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에게는 문예라는 것에 두 갈래의 구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곧 번뇌하는 문예와 즐기는 문예가 그것이다.
우리들의 이 일상생활을 두고 티끌만큼의 의심도 끼우지 않고, 모든 감각과 모든 사상을 부려 자아의 충실을 구해 가는 생활, 그리고 무엇을 보든 무엇에 닿든 곧바로 그 사물에서 얻을 수 있는 만큼의 경험과 감각을 얻어 생활의 충실을 꾀한다, 이것이 곧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또한 인생이라고 풀이한다. 그리하여 이 마음을 지니고 자연을 보아 주관에 비친 색채, 주관 속으로 들어온 자연의 모습, 이것이 곧 인간 생활의 절대적 경험이라는 자리에서 모든 자극을 받아들여 일상생활의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는, 그것을 위한 노력, 이것이 인생을 즐기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 말한 바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자기 존재를 분명히 하는 유일한 의식, 곧 감각 그 자체에 의심을 끼울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인생의 보증으로서, 또 사실로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감각에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가,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이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우리의 육체로 말하자면, 모든 외계의 자극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겨우 스무 살에서 서른 살 무렵까지의 지극히 짧은 세월이 아닌가, 그리고 해가 갈수록 육체적 피로가 들어차서 사상 위에서 아무리 바란다 한들 끝내 외계의 자극은 더 이상 날카롭게 감각으로 떠오르지 않게 된다, 이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 같은 일이야말로 실로 인간으로서 감각의 비애를 느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 한편으로 말하자면, 우리네의 감각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의식할 수 있는가, 거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외계적 자극을 두고 느끼는 감각은 지극히 단조롭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인간의 감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또 이것은 능력에만 한정되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상당한 한계를 면할 수 없다. 이같이 생각하면 감각의 생활도 머잖아 스러지고 만다는 사실 또한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은, 육체에 있어서도 또 정신에 있어서도 저마다 그 경험을 가능한 한 많이 누리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늘 마음에 품고 바라는 바이며, 또한 이것이 삶으로서 의의 있는 일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본능의 만족을 이루어 가는 한복판에서, 인간은 자기 소멸이라는 사실 또한 떠올리고야 만다. 이에 이르러 사무치게 우리들의 머릿속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생각도 일어나는 것이다. 또 『이 지상에 태어나 과연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가』라는 식의 물음도 떠오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육체와 정신을 다 바쳐 희생할 만한 우상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하는 슬픔을 끝끝내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만 하나 종교라는 것이 있어, 그곳으로 도망쳐 갈 수는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 종교라는 것도 일종의 금욕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인간다운 생활, 이 번거로운 현실의 삶에서 떨어져 나와, 특수한 욕망을 금하고 억지로 자신을 그 위에 두는 일은 괴로운 생활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참된 종교가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흔쾌한 일이며,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삼자인 나에게는 실로 차갑고 슬픈 일로 느껴진다. 이 지점이 나에게 있어, 문예의 두 갈래가 갈라지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곧 하나는 이 생활의 근저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오로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과 감각을 구하여 자아의 충실을 바라며, 또 하나는 색채적이고 음악적인 생활의 괴멸, 죽음을 향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호소하려는 두 갈래로 나뉘어 나오리라 본다. 그리고 그 어느 예술에서도 이를 일관되게 꿰뚫는 것은 성실이라 여긴다. 이 색채적이고 음악적인 세계에 서서 즐긴다는 마음, 그곳에도 우리 가슴에 스며드는 성실과 쓸쓸한 환희가 있다. 또 어떤 이는 세례를 받아야 할 암흑이 굉굉히 울리며 시시각각 파괴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 여기에도 인생의 참된 슬픈 외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러 두어야 할 것은, 이 극한에 이르러 죽음을 찬미하고 또 이를 바라는 일이 일어남은 당연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죽음을 찬미하고 이를 바라는 일은 이미 어떤 해결이어서, 번민의 시대를 떠난, 그리고 종교에 합치된 자리이며, 참된 번뇌라 이를 만한 것은 그 자리에 다다르기까지의 괴로움이어야 한다.
또 하나 말해 두어야 할 것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지극히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편협하지 않을까, 우리네는 아무리 훌륭한 형체가 있다 한들 이를 다루는 데 있어 생명이 없을 경우, 결코 그것을 현실이라 여기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비록 형체는 없어도 작자의 주관이나 신경이 통하고 있다면 그것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 대하여 현실에 닿아 있다거나 닿아 있지 않다거나 하는 일을 눈에 보이느냐 아니냐에 (다루는 방식에) 의해 운운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며, 인간의 센티멘트, 곧 작자의 신경, 감정이 꿰뚫는 곳, 노력이 통하는 곳이 모두 현실의 세계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작가의 노력이란 곧 신경, 감정의 에키센트릭한 것이며, 일찍이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던 감정, 사람이 미치지 못한 경지에 들어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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