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지금으로부터 스물두세 해 전 상해(上海)에서 출판된 《편술기담(騙術奇談)》이라는 네 권짜리 책이 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이미 알고 계신 분도 있겠으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소설과 수필류에서 사기적 범죄 행위에 관한 단편들을 원문 그대로 뽑아 모은 것으로, 길고 짧은 백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에 ‘은식사수편(銀飾肆受騙)’이라는 일화가 있다. 금은 장신구를 만드는 가게에서, 가게 앞에 등불 하나를 켜 두고 그 불빛 아래 점원이 목걸이의 은 세공을 하고 있자니, 이윽고 거기에 한 사내가 몹시 지친 기색으로 다가와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종기로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친절한 분이 고약 한 첩을 주시면서 붙이면 곧 낫는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염치없는 부탁이오만, 가게 등불을 잠깐 빌려 이 고약을 좀 녹이고 싶은데…….’
점원도 흔쾌히 응해 등불을 빌려주었다. 사내는 커다란 고약을 꺼내 불에 쬐고 있다 싶더니, 느닷없이 그 고약을 점원의 입에 철썩 붙여버렸다. 아뿔싸 싶었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사내는 그 사이에 손을 뻗어 거기 놓인 값진 목걸이를 낚아채 달아났다. 점원은 겨우 입의 고약을 떼어내고 도둑이야 도둑이야 외치며 쫓아갔지만, 도적은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이 이야기를 읽고서, 나는 에도 시대에도 그것과 거의 같은 사건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범죄자도 결국은 같은 인간이니 그 못된 꾀도 대개는 비슷하게 굴러가는 법이다. 에도의 이야기는 문정(文政) 말기 가을 저녁의 일이다. 요쓰야(四谷) 오키도(大木戸) 앞에 미카와야(三河屋)라는 작은 환전상이 있어, 주인 신베에(新兵衛) 내외와 아들 젠키치(善吉), 소년 점원 이치조(市蔵), 하녀 오마쓰,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저물 무렵 일곱 시쯤(오후 7시)이었다. 소년 점원은 어딘가로 심부름을 나갔다. 신베에 내외는 안방에서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있었고, 가게에는 올해 열여덟 살인 젠키치 혼자 앉아 있자니, 젊은 무사 차림의 사내 둘이 들어왔다. 한 명이 은화 한 닢을 동전으로 바꿔달라 하여, 젠키치가 시키는 대로 환전해 주었더니, 사내는 다른 한 명을 돌아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야, 여기 화로 좀 빌려서 그 고약 붙여버리면 어때.”
“음…….” 다른 한 명도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머뭇거렸다. 안색이 약간 창백했다. 게다가 왼쪽 발이 불편한지, 걸음걸이에 절뚝거림이 있었다.
“어디 편찮으신가요?” 젠키치가 물었다.
“편찮지, 편찮아. 중병 환자라고.” 처음 사내는 또 웃었다.
“그만해, 그만. 그냥 가자.” 다른 사내는 조금 머쓱한 듯 일어서려 했다.
“허허, 억지 참기는.” 처음 사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사실 이 친구는 여자들한테 너무 귀여움을 받은 천벌로 횡현(橫痃)이 생겼지 뭔가. 방금 덴마초(伝馬町) 약방에서 창독(瘡毒) 만병통치라는 붉은 고약을 사왔는데, 여기서 바로 붙여버리면 그만이건만, 쑥스럽다고 그냥 들고만 있는 거야. 여기 가게엔 딴 사람도 없으니 딱 좋잖아. 그 불 좀 빌려서 얼른 붙여버리라고.”
그 말을 듣고, 젠키치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시다면 사양하실 것 없습니다. 어서 붙이십시오.”
“봐, 이 총각도 그러잖나. 뭘 쑥스럽다는 거야. 이 총각도 몰래 붙이고 있는지 모르지.”
“허허, 농담도 하십니다…….”
젠키치도 젊은 나이라 이런 이야기에 묘한 흥미를 느꼈다. 가게 화로를 두 사람 앞으로 밀어주자, 다른 사내도 마침내 마음을 먹고 가게 안에 걸터앉았다. 그는 소매 안에서 큼직한 고약 두 장을 꺼내 화로 위에 쬐기 시작했다.
“나도 거들어서 한 장 구워줄게. 이 고약은 두 장 겹쳐 붙여야 독을 제대로 빨아낸다더라.”
처음 사내도 한 장을 집어 불에 쬐고 있다가, 이윽고 뒤집어 보고는 혀를 찼다.
“약이 아직 안 녹는군. 화로 불이 너무 약해서 그래.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여기 가게는 좀 심하게 아끼는군. 반딧불만 한 불씨밖에 없으니 말야.”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젠키치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내밀어 화로 안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두 사람은 느닷없이 젠키치의 손을 붙잡고 커다란 붉은 고약을 두 눈에 철썩 붙여버렸다. 그러고는 위협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마라.”
두 눈에 뜨거운 고약을 맞아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데다, 상대는 어쨌든 무사 둘이다. 젠키치는 그저 꼼짝 못 하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사이, 두 사람은 장부 칸의 금고를 집어 들고 쿵쿵 뛰어 달아났다. 그 소리를 듣고 안에서 신베에 내외가 나왔을 때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미 초저녁 어둠 속에 사라진 뒤였다.
고약을 떼어내고 눈을 씻겼지만, 뜨겁게 녹인 고약이 눈에 스며든 탓에 젠키치는 그 후로 며칠씩이나 안과 의원에 다녀야 했다. 앞서 소개한 중국 이야기에서는 고약을 입에 붙였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하는 터라 두 눈에 고약을 붙였다. 요컨대 같은 수법이다. 무사 둘인 만큼 굳이 눈을 가릴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나쁜 짓을 저지르려면 역시 이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미카와야에서 곧바로 신고가 들어와 범인 수색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행실이 나쁜 하급 하타모토의 차남이나 삼남, 혹은 막부 하급 무사(御家人) 같은 부류임에 틀림없다고는 누구나 쉽게 짐작하는 바였다. 정탐꾼 한 명은 우선 요쓰야 덴마초(伝馬町)의 한약방을 조사했으나, 그날 또는 그 전날 붉은 고약을 사러 온 무사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덴마초에서 샀다는 말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꾸며낸 것이고, 실제로 어디서 사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두 사람이 근처 사람인지 먼 곳 사람인지, 그것도 알 길이 없다.
이렇게 되면 수색 범위도 꽤 넓어지는 셈이지만, 뱀의 길은 뱀이 안다고, 정탐꾼들은 우선 인근 신주쿠(新宿)에 눈을 돌렸다. 두 사람이 아마도 그 돈을 나눠 신주쿠 기루(妓樓)로 들어갔으리라 본 것이다. 그 판단은 적중했다. 신주쿠 이가야(伊賀屋)라는 가게에 올라온 손님 하나가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화상을 입었다며 단골 유녀 오센에게 야마자키 부적을 빌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야마자키 부적은 당시 유행하던 것으로, 그 부적으로 화상 부위를 어루만지면 곧 낫는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 손님은 오센의 단골로, 요쓰야 시나노마치(四谷信濃町)에 사는 삼십 표(俵) 녹봉의 구니하라 지로(國原次郎)라는 자였다. 그날 밤은 지로 혼자였지만, 그의 친구 미카미 진고로(三上甚五郎)라는 자도 때때로 함께 왔다고 한다. 더 파고들어 내탐하자, 두 사람 모두 동료 사이에서도 소문난 방탕자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상대가 무사인지라 섣불리 체포할 수도 없어, 정탐꾼 둘이 미카와야 아들 젠키치를 데리고 지로의 집 근처에 그물을 치고 기다리고 있자니, 그가 목욕탕이라도 가는지 수건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젠키치가 저 무사가 틀림없다고 손으로 가리키자, 정탐꾼들은 지체 없이 그를 붙잡았다. 요쓰야 사카마치(四谷坂町)에 사는 미카미 진고로도 이어서 잡혀 들었다.
미카와야에서 은화 한 닢을 환전한 것은 지로다. 횡현(橫痃)으로 절름발이 연기를 한 것은 진고로다. 두 사람은 일단 근처 다이소지(太宗寺)로 도망쳐 들어가 금고 안을 살펴보니, 은화와 동전을 합쳐 겨우 두 냥 남짓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적다 싶었지만, 둘이서 반반 나눠 헤어졌다. 함께 신주쿠로 놀러 갔다가는 꼬리가 잡힐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고는 본당 마루 밑에 던져 두고 자리를 떴다.
두 사람으로서는 용의주도하게 처리했다고 자부했겠지만, 지로는 화로에서 붉은 고약을 구울 때 더 잘 구워보겠다고 실수로 자기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불에 대고 말았다. 그 순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신주쿠에 가서부터 그 손가락이 쓰라리게 아파오자, 단골 유녀 오센에게 약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오센이 야마자키 부적을 빌려주었다. 그것이 뜻하지 않게 정탐꾼의 귀에 들어가 마침내 발각의 단서가 된 것이다.
사실은 그저 이것뿐이다. 여기에 조금 살을 붙인다면 꽤 흥미로운 탐정 이야기로 꾸밀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