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미술 곡예 신코자이쿠
아베 도쿠조
신코자이쿠(쌀가루 꽃 세공)에 대해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쌀가루 반죽에 물감을 들여 꽃이나 새 따위의 형태를 빚는 것, 그것이 전부다.
때로는 마술사가 이 신코자이쿠를 마술에 응용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 핵심은 어디까지나 얼마나 빠른 손놀림으로 샤미센 장단에 맞춰 신코로 형태를 빚어 내느냐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신코자이쿠를 응용한 마술이 아니라, 마술을 응용한 신코자이쿠라 해야 옳을 것이다.
그 방식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술자는 열 장 혹은 열 수 장, 수는 전적으로 임의로 가느다란 종이쪽지를 한 장씩 관객에게 건네고, 각자 좋아하는 꽃 이름을 하나씩 적게 한다. 다 적었으면 글씨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꽉 접어 달라고 한다.
술자는 객석으로 나가 꽃 이름이 적힌 쪽지들을 모아들인다. 관객이 적은 꽃을 모두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며, 그중 한 장만 관객이 직접 고르게 한다.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쪽지 전부가 같은 꽃 이름으로 바꿔치기되어 있다.
마술 준비가 끝났으므로 술자는 신코자이쿠에 착수한다. 먼저 흰색,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등 가지각색의 신코를 관객에게 보여 주며,
『삼가 지참하온 신코는, 여러분 눈앞에서 하나하나 낱낱이 검증하겠사옵니다.』
라고 한다. 물론 신코에 아무런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며 검증해 보이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이 신코를 가지고 정면에 마련된 화분에 꽃을 피워 보이겠사옵니다. 만약 만들어진 화분의 꽃이 손님께서 뽑으신 쪽지의 꽃과 딱 들어맞는다면,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내 주시옵기를 엎드려 청하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신코자이쿠를 시작한다. 보통은 화분에 가지 몇 대를 미리 꽂아 두고, 무대 뒤 샤미센 장단에 맞춰 신코로 빚은 꽃잎과 잎을 촘촘히 붙여 나간다. 그 손이 또 어찌나 빠른지, 웬만한 꽃은 오 분 안에 완성해 버린다.
꽃이 완성되면 관객이 뽑은 쪽지와 대조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구조가 이미 짜여 있으니, 쪽지에 적힌 꽃 이름과 무대 위에 완성된 꽃이 일치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이 바로 마술을 응용한 ‘곡예 신코자이쿠’다.
이나리 마술의 발명자로 유명한 신도사이 코코우 선생은 이 신코자이쿠에도 유달리 뛰어난 솜씨를 지녀 각지에서 대갈채를 받았다. 코코우 선생의 신코자이쿠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꽤 옛날 이야기다. 한때 코코우 옹이 마술사 일을 쉬고 빈둥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뭔가를 꼭 해야 할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타고난 부지런한 성미라, 놀고 지내는 쪽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신코자이쿠였다.
『재미있겠는걸, 심심풀이 삼아 한번 길거리에서 신코자이쿠를 팔아 볼까.』
한번 마음을 먹으면 결단도 빠르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라, 당장 작은 수레를 맞춤 주문했다. 수레 위에 세 단 선반을 짜서, 위에 매화며 복숭아꽃이며 수선화 같은 신코자이쿠 꽃들을 화분에 담아 늘어놓기로 했다.
취미 반, 낙 반인 느긋한 장사라, 코코우 옹은 비만 오지 않으면 날마다 어슬렁어슬렁 그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섰다.
5월의, 유난히 맑은 어느 날이었다.
요코하마 노게 거리의 어느 다리 어귀에 수레를 세우고, 코코우 옹은 신코로 꽃을 빚고 있었다.
화창한 봄볕이 다소곳하게 신코 꽃밭을 비추고 있었다.
『어머, 예쁘다.』
『신기하게도 잘 만드는군.』
이따금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꽃밭의 꽃들을 칭찬하며 갔다. 애당초 돈벌이를 따져 시작한 일이 아니니, 칭찬 한마디만 들어도 코코우 옹의 마음은 충분히 보람을 느꼈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무튼 이건 미술 신코자이쿠니까…….’ 하며 혼자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보이는 여학생 세 명이 지나갔다. 신코 꽃을 바라보더니,
『아, 예쁘다!』
하고 발길을 멈췄다. 셋이서 나란히 수레 곁으로 다가왔다. 여학생들은 한동안 신코를 빚는 코코우 옹의 손끝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저기 아저씨, 아저씨는 어떤 꽃이든 다 만들 수 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럼 다 되고말고. 아저씨가 못 만드는 꽃이란 단 하나도 없단다.』
『그래요? 그럼 저 튤립이 갖고 싶어요. 아저씨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한 아이가 말했다.
『저도 튤립이요.』
『저도요……』
나머지 두 아이도 튤립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난처해진 것은 코코우 옹이었다. 사실 그는 튤립이 어떤 꽃인지 몰랐다. 『튤립, 튤립, 들어본 이름 같은데……』 하고 두세 번 입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도무지 어떻게 생긴 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무슨 꽃이든 다 만든다고 큰소리를 쳐 놓고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대담하게 밀어붙이자.』
결심이 서자 천천히 신코에 손을 댔다. 눈 깜짝할 새에 화분 세 개 분량의 튤립(?) 꽃이 완성되었다. 물론 코코우 옹이 즉석에서 창작한 튤립으로, 복숭아꽃인지 벚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희한하기 짝이 없는 꽃이었다.
『자, 완성이오. 아무리 봐도 진짜 튤립과 똑같지 않소.』
코코우 옹이 그것을 여학생들 앞에 내밀었다. 여학생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들더니,
『호호호.』
『호호호.』
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으면서, 얌전히 화분을 손에 들고 돌아갔다. 남겨진 코코우 옹은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튤립…… 대체 어떤 꽃일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물녘이 되었다. 가게를 정리한 코코우 옹은 어슬렁어슬렁 수레를 끌며 노게 거리를 걸어갔다. 문득 눈앞에 커다란 꽃집이 보였다. 얼른 수레를 세우고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튤립 있소?』
하고 물었다.
『네, 있습니다.』 곧바로 가게 사람이 튤립을 가져왔다. 보니, 아까 자신이 만든 것과는 전혀 닮지 않은 꽃이었다.
『이거 큰일 났군, 엉터리를 만들어 버렸네.』
코코우 옹은 그 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늦도록 튤립 꽃 만드는 법을 연구했다.
이튿날 코코우 옹은 또 어제의 자리에 가게를 차렸다. 큰 화분에 튤립을 열 개 남짓 만들어, 수레 상단에 눈에 잘 띄도록 주욱 늘어놓았다.
오후 세 시쯤, 어제의 여학생 셋이 나란히 지나가다가 진열된 튤립에 금세 눈독을 들이며,
『어머, 튤립이 있네.』
하고 서둘러 가게 앞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이게 튤립이라는 거예요.』
그중 한 아이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코코우 옹은 ‘그럼, 물론이지!’ 하는 표정으로, 『아, 그래, 튤립이라는 거란다.』
하고 태연히 받아쳤다. 여학생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런데 아저씨, 어제 저희한테 만들어 준 튤립 말이에요, 정말 이상한 꽃이었잖아요. 저는 오늘 것처럼 생긴 걸 갖고 싶었는데요.』 하고 말했다.
『그랬어? 그거 미안했구나. 이 튤립이 마음에 든다면 다들 실컷 가져가렴.』
코코우 옹은 흐뭇한 듯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너무 많이 받기는 미안한걸요……』
『무슨 소리야, 사양할 것 없이 마음껏 가져가렴. 근데 아가씨들, 어제 같은 튤립은 아직 학교에서 안 배웠나?』 하고 물었다.
『어머, 싫어라! 그런 튤립이라니……』
여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코코우 옹은,
『그건 말이다, 저쪽 나라 튤립이거든.』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능청을 부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코우 옹은 다시 마술사로 돌아갔다. ‘미술 곡예 신코자이쿠’를 공연할 때면 언제나, 튤립이라는 그 서양풍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온갖 꽃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