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잘못된 성명의 역열(逆列)

이토 추타(伊東忠太)

一 성명의 유래와 순서

나는 일찍이 『국어 존중』이라는 글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 특히 고유명을 존중해야 할 이유를 논한 바 있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성명 표기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성명의 발생과 발달 역사는 여기서 상술하지 않겠으나,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성(姓)’이라 부르는 것은 실은 묘지(苗字)라 해야 마땅하며, 묘지·성·씨(氏)는 저마다 그 출처를 달리한다.

성(姓)은 본래 신분 분류 체계로, 예컨대 오미(臣)·무라지(連)·스쿠네(宿禰)·아손(朝臣) 같은 종류이고, 씨(氏)는 가계 분류로, 예컨대 후지와라(藤原)·미나모토(源)·다이라(平)·스가와라(菅原)·기(紀) 같은 종류이다.

묘지(苗字)는 개인 집안의 이름으로, 대개 토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예컨대 나스노 요이치(那須の與一)·구마가야노 나오자네(熊谷の直實)·지치부노 시게타다(秩父の重忠)·가마쿠라노 곤고로(鎌倉の權五郎)·미우라노 오스케(三浦の大介)·사노노 겐자에몬(佐野の源左衛門) 같은 것이 그 사례다.

옛날에는 묘지가 무사 계급 이상에게만 허용되었으나, 메이지유신 이래 백성과 상인 모두에게 묘지가 허락되면서 각양각색의 묘지가 쏟아졌고, 묘지를 씨(氏)라고도 성(姓)이라고도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고유 풍속으로서 가명(家名)을 존중하는 관계상, 당연히 묘지를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두어, 묘지와 이름을 결합한 하나의 고유명(固有名)을 개인의 명칭으로 삼았다. 묘지를 앞에 놓는다는 데에는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양 민족은 대체로 묘지를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두는 풍습을 지닌다. 중국인이 그 대표적 사례다.

유럽에서도 헝가리와 같은 나라, 즉 마자르족(Magyar族)은 동양 민족이기 때문에 묘지를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둔다.

서양에서는 집안보다 개인을 존중하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성을 뒤에 두고 이름을 앞에 둔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존 러스킨(John Ruskin), 제임스 와트(James Watt), 페테르 파울 루벤스(Pieter Pauwel Rubens), 폴 고갱(Paul Gauguin) 같은 부류로, 앞의 이름은 개인의 기독교식 이름이고 뒤의 이름이 가족명이다.

인도는 지리상 동양에 속하지만 민족이 아리아계이므로, 역시 이름을 앞에 두고 성을 뒤에 둔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라 하면, 앞의 이름이 개인명이고 뒤의 타고르가 가명이다.

二 유럽 모방의 악례

오늘날 일본에서는 유럽어로 서신이나 저작, 기타 각종 문서를 작성할 때 서명에서 서양식으로 로마자를 써서 이름을 앞에, 성을 뒤에 적는 관행이 있는데, 이는 심각한 오류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실은 중대한 문제다.

나의 이름은 이토 추타(伊東忠太)이지, 추타 이토(忠太伊東)가 아니다. 묘지와 이름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이토 추타(伊東忠太)’라는 하나의 고유명을 둘로 잘라 거꾸로 늘어놓는 따위의 무법한 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고유명은 신성한 것으로, 저마다 깊은 인연을 지닌다. 함부로 이를 주무르고 뒤집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 전도역열(顚倒逆列)을 으레 쓰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서양 문명이 들어올 무렵 무슨 일이든 서양 풍습을 모방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던 시대에 누군가가 이런 악례를 만든 것이 결국 하나의 관례로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와서 굳이 바꿔 묘지를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둘 것까지야 없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질렀거든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선현의 가르침이 아닌가.

더욱이 만약 서양식으로 성명을 뒤집는다면, 당장 생기는 난문이 있다. 과거 역사 속 인물을 부를 때는 어찌할 것이냐는 문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라 쓰지 않고 이에야스 도쿠가와라 하고,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正成)라 쓰지 않고 마사시게 구스노키라 하고, 기노 쓰라유키(紀貫之)라 쓰지 않고 쓰라유키 기라 해야 한단 말인가. 이는 상당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인물에게는 성명을 순서대로 배열하고 현재 인물에게는 뒤집어 배열한다는 것은, 물론 불합리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취급 방식에 궁색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중국은 과연 철저하다. 어떤 경우에도 성명을 뒤집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장쭤린(張作霖)은 어떤 경우에도 쭤린 장이라 자칭하지 않을 것이다. 이홍장(李鴻章)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홍장 이(鴻章李)라 부르거나 쓴 일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중국에서는 성을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둔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의 풍습을 따른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일본에서는 성을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둔다는 것을 알 터인데, 정작 일본인이 앞장서서 스스로 성명을 뒤집어 쓰니 외국인들도 이를 따르는 것이다.

三 서로 관습을 존중하라

어떤 사람은 말했다. 일본인이 스스로 성명을 뒤집어 쓰는 것은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며, 서양인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우리 일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사정을 모르는 서양인으로 하여금 일본도 성을 뒤에 두고 이름을 앞에 두는 나라라는 오해를 낳게 하고, 사정을 아는 서양인으로 하여금 일본인이 고유의 풍습을 버리고 외국 관습을 따르는 모습이 지나치게 굽실거린다는 의아함을 느끼게 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언제나 성 앞 이름 뒤의 원칙을 철저히 실천하여 세계에 일본의 국풍을 이해시킨다면, 각국 사람도 일본의 관례를 존중하고 따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여담이지만, 서양 관습과 일본 관습이 완전히 정반대인 사례는 실로 적지 않다.

예컨대 날짜를 적을 때, 일본에서는 연·월·일로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들어가지만, 서양에서는 일·월·년으로 거꾸로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들어간다.

주소를 적을 때, 일본에서는 나라·도부현·시·정·번지로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들어가지만, 서양에서는 번지·정·시·도부현·나라로 거꾸로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들어간다.

일본인이 유럽어로 문서를 쓸 때, 이 관례를 존중하여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적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그 안의 고유명만큼은 결코 손대서는 안 된다.

예컨대 지명 중에도 성명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 것이 있는데, 이 경우 성명을 뒤집는 것은 절대 불가이다.

도쿄시(東京市)의 “사쿠라다혼고초(桜田本郷町)”를 “혼고초, 사쿠라다”로 써서는 안 된다. 철도 역명 “우젠 무카이마치(羽前向町)”를 “무카이마치, 우젠”으로 써서는 안 된다. 같은 이유로 “이토 추타(伊東忠太)”를 “추타 이토(忠太伊東)”로 써서는 안 된다.

일본인이 유럽어를 번역할 때, 날짜나 주소 표기는 일본식으로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고쳐 쓰지만, 고유명은 역시 존중하여 원문의 필법을 따른다.

예컨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라 이름을 앞에 두고 성을 뒤에 두는 것을 일본식으로 워싱턴 조지라 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서양인도 일본의 고유명은 일본식으로 쓰는 것이 당연하며, 일본인 스스로는 더더욱 철저히 일본 고유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四 결코 성명을 역열하지 말라

나의 이 견해에 대해, 어떤 사람은 학자의 과민한 공론이라 평하고 거들떠볼 가치도 없는 사소한 문제라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일찍이 나 자신이 “국어 존중”이라는 제목 아래, 우리나라의 국호는 일본(日本)인데도 외국인의 잘못된 전와(轉訛)에 따라 스스로 재팬이라 자칭하는 것은 국치(國恥)라고 논한 것과 같은 맥락이며, 성명 전도(顚倒) 역시 하나의 국치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또 말했다. “네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실제적이지 않다. 너는 유럽어로 날짜를 기록할 때 서력을 쓰고 신무기원(神武紀元)을 쓰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이른바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니냐”고.

나는 이에 대해 한마디 해명해 두고자 한다. 연호란 시간을 재는 기준의 문제이다. 이것은 국호·성명 같은 고유명의 문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유럽어로 일본 역사를 쓸 때, 편의상 일본 연호와 함께 서력을 병기하여 양쪽을 대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가장 적당한 방법이며, 유럽어로 유럽 역사를 쓸 때 서력을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세간은 아직 고유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유명을 보통명사와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

보통명사는 어디서나 명칭이 달라질 수 있지만, 고유명은 절대적인 것이다. 하나뿐으로, 둘이 있을 수 없다.

즉 일본인의 성명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성과 이름이 이어져 하나의 고유명을 이룬다.

외국인이 이를 어떻게 취급하든 그것은 외국인의 자유이다. 다만 우리는 결코 외국인의 취급 방식을 흉내 내어 성과 이름을 잘라 역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일본의 국호를 외국인이 무어라 부르고 무어라 쓰든, 우리는 언제나 반드시 일본이라 부르고 일본이라 써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완)

(다이쇼 15년(1926년) 2월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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