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처음 본 오타루
이시카와 다쿠보쿠
새로운 목소리가 더는 울려 퍼지지 않게 된 때, 사람은 그 가운데서 법칙이라 부르는 것을 골라낸다. 그러므로 계급이라 하고 관습이라 하는 일체의 사회적 법칙이 형성된 때란, 곧 그 사회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죽어버린 때이며, 사람들이 부질없이 과거와 현재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새로운 미래를 잊어버리는 때이고, 보수와 집착과 노인이 밤의 올빼미처럼 활개를 치며, 모든 생명이 그 새로운 희망과 활동을 억눌리는 때이다. 인간 본연의 향상의 의지가 이러한 휴지(休止) 상태에 빠져 점점 깊어지고 점점 흔들 수 없게 된 때, 사람들은 그 사회를 일컬어 문명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한 사학자가 강철 같은 단언을 내려 “문명은 보수적이다”라고 한 말은, 이른바 이 따위 문명을 매섭게 비웃어 거의 한 치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문명의 의의와 특질을 논하려는 사람이 아니지만, 만약 위에서 말한 상태를 두고 진정한 문명이라 부른다면,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문명’은 결코 고마운 물건이 못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복종과 자기 억제는 때로 인간의 미덕이지만, 인생을 지배하는 힘 가운데 자유에 대한 갈망만큼 강하고 큰 것은 없다. 역사란 위대한 인물의 전기일 뿐이라고 칼라일이 단호히 갈파한 말에서 한 자락 진리라도 인정하는 자라면, 그 갈망의 위대한 권위와 장엄한 승리를 끝내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자유에 대한 갈망이란, 단지 정치상 또는 경제상의 속박에서 개인의 의지를 풀어놓으려 함뿐이 아니라, 스스로의 세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하고, 개척하고, 다스리려는 갈망이다. 내가 스스로 내 왕이 되고, 내 모든 능력을 내 손으로 쓰려는 갈망이다. 사람마다 강약이 있고 크고 작음이 있으나, 이 갈망이 가장 활활 타오르는 자가 곧 천재이다. 천재란 결국 창조력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세계의 역사란 요컨대 이 자주(自主) 창조의 맹렬한 개인적 갈망이 끝없이 변화하며 부침해온 이야기이다. 거짓이라 여긴다면, 시험 삼아 모든 천재와 영웅을 역사에서 지워보라. 남는 것이라곤 그저 추한 평범함, 그것도 우리네 상상조차 견디지 못할 시체뿐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미 번거로운 죽은 법칙을 형성한 보수적 사회에서는 늘 뱀과 전갈처럼 미움받고 악마처럼 두려움받는다. 다름이 아니라,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수천 년의 인습적 법칙으로 개인의 권능을 묶어두는 사회에 맞서 스스로 천지를 짓고자 하는 사람은, 형세상 먼저 분투의 자세를 취하고 침략의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의 억압이 점점 거세질수록 끝내는 그것에 반역하고 파괴하는 거사로 나아간다. 계급이라 하고 관습이라 하고 사회 도덕이라 하는, 스스로 만든 새끼줄에 묶이고 스스로 만든 비좁은 옥방에서 게으른 잠을 탐하는 무리는, 이때에 이르러 허둥대고 펄쩍 뛰며 모든 수단을 다해 핏발 선 눈으로 우리의 용감한 침략자를 박해한다. 이리하여 인생은 영겁의 전장이다. 개인은 사회와 싸우고, 청년은 노인과 싸우며, 진취와 자유는 보수와 집착에 맞붙고, 새로운 자는 낡은 자와 치열하게 다툰다. 이기는 자는 청사(靑史)의 하늘에 별이 되어 그 향기로운 천재의 빛이 만세에 두루 비치고, 패하여 땅에 짓밟힌 자는 다하지 못할 한을 남겨 길이 다정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낸다. 이기는 자는 적고, 패하는 자는 많다.
그리하여 정신계와 물질계를 가리지 않고, 젊은 생명의 활화(活火)를 가슴에 사른 무수한 풍운아들이 서로 이끌며 사람 없는 땅으로 들어가 스스로의 새로운 역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세우려 한다. 식민(植民)의 정신과 신개척지의 정취는 이리하여 인생에 놀라운 세력을 심어두고 있다.
보라, 유럽이 암흑시대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이래 수십만의 용감한 풍운아가 얼마나 사내답게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그리고 우리 아시아의 대부분으로 원정을 시도했는가를. 또 보라, 북녘 에조의 섬자락, 곧 이 홋카이도가 얼마나 많은 풍운아를 내지(內地)에서 빨아들여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우리 홋카이도는 실로 우리 일본인을 위해 열린 자유의 국토이다. 태초 이래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흰 구름과 저녁놀의 산, 천고에 도끼가 들지 않은 울창한 대삼림, 광막하여 러시아의 전원을 떠올리게 하는 대원야, 물고기 떼가 몰려와 하얗게 거품 이는 무한한 바다, 아아 이 대륙적 미개의 천지가 천하의 웅심 발랄한 자유의 아들들을 얼마나 흔들었으랴. 그들은 모두 익숙한 조상 묘소의 땅을 버리고 용맹스럽게도 쓰가루 바다의 거센 물살을 타 넘었다.
나 또한 올해 오월 초, 표연히 봄이 아직 얕은 북해(北海)의 손님이 된 한 사람이다. 나이 어리고 몸은 야위어 마음 가는 대로 바람과 함께 와서 바람과 함께 가는 떠돌이 청년이고 보니, 본디 일확천금을 꿈꾸고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이 북해의 천지에 가득한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고자 쓰가루 바다를 건넜다. 자유의 공기! 자유의 공기만 마실 수 있다면, 몸이야 마른 들풀 위에 개처럼 누울지언정, 하늘은 길이 푸르고 높고 끝이 없으니, 나로서는 한 점 유감도 없다.
처음 지팡이를 멈춘 하코다테는 북해의 인후(咽喉)라 불리고, 내지 사람들은 하코다테를 본 것만으로 이미 홋카이도를 다 본 듯이 여기지만, 내지에 가까운 만큼 그만큼 거의 ‘내지적’이다. 신개척지인 홋카이도에서 ‘내지적’이라 함은 따로 설명할 것도 없이 갖가지 죽은 법칙이 차츰 정돈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아오야기초의 백이십여 일, 나는 끝내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팔월 이십오일 밤의 큰 불은 하코다테에 깃든 자연을 거스르는 악덕을 남김없이 태워버린 하늘의 불이다. 나는 새로 세워질 제2의 하코다테를 위해 축복을 빌고, 가을바람과 함께 불탄 자리를 등졌다.
삿포로에 들어와서야 나는 비로소 참된 홋카이도의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일본 제일의 대원야 한 자락, 나무숲 사이로 집들이 듬성듬성하고 폭넓은 거리에 풀이 자라며, 소가 울고 말이 달리고, 자연도 사람도 어딘지 너그럽고 느긋하여, 길을 걷는 모양새도 내지 도시풍의 옹졸한 걸음걸이가 아니다. 가을바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어, 보고 듣는 모두가 너른 시골 마을의 정취를 띤다. 은은한 사랑이 많이 깃들 듯한 도시, 시인이 살 만한 도시라 여기며 나는 한없이 기뻐했다.
그러나 삿포로에는 아직 한 가지 모자란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니다.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이어지는 사내다운 활동, 그것이다. 두 주 만에 나는 삿포로를 떠났다. 삿포로를 떠나 오타루로 왔다. 오타루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참으로 신개척지다운, 참으로 식민의 정신이 흘러넘치는 사내다운 활동을 보았다. 사내다운 활동이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이 곧 자유의 공기이다.
내지의 큰 도회 사람은 떨어뜨린 물건이라도 찾는 듯 눈을 두리번거리며 옹졸하게 걷는다. 불에 타 사라진 하코다테 사람도 이 비루한 근성을 흉내 내고 있었다. 삿포로 사람은 둘레의 대륙적인 풍물의 고요함에 눌려 역시 조용히 느긋하게 걷는다. 오타루 사람은 그렇지 않다. 길 위에서 떨어진 물건을 줍기보다는 더 큰 것을 주우려 든다. 둘레의 풍물에 눌리기에는 너무도 반발심 강한 활동력을 지녔다. 그러므로 오타루 사람의 걸음은 걸음이 아니라 돌격이다. 일본의 보병은 돌격으로 이긴다. 그러나 군대의 돌격은 마지막 한 번에만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격하는 오타루 사람만큼 무서운 자는 없다.
오타루의 활동을 숫자로 설명하여 다른 곳과 견주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지금 나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으니, 손쉽게 그저 사내다운 활동의 도시라고만 부른다. 이 활동 도시의 도로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일본 제일의 악도(惡道)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본 제일이라 이름 붙는 것 자체가 이미 사내답지 않은가. 게다가 훗날 이 악도가 개선되어 시가지가 정돈되는 한편, 다른 불필요한 정돈 ― 계급이라거나 관습이라거나 하는 죽은 법칙까지 정돈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일 년에 게다 열 켤레 스무 켤레를 더 사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래 영겁(永劫) 오타루의 도로가 일본 제일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홋카이도 사람, 특히 오타루 사람의 특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가로되, 집착이 없다는 것이라고. 집착이 없으니 도시로서의 공공 사업이 발달하지 않는다고 헐뜯는 사람도 있으나, 나는 이 한 가지가 안 되면 또 다른 한 가지,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하면 또 저 땅으로 간다는 식으로, 이를테면 천하를 집으로 삼아 어디든 청산이 있음을 믿는 홋카이도인의 기백을 두 손 들어 예찬하는 사람이다. 자유와 활동, 이 둘만 있으면 따로 사시미나 구이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밥은 먹을 수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바람 같은 표박자(漂泊者)이다. 천하의 떠돌이이다. 오타루 사람과 더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격하고, 오타루 사람과 더불어 있는 힘껏 활동하기란 다리 약한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다만 이 자유와 활동의 오타루에 와서, 눈으로는 강렬한 활동의 바닷빛을 보고, 귀로는 장쾌한 활동의 행진곡을 들으며,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놀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흡족하다. 세계 무역의 중심점이 태평양으로 옮겨오고, 일찍이 창을 맞댔던 일본과 러시아 두 나라의 상업 관계가 일본해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오타루 대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선 위로 모여들려 하는 이때, 내가 뜻하지 않게 이 오타루의 사람이 되어 일본 제일의 악도를 누비고 다니는 몸이 된 것은, 나로서는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저 기분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