장이 아니었으며, 그러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쾌락으로 하여금 나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였다. 나는 끔찍한 치욕으로 끝맺었다. 이제 내게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 절대적 겸허.
나는 거의 두 해를 감옥에서 누워 지냈다. 내 본성으로부터 사나운 절망이 솟아나왔다. 보는 것조차 애처로울 만큼 비탄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 끔찍하고 무력한 분노, 쓰라림과 경멸, 소리 내어 우는 번민, 목소리를 찾지 못하는 비참, 말을 잃은 슬픔. 나는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의 국면을 빠짐없이 거쳐왔다. 워즈워스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였는지를, 나는 워즈워스 자신보다도 더 잘 안다 —
‘고통은 영구하며, 어둑하고, 캄캄하여
무한의 성질을 지녔느니라.’
그러나 나의 고통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리어 기뻐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그 고통이 아무 뜻 없는 것이 되는 일만은 견딜 수 없었다. 이제 나는 내 본성의 어딘가 깊숙이 숨겨진 무언가가 내게 이렇게 일러 줌을 발견한다 —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무의미하지 않으며, 고통은 더더욱 그러하지 않노라고. 들판에 묻힌 보물처럼 내 본성 안쪽 어딘가에 숨어 있던 그 무엇, 그것이 바로 겸허이다.
그것은 내게 남은 마지막 것이며, 가장 좋은 것이다. 내가 당도한 궁극의 발견이며, 새로운 전개의 출발점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내게 왔으니, 나는 그것이 마땅한 때에 왔음을 안다. 더 일찍이 올 수 없었고, 더 늦게 올 수도 없었다. 누군가 내게 그것을 말해 주었더라면 나는 거절하였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그것을 가져다주었더라면 나는 그것을 마다하였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 만큼, 나는 그것을 간직하고자 한다. 나는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의 요소들을, 새로운 삶의 요소들을 그 안에 품은 단 하나의 것이다 — 내게는 Vita Nuova(새로운 삶). 온갖 것들 중 가장 기이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닌 모든 것을 내어 주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사람은 자기가 그것을 지니고 있음을 안다.
이제 그것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은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 아니,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 아주 똑똑히 본다. 그러한 구절을 쓴다고 해서 내가 어떤 외적인 제재나 명령에 기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예전 어느 때보다도 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털끝만큼의 값어치가 없어 보인다. 나의 본성은 새로운 자기실현의 방식을 구하고 있다. 내가 마음 쓰는 바는 오직 그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세상을 향한 온갖 쓰라림의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풀어 놓는 일이다.
나는 완전히 무일푼이며, 철저히 돌아갈 집 하나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보다 더 나쁜 일들이 있다. 이 감옥을 나서는 그 걸음에 세상을 향한 쓰라림을 가슴에 품느니, 차라리 기꺼이 기뻐하며 문에서 문으로 빵을 구걸하겠노라 말할 때, 나는 더없이 진솔하다. 부자의 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가난한 자의 집에서라도 무언가를 얻으리라. 많이 가진 자는 자주 탐욕스러우나, 적게 가진 자는 언제나 나누어 준다. 여름이면 시원한 풀밭에 잠드는 일, 겨울이 오면 짚으로 촘촘히 덮인 따스한 짚가리 곁이나 큰 광의 차양 아래 몸을 누이는 일 — 사랑을 가슴에 품기만 한다면,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리라. 삶의 외적인 것들은 이제 내게 도무지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강렬한 개인주의에 이르렀는지 그대는 알 수 있으리라 — 아니, 이르러 가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길은 아직 멀고, ‘내가 걷는 곳에는 가시가 있느니라.’
큰길에서 동냥을 구하는 일이 내 몫이 아님을, 밤중 시원한 풀밭에 눕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달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쓰기 위함이리라는 것을, 나도 물론 안다. 내가 감옥을 나설 때 R---이 그 크고 쇠못 박힌 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그는 단지 제 자신의 애정만을 상징하지 않고, 그 밖에 많은 이들의 애정까지 상징하는 사람이다. 어찌 됐든 열여덟 달가량은 내가 살아갈 만큼의 수단이 내게 있으리라 믿으니, 내가 아름다운 책을 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는 있으리라.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그 뒤에 나는 나의 창조하는 능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바란다.
허나 사정이 달랐다 한들 — 세상에 벗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한들, 나를 가엾이 여겨 문을 열어 줄 집이 한 곳도 없었다 한들, 순전한 빈한(貧寒)의 자루와 해진 외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한들 — 내가 원한과 완고함과 경멸로부터 벗어나 있는 한, 나는 몸에 자주옷과 고운 아마포를 두르고 속의 영혼은 증오로 병들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평온과 확신을 가지고 삶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진정 아무런 어려움도 없으리라. 사랑을 진실로 바랄 때, 그대는 사랑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과업이 그곳에서 끝나지 않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만약 그곳에서 끝난다면 그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리라. 내 앞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놓여 있다. 내가 올라야 할 산들은 훨씬 더 가파르고, 내가 지나야 할 골짜기들은 훨씬 더 어둡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나는 나 자신의 안쪽에서 길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도, 도덕도, 이성도, 어느 것 하나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도덕은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는 타고난 율법폐기론자다. 나는 법칙이 아니라 예외를 위해 지어진 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이 행하는 일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사람이 무엇이 되어 가는가, 그 안에는 잘못된 것이 있음을 본다. 이를 배운 것은 다행한 일이다.
종교는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바치는 믿음을, 나는 만질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것에 바친다. 나의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 안에 거하며, 실제 경험이라는 원환 안에서 나의 신조는 온전하고 완전해진다. 그것이 어쩌면 지나치게 완전할지도 모르는 것이, 제 천국을 이 땅 위에 둔 많은 이들이, 혹은 그 모두가 그러했듯, 나 또한 그 안에서 천국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지옥의 공포마저 맛보았기 때문이다. 종교에 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어떤 교단을 세우고 싶어진다 — ‘불신자들의 형제단’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그 제단 위에는 초 하나 타오르지 않으며, 가슴에 평화가 깃들지 않은 사제가 축복받지 못한 빵과 포도주가 담기지 않은 성배로 예배를 드릴 것이다. 무엇이든 참된 것이 되려면 그것은 하나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 불가지론도 신앙 못지않게 제 의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제 순교자를 뿌렸으니, 제 성인들을 거두어 마땅하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람에게 감추어 두신 일을 두고 날마다 찬양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이든 불가지론이든, 내게 외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상징들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제 형식을 스스로 짓는 것만이 영적인 것이다. 만약 그 비밀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없다면 나는 결코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며, 만약 내가 이미 그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이성은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성은 내게 일러 준다. 내가 선고받게 된 법률은 그릇되고 부당한 법률이요, 내가 고통받게 된 체제 또한 그릇되고 부당한 체제라고.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나는 이 두 가지를 내게 정당하고 옳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술에서는 어느 한 사물이 어느 한 순간 자기 자신에게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그것만이 문제가 되거니와, 한 인간의 품성이 윤리적으로 진화해 가는 자리에서도 그러하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나는 내게 좋은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판자 침상, 역겨운 음식, 손끝이 아픔으로 무디어질 때까지 풀어 뱃밥을 만드는 거친 밧줄, 하루를 여닫는 잡역, 일과가 강요하는 듯한 거친 명령, 슬픔을 보기에도 그로테스크하게 만드는 끔찍한 죄수복, 침묵, 고독, 수치 — 이들 하나하나, 모두를 나는 영적인 경험으로 탈바꿈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영혼의 영화(靈化)로 삼고자 애쓰지 말아야 할 몸의 비하(卑下)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이런 지점에 이르고자 한다 — 아무런 꾸밈도 없이 이렇게 아주 단순히 말할 수 있는 지점 말이다. 내 삶의 두 큰 전환점은 아버지가 나를 옥스퍼드로 보냈던 때와, 사회가 나를 감옥으로 보냈을 때였노라고. 감옥이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일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한 구절은 나 자신을 향한 지나친 쓰라림의 빛을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는 이렇게 말하는 편을, 혹은 내게 그렇게 말해지는 편을 택하겠다 — 나는 내 시대의 전형적인 아들이었기에, 나의 도착 가운데서, 또 그 도착을 위하여, 내 삶의 좋은 것들을 악으로 돌리고, 내 삶의 악한 것들을 선으로 돌렸노라고.
그러나 나 자신이나 남들이 무엇이라 말하든 그것은 사소한 일이다. 긴요한 것은, 내 앞에 놓인 것은, 내가 해내야만 할 일은 — 내게 남은 짧은 나날이 상처 입고 훼손되고 미완인 채로 끝나지 않으려 한다면 — 내게 행해진 모든 것을 나의 본성 안으로 흡수해 들이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 삼으며, 불평도 두려움도 주저도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지고의 악덕은 얄팍함이다. 무엇이든 깨달아진 것은 옳다.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어떤 이들은 내게 내가 누구였는지 잊으려 애써 보라고 일렀다. 그것은 파멸을 불러오는 조언이었다. 내가 무엇인지를 깨달음으로써만 나는 어떤 형태로든 위안을 얻어왔다. 이제 또 다른 이들은 석방된 뒤에 내가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으려 애써 보라 권한다. 그것도 똑같이 치명적이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되면 나는 견딜 수 없는 치욕감에 평생 시달리게 되고,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내게도 주어진 것들—해와 달의 아름다움, 계절의 행렬, 동트는 새벽의 음악과 거대한 밤의 정적,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비, 풀 위를 기어들어 풀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이슬—이 모두 내게는 더럽혀져, 그 치유의 힘과 기쁨을 전해 주는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자기 경험을 후회하는 것은 자기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다. 자기 경험을 부인하는 것은 자기 생애의 입술에 거짓말을 얹는 일이다. 그것은 곧 영혼의 부인에 다름 아니다.
육체가 온갖 것을—사제의 손이나 성스러운 환시가 정결케 한 것들 못지않게, 흔하고 부정한 것들까지—흡수하여 날램이나 힘으로, 아름다운 근육의 움직임과 고운 살의 빚어짐으로, 머리카락과 입술과 눈의 곡선과 빛깔로 전환시키듯이, 영혼 또한 저 나름의 섭식 기능을 지녀, 그 자체로는 비천하고 잔혹하고 타락한 것을 고귀한 사유의 정조와 높은 뜻을 지닌 정념으로 변성시킨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영혼은 바로 그것들 속에서 자신의 가장 엄숙한 자기 선언의 양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를 더럽히거나 파괴하려고 의도된 바로 그것을 통해 자신을 가장 온전히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평범한 감옥의 평범한 죄수였다는 사실을 나는 솔직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기이하게 들릴지 모르나, 내가 스스로에게 가르쳐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형벌로 받아들여야 한다. 형벌을 받은 사실을 부끄러워한다면, 애초에 형벌을 받지 않았던 것이나 매한가지다. 물론 내가 유죄 선고를 받은 것 중에는 내가 하지 않은 일도 많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일들로 유죄 선고를 받은 것도 많고, 내 생애에는 결코 기소된 적조차 없는 일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신들이란 기이한 존재여서, 우리 안의 악하고 그릇된 것 못지않게 우리 안의 선하고 인간적인 것 때문에도 우리를 벌하는 법이니, 사람은 자신이 행한 악뿐 아니라 선에 대해서도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되어야 마땅하다는 데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다. 그것은 사람이—혹은 마땅히—그 양쪽을 모두 깨닫고, 어느 쪽에도 지나치게 의기양양해지지 않도록 해 준다. 그리하여 내가 내 형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면, 부디 그리되기를 바라거니와, 나는 자유로이 생각하고, 걷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많은 이들이 석방되고 나서도 감옥을 바깥세상까지 데리고 나와 가슴속 은밀한 치욕으로 감추어 두다가, 끝내 독에 찔린 가엾은 짐승처럼 어느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죽는다. 그들이 그리해야 한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며, 사회가 그들을 그리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끔찍하도록 그릇된 일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소름 끼치는 형벌을 내릴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도, 천박함이라는 최고의 악덕을 지니고 있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한 사람의 형벌이 끝났을 때 사회는 그를 그 자신에게 맡겨 버린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을 향한 가장 중한 의무가 이제 막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회는 그를 버린다. 사회는 실은 제가 한 짓을 부끄러워하여, 자신이 벌을 준 자들을 피해 다닌다. 마치 사람들이 갚을 길 없는 빚을 진 채권자를 피하듯, 혹은 돌이킬 수도 고칠 수도 없는 해를 끼친 상대를 피하듯이. 내 편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내 고통을 깨달았다면 사회도 저가 내게 가한 바를 깨달아야 하며, 어느 쪽에도 쓰라림이나 증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내게는 여느 사람과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며, 사안의 성질상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이곳에서 나와 함께 갇힌 가련한 도둑들과 버림받은 자들은 여러 면에서 나보다 처지가 낫다. 그들이 죄를 지었던 잿빛 도시나 초록 벌판의 좁은 길목은 작디작다. 그들이 한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면, 황혼에서 새벽 사이 새 한 마리가 날아갈 거리만 지나면 족하다. 그러나 내게는 세계가 손바닥 폭으로 오그라들었고, 어디를 향해 돌아서든 바위마다 내 이름이 납으로 새겨져 있다. 나는 무명에서 일어나 범죄의 순간적 악명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일종의 영원한 명성에서 일종의 영원한 오명으로 건너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설령 증명이 필요한 일이라 한들, 명성과 오명 사이에는 단 한 걸음—그마저도 한 걸음이나 될지—밖에 없음을 이미 증명해 보인 듯싶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알아보고, 내 생애의 어리석음에 관한 한 모두 알고 있으리라는 바로 그 사실에서, 내게 이로운 무언가를 나는 분별해 낸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한시바삐 예술가로서 다시 스스로를 주장해야 할 필요를 짊어지게 할 것이다. 단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면, 나는 악의로부터 그 독을, 비겁함으로부터 그 비웃음을 빼앗고, 조롱의 혀를 뿌리째 뽑아낼 수 있으리라.
삶이 내게 하나의 문제라면—과연 그러하거니와—나 또한 삶에 대해 못지않은 문제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나 양쪽을 심판하게 된다. 특정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가 함께 있고 싶은 이들은 오직 예술가와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뿐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 그리고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 그 밖의 누구에게도 내 관심은 미치지 않는다. 나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한 말에서 내 관심사는 오로지 삶 전체에 대한 나 자신의 내적 태도일 뿐이다. 그리고 형벌받았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먼저 이르러야 할 지점 가운데 하나임을 나는 느낀다. 내 자신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내가 그토록 불완전하기에.
그다음으로 나는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때 나는 본능으로 그것을 알았거나, 안다고 여겼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봄이 있었다. 내 기질은 기쁨과 친연했다. 나는 술잔을 포도주로 가장자리까지 채우듯, 삶을 쾌락으로 가장자리까지 채웠다. 이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지점에서 삶에 다가서고 있으며, 행복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 보기조차 몹시 어려운 때가 많다. 옥스퍼드 첫 학기 시절, 페이터의 『르네상스』—내 생애에 그토록 기이한 영향을 끼쳤던 그 책—에서 단테가 슬픔 속에서 고의로 살아간 자들을 『지옥편』의 저 낮은 자리에 두었다는 대목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칼리지 도서관으로 가 『신곡』의 해당 대목, 곧 음울한 늪 아래에 누워 “달콤한 대기 속에서 시무룩했던” 자들이 한숨을 통해 끝없이 읊조리는 구절을 펼쳐 보았다—
‘Tristi fummo
Nell aer dolce che dal sol s’allegra.’
(우리는 슬퍼했느니, 태양이 즐거이 물들이는 저 달콤한 대기 속에서도.)
교회가 accidia(태만)를 단죄했음은 알고 있었지만, 그 관념 자체가 내게는 자못 공상처럼 여겨졌다. 실제 삶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어느 사제가 꾸며냈음 직한 그런 종류의 죄라고 나는 생각했다. “슬픔은 우리를 하느님께 다시 맞이해 준다”고 말한 단테가, 정말로 그런 자들이 있었다 한들, 어찌 우울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그토록 가혹할 수 있었는지도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언젠가 이것이 내 생애 최대의 유혹 가운데 하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짐작지 못했다.
원즈워스 감옥에 있을 때 나는 죽기를 갈망했다. 그것이 내 유일한 염원이었다. 의무실에서 두 달을 보낸 뒤 이곳으로 이감되어, 몸이 차츰 건강을 되찾아 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분노로 가득 찼다. 감옥을 떠나는 바로 그날 자결하겠노라 결심했다. 얼마 뒤 그 악한 기분은 지나갔고, 나는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만, 왕이 자줏빛 옷을 입듯 음울을 걸치고 살기로 했다. 다시는 웃지 않기로, 내가 들어서는 집마다 조문(弔問)의 집으로 바꾸기로, 내 벗들로 하여금 나와 더불어 슬픔에 젖어 느릿느릿 걷게 하기로, 우울이야말로 삶의 참된 비밀임을 그들에게 가르치기로, 낯선 슬픔으로 그들을 불구로 만들고 내 자신의 아픔으로 그들을 훼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지금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벗들이 나를 보러 왔을 때 내가 그토록 긴 낯을 하고 있으면, 그들은 연민을 보이기 위해 제 낯을 더더욱 길게 늘어뜨려야 할 터이니, 그것은 배은망덕하고 야박한 일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혹은 그들을 대접한답시고 쓴 풀잎과 장례의 구운 고기 앞에 묵묵히 앉히려 청하는 일 또한. 나는 쾌활하고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곳에서 벗들을 만나는 일이 허락되었던 지난 두 차례, 나는 되도록 쾌활하려 애썼고, 또 그 쾌활함을 드러내 보이려 애썼다. 시내에서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준 수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해서였다. 보잘것없는 보답임을 나도 알지만, 그들을 가장 기쁘게 하는 보답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지난주 토요일에 R---를 한 시간 만났고, 우리의 재회에서 내가 실제로 느낀 기쁨을 최대한 온전히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내가 스스로를 위해 빚어 가는 관점과 생각들이 옳다는 것은, 수감 이후 처음으로 내 안에 삶에 대한 실다운 갈망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로써 증명된다.
내 앞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다못해 그 작은 일부라도 완성하도록 허락받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것은 끔찍한 비극일 것이라 여긴다. 예술과 삶에서 새로운 전개가 보인다. 그 하나하나가 완성에 이르는 새로운 양식이다. 내게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인 이곳을 탐사하기 위해 나는 살기를 갈망한다. 그대는 이 새로운 세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대는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세계다. 슬픔, 그리고 슬픔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모든 것—그것이 나의 새로운 세계다.
나는 오로지 쾌락을 위해 살았다. 온갖 종류의 고통과 슬픔을 나는 멀리했다. 나는 그 둘을 다 미워했다. 되도록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을 불완전함의 양상으로만 취급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들은 내 삶의 구도에 속하지 않았다. 내 철학 안에는 그것들이 자리할 곳이 없었다. 삶을 통째로 아셨던 나의 어머니는 괴테의 시구를 내게 자주 인용하곤 하셨다—오래 전 칼라일이 어머니께 선물한 책에 직접 적어 넣은 것이었고, 번역 또한, 내 짐작으로는, 그가 했으리라:—
Who never ate his bread in sorrow,
Who never spent the midnight hours
Weeping and waiting for the morrow,—
He knows you not, ye heavenly powers.
(슬픔 속에서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 / 한밤의 시간을 / 내일을 기다리며 울어 보지 않은 자는 / 그대들을 모르리, 하늘의 권능이여.)
이 시구야말로 나폴레옹에게 저토록 거친 수모를 겪었던 저 고귀한 프로이센 왕비가 치욕과 유배 중에 읊조리던 구절이었고, 내 어머니께서 만년의 고난 가운데 자주 인용하시던 구절이었다. 나는 그 속에 감추어진 거대한 진리를 받아들이기도, 인정하기도 한사코 거부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거니와, 나는 어머니께 슬픔 속에서 빵을 먹거나 더 쓰라린 새벽을 지켜보며 한밤을 울어 지새우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곤 했다.
그것이 운명이 나를 위해 예비해 둔 특별한 몫 가운데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실제로 내 생애의 온 한 해 동안 그 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내 몫은 그렇게 배분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끔찍한 고투와 씨름 끝에, 아픔의 심장부에 감추어진 교훈의 몇 가닥을 겨우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지혜 없이 상투어만 구사하는 성직자와 사람들은 더러 고통을 신비라 말한다. 그러나 고통은 실로 계시다. 사람은 전에는 분별하지 못하던 것들을 분별하게 된다. 역사 전체를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본능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기만 하던 예술에 관한 것들이, 지성으로도 감정으로도 완벽히 선명한 시야와 절대적 강도의 직관으로 파악된다.
이제 나는 본다. 슬픔이야말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지고의 정서이기에,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전형이자 시금석임을. 예술가가 늘 찾아 헤매는 것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요 나눌 수 없는 존재 양식, 바깥이 안을 표현하는 양식, 형식이 드러내는 양식이다. 그러한 존재 양식에는 적잖은 것들이 있다. 한때에는 청춘과, 청춘에 몰두한 예술들이 하나의 전범이 되어 줄 수 있다. 또 다른 때에는, 근대 풍경 예술이 인상의 섬세함과 예민함, 외물에 깃들어 흙과 공기로, 안개와 도시로 한결같이 옷을 지어 입는 정신의 암시, 그리고 그 기분과 음조와 빛깔의 병적인 공감 안에서, 그리스인이 조형의 완전함으로 구현했던 것을 우리를 위해 회화적으로 구현해 주고 있다고 여길 법하다. 모든 주제가 표현 속에 흡수되어 표현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음악은 복합적 사례요, 한 송이 꽃이나 한 아이는 단순한 사례다—내가 뜻하는 바에 대해. 그러나 삶에서든 예술에서든 궁극의 전형은 슬픔이다.
기쁨과 웃음 뒤에는 거칠고 단단하고 무감한 기질이 자리할 수 있다. 그러나 슬픔 뒤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을 뿐이다. 아픔은 쾌락과 달리 어떤 가면도 쓰지 않는다. 예술에서의 진실이란 본질적 관념과 우연적 실존 사이의 어떤 상응이 아니다. 모양과 그림자의 닮음도, 수정에 비친 형상과 그 형상 자체의 닮음도 아니다. 그것은 속이 빈 언덕에서 돌아오는 메아리도 아니요, 달을 달에게 보여주고 나르키소스를 나르키소스에게 비추어 주는 골짜기의 은빛 우물물도 아니다. 예술에서의 진실은 사물이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바깥이 안을 표현하도록 빚어지는 것, 영혼이 화육하는 것, 육신이 정신으로 약동하는 것. 이 까닭에 슬픔에 견줄 진실은 없다. 슬픔만이 유일한 진실로 보일 때가 더러 있다. 다른 것들은 눈이나 식욕의 환상일 수 있어, 한쪽은 멀게 하고 다른 한쪽은 물리게 하려고 만들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들은 슬픔으로부터 지어졌으며, 한 아이나 한 별의 탄생 자리에는 아픔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슬픔에는 강렬하고 예사롭지 않은 실재성이 있다. 나는 전에 나 자신에 대해, 내 시대의 예술과 문화에 상징적 관계로 서 있는 자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비참한 곳에 나와 함께 있는 비참한 사내들 중에 삶의 바로 그 비밀에 상징적 관계로 서 있지 않은 이는 단 하나도 없다. 삶의 비밀이란 바로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만물 뒤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시작할 때, 단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달고 쓴 것은 너무나 써서, 우리는 부득불 모든 욕망을 쾌락을 향해 돌리고, 단지 “한두 달 꿀벌집을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평생토록 다른 양식은 맛보지 않으려 들게 되니, 그 내내 우리가 실은 영혼을 굶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이다.
이 주제를 두고 내가 알아 온 가장 아름다운 인격 가운데 한 분과 한때 대화를 나눈 일이 기억난다. 한 여인이었다. 수감이라는 비극의 전과 후를 통틀어 그녀가 내게 보여 준 공감과 고결한 친절은 말이나 묘사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으나,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녀는 내가 내 고난의 짐을 져 나가도록 실로 도와 준 사람이다. 그 모든 일이 단지 그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통해, 그녀가 그녀라는 바로 그 사실을 통해 이루어졌다—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상이요 한편으로는 하나의 감화인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암시인 동시에 그리되어 가기 위한 실다운 도움인 사람, 흔한 공기조차 향기롭게 만들고 영적인 것을 햇빛이나 바다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이게 하는 영혼을 지닌 사람, 그녀에게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손을 맞잡고 걸으며 같은 전언을 지닌 사람. 내가 떠올리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런던의 좁은 뒷골목 하나에 담긴 고통만으로도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음이 입증된다고, 그리고 어디든 슬픔이 있는 곳에서는, 그것이 저지른 것이든 저지르지 않은 잘못을 두고 어느 작은 뜰에서 울고 있는 한 아이의 슬픔에 지나지 않더라도, 창조의 얼굴 전체가 송두리째 훼손된 것이라고. 나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리 말해 주었으나 나는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런 믿음에 이를 수 있는 영역에 나는 있지 않았다. 이제 내게는 어떤 형태의 사랑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저 터무니없이 많은 고통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여겨진다. 다른 어떤 설명도 나는 떠올릴 수 없다. 다른 설명은 없다는 것, 세계가 정녕 내가 말한 대로 슬픔으로 지어졌다면 그것은 사랑의 손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렇게 해서가 아니고는, 세계가 그를 위해 지어진 인간의 영혼이 제 완성의 온전한 키에 이를 길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육체를 위해서는 쾌락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는 아픔이.
이러한 것들을 확신한다고 말할 때, 나는 지나친 자긍심으로 말하는 셈이다. 완전한 진주처럼, 저 먼 곳에 하느님의 도성이 보인다. 너무도 경이로워, 여름날 하루면 어린아이라도 그곳에 닿을 수 있으리라 여겨질 정도다. 그리고 실로 어린아이라면 그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한순간에는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으나, 이어지는 긴 시간들이 납의 발로 걸어오는 동안 그것을 놓쳐 버리고 만다. “영혼이 얻어낼 수 있는 저 높이”를 붙들고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영원 속에서 사유하나, 시간 속을 더디게 나아간다. 감옥에 누워 있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더딘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또한 한 사람의 감방과, 그의 마음의 감방 속으로 기이한 집요함으로 되기어드는 저 권태와 절망—마치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듯, 가혹한 주인을 맞듯, 혹은 제 운이 되었든 제 선택이 되었든 그의 노예가 된 한 노예를 맞듯, 사람은 그것들의 도래를 위해 제 집을 쓸고 가지런히 해 두어야 한다—에 대해서도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리고 지금의 내 벗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사실은 이러하다. 자유와 한가로움과 안락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이 겸허의 교훈을 배우기가, 감방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물걸레질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보다 더 쉽다는 것이다. 감옥 생활은 끝없는 결핍과 제약으로 사람을 반항적이게 만든다. 가장 끔찍한 점은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찢어 놓는다는 데에 있지 않다—마음이란 본래 찢어지게 마련인 것이니—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돌로 바꾸어 놓는다는 데에 있다. 때로 사람은 오로지 놋쇠의 이마와 경멸의 입술로써만 하루를 견뎌 낼 수 있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나 반항의 상태에 있는 자는 은총을 받지 못한다—교회가 그토록 즐겨 쓰는, 또 내가 감히 말하건대 지당히도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삶에서나 예술에서나 반항의 정조는 영혼의 수로들을 틀어막고 하늘의 바람들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교훈들을 어디에서고 배워야 한다면 바로 이곳에서 배워야 하며, 내 발이 올바른 길 위에 있고 내 얼굴이 “아름답다 불리는 문”을 향해 있다면, 내가 수없이 진창에 넘어지고 안개 속에서 숱하게 길을 잃을지언정, 기쁨으로 충만해져야만 한다.
이 새로운 삶—단테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끔 Vita Nuova라 부르기를 즐기는 이것은—물론 조금도 새로운 삶이 아니며, 다만 전개와 진화에 의한 이전 삶의 연속일 따름이다. 옥스퍼드 시절, 학위를 받기 전해 어느 아침 모들린 칼리지의 좁고 새 우는 산책로를 한 벗과 거닐며, 세계의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 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열정을 영혼에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실로 나는 세상으로 나아갔고, 그렇게 살았다. 다만 내 오직 한 가지 잘못은, 내게 햇살 드는 쪽으로 보였던 동산 나무들에만 지나치게 나를 가두고, 그 그림자와 어둠 때문에 다른 쪽은 멀리한 것이다. 실패, 수치, 가난, 슬픔, 절망, 고통, 눈물마저, 아픔에 찬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토막 난 말들, 사람을 가시밭 위로 걷게 하는 회한, 규탄하는 양심, 벌하는 자기비하,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비참, 제 옷으로 거친 삼베를 고르고 제 잔에 쓸개즙을 타는 번민—이 모두가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아예 모르고 살리라 결심했기에, 나는 결국 이 모두를 차례로 맛보게, 이것들로 배를 불리게, 실로 한동안 다른 양식이라고는 전혀 먹지 못하게 되었다.
쾌락을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그리해야 하듯, 나는 그것을 끝까지 맛보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쾌락은 없었다. 나는 내 영혼의 진주를 술잔에 던져 넣었다. 플루트 소리를 들으며 앵초 깔린 길을 걸어 내려갔다. 꿀벌집을 먹고 살았다. 그러나 그 같은 삶을 계속했더라면 그릇된 일이었으리라. 그것은 스스로를 한정 짓는 일이 되었을 테니까. 나는 넘어가야 했다. 동산의 나머지 절반 또한 내게 비밀들을 품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 책들 속에 예시되고 밑그림 지어져 있다. 그 일부는 『행복한 왕자』에, 일부는 『어린 왕』에, 특히 주교가 무릎 꿇은 소년에게 “비참을 만드신 이가 그대보다 더 지혜롭지 아니하신가?”라고 말하는 대목에 있다. 내가 그 구절을 썼을 때는 그저 한 구절에 지나지 않는 듯 여겨졌다. 그 상당 부분은 『도리언 그레이』의 결 사이로 자줏빛 실처럼 흐르는 파멸의 음조에 감추어져 있고,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에는 여러 빛깔로 펼쳐져 있으며, 『(사회주의하의) 인간의 영혼』에는 너무나 읽기 쉬운 글자로 적혀 있다. 또한 그것은 『살로메』를 한 편의 음악처럼 만들고 하나의 발라드처럼 엮어 내는, 반복되는 모티프들 가운데 한 후렴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순간을 사는 쾌락”의 청동상으로부터 “영원히 머무르는 슬픔”의 상을 빚어내야만 하는 사나이를 그린 산문시에서는, 그것이 화육되어 있다. 달리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생애 어느 한순간에도 그는 장차 될 존재이기도 하고 이미 있었던 존재이기도 하니까. 예술은 상징이다, 사람이 상징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에 온전히 이를 수만 있다면, 이는 예술적 삶의 궁극적 실현이다. 예술적 삶이란 곧 자기 전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서 겸허란 모든 경험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일이요, 예술가에게서 사랑이란 세계에 그 육체와 영혼을 드러내 주는 아름다움의 감각 그 자체이다. 『쾌락주의자 마리우스』에서 페이터는 예술적 삶과, 그 깊고 달콤하며 엄숙한 뜻에서의 종교적 삶을 화해시키려 한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관조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상적인 관조자이기는 하다—워즈워스가 시인의 참된 목표라 규정했던 “합당한 정서로 삶의 스펙터클을 관조하는 것”이 그에게는 허락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한낱 관조자일 뿐이며, 어쩌면 성소의 의자들의 단정함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슬픔의 성소임을 알아채지 못한 관조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스도의 참된 삶과 예술가의 참된 삶 사이에 훨씬 더 긴밀하고 직접적인 연관을 본다. 그리고 슬픔이 내 나날을 제 것으로 삼아 제 수레바퀴에 나를 묶기 훨씬 전에, 나는 『(사회주의하의) 인간의 영혼』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려는 자는 온전히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이미 적어 두었으며, 그때 내가 본보기로 삼은 것은 단지 언덕 위의 목자나 감방의 죄수만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의 행렬인 화가와 세계가 한 편의 노래인 시인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각별한 기쁨을 느낀다. 앙드레 지드와 파리의 어느 카페에 함께 앉아 있던 때, 나는 형이상학은 내게 거의 아무런 흥미가 없고 도덕은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지만, 플라톤이나 그리스도가 남긴 말씀 가운데 예술의 영역으로 즉시 옮겨 그 안에서 온전히 성취될 수 없는 말씀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삶에서 고전주의 운동과 낭만주의 운동을 진정 갈라 놓는 저 인격과 완전성의 긴밀한 합일을 분별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분 본성의 바로 그 바탕이 예술가의 본성의 바탕과 동일한 것이었음을—곧 강렬하고 불꽃 같은 상상력이었음을—분별해 낼 수 있다. 그분은 인간관계의 전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에서는 창조의 유일한 비밀인 저 상상적 공감을 구현하셨다. 나병 환자의 나병을, 눈먼 자의 어둠을, 쾌락을 위해 사는 자들의 사나운 비참을, 부유한 자들의 기이한 빈곤을 그분은 이해하셨다. 고난 중에 있는 어떤 이가 내게 편지를 보내, “당신이 받침대 위에 있지 않을 때는 당신은 흥미롭지 않다”고 썼다. 그 편지를 쓴 이는 매슈 아널드가 “예수의 비밀”이라 부른 것으로부터 얼마나 먼 자리에 있었던가. 둘 중 어느 쪽이든 그에게 이렇게 가르쳤으리라—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곧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리고 새벽에도 한밤에도, 쾌락을 위해서도 고통을 위해서도 읽을 만한 한 문장을 원한다면, 해가 금빛을 입히고 달이 은빛을 입히도록 그대의 집 벽에 이렇게 써 붙이라—“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그리스도의 자리는 실로 시인들 곁에 있다. 인류에 관한 그의 사유 전체는 상상력에서 직접 솟아났고, 오직 상상력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 범신론자에게 신이 그러했듯, 그에게는 인간이 그러했다. 그는 분열된 종족들을 하나의 일치로 사유한 첫 사람이었다. 그의 시대 이전에는 신들과 인간들이 따로 있었는데, 공감의 신비주의를 통해 그 둘이 저마다 제 안에서 화육했음을 느낀 까닭에, 그는 기분에 따라 자신을 이쪽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하고 저쪽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한다. 역사의 그 누구보다도 그는 우리 안에 낭만이 늘 호소해 오는 저 경이의 정조를 일깨운다. 갈릴리의 젊은 농부가 세상 전체의 짐을 제 두 어깨로 짊어질 수 있다고 상상했다는 발상에는 내게 아직도 거의 믿기지 않는 데가 있다. 이미 행해지고 감내된 모든 것, 앞으로 행해지고 감내될 모든 것. 네로의, 체사레 보르자의, 알렉산데르 6세의 죄, 로마의 황제이자 태양의 사제였던 자의 죄. 이름이 군단과도 같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들의 고통, 억압받는 민족들, 공장의 아이들, 도둑들, 옥에 갇힌 자들, 버림받은 자들, 압제 아래 입을 다문 채 그 침묵이 오직 하느님께만 들리는 자들. 이 모든 것을 다만 상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인격과 접하는 모든 이가—그의 제단에 절하지도 않고 그의 사제 앞에 무릎 꿇지 않더라도—어떤 방식으로든 제 죄의 추함이 거두어지고 제 슬픔의 아름다움이 드러남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리스도가 시인들의 반열에 든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셸리와 소포클레스가 그의 동무들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 전체 또한 가장 놀라운 시다. 그리스 비극 전 주기를 통틀어 ‘연민과 공포’에 있어 이것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주인공의 절대적 순결함이 극 전체의 구도를 낭만주의 예술의 높이로 끌어올려, 테바이와 펠롭스 가문의 고통은 바로 그 공포 때문에 이 높이에서 제외된다. 또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작론에서 죄 없는 자의 고통은 관객이 견딜 수 없으리라 말한 것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보여준다. 저 준엄한 다정함의 스승들인 아이스킬로스나 단테에게서도, 모든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가장 순수하게 인간적인 셰익스피어에게서도, 세상의 사랑스러움이 눈물의 안개를 통해 드러나고 사람의 생명이 한 송이 꽃의 생명에 지나지 않는 켈트 신화와 전설 전체에서도, 비애의 단순한 순박함이 비극적 효과의 숭고함과 맞물려 하나가 된 면에서 그리스도의 수난 마지막 막에 견줄 만하거나 근접할 만한 것은 없다. 동무들과의 작은 만찬, 그 중 한 사람은 이미 값을 받고 그를 팔아넘긴 뒤였다. 달빛 고요한 동산의 번민. 입맞춤으로 그를 배신하려 가까이 다가오는 거짓 벗. 아직 그를 믿고 있었고, 그 위에 반석으로 삼아 인간을 위한 피난의 집을 세우려 했던 또 다른 벗이, 새벽을 향해 닭이 울자 그를 부인하는 장면. 그가 겪은 저 극한의 고독, 그의 순종,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이 모두와 나란히, 정통의 대제사장이 분노하여 제 옷을 찢는 장면, 세속 재판의 치안관이 무고한 피의 얼룩—그를 역사의 주홍빛 인물로 만드는 그 얼룩—에서 제 몸을 씻어내리라는 헛된 바람으로 물을 가져오라 외치는 장면. 슬픔의 대관식, 기록된 시간 전체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 가운데 하나. 어머니와 사랑하시던 제자의 눈앞에서 치러진 무죄한 이의 십자가형. 그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고 주사위를 굴리는 병사들. 그가 세상에 가장 영원한 상징을 남긴 그 끔찍한 죽음. 그리고 마침내 값비싼 향료와 향유를 곁들인 이집트 아마포에 몸이 감싸여 부자의 무덤에 묻히는 장면, 마치 왕의 아들이기라도 한 듯. 이 모든 것을 순전히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교회의 지고한 예전이 피를 흘리지 않고 거행되는 비극—대화와 복식과 몸짓으로 주님의 수난을 신비롭게 재현하는 극—이라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자취를 감춘 그리스 합창단의 궁극적 잔존이 미사에서 사제에게 응답하는 복사(服事)에게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내게 언제나 즐거움과 경외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는—슬픔과 아름다움이 의미와 발현에서 이토록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까닭에—실은 하나의 목가(牧歌)다. 비록 그 끝은 성전의 휘장이 찢기고, 어둠이 땅 위에 덮이며, 돌이 무덤 문으로 굴려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사람들은 늘 그를 동무들을 거느린 젊은 신랑으로 떠올린다—그 자신도 어디선가 스스로를 그렇게 묘사했듯이. 푸른 풀밭이나 서늘한 냇물을 찾아 양떼를 데리고 골짜기를 방황하는 목자로, 음악으로 하느님의 도성의 성벽을 쌓으려는 가인(歌人)으로, 그 사랑을 담기에는 온 세상이 너무 좁은 어느 연인으로. 그의 기적들은 내게 봄의 도래만큼이나 섬세하고, 또한 꼭 그만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의 인격에 서린 매혹이 그토록 커서 그의 존재만으로도 번민하는 영혼들에게 평화가 임하고, 그의 옷이나 손에 닿은 자들이 제 고통을 잊었다거나, 그가 인생의 큰 길을 지나갈 때 생명의 신비라곤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이들이 그것을 똑똑히 보게 되고, 쾌락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에도 귀먹었던 다른 이들이 처음으로 사랑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이 ‘아폴론의 라이어처럼 음률로 가득한’ 것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그가 다가오면 악한 정념들이 달아났다거나, 상상력 없는 둔중한 생이 그저 죽음의 한 방식이었던 자들이 그가 부르자 흡사 무덤에서 일어나듯 일어섰다는 이야기, 그가 산상에서 가르칠 때 군중이 제 주림과 목마름과 이 세상의 근심을 잊었다거나, 그가 식탁에 앉아 말할 때 귀 기울이던 벗들에게는 거친 음식이 섬세하게 느껴지고 물에서 좋은 포도주의 맛이 났으며 온 집이 나르드 향유의 향기와 달콤함으로 가득했다는 이야기를—나는 믿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르낭은 그의 Vie de Jesus(예수의 생애)—그 우아한 제오 복음서, 말하자면 도마에 의한 복음이라 부를 만한 책—어디선가, 그리스도의 가장 큰 업적은 자신을 죽음 이후에도 생전에 받은 만큼의 사랑을 받도록 만든 것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의 자리가 시인들 가운데 있다면, 그는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지도자다. 그는 사랑이야말로 현인들이 찾아 헤매던 세상의 첫 비밀임을,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나병 환자의 심장이나 하느님의 발에 가 닿을 수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는 개인주의자 가운데 지고한 분이다. 겸허는, 모든 경험을 예술가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다만 하나의 발현 방식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언제나 찾고 있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다. 그는 그것을 ‘하느님의 나라’라 부르며, 모든 사람 안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그는 그것을 작은 것들—한 알의 작은 씨앗, 한 줌의 누룩, 한 알의 진주—에 견준다. 까닭은 낯선 정념을 모두 떨어버리고, 얻어 걸친 문화를 모두 벗고, 선하든 악하든 바깥의 소유를 모두 놓아버릴 때 비로소 제 영혼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의 고집과 천성의 반항으로 온갖 것을 견뎌냈다. 세상에 남은 것이라곤 단 한 가지뿐인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름을, 지위를, 행복을, 자유를, 재산을 잃었다. 죄수였고 빈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법이 그들을 내게서 앗아갔다. 그것은 너무도 참혹한 타격이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울며 말했다. ‘아이의 몸은 주님의 몸과 같으니, 나는 그 어느 쪽에도 합당치 아니하다.’ 그 순간이 나를 구한 듯했다. 그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보았다. 그 후로—이상하게 들리겠지만—나는 더 행복해졌다. 그것은 물론 내가 궁극의 본질 속에 있는 내 영혼에 가 닿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면에서 나는 내 영혼의 적이었으나, 영혼은 한 사람의 벗으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혼과 접촉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진다.
사람이 죽기 전에 ‘제 영혼을 지니는’ 이가 얼마나 적은지 생각하면 비극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의 행위만큼 드문 것은 없다’고 에머슨은 말한다. 참으로 옳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그들의 생각은 누군가의 의견이고, 그들의 삶은 모방이며, 그들의 정념은 인용이다. 그리스도는 개인주의자 가운데 지고한 분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상 최초의 개인주의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평범한 자선가로 꾸며내려 했고, 과학적·감상적 부류와 나란히 이타주의자로 분류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다. 물론 그는 가난한 자, 옥에 갇힌 자, 비천한 자, 비참한 자들을 연민한다. 그러나 부자들, 냉혹한 쾌락주의자들, 물건의 노예가 되어 제 자유를 허비하는 자들, 부드러운 옷을 걸치고 왕의 집에 사는 자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큰 연민을 품는다. 그에게는 부와 쾌락이 가난이나 슬픔보다 실로 더 큰 비극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타주의로 말하자면, 우리를 결정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소명이며,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누가 그보다 더 잘 알았겠는가?
뚜렷하게 자각된 목표로서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그의 신조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신조의 바탕이 아니었다. 그가 ‘원수를 용서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며, 사랑이 미움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뿐이다. 젊은이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간청할 때에도,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가난한 자들의 처지가 아니라 젊은이의 영혼, 재물이 상하게 하고 있는 바로 그 영혼이다. 인생을 보는 그의 시선은, 자기 완성의 필연적 법칙에 의해 시인은 노래해야 하고, 조각가는 청동으로 사유해야 하며, 화가는 세상을 제 감정의 거울로 삼아야 함을—산사나무가 봄에 꽃을 피워야 하고, 곡식이 추수 때에 금빛으로 물들어야 하며, 달이 정해진 운행 속에서 방패에서 낫으로, 낫에서 방패로 바뀌어야 하듯 확실하고 틀림없이—아는 예술가와 하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남을 위해 살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되, 남의 삶과 제 삶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음을 지적했다. 이 방식으로 그는 인간에게 확장된, 거인적 인격을 주었다. 그의 도래 이후로 저마다 따로 선 개인의 역사는 곧 세상의 역사이거나, 그렇게 될 수 있다. 물론 문화가 인간의 인격을 더 강화해 왔다. 예술은 우리를 천만 개의 마음을 지닌 존재로 만들었다.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이들은 단테와 더불어 망명에 나서 남의 빵이 얼마나 짜고 그 층계가 얼마나 가파른지를 배우며, 한순간 괴테의 청명과 고요를 붙잡았다가도, 보들레르가 하느님께 부르짖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O Seigneur, donnez moi la force et le courage
De contempler mon corps et mon coeur sans dégoût.’
(오 주여, 제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 혐오 없이 제 몸과 마음을 응시할 수 있도록.)
그들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어쩌면 제 상처를 더하면서도—그의 사랑의 비밀을 끌어내어 제 것으로 삼는다. 그들은 쇼팽의 녹턴 가운데 하나에 귀 기울였거나, 그리스의 물건을 손에 들어보았거나, 머리칼이 고운 금실 같고 입술이 석류 같았던 어느 죽은 여인을 향한 어느 죽은 남자의 정념 이야기를 읽은 까닭에, 새로운 눈으로 오늘의 삶을 바라본다. 그러나 예술가적 기질의 공감은 필연적으로 이미 표현을 얻은 것들을 향한다. 말이나 색채로, 음악이나 대리석으로, 아이스킬로스 극의 채색된 가면 뒤에서든 시칠리아 목동의 구멍 뚫린 이음 갈대 피리를 통해서든, 그 사람과 그의 전언이 드러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표현은 그가 삶을 도대체 사유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다. 그에게 말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거의 경외감이 일 만큼 폭넓고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그는 말 없는 자들의 세계 전체, 아픔의 목소리 없는 세계 전체를 제 나라로 삼아, 스스로 그 세계의 영원한 대변인이 되었다. 내가 말했던 그런 사람들, 압제 아래 입을 다문 채 ‘그 침묵이 오직 하느님께만 들리는’ 자들을 그는 제 형제로 택했다. 그는 눈먼 이들의 눈이 되고, 귀먹은 이들의 귀가 되며, 혀가 묶인 자들의 입술에 실린 외침이 되고자 했다. 그의 소망은, 발언을 얻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하늘을 향해 부르짖을 수 있는 하나의 나팔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통과 슬픔이 아름다움에 관한 자기 사유를 실현하는 통로였던 예술가적 천성으로, 사상은 화육하여 형상이 될 때까지 가치가 없음을 느낀 까닭에, 그는 스스로를 ‘슬픔의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었고, 그리하여 어떤 그리스 신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예술을 매혹하고 지배해 왔다.
그리스의 신들은 곧고 재빠른 사지에 어린 붉고 흰 광채에도 불구하고, 사실 겉보기와 같지 않았다. 아폴론의 굽은 이마는 새벽녘 언덕 위로 초승달 모양으로 솟는 태양의 원반과도 같았고, 그의 발은 아침의 날개 같았으나, 그 자신은 마르시아스에게 잔인했고 니오베를 자식 없는 이로 만들었다. 아테나의 강철 방패 같은 눈에는 아라크네를 향한 연민이 없었다. 헤라의 영화와 공작들만이 그녀에게서 실로 고귀한 전부였다. 신들의 아버지 자신은 인간의 딸들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깊은 암시를 주는 두 인물은, 종교에 있어서는 올림포스의 신이 아닌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이고, 예술에 있어서는 인간 여인의 아들로서 그의 출생의 순간이 곧 어머니의 죽음의 순간이기도 했던 디오니소스다.
그러나 삶 자체는 가장 낮고 가장 비천한 영역으로부터, 프로세르피나의 어머니나 세멜레의 아들보다 훨씬 더 경이로운 한 인물을 낳았다. 나사렛의 목수 작업장에서 신화와 전설이 빚어낸 그 어떤 존재보다 무한히 더 큰 인격이 나왔으니, 이상하게도 그는 포도주의 신비로운 의미와 들의 백합의 참된 아름다움을—키타이론 산이든 엔나든 그 어느 곳의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방식으로—세상에 드러낼 운명을 지닌 이였다.
이사야의 노래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고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우리가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하였다’는, 그에게는 자기 자신을 미리 그려 보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 안에서 예언은 성취되었다. 우리는 그런 표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예술 작품 하나하나가 곧 한 예언의 성취이니, 모든 예술 작품은 하나의 사상을 형상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하나도 한 예언의 성취여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마음에서든 인간의 마음에서든 어떤 이상의 실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 전형을 발견하여 고정시켰고, 예루살렘에서든 바빌론에서든 베르길리우스풍 시인의 꿈이, 수세기에 걸친 긴 여정 끝에, 세상이 기다려 온 그 사람 안에 화육하게 되었다.
내가 역사에서 가장 애석하게 여기는 일 가운데 하나는, 샤르트르 대성당과 아서왕 전설군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조토의 예술과 단테의 Divine Comedy(신곡)를 낳은 그리스도 자신의 르네상스가 제 길을 따라 온전히 전개되지 못하고, 페트라르카와 라파엘로의 프레스코와 팔라디오풍 건축과 정형화된 프랑스 비극과 세인트 폴 대성당과 포프의 시와, 안에서 어떤 영이 깃들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부터 죽은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온갖 것을 남긴 저 음산한 고전주의 르네상스에 의해 중단되고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술에 낭만주의 운동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있다. 그는 Romeo and Juliet(로미오와 줄리엣) 안에, Winter’s Tale(겨울 이야기) 안에, 프로방스 시 안에, Ancient Mariner(노수부의 노래) 안에, La Belle Dame sans merci(무자비한 미녀) 안에, 그리고 채터턴의 Ballad of Charity(자비의 발라드) 안에 있다.
우리가 그에게 빚진 것은 가장 갖가지의 것과 사람이다. 위고의 Les Misérables(레 미제라블), 보들레르의 Fleurs du Mal(악의 꽃), 러시아 소설에 스민 연민의 가락, 베를렌과 베를렌의 시편, 번존스와 모리스의 스테인드글라스와 태피스트리와 콰트로첸토풍 작업은, 조토의 종탑, 랜슬롯과 기네비어, 탄호이저, 미켈란젤로의 번민 어린 낭만적 대리석상들, 첨두 건축, 그리고 아이들과 꽃들에 대한 사랑에 못지않게 그에게 속한다. 이 둘—아이와 꽃—은 사실 고전 예술에서는 자리가 거의 없었고, 자랄 공간도 놀 공간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으나, 12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양식으로 여러 시대에 예술에 거듭 모습을 드러내 왔다. 아이들과 꽃들이 흔히 그러하듯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꽃들은 마치 숨어 있다가 어른들이 찾다가 지쳐 포기할까 봐 햇빛 아래로 나오는 것처럼 봄이면 늘 그렇게 보이고, 아이의 삶이란 수선화에게는 비와 햇살이 함께 내리는 4월의 하루에 지나지 않는 까닭이다.
그리스도 자신의 본성이 지닌 상상력의 자질이야말로 그를 이 낭만의 고동치는 중심으로 만든다. 시극과 발라드의 기이한 인물들은 다른 이들의 상상력으로 빚어지지만, 나사렛 예수는 오로지 그 자신의 상상력으로 스스로를 창조했다. 이사야의 외침은 그의 오심과 관련된 정도가 달의 떠오름과 나이팅게일의 노래가 서로 관련된 정도 이상이 아니었다—그 이상도, 어쩌면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예언의 부정인 동시에 긍정이었다. 그가 성취한 기대 하나마다 그가 허문 기대가 또 하나 있었다. 베이컨은 ‘모든 아름다움에는 비례의 어떤 기이함이 있다’고 말하는데, 영으로 난 자들—즉 그 자신처럼 동적인 힘인 자들—을 두고 그리스도는 그들이 ‘임의로 부는 바람과 같아서, 아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래서 그는 예술가들을 그토록 매혹한다. 그에게는 삶의 모든 색채 요소—신비, 기이함, 비애, 암시, 황홀, 사랑—가 다 있다. 그는 경이의 정조에 호소하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분을 스스로 빚어낸다.
또한 그가 ‘상상력으로만 온통 짜여’ 있다면, 세상 자체도 같은 재료로 되어 있음을 기억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기쁨이다. 나는 Dorian Gray(도리언 그레이)에서 세상의 큰 죄는 뇌 안에서 일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뇌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도 귀로 듣는 것도 아님을 안다. 그것들은 실은 감각 인상을 전달하는—충분히든 불충분하게든—통로일 뿐이다. 양귀비가 붉은 것도, 사과에서 향이 나는 것도, 종달새가 노래하는 것도, 모두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근래 그리스도를 다룬 네 편의 산문시를 정성 들여 공부해 왔다. 성탄절에 그리스어 신약성서 한 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아침마다 감방을 청소하고 양철 식기를 닦아놓은 뒤 복음서를 조금씩 읽었다. 아무 데서나 우연히 고른 열두어 절씩. 하루를 여는 이 얼마나 즐거운 방법인가. 누구든—파란만장하고 규율 없는 삶 속에서라도—같이 해 보아야 한다. 끝없는 반복이, 때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 일이, 복음서의 신선함과 순박함과 단순한 낭만적 매력을 우리에게서 앗아갔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자주, 너무 형편없이 들어 왔다. 모든 반복은 반영적(反靈的)이다. 그리스어 본문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어떤 좁고 어두운 집에서 나와 백합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또한 그리스도가 실제로 쓰신 바로 그 용어, ipsissima verba(바로 그 말씀)를 우리가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생각에 그 기쁨은 배가된다. 그리스도가 아람어로 말했다는 것이 늘 상정되어 왔다. 르낭조차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갈릴리의 농부들이 오늘날의 아일랜드 농부들처럼 이중 언어 사용자였음을, 그리고 그리스어가 팔레스타인 전역—실은 동방 세계 전역—에서 일상적 교류의 언어였음을 안다. 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직 번역의 번역을 통해서만 안다는 생각을 결코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의 대화가 관건인 한, 카르미데스가 그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을 것이며, 소크라테스가 그와 더불어 논할 수 있었을 것이며, 플라톤이 그를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기쁨이다. 그가 실제로 εyω ειμι ο ποιμην ο καλος(‘나는 선한 목자니라’)라고 말했으리라는 것, 들의 백합을 생각하며 그것들이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그의 본원적 표현은 καταyαθετε τα κρίνα του αγρου τως αυξανει ου κοπιυ ουδε νηθει(‘들의 백합을 보라 어떻게 자라는가, 수고도 길쌈도 아니하느니라’)였다는 것, 그리고 ‘나의 생이 완성되었으며, 그 성취에 이르렀으며, 온전케 되었도다’라고 외친 그의 마지막 말씀이, 바로 요한이 우리에게 전한 그대로 τετέλεσται(‘다 이루었다’)였다는 것—그 이상 어떤 말도 필요 없다.
복음서를—특히 요한 자신의 복음서, 혹은 그의 이름과 망토를 취한 어느 초기 영지주의자의 복음서를—읽으며, 나는 모든 영적·물질적 생의 바탕으로서 상상력을 줄곧 주장하고 있음을 볼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상상력은 단지 사랑의 한 형태였으며, 그에게 사랑은 그 말의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 주(主)였음을 본다. 예닐곱 주 전, 나는 의사의 허락으로 보통의 감옥 식사인 거친 검은 빵이나 갈색 빵 대신 흰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대단한 별미다. 마른 빵이 누구에겐가 별미가 될 수 있다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내게는 너무도 그러해서, 식사가 끝날 때마다 나는 내 양철 접시에 남아 있을 부스러기든, 식탁보 대신 쓰는 거친 수건 위에 떨어진 부스러기든—식탁을 더럽히지 않으려 그것을 보로 쓴다—하나도 남기지 않고 정성껏 주워 먹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주려서가 아니라—이제는 음식을 충분히 얻는다—다만 내게 주어진 것 가운데 아무것도 허비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사랑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매혹적인 인격이 그러하듯, 스스로 아름다운 말을 할 뿐 아니라 남들로 하여금 그에게 아름다운 말을 하도록 이끄는 힘을 지녔다. 마가가 전하는 그 그리스 여인 이야기를 나는 사랑한다.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여 그가 이스라엘 자녀의 빵을 그녀에게 줄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식탁 아래 있는 작은 개들—κυναρια, ‘작은 개들’이 정확한 번역이다—이 아이들이 떨어뜨리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그에게 대답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과 흠모를 얻고자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탕은 사랑과 흠모에 의해서다. 누군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에 전혀 합당치 아니함을 인정해야 한다. 사랑받기에 합당한 자는 아무도 없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이상(理想)의 신적 질서 속에 영원한 사랑이 영원히 합당치 아니한 것에게 주어지도록 쓰여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혹 그 말이 견디기에 쓰디쓰게 여겨진다면, 이렇게 말하자.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다만 자신이 그럴 만하다고 여기는 자는 제외하고. 사랑은 무릎 꿇고 받아야 할 성사이며, Domine, non sum dignus(‘주여, 나는 합당치 아니하오나’)가 그것을 받는 이들의 입술과 마음에 있어야 한다.
언젠가 내가 다시 글을 쓴다면—예술 작품을 내어놓는다는 의미에서—내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은, 그리고 표현할 매개가 되어줄 주제는 꼭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삶 속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선구자 그리스도’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삶을 행위(品行)와의 관계에서 고찰함’이다. 첫 번째 주제는 물론 몹시 매혹적이다. 나는 그리스도에게서 지고의 낭만적 전형의 본질만이 아니라, 낭만적 기질의 온갖 우연—심지어 그 변덕들까지도—을 본다. 그는 사람들에게 ‘꽃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 첫 사람이었다. 그 표현을 확정한 이도 그였다. 그는 사람들이 되려 애써야 할 전형으로 어린아이들을 삼았다. 그는 그들을 어른들에게 본보기로 내세웠으니—완전한 것에 용도가 있어야 한다면, 나는 늘 그것이 아이들의 주된 용도라고 생각해 왔다. 단테는 사람의 영혼이 하느님의 손에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웃으며’ 나오는 것으로 묘사하며, 그리스도 또한 저마다의 영혼이 a guisa di fanciulla che piangendo e ridendo pargoleggia(울다가 웃는 어린아이처럼)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삶이 변화하고 흐르며 움직이는 것이기에,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고착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죽음임을 느꼈다. 사람들이 물질적이고 범속한 이해에 너무 진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 비실용적이라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는 것, 일에 너무 마음 졸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보았다. 새들도 그러지 않는데 왜 사람이 그러겠는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영혼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말할 때 그는 매혹적이다. 뒤의 구절은 그리스인이 썼을 법하다. 그리스적 감정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둘을 다 말하고, 그렇게 삶을 우리에게 온전히 요약해 줄 수 있었던 이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의 도덕은 모두 공감이니, 도덕이란 바로 그래야 하는 바 그대로다. 그가 한 말이 ‘그녀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뿐이었다 해도, 그 말 하나를 남기기 위해 죽을 가치가 있었으리라. 그의 정의는 모두 시적 정의이니, 정의란 바로 그래야 하는 바 그대로다. 거지는 불행했던 까닭에 천국에 간다. 그가 그리로 보내지는 더 나은 이유를 나는 떠올릴 수 없다. 서늘한 저녁에 포도원에서 한 시간을 일한 이들이 뜨거운 해 아래 종일 수고한 이들과 똑같은 삯을 받는다. 왜 그래서는 안 되겠는가? 아마 아무도 무엇도 받을 자격은 없었을 것이다. 혹은 아마 그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으리라. 그리스도는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는 우둔하고 생명 없는 기계적 체제, 그리하여 만인을 똑같이 다루는 체제에 조금도 참을성이 없었다. 그에게는 법칙이란 없었다. 오직 예외만 있었을 뿐—마치 세상에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다른 무엇과 같지 않다는 듯이!
낭만주의 예술의 바로 그 기조인 것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마땅한 바탕이었다. 다른 바탕을 그는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바로 죄의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을 그에게 끌고 와, 율법에 적힌 그녀의 판결을 보이고 어찌해야 할지를 묻자, 그는 저들의 말을 듣지 않는 듯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썼다. 저들이 다시 채근하자 그제야 그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말을 남기기 위해 살아 볼 가치가 있었으리라.
모든 시적 천성이 그러하듯 그는 배우지 못한 이들을 사랑했다. 배우지 못한 이의 영혼에는 언제나 큰 사상이 들어설 자리가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 특히 교육으로 어리석어진 자들은 견디지 못했다. 자신이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견들로 가득한 사람들—그리스도가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쓰지도 못하고 남이 쓰게 두지도 않는 자의 전형이라 묘사한, 특히 근대적인 한 유형. 그 열쇠는 능히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의 주된 전쟁은 속물(필리스티아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빛의 자녀마다 치러야 하는 바로 그 전쟁이다. 그가 살던 시대와 공동체의 가락은 속물주의였다. 사상에 대한 무겁고도 완고한 불통, 무미한 체면, 지루한 정통, 천박한 성공에 대한 숭배, 삶의 조야한 물질적 측면에 대한 완전한 몰두, 자기 자신과 자기 중요성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과대평가에 있어서, 그리스도 당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우리 시대의 영국 속물의 정확한 대응물이었다. 그리스도는 저 체면의 ‘회칠한 무덤’을 조롱했고, 그 표현을 영원히 확정했다. 그는 세속적 성공을 단연 경멸해야 할 것으로 대하였다. 거기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는 부를 한 사람에게 지워지는 짐으로 보았다. 그는 삶이 어떤 사상이나 도덕 체계에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형식과 예식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형식과 예식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그는 안식일 엄수주의를 마땅히 무시되어야 할 것의 전형으로 취했다. 중류 계급의 정신에 그토록 친숙한 차가운 박애, 과시적인 공공 자선, 지루한 형식주의를 그는 단호하고 가차 없는 경멸로 벗겨 보였다. 우리에게 정통이라 불리는 것은 그저 쉬운 무자각의 묵종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들 손안에서 그것은 끔찍한, 영혼을 마비시키는 전제였다. 그리스도는 그것을 휩쓸어 버렸다. 그는 오직 영만이 가치가 있음을 보였다. 그는 그들이 율법과 예언서를 줄곧 읽으면서도 그 둘의 뜻을 사실상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데서 예리한 즐거움을 느꼈다. 박하와 운향(芸香)을 십일조로 바치듯 하루하루를 정해진 규정된 의무의 틀에 십일조로 나누어 바치던 저들에 맞서, 그는 순간을 온전히 사는 일의 엄청난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가 죄에서 구원한 이들은 다만 그들 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위해 구원받은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리스도를 보자 그녀의 일곱 연인 중 한 사람이 준 값비싼 설화석고 병을 깨뜨려 그 향기로운 향료를 그의 지치고 먼지 낀 발에 쏟아붓는다. 그 한 순간을 위해 그녀는 낙원의 눈빛 같은 장미 화관(花冠) 속에서 룻, 베아트리체와 더불어 영원히 앉아 있게 된다. 그리스도가 가벼운 경고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하는 전부는, 모든 순간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영혼은 늘 신랑의 오심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늘 연인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물주의는 다만 인간 본성의 측면 가운데 상상력에 의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다. 그는 삶의 모든 사랑스러운 영향을 빛의 양식으로 본다. 상상력 그 자체가 빛의 세계다. 세상은 상상력에 의해 지어졌으나 세상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상력이란 곧 사랑의 한 발현이며,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 짓는 것은 사랑과 사랑할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가장 낭만적—즉 가장 실재적—으로 되는 때는 그가 죄인을 대할 때다. 세상은 늘 성인을 하느님의 완전에 가장 가까운 근사로서 사랑해 왔다. 그리스도는 그 안의 어떤 신적 직관으로, 죄인을 인간의 완전에 가장 가까운 근사로서 늘 사랑한 듯이 보인다. 그의 일차적 욕망은 사람들을 개조하는 것도,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흥미로운 도둑을 지루한 정직인으로 바꾸는 것이 그의 목표는 아니었다. 그는 죄수구호회(罪囚救護會)와 그 비슷한 현대의 운동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세리(稅吏)를 바리새인으로 개종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업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한 방식으로, 그는 죄와 고통을 그 자체로 아름답고 거룩한 것, 완전의 양식으로 여겼다.
참으로 위험한 생각으로 들릴 것이다. 그렇다—모든 위대한 사상은 위험하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조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이 참된 신조임을 나는 스스로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죄인은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왜인가? 단지 그러지 않고는 그가 자신이 행한 바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회개의 순간은 입문(入門)의 순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제 과거를 고치는 방편이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금언시풍의 격언에서 자주 말한다. ‘신들조차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리스도는 가장 흔한 죄인도 그것을 할 수 있음을, 그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임을 보여주었다. 물어본다면 그리스도는—나는 그것을 꽤 확신한다—탕자가 무릎을 꿇고 울던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재산을 창기들과 함께 허비했던 일, 돼지를 치고 그들이 먹던 쥐엄 열매를 주려 하던 일을 제 생의 아름답고 거룩한 순간들로 삼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 생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을 이해하려면 감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감옥에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물론 새벽 전에 가짜 새벽이 있고, 지혜로운 크로커스를 속여 때가 오기도 전에 그 금빛을 헤프게 쓰게 하며, 어리석은 새에게 짝을 불러 열매 없는 가지에 둥지를 틀게 할 만큼 갑작스러운 햇빛으로 가득한 겨울날들이 있듯이, 그리스도 이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그 점은 감사해야 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이후로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예외를 두자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에게 태어날 때부터 시인의 영혼을 주셨고, 그 자신이 아주 젊었을 때 가난을 신비한 혼인으로 제 신부로 맞아들였던 까닭에, 시인의 영혼과 거지의 몸을 지닌 그에게 완전으로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이해했고,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닮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가 참된 Imitatio Christi(그리스도를 본받아)였음을—이 같은 이름의 책은 그것에 견주면 한낱 산문에 지나지 않는 한 편의 시였음을—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Liber Conformitatum(『(성 프란치스코의) 상응의 책』)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매력이란 이것이다. 그는 꼭 한 편의 예술 작품과 같다. 그는 실로 사람을 가르치지 않지만, 그의 현존 앞에 이끌려 들어가면 사람은 어떤 무엇이 된다. 그리고 누구나 그의 현존 앞으로 나아가도록 예정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엠마오로 가는 길을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다.
다른 주제, 곧 예술적 삶의 품행과의 관계에 관해서는, 내가 그것을 택한 것이 그대에게 아마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사람들은 레딩 감옥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것이 예술적 삶이 한 사람을 데려가는 곳이다.’ 글쎄, 더 나쁜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삶을 방책과 수단의 면밀한 계산에 달린 약삭빠른 투기로 보는 더 기계적인 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거기로 간다. 그들은 교구의 정리(廷吏)가 되겠다는 이상적 욕망으로 출발하여, 어떤 영역에 놓이든 끝내 교구의 정리가 되는 데 성공한다—그것뿐, 그 이상은 아니다. 자신과 분리된 어떤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 국회의원이 되거나 성공한 식료품상이 되거나 잘나가는 사무변호사나 판사, 혹은 이에 못지않게 지루한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으레 자신이 원하는 바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그의 벌이다. 가면을 원하는 자는 그것을 써야만 한다.
그러나 삶의 동적인 힘들, 그리고 그 동적인 힘들이 화육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오직 자아실현을 욕망하는 이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알 수가 없다. 물론 그리스의 신탁이 말했듯이,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필수다. 그것이 앎의 첫 성취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이 알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지혜의 궁극의 성취다. 마지막 신비는 자기 자신이다. 저울에 해를 달아 보고, 달의 걸음을 재어 보고, 일곱 하늘을 별 하나하나로 도면 내어 본 뒤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이 남는다. 누가 제 영혼의 궤도를 계산할 수 있겠는가? 아들이 아버지의 나귀들을 찾으러 나섰을 때,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 대관의 성유(聖油)를 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자기 영혼이 이미 한 왕의 영혼임을 알지 못했다.
나는 오래 살아, 내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한 성격의 작품을 내놓고 싶다. ‘그렇다! 예술가의 삶이 한 인간을 데려가는 곳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내가 직접 겪어 아는 가장 완벽한 삶 두 가지는 베를렌과 크로포트킨 공의 삶이다. 둘 모두 여러 해를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앞의 사람은 단테 이후 유일한 그리스도인 시인이요, 뒤의 사람은 러시아에서 걸어나오는 듯한 저 아름다운 흰옷의 그리스도와 같은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지난 일고여덟 달 동안, 바깥세계로부터 큰 환난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과 사물을 통해 이 감옥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어떤 새로운 정신과 직접 맞닿게 되었으니, 그 정신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나를 도와주었다. 수감 첫해에는 무력한 절망 속에서 손을 비틀며 ‘이 얼마나 참담한 결말인가,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말인가!’라고 되뇌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려 애쓰고, 나를 괴롭히지 않는 순간에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시작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시작인가!’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만일 그리된다면 나는 이곳의 모든 이들의 삶을 바꾸어 놓은 저 새로운 인품에 크게 빚을 지게 될 것이다.
내가 지난 5월에, 시도했던 대로 석방되었더라면, 이곳과 이곳의 모든 관리를 증오의 쓴맛으로 혐오하며 떠났을 것이고 그 미움이 내 남은 생을 독으로 물들였으리라 말한다면 그대도 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일 년을 더 갇혀 있었지만, 사람다움이 우리 모두와 함께 이 감옥 안에 있었다. 이제 나갈 때에는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이곳에서 받은 크나큰 친절들을 늘 기억할 것이며, 석방되는 날에는 여러 사람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건네고, 그들 또한 나를 기억해 달라 청할 것이다.
감옥의 문체는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잘못되어 있다. 나가서 그것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다. 그렇게 해 보려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해도, 사랑의 정신이자 교회에 있지 아니한 그리스도의 정신인 인간애의 정신이 그것을 바르게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마음에 너무 많은 쓴맛을 두지 않고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또 나는 바깥에 지극히 즐거운 많은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내 형제인 바람, 내 자매인 비’라 부른, 그 둘 다 사랑스러운 것들에서부터, 큰 도시의 상점 진열창과 저녁노을에 이르기까지.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목록으로 꾸린다면 어디서 그칠지 나도 모르겠다. 과연 하느님은 이 세상을 다른 누구 못지않게 나를 위해서도 지으셨다. 어쩌면 나는 이전에 갖지 못했던 무언가를 지니고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내게 도덕상의 개혁이 신학상의 종교개혁만큼이나 무의미하고 속된 일임은 그대에게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노라 공언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허세일 뿐이나, 더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받은 자에게 허락된 특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풀려난 뒤 내 친구 하나가 잔치를 벌이면서 나를 부르지 않는다 해도,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는 홀로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다. 자유가 있고, 꽃이 있고, 책이 있고, 달이 있다면, 누가 완전히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잔치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너무 많은 잔치를 베풀어 이제는 그런 것에 마음을 둘 수 없게 되었다. 삶의 그런 면은 나에게 끝났으며,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풀려난 뒤 내 친구 하나가 슬픔을 겪으면서 내게 그 슬픔을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무엇보다 쓰라리게 느낄 것이다. 그가 애도의 집 문을 내게 걸어 잠근다면, 나는 거듭거듭 돌아가 들여보내 달라 청할 것이다. 마땅히 나누어야 할 것을 나눌 수 있도록. 그가 나를 합당치 않다고, 함께 울기에 부적격이라고 여긴다면, 나는 그것을 가장 쓰라린 굴욕으로, 내게 가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식의 치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슬픔을 나눌 권리가 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그 슬픔까지 함께 나눌 줄 아는 자, 그리고 그 둘의 경이를 얼마간 깨달은 자는 신적인 것과 직접 맞닿아 있으며, 누구든 다가갈 수 있는 한 가까이 하느님의 비밀에 이른 사람이다.
어쩌면 내 삶뿐 아니라 내 예술에도 한층 깊은 음조가, 더 큰 열정의 단일함과 더 직접적인 충동의 울림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현대 예술의 참된 목표는 넓이가 아니라 강도다. 예술은 더는 유형(類型)을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예외다.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내 고통들을 그것이 취한 어떤 형식에도 담아낼 수 없다. 예술은 모방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도 내 작품에는 무엇인가가 들어와야 한다. 어쩌면 말들의 한층 충만한 기억, 더 풍요로운 운율, 더욱 기이한 효과, 더 단순한 건축적 질서, 어쨌든 어떤 미적 성질이.
마르시아스가 ‘사지의 칼집에서 뜯겨 나왔을 때’—della vagina della membre sue, 이는 단테의 가장 무시무시한 타키투스풍 표현 가운데 하나다—그에게는 더 이상 노래가 없었다고 그리스인들은 말했다. 아폴론이 승자였다. 라이어가 갈대피리를 이겼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스인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의 많은 예술에서 마르시아스의 울음을 듣는다. 보들레르에게서는 쓰라리고, 라마르틴에게서는 달콤하고 애달프며, 베를렌에게서는 신비롭다. 쇼팽 음악의 유예된 해결 속에도 있다. 번존스가 그린 여인들을 따라다니는 불만 속에도 있다. 심지어 매슈 아널드마저도— ‘달콤하고 설득력 있는 라이어의 승리’와 ‘이름난 최후의 승리’를 서정적 아름다움의 그토록 맑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그의 시 속 칼리클레스조차도—그러한 울음을 적지 않게 지녔다. 그의 시구를 떠나지 않는 의심과 고뇌의 혼란한 저음, 그 점에서는 괴테도 워즈워스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그는 그 둘을 차례로 좇았으나, 『티르시스』의 만가를 부르려 할 때도 『학자 집시』를 노래하려 할 때도, 자신의 선율을 빚어내기 위해 그가 집어 들어야 했던 것은 갈대피리였다. 그러나 프리기아의 파우누스가 침묵했든 아니든, 나는 침묵할 수 없다. 표현은 내게 필수적인 것이니, 감옥 담장 너머로 제 모습을 드러내며 바람결에 저리도 일렁이는 나무들의 검은 가지에 잎과 꽃이 필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내 예술과 세상 사이에는 이제 넓은 심연이 놓여 있으나, 예술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그러하기를 나는 바란다.
우리 각자에게는 서로 다른 운명이 배분된다. 내 몫은 공적인 오명, 긴 수감, 참담함, 파멸, 치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에 합당치 않다. 적어도 아직은. 나는 예전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참된 비극이 자줏빛 상여 덮개와 고귀한 슬픔의 가면을 쓰고 내게 온다면 나는 그것을 능히 견디어 낼 수 있으리라 여겼노라고. 그런데 현대성의 끔찍한 점은, 비극에 희극의 옷을 입혀, 크나큰 실상들이 진부하거나 기괴하거나 품격을 잃은 듯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그 말은 현대성에 관한 한 꽤 옳은 말이다. 어쩌면 실제의 삶에는 언제나 그러한 면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순교는 구경꾼의 눈에는 하찮아 보였다고들 한다. 19세기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내 비극에 관한 모든 것은 흉측하고, 하찮고, 혐오스럽고, 품격이 없었다. 우리가 입은 옷 자체가 우리를 기괴하게 만든다. 우리는 슬픔의 광대다. 우리는 가슴이 찢긴 어릿광대다. 우리는 유머의 감각에 호소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존재다. 1895년 11월 13일, 나는 런던에서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그날 두 시부터 두 시 반까지 나는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 클래펌 정션의 가운데 승강장에 서서 온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다. 나는 아무 통보도 없이 병동에서 끌려 나온 참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구경거리 가운데 내가 가장 기괴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었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관중은 불어났다. 그들의 재미에는 끝이 없었다. 그것은 물론 그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전의 일이었다. 내 신원을 듣자마자 그들은 더욱더 웃어 댔다. 반 시간 동안 나는 11월의 잿빛 비 속에서 조롱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일이 내게 가해진 뒤로 일 년 동안, 나는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시간만큼 울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대에게 들리는 만큼 비극적인 일이 아니다. 감옥에 있는 이들에게 눈물이란 하루하루의 일상이다. 감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날은 마음이 행복한 날이 아니라, 마음이 굳어 있는 날이다.
이제, 나는 정말로 나 자신보다 그때 웃던 사람들을 더 딱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나를 보았을 때 나는 받침대 위에 있지 않았다. 나는 형틀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받침대 위에 있을 때에만 사람을 마음에 두는 것은 매우 상상력이 결핍된 천성이다. 받침대란 자못 허상일 수 있다. 형틀은 지독한 실재다. 그들은 또한 슬픔을 읽어 내는 법을 더 잘 알았어야 했다. 나는 이미 말했다, 슬픔의 뒤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다고. 슬픔의 뒤에는 언제나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한층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아픔을 겪는 영혼을 조롱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세상의 기묘하도록 단순한 이치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준 것만을 받으며, 사물의 겉면을 꿰뚫고 연민을 느낄 만한 상상력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경멸 말고 어떤 연민이 돌아가겠는가?
내가 이곳으로 이송된 경위를 이렇게 적어 두는 것은, 그저 이 형벌에서 쓰라림과 절망 외의 무언가를 건져내기가 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 하며, 이따금 나에게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받아 안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봄 전체가 한 송이 봉오리 안에 숨어 있을 수 있고, 낮은 땅 위 종달새의 둥지가 수많은 장밋빛 새벽의 발소리를 예고하는 기쁨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쩌면 내게 아직 남은 삶의 아름다움은 어떤 항복과 자기 낮춤과 굴욕의 한순간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내 자신의 전개선을 따라 나아가는 수밖에 없고, 나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그에 합당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내게 너무 개인주의적이라고들 말했다. 나는 예전의 나보다 훨씬 더 큰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나 자신에게서 끌어내야 하고, 세상에 청하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더 적어야 한다. 실은 내 파멸은 삶의 개인주의가 너무 커서가 아니라, 너무 작아서 온 것이었다. 내 생애에서 단 하나, 수치스럽고, 용서받을 수 없으며, 영원토록 경멸받아 마땅한 행위는, 내가 사회에 도움과 보호를 청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했다는 것이다. 그런 호소를 한 것은 개인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아도 충분히 나쁜 일이나, 그 호소를 한 데에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일단 사회의 힘을 움직이게 하자, 사회는 당연히도 나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너는 이제까지 내 법을 무시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그 법에게 보호를 청하는가? 저 법을 남김없이 네게 집행되게 하리라. 네가 호소한 그것을 네 몫으로 감당하라.’ 그 결과 나는 감옥에 있다. 확실히 나만큼 비천하게, 그리고 그만한 비천한 도구에 의해 몰락한 사람도 없었다.
삶 속의 속물적 요소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함이 아니다. 어부, 목동, 쟁기꾼 소년, 농부와 같은 매력 있는 이들은 예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들은 땅의 참된 소금이다. 속물이란 사회의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눈먼, 기계적인 힘을 받들고 거들며, 사람이나 운동 속의 역동적인 힘을 마주치고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이다.
사람들은 내가 삶의 악한 것들을 만찬에 초대하고 그 무리와 함께하며 즐거움을 찾은 것을 무섭도록 나쁘게 여겼다. 그러나 삶의 예술가로서 내가 그것들에 다가가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들은 감미로울 만큼 암시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위험은 흥분의 절반이었다…… 예술가로서의 내 소임은 에어리얼과 함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캘리번과 씨름하기로 마음먹고 말았다……
나의 가까운 친구 하나—십 년을 사귄 벗—가 얼마 전에 나를 찾아와서는, 나를 두고 떠도는 말들 가운데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고, 자기는 나를 전혀 결백한 사람으로, 끔찍한 음모의 희생자로 여긴다고 내게 알려 주기를 바랐다. 나는 그의 말에 눈물을 쏟으면서, 확정된 혐의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실로 사실이 아니며 구역질나는 악의에 의해 내게 덮씌워진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내 삶은 뒤틀린 쾌락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그가 그것을 나에 관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직시하지 않는 한, 나는 더 이상 그와 벗할 수 없고 그와 함께 있을 수도 없으리라 말했다. 그로서는 무서운 충격이었으나, 우리는 벗이며, 나는 거짓된 구실 위에서 그의 우정을 얻고 있지는 않다.
정서적 힘은, 내가 『의향(Intentions)』의 어딘가에서 말했듯, 그 크기와 지속에서 물리적 에너지의 힘만큼이나 한정적이다. 이만큼을 담도록 빚어진 작은 잔은 이만큼밖에 담지 못한다. 설령 부르고뉴의 자줏빛 술통이 모두 포도주로 가득 차 넘치고, 에스파냐의 돌밭 포도밭에서 거두어들인 포도 더미에 밟는 이들이 무릎까지 잠겨 있더라도 그렇다. 큰 비극의 원인이거나 계기가 된 자들이 그 비극적 정조에 걸맞은 감정을 공유하리라 여기는 것만큼 흔한 오류는 없다. 그들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만큼 치명적인 오류도 없다. ‘화염의 겉옷’을 입은 순교자는 하느님의 얼굴을 우러러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작을 쌓아 올리거나 불길을 위해 장작더미를 헤집는 이에게는 그 장면 전체가, 백정이 보는 소의 도살이나, 숲에서 숯 굽는 이가 보는 나무 한 그루의 쓰러짐이나, 낫으로 풀을 베어 내려가는 이가 보는 꽃 한 송이의 떨어짐과 다를 바 없다. 위대한 정념은 위대한 영혼의 몫이고, 위대한 사건은 그와 동등한 높이에 있는 자들의 눈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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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희곡을 통틀어 예술의 관점에서 이보다 비할 데 없고, 관찰의 정교함에 있어 이보다 암시로 가득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이 그것이다. 그들은 햄릿의 대학 시절 벗이다. 그들은 그의 동료였다. 그들은 즐거이 보낸 날들의 기억을 함께 지니고 나타난다. 극 중에서 그들이 그와 마주치는 순간, 그는 자기 기질에는 견디기 어려운 무게의 짐 아래 비틀거리고 있다. 죽은 자가 무장을 하고 무덤에서 걸어 나와, 그에게 너무 크고 동시에 너무 하찮은 사명을 지우려 한다. 그는 몽상가인데, 행동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그는 시인의 천성을 지닌 자인데, 흔한 원인과 결과의 얽힘과 씨름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실천적 실현 속의 삶—그가 아무것도 모르는—과 씨름하라는 것이요, 그가 그토록 많이 아는 이상의 본질 속의 삶이 아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하며, 그가 저지르는 어리석음이란 어리석음을 꾸며 내는 것이다. 브루투스는 자신의 목적인 칼, 의지인 비수를 감추려 광기를 망토로 삼았지만, 햄릿의 광기는 약함을 감추기 위한 단순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환상과 농담을 짓는 데에서 그는 지연의 기회를 본다. 그는 예술가가 이론을 가지고 놀 듯 행동을 가지고 논다. 그는 제 스스로의 행위를 염탐하는 자가 되고, 제 말을 듣고는 그것이 ‘말, 말, 말뿐’임을 안다. 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를 꾀하는 대신, 제 비극의 관객이 되고자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믿지 않으며, 그 가운데는 자기 자신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그를 돕지 못한다. 그것은 회의주의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분열된 의지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길든스턴과 로젠크랜츠는 조금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허리를 숙이고 방실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한쪽이 하는 말을 다른 한쪽이 세상 역겨운 억양으로 되풀이한다. 마침내 극중극과, 장난감처럼 어우러지는 꼭두각시들을 통해 햄릿이 왕의 ‘양심을 붙잡아’, 그 가련한 사내를 공포에 질려 왕좌에서 내몰 때에도, 길든스턴과 로젠크랜츠는 그의 행태에서 궁정 예법을 다소 거북하게 어긴 것 이상을 보지 못한다. ‘삶의 광경을 합당한 감정으로 관조함’에서 그들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다. 그들은 그의 비밀에 바싹 다가서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에게 말해 준다 한들 소용이 없다. 그들은 이만큼만 담을 수 있는 작은 잔들이다. 극 끝 무렵에, 남을 위해 놓인 교묘한 덫에 걸려, 그들이 격렬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거나 또는 맞게 되리라는 것이 암시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비극적 결말은, 비록 햄릿의 유머가 희극의 놀람과 정의를 다소 곁들인다 하나, 실은 그런 자들의 몫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호레이쇼는 ‘불만에 찬 이들에게 햄릿과 그의 명분을 바르게 전하기 위하여’,
‘한동안 지복을 멀리하고
이 가혹한 세상에서 고통 속에 숨을 이어가기를.’
하며 죽는다. 그러나 길든스턴과 로젠크랜츠는 안젤로와 타르튀프만큼이나 불멸이며, 그들과 한 반열에 놓여야 한다. 그들은 근대의 삶이 우정이라는 고대의 이상에 보탠 바다. 누구든 새로운 『우정론(De Amicitia)』을 쓴다면 그들을 위한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어야 하고, 투스쿨룸식 문체로 그들을 기려야 한다. 그들은 영구히 고정된 유형이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감식안의 결여’를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다만 자기 영역을 벗어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영혼의 숭고함에는 전염이 없다. 드높은 사상과 드높은 감정은 그 존재 자체로 고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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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나는 5월 말경에 풀려난다. 풀려나는 즉시 나는 R---, M---과 함께 해외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곧장 가고 싶다.
에우리피데스가 이피게네이아를 다룬 그의 희곡 가운데 하나에서 말한 것처럼, 바다는 이 세상의 얼룩과 상처를 씻어 낸다.
나는 벗들과 적어도 한 달을 보내며, 평화와 균형과, 덜 시달린 마음과, 더 부드러운 기분을 얻기를 바란다. 나에게는 태고의 거대하고 단순한 것들—이를테면 바다, 내게는 대지 못지않게 어머니인 바다—을 향한 이상한 갈망이 있다. 우리는 모두 자연을 너무 많이 바라보기만 하고, 그와 함께 너무 적게 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리스인들의 태도에서 크나큰 건강함을 본다. 그들은 저녁노을을 두고 재잘대거나, 풀 위의 그림자가 정말로 연보랏빛인가를 논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다가 헤엄치는 자의 것이요, 모래가 달리는 자의 발을 위한 것임을 보았다. 그들은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 때문에 그것을 사랑했고, 숲이 정오에 드리우는 고요 때문에 그것을 사랑했다. 포도밭을 가꾸는 이는 어린 순 위에 몸을 굽힐 때 해의 광선을 막으려 머리에 담쟁이덩굴을 둘렀고, 그리스가 우리에게 준 두 전형인 예술가와 운동선수를 위해서는,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을 쓴 월계수 잎과 야생 파슬리 잎으로 화관을 엮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실용의 시대라 부르지만, 어느 하나의 쓰임새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이 씻어 낼 수 있다는 것, 불이 정화한다는 것, 그리고 대지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것을 잊었다. 그 결과 우리 예술은 달의 예술이 되어 그림자를 희롱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의 예술은 해의 예술이어서 사물을 곧장 다룬다. 나는 원소의 힘 속에 정화가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들 곁으로 돌아가, 그것들의 임재 속에서 살고 싶다.
물론 나처럼 이렇듯 근대적인 자, ‘Enfant de mon siècle(내 세기의 아이)’에게는,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늘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감옥을 나서는 바로 그날, 정원에는 금사슬나무와 라일락이 피어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한쪽의 흔들리는 황금을 바람이 쉴 새 없는 아름다움으로 일렁이게 하고, 다른 쪽이 제 연보랏빛 깃털을 흔들게 하여 주위의 공기 모두가 내게 아라비아가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기쁨에 떨린다. 린네는 영국 고원지대의 긴 히스 벌판이 가시금작화의 흑갈빛 향기를 띤 덤불로 노랗게 물든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무릎을 꿇고 기쁨에 겨워 울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꽃이 욕망의 일부인 나에게는, 어느 장미의 꽃잎 속에 눈물이 예비되어 있음을. 이는 내 어린 시절부터 늘 그러했다. 꽃의 화관 안이나 조개껍질의 곡선 안에 숨은 색 하나도, 사물의 영혼과의 어떤 미묘한 공감을 통해 내 본성이 응답하지 않는 것은 없다. 고티에처럼 나도 늘 ‘pour qui le monde visible existe(가시적 세계가 존재하는 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움 뒤에, 비록 그것이 마음을 채울 만큼 흡족할지라도, 어떤 숨어 있는 정신이 있음을 나는 지금 의식한다. 그려진 형상과 모양들은 다만 그 정신이 드러내는 양상일 뿐이며, 나는 바로 그 정신과 한데 어우러지고 싶다. 나는 사람과 사물의 또렷한 언표들에 지쳤다. 예술 속의 신비, 삶 속의 신비, 자연 속의 신비—이것이 내가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곳에선가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재판은 한 사람의 생애를 건 재판이요, 모든 판결은 죽음의 판결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재판을 받았다. 첫 번째에 나는 피고석에서 체포되었고, 두 번째에는 구치소로 끌려갔으며, 세 번째에는 두 해의 감옥살이로 보내졌다. 사회는, 우리가 지금 세운 그 형태 그대로, 나를 위한 자리를 두지 않을 것이요, 내어 줄 자리도 없다. 그러나 자연은, 의로운 자와 의롭지 못한 자에게 그 달콤한 비를 고르게 내리는 그이는, 바위 틈새에 내가 숨을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이고, 말없는 골짜기에서 내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울게 할 것이다. 그이는 별로 밤을 드리워, 내가 어둠 속에서도 걸려 넘어지지 않고 거닐게 할 것이며, 내 발자취 위로 바람을 보내어 아무도 나를 좇아 상처 입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이는 큰물로 나를 씻기고, 쓴 풀로 나를 온전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