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경사(京師)의 장광호(張廣號)는 인삼의 대형 도매상으로, 이름 높은 노포(老鋪)였다. 긴자에서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묵직한 기세의 가게였다.

어느 날의 일이다. 열여덟아홉쯤 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말을 타고 왔는데, 짐 안장에 달아맨 가죽 자루 속에서는 은화가 자박자박 소리를 냈다. 가게 앞에 훌쩍 내려서더니, 인삼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말에 은 자루를 싣고 왔을 정도이니, 인삼의 가치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잠깐, 문외한에게는 시세가 따로 없다. 가만히 머릿속을 더듬어 보건대, 우리 나라에서도 예로부터 효성 깊은 딸이 고된 길에 몸을 던져 부평초처럼 흘러가게 되는 것은 대개 인삼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카오(高尾), 우스구모(薄雲), 요시노(芳野) 같은 절세미인의 몸값, 곧 인삼 한 냥의 값이란 이름난 기녀 한 명에 해당한다고 하니, 결코 만만한 물건이 아님은 분명하였다.

그런데 이 소년이 인삼 백 냥어치를 사겠다고 한다. 과연, 은화를 말에 싣고 온 터이니, 돈 거래에 단련된 주인도, 침착한 지배인도, 기세 등등한 점원 아이들까지도 “후우” 하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라도 대하듯 머리를 조아려,

“예에, 예예, 예에.”

이어서, 향기 그윽한 서랍에서 다카오, 우스구모라 부르는 특선 물건들을 꺼내어 죽 늘어놓고 보여드리니, 그 소년은 여유 있게 살펴보다가,

“가게 분.”

“예.”

“사실은 말입니다. 저희 주인어른이라 하는 분이,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좀스럽고 까다로운 분이라서요. 이렇게 사 가지고 온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간 심한 게 아닙니다, 정말이지. 밟고 걷어차고 주먹까지 날린다니까요. 저는 인삼의 좋고 나쁨을 가릴 줄 모릅니다. 이 통대로, 은화 쪽은 틀림없으니, 어떻겠습니까, 인삼을 넉넉히 가지고 저희 숙소까지 함께 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인어른이 직접 고르시면 실랑이도 없을 것이고, 저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겠습니까.”

의논할 것도 없이 주인은 그럴듯하다고 여겼으나, 워낙 큰 거래인지라 분별력 제일이라는 지배인을 이 심부름에 달리게 하였다. 주인도 단단히 당부하기를, 가는 길에 잘 주의하여, 다른 사람이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라. 이만한 인삼은 한 사람이 한 입 핥기만 해도 웬만한 병자는 살아난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물건이 줄어드는 것이니, 알겠느냐.

그런 데는 조금도 빈틈이 없겠습니다, 하고 지배인은 대답하였다. 이윽고 짐 안장에 은 자루와 인삼 큰 꾸러미를 양쪽으로 나눠 달고, 소년은 유유히 말에 오르고, 지배인은 짧게 입은 하오리의 끈을 단정히 여미어, 하늘 높이 솟은 장안의 대도(大都)를 나아갔다.

이윽고 동화문(東華門)에 이르니, 이곳에 큰 여관이 하나 있는데, 쓰키지 호텔(築地ホテル)이라는 풍채의 건물이었다. 주인은 이곳에 묵고 있다 하여, 소년이 이끄는 대로 계단을 올라, 지배인은 이층 방 하나, 큰길이 내다보인다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은, 중년의 미수(美鬚) 신사가 하나 있었는데, 미간에 자연스러운 품위가 어린 그가, 보석을 박은 감색 두건을 쓰고 유연히 턱의 수염을 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배인, 수고하였네.”

“예, 처음으로 뵙겠습니다. 예, 이번에는 또 각별한 주문을 내려 주셔서 감사한 행운으로 알겠습니다. 예예, 즉시 이리로 가지고 온 인삼, 한 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예에.”

아까의 소년도 거들어서, 이제부터 꾸러미를 풀어 인삼을 탁자 위 가득 쌓아 올렸다. 이국의 향기가 방 안에 가득 퍼졌다. 그 귀한 기운이 절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 밖에서 덜커덩덜커덩 수레 소리, 히이잉 하고 말이 울었다.

정오 무렵의 큰 호텔, 가을 냉기 속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차에 이런 요란함이 들려왔다. 병든 주인이 불현듯 창으로 아래를 내다보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동자.”

하고 소년을 불렀다. 그 자체는 점잖았지만, 다소 당황한 기색 어린 말투로,

“이봐, 무엇이 왔느냐. 저기, 알겠지, 병중이라 뵐 수 없다고 하여라.”

“알겠습니다.”

통통통, 계단을 구두 신고, 조용히…… 그러나 소년은 서둘러 내려갔다.

주인은 목소리를 낮추어 지배인에게,

“이런, 좀 저기, 상거래상 내가 빌린 돈이 있는 자가 왔지 뭔가. 부끄럽군, 하하.”

하고 웃으며,

“이층에 올리기엔 좀 번거롭다는 것이 — 이렇게 인삼을 사는 꼴을 보이면 돈을 안 줄 수가 없게 되지 않겠나……. 하하, 넓게 봐주게나.” 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이고, 그야 누구시든 그런 점에서는 다들 사정이 있으신 거죠, 예에.” 하며 진지한 얼굴이었다.

소년이 되돌아왔다.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내밀히 여인이라도 두고 계시어, 그 때문에 방으로 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합니다. 그런 사정이라면 더더욱 거절하라고 하십시오 하였습니다만, 여관 일꾼들도 막으려 하였으나 손발을 흔들며 듣지 않으시고, 구두로 차고 들어오십니다.”

“곤란한걸.”

여기서 얼굴빛을 바꾸어 지배인을 향해, 한층 낮은 목소리로,

“좀 친척 되는 자인지라, 더욱이나 그렇게 비틀고 나오니 어렵구나……. 어쨌든 이곳으로 올려서는 안 되겠네. 내가 아래 방으로 내려가서 만나고 오지. 그런데, 심술꾼인지라 기어코 올라오지 않는다고도 볼 수 없어. 혹시 모르니, 여기 대나무 트렁크가 있네. 이봐, 자물쇠도 걸리는군. 얼른 그 인삼을 안에 넣고, 자네는 아마카와야(天川屋)라는 심산으로 떡 허리를 펴고 앉아 지키고 있게나. 알겠나, 알겠나?”

그리고 병든 몸이라 비틀거리며 층계를 내려갔다.

“나리, 위험하십니다.” 하며 소년은 그 뒤에서 허리를 감싸듯 손을 내밀며 따랐다.

밖이 가까운지라, 이층에 남은 지배인의 귀에도 잘 들려왔다. 아래 방에서 한두 마디 말이 오가는가 싶더니, 고함치는 소리, 노호(怒號)하는 소리, 급기야 쿵쿵 뒤엉키는 소리. 어디로 쏠렸는지, 와르르 쨍그랑 하는 울림이 들렸다.

이윽고 호텔은 적막해지고, 멀리서 말 우는 소리가 들렸다. 창 밖으로는 붉은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대나무 트렁크에 걸터앉아 단정히 앉아 있던 인삼 지배인, 단정하게 앉아 있는 만큼 더욱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어, 이상하다.” 하고 비로소 눈치를 채어, 주인이 건네 준 열쇠를 가닥 쥐고, 허둥대는 눈빛으로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상자 바닥으로부터 아래층 복도가 훤히 내다보이는 것이 아닌가. 트렁크는 원래 바닥이 없는 것이었으니, 아까의 쿵쿵거리는 소리에 섞여, 멋지게 천장을 뜯어, 인삼을 빼낸 것이었다.

그때 지배인의 꼴이란, 우물에 무엇인가 빠뜨린 소리처럼, 멍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한다. 참으로 방심은 금물인 세상이로다.

덧붙이자면 또 한 가지, 얼빠진 이야기가 있다. 에도의 소매치기는 사람의 나막신을 벗긴다 하더니, 당나라 사람이라 그런지 신고 있던 구두를 벗겨진 데다가, 게다가 지붕 위에까지 올려 보내졌다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당나라 장안의 하이칼라, 새로 산 구두를 신고서 끽끽 소리를 내며, 기쁜 듯 발끝을 내려다보고는 싱글벙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한 사내가 쑥 다가와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길게 읍(揖)하며, 구두 신은 이의 손을 굳게 붙잡고,

“야, 오래간만이군. 어, 정말이지 얼마 만인가, 참 오래도 소식이 없었네, 형 요즘 어때, 사업은 잘 되나.”

하며 줄줄 이어갔다. 구두 신은 이는 도무지 본 적도 없는 사내인지라, 말도 못 하고 어이없어 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읍하던 사내, 목청을 돋우어,

“웃기고 있네. 새 구두 샀다고 우리 같은 놈은 모른 척하겠다는 거냐. 흥, 그만두게.”

하는가 싶더니, 구두 신은 이가 쓰고 있던 모자를 홱 비틀어 빼앗는다 싶은 순간, 길가 기와지붕 위로 홱 던져 버리고,

“꼴 좋다.” 하며 뒤도 보지 않고 어깨를 치켜들고 팔꿈치를 딱 벌리고 성큼성큼 가 버렸다.

새 구두 주인은 어리둥절하여,

“허, 주정뱅이구먼.” 하고 중얼거리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지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꼴이 당나라 사람답게 재미있다.

그런데 또 지나가던 이가 있었다.

“저, 봉변을 당하셨군요. 아까 그 놈은 왜 그런 짓을 하는 건지, 당치도 않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 뙤약볕에, 존두(尊頭).”

라고 적혀 있다. ‘존두(尊頭)’라는 말은 절묘하게 잘 표현했다.

“존두가 견디시겠습니까. 왜 지붕에 올라가 모자를 가져오지 않으십니까.”

“그렇지만서도, 당신, 사다리가 없어서 어떻게도 안 되지 않습니까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 사람이 이르기를,

“그래도, 오하라메(小原女)가 팔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계실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자, 어깨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여기 올라타서 처마를 붙잡고 대지붕으로 올라가시지요.”

구두 신은 이는 감사해하였다.

“자 왔다.” 하고 가볍게 쪼그리고 앉으니, 그 사내 어깨에 성큼 올라서자, 갑자기 화를 내었다.

“장난이 아니야. 이놈, 구두가 아까우면 나라고 옷이 안 아깝겠어. 아무리 새 구두라도 진흙이 묻어 있잖아, 좀 조심하지 않겠어.” 하며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구두 신은 이는 부끄러워하며 사과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사과가 당연하다.

그리하여 꾀죄죄하게 버선발이 되어, 어깨에서 처마로, 대지붕으로 기어올라가, 이백십일(二百十日) 풍격으로, 겨우겨우 모자를 집어드는가 하는 순간, 아래 사내는 박 씹듯 구두를 낚아채어 쏜살같이 달아나, 사람 무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메이지 4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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