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우리가 쓰는 클럽이 고비키초 8정목에 있다. 쓰키지 요정(待合) 구역 끄트머리에 자리한다. 맞은편도 요정이다. 3층짜리 홀쭉한 건물이다. 2층에 방 세 개, 3층에 방 두 개다. 집세는 셋으로 나눠 사(社)와 나와 나오키가 각각 3분의 1씩 내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규정뿐이고, 전부 사(社)가 대신 내고 있었다.

나오키는 이곳에서 지냈다. 가나가와 도미오카에 집을 지었는데, 만 수천 엔을 들여 완성하고도 일주일 남짓 살았을 뿐, 결국 예전처럼 클럽에 머물렀다.

나오키는 죽기 나흘 전 의식을 잃고 침대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자네, 누워 있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라고 하자 “2층이 낮에는 시원하니까 2층으로 내려가 자려고”라고 했다. 클럽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3층에는 중국제 양탄자를 깔고 모던한 책상도 놓아두었지만, 결국 나오키는 2층의 화리자단(花梨紫檀) 탁자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뒤로 도코노마(床の間)를 두고 탁자를 앞에 놓은 채 늘 앉아 있었다. 그 등 뒤에는 곤도 세이쿄가 나오키에게 선물한 칠언절구 시가 걸려 있었다.

烏兎慌忙憂不絶。一年更覺□年切

猶將纂述役心形。衰髮重添霜上雪

라는 시구였다.

나오키는 이곳에서 손님을 만나기도 하고, 이 탁자 위에서 원고도 썼다. 탁자 위에는 뜯어 놓은 편지며 청구서 따위가 쌓여 있었다.

작년 가을 무렵부터 사(社) 사람들이 클럽에 잘 오지 않게 되었다. 나오키는 과묵한 편이면서도 손님을 좋아해서, 원고 쓰는 데 방해가 되더라도 사람이 오는 쪽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클럽에 오는 사람이 줄었지만, 나는 거의 매일 밤 갔다. 오전부터 오후 3시 무렵까지 집에서 원고를 쓰는데, 작년 가을부터 신문 두 편을 써야 했다. 신문 한 편 쓰는 데도 두 시간은 걸리고, 두 편을 쓰면 네 시간 이상이 걸린다. 집에서 신문 두 편을 쓰고 나면 잡지 일은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그래서 밤에 클럽에 가서 신문 한 편을 더 쓰기로 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밤처럼 클럽에 갔다.

원고를 쓰기 전후에는 나오키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물으면 대답하는 정도였다. 문예 이야기나 세상 얘기는 일절 한 적이 없다.

심심하다 보니 결국 바둑이라도 두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물두세 살 무렵 지금의 미야사카 6단과 한 번 둔 적이 있다. 미야사카 씨는 내 기력(棋力)을 초단에서 11집 핸디캡 수준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빈말 없는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 후 장기만 했더니 바둑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늘었다 해도 기껏해야 3집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4, 5년 전 나오키와 두었을 때 나는 2집밖에 놓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오키가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 나오키는 장기도 마작도 서툴렀다. 장기 같은 경우, 번뜩이는 수를 두는가 싶더니 엉뚱한 악수(惡手)를 두곤 했다. 마무리를 대충 해버리는 방만한 장기였다. 바둑도 그런 면이 있었지만, 전심으로 연구한 보람이 있어서 이 2, 3년 사이에 3, 4집 정도 늘었던 것 같다. 작년 봄에 두어 보니, 4집 접바둑으로도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멍하니 있는 나오키를 위로하려는 마음도 있어서 나오키와 자주 두었다. 나오키하고만 두었다. 몰래 공부해서 맞바둑(互先)으로 이겨 볼까 하는 장난기도 없지 않았지만, 워낙 바빠서 그냥 지나쳤다.

4집 접바둑에서 네 판 앞서 3집이 된 적도 있지만, 곧 다시 4집으로 몰리곤 했다.

그러다 작년 연말에는 내가 앞서 3집이 되어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제대로 핸디캡 기록표(手直り表)를 벽에 붙여 놓고 승부를 확실히 가리기로 했다.

그리고 나오키의 방 벽에 다음과 같은 표를 붙여 두었다. 이것이 1월과 2월의 성적이다.

분게이슌주 기원 나오키

키쿠치 핸디캡 기록표

1월 11일   3집  나오키 승

〃          〃

1월 12일       〃

1월 20일   4집  키쿠치 승

1월 29일   3집  키쿠치 승

2월 8일       키쿠치 승

2월 9일       키쿠치 승

날짜가 없는 것은 언제 두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룻밤에 대개 한 판밖에 두지 않았다.

나오키는 정월이 되자 ‘올해부터는 바둑에서만큼은 아무한테도 안 진다!’고 호언장담했다. 나한테 불리한 3집이었는데도 다섯 판을 연달아 졌다. 이 표에는 적지 않았지만, 한 판 더 내가 4집이 되는 것이 싫어서 3집으로 두고 진 것으로 기억한다.

4집이 되자, 처음 한 판은 나오키가 유리한 형세였는데 끝까지 두어 보니 뜻밖에도 내가 1집 차로 이겼다. 그 후 나오키의 바둑은 몹시 거칠어져서 내가 네 판을 연달아 이겼다. 3집이 되었다. 3집으로도 내가 이겼다. 2월 초순에 나오키는 입원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입원하면 한동안 못 만난다는 것이 못내 걱정되었던지, 오사카에 있는 노부(老父)를 만나러 갔다. 돌아온 것은 6일인지 7일이었다.

8일 밤에 만났을 때, 나오키는 몹시 초췌해 있었다. 평소에는 내가 먼저 ‘한 판 두지’라고 권하는 편인데, 그날은 나오키의 기색이 너무 나빠 보여서 내가 참고 있자니, 나오키 쪽에서 ‘한 판 둘까’라고 했다.

처음에 나오키는 중앙에 대모양(大模樣)을 만들어, 나는 손 쓸 방도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두다 보니 나오키의 돌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크게 이겼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나오키를 놀렸다. 나는 나오키의 병세가 나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겨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고, 그 사람이 놀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평소 나오키와 농담 반 다툼을 하는 사이였기에, 늘 하던 대로 나오키를 놀려댔다.

나오키는 “여기는 내 집이다. 여기 와서 주인인 나를 놀리는 놈이 어디 있어”라고 하며 화를 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날 입원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늦어져서 그만두었다. 다음 날 가 보니 나오키는 아직 입원하지 않고 있었다. 2월 1일에 입원할 예정이었지만, 오사카 여행이며 이것저것으로 계속 미루어진 것이다.

어제 이겨서 도리어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그날은 내 쪽에서 ‘한 판 두지’라고 했다. 내가 권하면 싫다고 한 적 없는 나오키였다. 두기 시작했는데, 어제보다 나오키는 더욱 약해져 있었다. 완전히 뿔뿔이였다. 나는 또 크게 이겼다. 하지만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이미 이 무렵에는 뇌막염 징후가 있었던 것이다. 8일에 대학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는데, 계속 두통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두통 때문에 답답해서, 그 기분 풀이로 나와 대국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9일 밤, 나와 바둑을 두고 나서 나오키는 자동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뇌막염을 앓고 있는 나오키를 3집으로 두 번 이긴 셈이다.

2월호에서 무라마쓰 쇼후와의 기력 우열에 대해 뭔가 말했던 것 같은데, 그건 양쪽이 다 강한 척 한 것으로, 제3자인 가와바타 군 말에 따르면 막상막하라고 한다. 나오키는 의식이 있는 동안은 살겠다는 마음으로 있었다. 죽기 나흘 전, 나한테

“오래 걸리겠지만 목숨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아. 2, 3일 뭔가를 먹을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되겠지”

라고 하며 단팥죽(おしるこ)을 먹고 있었다. 나오키의 병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의사에게 듣고 이미 체념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오키의 희망을 꺾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희망을 품은 채 죽게 할 생각이었다. 유언 같은 것을 들어도 마음만 어지러울 뿐이고, 빚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거니와 기묘한 유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식이 없어지고 보니, 정신이 온전한 동안에 뭔가 이야기해 둘 걸 하는 후회도 남아 있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빈소 날 밤에 벽에 붙여 두었던 나오키와의 핸디캡 기록표를, 집을 청소하던 누군가가 뜯어낸 것을 발견했다.

이 핸디캡 기록표에는 나오키가 직접 쓴 부분도 있어, 나와 나오키의 우정을 담은 좋은 기념물이다. 그것을 무심하게 뜯어 놓은 것을 보니, 나는 마구 화가 치밀어 사원과 여자 일꾼들에게 호통을 치며 찾게 했다. 다행히 폐지와 함께 뜰에 버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원래 자리에 붙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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