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그림의 슬픔

구니키다 돗포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우선 드물 테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어릴 적 무엇보다 그림을 좋아했다. (라고 오카모토(岡本) 모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 곧 잘하는 일이라더니, 다른 학과목 가운데에서도 그림만큼은 동급생 중에 나에게 견줄 자가 없었다. 그림과 수학이라면 미안한 말씀이지만 누구든 덤벼라, 하고 나도 무척 자랑스러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에는 어딘가 경쟁의 냄새가 섞여 있다.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완전히 천성이라 해도 좋으리라. 나를 혼자 내버려 두면 그림만 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면 더없이 얌전해 보이지만, 사실은 나만큼 개구쟁이 노릇을 한 자가 동급생 중에 없을 뿐 아니라, 교장 선생님이 두 손을 들어 몇 번이나 퇴학을 들먹이며 으름장을 놓으셨던 것만 보아도 전교에서 으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교 으뜸의 개구쟁이도, 수학도. 그러나 천성으로 좋아하는 그림에서는 전교 제일의 영예를 시무라(志村)라는 소년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이 소년은 수학은 물론이고 그 밖의 학력 또한 전교 학생 중 둘째 이하였지만, 그림의 천재성으로는 도무지 견줄 자가 없었으니, 겨우 어깨를 견줄 만하다 일컬어지는 자는 나 한 사람뿐이요, 나머지는 모두 시무라의 천재성을 우러러 받들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시무라를 숭배하지 않았다. 두고 보라는 기세로 부지런히 분투했다.

본디 시무라는 나보다 나이도 위였고 학년도 한 학년 높았으나, 나는 학력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내가 있는 학년과 시무라가 있는 학년을 동시에 다닐 수 있도록 교장 선생님께서 특별히 처분해 주셨던 까닭에, 자연스럽게 시무라가 나의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교의 인기, 교장과 교사를 비롯한 수백 명 학생의 인기는 온순한 시무라에게 기울어 있었다. 시무라는 살빛이 희고 부드러운, 여자아이로 두고 보고 싶다 할 만한 소년이요, 나는 미소년이긴 했으나 난폭하고 거만하며 싸움을 좋아하는 소년인 데다, 늘 학년 일등을 차지하고 시험 때마다 반드시 최우등 성적을 받았던 까닭에, 교사들은 나의 거만함이 아니꼬웠고, 학생들은 나의 위압이 아니꼬웠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인기가 박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은, 적어도 그림에서나마 시무라를 첫째로 삼아 오카모토의 콧대를 꺾어 주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분하게 여긴 것은, 시무라의 그림이 반드시 잘된 때가 아닌데도 교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를 격찬하고, 내 그림은 분명히 잘된 작품인데도 그토록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인기라는 것이 미웠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학생들의 제작물 전람회가 열렸다. 그 출품작은 주로 습자, ※그림, 여학생들의 바느질 작품 따위였고, 학생의 부형과 자매들이 아침부터 줄줄이 몰려들었다. 갖가지 평판이 오갔다. 작품을 출품한 학생들은 마음이 편치 않아 모두들 안절부절못하며 전시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나도 이 전람회에 출품할 작정으로 도화지 한 장에 큼지막하게 말의 머리를 그렸다. 말의 얼굴을 비스듬히 본 모습이라, 물론 소년의 손에는 벅찬 화제(畫題)였으나, 나는 이 한판으로 기어이 시무라를 누르겠다는 기세였기에 죽을힘을 다해 그렸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한 방에 틀어박혀 그렸고, 본보기를 바탕으로 삼되 건방지게도 실물 사생을 시도하여, 다행히 우리 집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뽕나무밭 안에 마방(말 빌려주는 집)이 있어 몇 번이나 그곳 마구간을 드나들었다. 윤곽이며, 음영이며, 운필(붓놀림)이며, 나는 이제껏 내가 그린 것은 물론이고 시무라가 그린 것 가운데에서도 이에 견줄 만한 작품은 없다고 자신했다. 이만하면 반드시 시무라를 이긴다, 아무리 불공평한 교사나 학생일지라도 이번만큼은 내 실력에 압도되리라, 하고 큰 승리를 미리 점치며 출품했다.

출품작은 모두 자기 집에서 그리는 것이라 누가 무엇을 그리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또 서로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특히 시무라와 나는 서로의 화제를 가장 비밀에 부쳐 알리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그리면서도 시무라가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다.

자, 전람회 당일. 아마 전교 수백 명 학생 중 가장 가슴을 두근거리며 전시실에 들어선 자는 나였으리라. ※그림 전시실은 이미 학생과 학생의 부형과 자매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두 점의 대형 그림(오늘날 이른바 대작)이 나란히 걸려 있는 앞이 가장 많은 구경꾼이 모여 있었다. 두 점의 대형 그림은 말할 것도 없이 시무라의 작품과 나의 작품이었다.

한눈에 보고 나는 단숨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시무라의 화제가 콜럼버스의 초상이라니! 더구나 분필(チョーク)로 그려져 있다. 본디 학교에서는 연필화만 가르치고 분필화는 가르치지 않는다. 나로서는 분필로 그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 한 일이었기에, 그림의 좋고 나쁨은 차치하고 우선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말의 머리와, 콧수염 턱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당당한 콜럼버스의 초상은 한눈에 도저히 견줄 만한 상대가 못 되었다. 게다가 연필 색은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도 분필의 색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화제로 보나 색채로 보나, 내 작품은 결국 소년이 그린 그림이요, 시무라의 작품은 진짜였다. 기교의 우열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람에 내걸 작품으로서, 아무리 끈기가 센 나라도 내 쪽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시무라 숭배자들은 이를 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말도 좋지만 콜럼버스는 어떤가!” 따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학교 정문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집에는 돌아가지 않고 곧장 들판으로 나갔다. 멈추려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분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여, 앞뒤 분간 없이 강기슭까지 달려가 강가 자갈밭의 풀숲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발을 버둥거리며 큰 소리로 울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어나 근처의 돌들을 주워 사방팔방으로 던졌다.

이렇게 날뛰는 동안에도 나는, 저 녀석이 언제 분필화를 배웠을까, 누가 저 녀석에게 가르쳤을까 하는 그것만 줄곧 생각했다.

실컷 울고 날뛰니 가슴이 어느 정도 후련해졌고, 그와 함께 점점 지쳐 어느새 그 자리에 누워 버렸다. 푸르디푸른 드넓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여울 소리가 콸콸 들려온다. 어린 풀을 어루만지며 다가오는 바람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봄 내음을 실어 와 얼굴을 스친다. 기분이 좋아져 한동안 가만히 있었는데, 문득 ‘그래, 나도 분필로 그려 보자’ 하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그대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곧장 분필을 사 갖추고, 화판을 들고 곧바로 또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때까지 나는 분필을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다. 어떤 식으로 그리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분필로 그린 그림을 본 적은 여러 번 있었다. 다만 이제껏 내 손으로 그리지 않은 것은 도저히 아직 우리 솜씨로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 단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니, 시무라가 그만큼 그릴 수 있다면 나도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다시 아까 그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우선 떠올린 화제는 물레방아였다. 이 물레방아는 그 이전에 연필로 그린 적이 있던 터라, 분필을 처음 잡는 마당에 한 번 더 사생해 보자며 둑을 따라 상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레방아는 강 건너편에 있고, 그 고풍스러운 모습이 우거진 나무숲에 절반쯤 가려져 있는 모양새며, 담쟁이덩굴이 얽혀 기어오른 정취며, 어린 마음에도 흥미로운 화제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맞은편 기슭에서 사생하려고 둑을 내려가 강가 자갈밭의 풀밭으로 나서니, 지금까지 강가 버드나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한 소년이 풀 속에 앉아 열심히 물레방아를 사생하고 있었다. 나와 그 소년 사이에는 사오십 간(間) 거리가 있었으나, 나는 한눈에 시무라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한마음으로 빠져 있어 내가 가까이 다가간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이런, 저 녀석이 와 있구나, 어찌하여 저 녀석은 늘 내 앞을 가로질러 가는가, 얄미운 녀석이로구나, 하며 크게 비위가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발길을 돌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꼬워, 어찌해 줄까 하며 그대로 우뚝 서서 시무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풀 위로 허리에서 위가 드러나 있고, 세운 무릎에 화판이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었다. 강가 버드나무 그림자가 뒤에서 그의 온몸을 덮고, 다만 그의 흰 얼굴 언저리에서 어깨까지 버드나무 잎새 사이로 새어든 옅은 빛이 잔잔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 재미있겠다, 저 녀석을 사생해 보자며,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시무라 본인의 사생에 들어갔다. 그래도 신통한 것은, 화판을 마주하고 나니 어느새 시무라가 얄미운 녀석이라는 마음은 사라지고, 그리는 일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 버렸다는 점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물레방아를 바라보고는 다시 화판을 향하기를 거듭했고, 이따금 무척 즐거운 듯한 미소를 뺨에 띄우고 있었다. 그가 미소 지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시무라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그 박자에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어라 말하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얼굴로 빙긋이 웃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너 뭘 그리고 있었어?” 하고 묻기에,

“너를 사생하고 있었어.”

“나는 벌써 물레방아를 다 그렸어.”

“그래? 나는 아직 못 그렸어.”

“그렇구나” 하고 시무라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아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더니,

“그려 봐. 나는 그동안 이걸 손볼 테니까.”

나는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있는 동안, 그를 얄밉게 여기던 마음은 깨끗이 사라지고 도리어 그가 사랑스러워졌다. 어느덧 다 그렸기에,

“다 됐다, 다 됐어!” 하고 외치자, 시무라가 내 곁에 와서,

“어, 너 분필로 그렸구나.”

“처음이라 영 그림이 안 돼. 너는 분필화를 누구한테 배웠어?”

“얼마 전 도쿄에서 돌아오신 오쿠노 씨한테 배웠어. 그래도 아직 막 배운 참이라 아무것도 못 그려.”

“콜럼버스는 잘됐더라. 나는 깜짝 놀랐어.”

그러고 나서 우리 둘은 나란히 학교로 갔다. 그 뒤로 나와 시무라는 완전히 사이가 좋아져, 나는 진심으로 시무라의 천재성에 감복했고, 시무라 또한 본디 온순한 소년인 터라 나를 둘도 없는 벗으로 가까이해 주었다. 둘이서 화판을 챙겨 들고 들과 산을 사생하며 다닌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머지않아 나도 시무라도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고향 마을을 떠나 현(縣)의 중앙에 있는 어느 읍내에 기숙하게 되었다. 중학에 들어가서도 둘은 그림 그리는 일을 무엇보다 큰 즐거움으로 삼아, 이전과 마찬가지로 함께 사생을 하러 다녔다.

이 어느 읍내에서 우리 마을까지는 칠 리. 만일 큰길을 따라가면 십삼 리의 큰 우회가 되기에, 우리는 중학교 기숙사에서 마을로 돌아갈 때 결코 차를 타지 않고, 여름과 겨울의 정기 휴업 때마다 반드시 이 칠 리 길을 짚신 차림으로 걸었다.

칠 리 길은 그저 산뿐이라, 비탈이 있고, 골짜기가 있고, 시냇물이 있고, 깊은 못이 있고, 폭포가 있고, 마을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숲이 있고, 우거진 큰 숲이 있었다. 기숙사 대문을 이른 아침에 나서 해 질 녘 집에 닿기까지, 나는 이러한 형태와, 빛깔과, 빛과, 정취를 어떻게 그리면 내 마음을 꿈처럼 가두어 놓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오로지 그것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걸었다. 시무라도 같은 마음이라, 뒤서거니 앞서거니 둘이 걷다가도 때때로 길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연필로 사생을 시도하여, 그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도 일어나지 않고, 내가 붓을 멈추지 않으면 그도 멈추지 않는 식이라 어느새 시간이 흘러, 깜짝 놀라 둘이서 다음 한 리를 단숨에 내달은 일도 있었다.

그 뒤로 몇 해. 시무라는 사정이 있어 중학교를 그만두고 마을로 돌아왔고, 나는 고향을 떠나 도쿄로 유학하게 되어, 어느 사이 둘 사이에는 소식이 끊긴 채 어느덧 또 사오 년이 지나 버렸다. 도쿄로 나간 뒤 나는 그림을 떠올리면서도 손수 그림을 그리지는 않게 되었고, 그저 도시 대가들의 명작을 보며 겨우 내 그림 마음을 달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스무 살 되던 해였다. 오랜만에 고향 마을로 돌아갔다. 집의 광에서 일찍이 내가 들고 다니던 화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동시에 시무라의 일이 떠올라 곧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그는 열일곱 살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화판과 연필을 들고 집을 나섰다. 고향의 풍경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예전의 소년이 아니다. 나는 그저 몇 해의 나이를 더 먹은 것뿐 아니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생의 문제에 시달리고 생사의 문제에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되어, 똑같이 자연을 마주해도 예전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정취를 띠게 되어 있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늘진 시름은 잠시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때는 한여름. 나는 그저 화판을 들었다는 것뿐, 무엇을 그려 볼 마음도 들지 않아 홀로 어슬렁어슬렁 들녘으로 나섰다. 일찍이 시무라와 함께 자주 사생을 나가던 그 들녘으로.

어둠에도 기쁨이 있고, 빛에도 슬픔이 있다. 밀짚모자의 차양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저편의 언덕과 이편의 숲을 바라보니, 쨍쨍히 비추는 햇살에 눈부실 만큼 빛나는 풍경. 나는 나도 모르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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