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노로마 인형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노로마 인형(野呂松人形)을 공연할 테니 보러 오지 않겠느냐는 초대장이 느닷없이 날아왔다. 초대한 이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문면을 보니, 그가 내 친구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K씨도 오실 줄 아옵기에”라든가 하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K가 내 친구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노로마 인형이란 어떤 것인지, 당일 K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나중에 세사담(世事談)을 찾아보니, 노로마에 대해 “에도의 이즈미다유, 가부키에 노로마 간베에라는 자가 있어, 머리가 납작하고 안색이 거무죽죽한 천한 인형을 사용하였다. 이를 노로마 인형이라 한다. 노로마의 약칭이니라”고 나와 있었다. 옛날에는 구라마에(蔵前)의 후다사시(札差)나 여러 다이묘 가문의 재정 어용상인, 또는 공경(公卿) 같은 이들이 취미 삼아 즐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를 다루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는 모양이다.

당일, 나는 인력거를 타고 행사가 열리는 닛포리(日暮里)의 어느 사람 별장으로 갔다. 2월 말의 흐린 날 저녁 무렵이었다. 해 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빛도 그림자도 아닌 애매한 밝음이 거리 위에 흐르고 있었다. 나무에 새싹을 돋우기엔 이르지만, 공기는 습기를 머금어 어딘지 모르게 따뜻했다. 두세 군데 물어물어 겨우 찾아낸 집은 행인이 드문 골목 안에 있었다. 짐작했던 것만큼 한적한 집도 아닌 듯했다. 예스러운 쪽문을 지나 폭이 좁은 화강암 돌길을 따라 현관 앞까지 오니, 시키다이(式台) 기둥에 징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곁에 붉은 칠 막대까지 놓여 있어, 그것으로 치는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아직 손도 대기 전에 현관 장지 너머에 있던 사람이 “이리 들어오시지요”라고 소리를 걸었다.

접수처처럼 생긴 곳에서 괘지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안으로 들어가니, 현관 바로 다음의 여덟 다다미와 여섯 다다미, 두 방을 하나로 튼 어스름한 좌석에는 이미 제법 많은 손님이 와 있었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설 때면 대개 양복을 입고 간다. 하카마를 두르면 격식을 차려야 한다. 번잡한 일본식 예법도 바지 차림이면 두루 너그러이 봐 주는 수가 많다. 예절에 익숙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편리하다. 그날도 그런 이유로 대학 제복을 입고 갔다. 그런데 여기 와 있는 사람들 중에 양복을 입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놀랍게도 내가 아는 영국인조차 문장 기모노(紋附)에 세루 하카마(セルの袴)를 갖춰 입고 부채를 앞에 놓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상인 집안 자제인 K가 유키 명주(結城紬) 두 겹 걸침 차림으로 점잖게 자리를 잡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그 두 친구에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을 때 약간이나마 이방인의 느낌이 들었다.

“손님이 이만큼 오셨으니, ―― 씨도 무척 기뻐하시겠군.” K가 내게 말했다. ―― 씨란 내게 초대장을 보내 온 사람의 이름이다.

“그 사람도 인형을 부리나요?”

“응, 한두 번쯤 배웠다더군.”

“오늘도 부리려나.”

“아니, 안 부릴 거야. 오늘은 이 바닥의 쟁쟁한 고수들이 나서니까.”

K는 그러고는 이것저것 노로마 인형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레퍼토리가 모두 합쳐 일흔 몇 번(番)인가 있고, 거기에 쓰이는 인형이 스무몇 개인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나는 때때로 여섯 다다미 방 정면에 차려진 무대 쪽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K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무대라고 해봤자, 높이 석 자 남짓, 폭 두 간 남짓의 금박을 입힌 무대 난간이었다. K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을 테스리(手摺り)라 부르는데, 언제든 해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그 좌우로는 새 삼색 공단 발(帳)이 드리워져 있었다. 뒤편에는 금병풍을 둘러세운 듯했다. 어스름 속에서 그 테스리와 병풍의 금빛이, 훈증이라도 입힌 듯 묵직하게 저녁 어둠을 헤치고 있었다. 소박한 무대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기분이 퍽 좋았다.

“인형에는 남녀가 있는데, 남자 인형에는 아오가시라(青頭)라든가, 모지베에라든가, 주나이라든가, 노승 인형 같은 것이 있지.” K는 지칠 줄 모르고 설명을 이어 갔다.

“여성 인형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까?” 영국인이 물었다.

“여자에는 아사히라든가, 데루히라든가, 오키네도 있고, 악파(悪婆) 같은 것도 있다고 하더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오가시라인데, 원조에서 지금의 종가(宗家)까지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고는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나는 소변이 마려워졌다.

뒷간에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전등이 켜져 있었다. 테스리 뒤에는 어느 틈인가 검은 사(紗) 복면을 한 사람이 인형을 들고 서 있었다.

드디어 교겐(狂言)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다른 손님들 사이를 지나 아까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K와 일본 옷을 입은 영국인 사이였다.

무대의 인형은 남색 스오(素袍)에 다테에보시(立烏帽子)를 얹은 다이묘였다. “이 몸은 아직 자랑할 만한 보물이 없으매, 세상에 드문 보물을 도읍(都)에서 구해 오게 하려 하노라.” 인형을 부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말씨도, 어조도, 아이교겐(間狂言)을 볼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윽고 다이묘가 “우선 요로쿠를 불러 분부해야겠구나. 이봐, 요로쿠 있느냐”라든가 하고 말하자, “예”라고 대답하며 또 한 사람, 검은 사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타로칸자(太郎冠者)와 같은 인형을 들고 왼쪽 삼색 공단 발 사이에서 나왔다. 갈색 한카미시모(半上下)에 무코시(無腰) 차림이었다.

그러자 다이묘 인형이 왼손을 작은 칼(小さ刀) 자루에 얹은 채 오른손의 주케이(中啓) 부채로 요로쿠를 손짓해 부르며 이런 명을 내렸다. “천하가 안정되어 태평성대이니, 이곳저곳에서 보물 겨루기들을 하는 터에, 네가 알다시피 이 몸의 곁에는 아직 자랑할 보물이 없으매, 너는 도읍에 올라가 세상에 드문 보물이 있거든 구해 오너라.” 요로쿠 “예” 다이묘 “빨리” “예” “어서” “예” “어서” “예, 아니 나리께서는……” 그러고는 요로쿠의 긴 독백(獨白)이 시작되었다.

인형의 조작은 지극히 단순하다. 무엇보다 의상 아래에 발이라는 것이 없다. 입이 벌어지고 눈이 움직이는 후대의 인형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오로지 몸짓뿐이다. 몸통을 앞뒤로 기울이거나 팔을 좌우로 놀리거나 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지극히 여유롭고, 어딘가 너그러우며 품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을 대하며 나는 다시금 이방인의 느낌을 깊이 느꼈다.

아나톨 프랑스의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대와 장소의 제약을 벗어난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어느 예술 작품을 즐기는 것은, 그 작품과 삶 사이의 관계를 자신이 발견했을 때에 한한다. 히살리크(Hissarlik)의 소성 토기(素焼の陶器)는 자신으로 하여금 일리아스를 더욱 사랑하게 한다. 13세기 피렌체의 생활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은 신곡(神曲)을 지금처럼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은 말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것이 만들어진 장소와 시대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올바르게 사랑하고 또 이해할 수 있다고.”……

나는 금빛 배경 앞에서 느릿느릿 동작을 반복하는 남색 스오와 갈색 한카미시모를 바라보다가, 뜻밖에도 이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가 쓰는 소설도 언젠가 이 노로마 인형처럼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는 시대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가 존경하는 예술가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바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도 그러한 것일까.……

노로마 인형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듯, 나무를 깎은 흰 얼굴을 금빛 테스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교겐은 그 뒤로 스파(すっぱ)가 나와 요로쿠를 속이고, 요로쿠가 돌아와 다이묘의 노여움을 사는 대목에서 끝났다. 나리모노(鳴物) 반주는 샤미센(三味線)이 없는 가부키 장단과 노(能) 장단을 하나로 합친 것 같은 소리였다.

나는 다음 교겐을 기다리는 동안 K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멍하니 혼자 “아사히”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다이쇼 5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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