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百二十一
바깥은 검붉은 모조 가죽, 딸깍 열어보면 속에는 홈처럼 올리브색 벨벳을 두른, 여송연 모양의 케이스 속의 검온기! 37이라는 글자만 붉게, 35도부터 42도까지 눈금을 잘게 새긴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얇은 주석 판과, 비추어 보면 어렴풋이 가장자리에 보이는 가느다란 진공관이 들어 있는, 길이 네 치도 못 되는 작은 독일제 검온기!
나는 이 작은 검온기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아름답지도 않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건만, 어쩐지 이렇게, 추울 때면 살그머니 품속에 넣어주기까지 하여, 새장 문을 열어놓아도 달아나지 않을 만큼 길들여놓은 카나리아라도 되는 양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꼬박 일 년 동안―그렇다, 내 병도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날마다 시간을 정해 두고, 마치 그 한 가지가 일이라도 되는 듯, 내 살의 온기로 데워온 작은 검온기!
왼쪽 겨드랑이에 끼우면 서늘하다. 그 유리의 차가움도 어쩐지 정겹다. 베갯머리 시계의 바늘을 바라보며 가만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십오 분의 시간은, 그날그날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따라, 어떤 때는 길게, 또 어떤 때는 짧게도 느껴진다. 이윽고 꺼내어 눈앞에 비춰볼 때, 바늘보다 가늘게 빛나는 수은의 올라간 자리는, 늘 한결같이 나를 실망시킨다. ‘아아, 오늘도 또 열이 나는구나!’
그러고는 삼 분이고 오 분이고, 유리에 남은 살의 온기가 죄다 식어버릴 때까지도, 나는 그 작은 검온기를 슬픈 눈으로 응시하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단지 체온의 높낮이뿐 아니라, 나 자신도 또렷이 알지 못하는 복잡한 기분의 변화까지, 그 잘게 새긴 눈금 위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 어쩌다가는, 일 년 동안이나 매일같이 살에 대고 있건만, 관 속의 수은 빛깔이 내 몸의 피와 같은 빛깔로 바뀌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일도 있다.
그러고서 뒤집어 보면, 얇은 주석 판에는 Uebes Minuten이라 밤색으로 새겨져 있고, 521이라 일련번호가 찍혀 있다.
오백이십일! 이 숫자가 또 내게는, 그리운 사람의 번지수처럼, 어느 결엔가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