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달 속에서 토끼가 떡을 찧는다는 옛이야기도, 옛날이었다면 아무 위화감 없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달을 가리키며 저 속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설령 이야기로 하는 말일지라도 그렇게 공상하기가 오히려 힘들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에게 시적 공상이 현저히 결핍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아이들에게 달 세계가 어떤 곳인지 이야기해 준다면,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는 어떤 생물이 살며, 옛날에는 사람도 살았을까.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다고 하는데, 로켓을 타고 가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며 공상을 마음껏 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달 토끼 이야기가 통하던 시대의 아이들은 지식이 생활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아무 위화감 없이 그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지금 아이들의 지식은 현실에 근거 없는 공상을 거부한다. 놀이에서도, 오락에서도 지식과의 조화를 찾는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상은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현실에 입각하는 것이다. 북방 지방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남국의 자연이나 생활은, 설령 책으로 보거나 이야기로 듣더라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이해시키려면 예술의 힘을 빌려야 한다.
같은 바다라도 북방의 바다와 남방의 바다는 색채, 감각, 특성부터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다르다. 그 지역 아이들이 바다에 품는 공상과 동경도 같지 않고, 바다에 대한 애증과 기쁨과 슬픔의 감정도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저 ‘바다’라고 해도 모든 아이들에게 고루 와 닿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 관한 학문적 지식만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다. 아이들의 경험과 지식이 조화를 이루고 그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공상의 세계가 아니면 진정으로 매혹하지 못한다.
모든 공상이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려면 풍요로운 현실을 온상으로 삼아야 한다.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은 동화는 이미 생기를 잃은 것이다. 과거의 옛이야기가 당시의 생활과 경험에 조화하여 태어난 것이라면, 새로운 동화는 오늘의 생활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꿈이어야 한다.
동화는 공상적 산물이기에 그만큼 현실과 함께하며 현실성을 띠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작가들은 동화란 옛이야기이고, 옛이야기란 결국 가공을 재료로 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현실에서 되도록 멀어지려 했다. 단순히 겁을 주는 요괴 이야기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거나, 교훈적인 동화이거나, 아니면 아예 넌센스면 그만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동들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만족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종래의 옛이야기와 동화에서 이미 느껴오던 결함과 불만이었다. 어린이 읽을거리를 과학적인 것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에 대한 반동적 표출로 보아야 한다. 최근 어린이 읽을거리 중 과학적 지식을 주로 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만을 바탕으로 한 읽을거리는, 설령 호기심과 흥미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다 해도, 개성과 특질과 체험을 무시하는 까닭에 진정한 이해에 도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결국 가공적인 옛이야기가 현실을 무시한 것과 같은 결과에 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동들의 현실 속 생활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어린이를 위한 읽을거리는 그들의 생활과 연관된 것이어야 한다.
지식과 경험의 조화만이 좋은 동화를, 그리고 좋은 어린이 읽을거리를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자가 먼저 어린이를 이해해야 한다.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은 아동들의 진정한 벗이 되고 조언자가 되고 가장 좋은 대변자가 된다. 지금까지처럼 억압하는 대신 내적으로 감동하여 분발하게 하기에 이른다. 언제나 좋은 작품은 강요된 감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시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자는 스스로 아이가 되고 아이의 시절 사람이 되어, 거의 아동과 동일한 감정과 심리와 이해로 자연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점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읽을거리보다 훨씬 힘이 드는 일로, 기교나 단순한 경험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천분에도 달려 있다. 아동 문학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가를 말해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그 작자가 진실과 순수한 사랑으로 세상의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겠는가.
빈부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자신의 힘만으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은 태어난 땅, 부모, 처지, 성품에 따라 보는 것과 듣는 것조차 다르다. 그러면서도 숙명에 순응하여 그 안에서 저마다의 행복을 찾으려 한다. 이토록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아동들에게 개념적인 어떤 읽을거리가 진정으로 인간으로서 해야 할 바를 가르치고 장래에 보탬이 된다는 것인가. 알면 반드시 행한다는 본능을 지닌 아동들에게 가공적인 옛이야기나 도덕 이야기가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여기에, 오직 한 부류, 어린이를 사랑하는 작가들이 있다. 각 계층을 통틀어 본능적으로 성장해 가는 아동들의 삶을 지켜보며, 이론이 아닌 애정으로 이들을 기르고자 한다. 이런 작가들이야말로 홀로 예술의 힘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동화는 시적 요소가 풍부한 예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학교 획일 교육의 장점과 단점은 이미 여론을 통해 밝혀진 바와 같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이라는 말이 개성을 지워 버리고 특색을 잃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국 일률의 교과서는 학술적 지식을 가르치는 데는 유용하나, 그 지식이 각 아동의 개별적 경험과 과연 일치하는지를 따져 보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과외의 정서 교육이나 인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화는 학교 교육과 병행하여 장려되어야 하는 시급한 과제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문학은 아동의 세계를 펼치고, 생활하고,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그려진 것이어야 한다. 아동의 심리에는 한 가닥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이를 통해 반성하고, 자각하고, 나아가 비판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에서 비롯되는 교화는 개념적 지도도 아니고 강압적 교훈도 아니며, 오직 체험에 호소하여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다스리게 하는 데 있다.
이상을 요약하자면, 현실에 입각하고 분방하며 자유로운 미적 공상을 담거나, 혹은 불가사의한 향토적 이야기를 담은 것들은 신흥 동화라는 이름 아래 앞으로 반드시 발전해야 할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오늘날 어린이 읽을거리가 너무나 조잡하고, 불성실하고, 수준이 낮음이 아동의 인격 형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면 절로 감개를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