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국화의 철이 왔다. 그 산뜻한 꽃향기, 조촐한 꽃 모양, 가지 뻗음새, 잎의 빛깔, 그 어느 것 하나 사람의 마음을 아름다운 세계로 이끌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가꾸는 국화에는 유달리 속된 흥취의 마뜩잖은 냄새가 깃들 때도 있다. 특히 요사이 유행하는 무슨 다마, 무슨무슨 다마라는 부류, 마치 구스다마(藥玉)나 무엇인 양 둥글게 부풀린 것은, 유럽에서 건너갔다 돌아온 품종으로 그리 좋은 느낌이 들지 않건만, 어쨌든 새 것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팔구 년 전부터 이 달리아 같은 국화가 떠받들리고 있다. 농염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름다움 쪽으로는 가장 진보했다는 두 빛깔 품종, 꽃잎의 앞뒤가 빛을 달리하는 쇼쿠코(蜀紅) 같은 옛 품종부터가 애초에 국화가 지닌 본디의 아름다움과는 조금 다른 방면으로 발달한 듯 여겨진다. 이 또한 늙은이의 감회인지 모르겠다. 도연명(陶淵明)은 국화를 사랑한 것으로 잘 알려진 옛 사람이지만, 연명이 사랑한 국화가 어떤 국화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전해 오는 말로는 후세의 대소국(大笑菊)이라는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그 꽃은 그리 빼어나지도 않은 작은 국화일 터이다. 그 풍류의 사람이 부지런히 꽃 가꾸는 영감처럼 악착같이 굴었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으니, 자연 그대로의 가꿈, 손이 가지 않는 비실비실 국화나 더부룩한 국화나 헝클어진 국화가, 절로 허름한 울타리 같은 데 기대어 피어나 별과 해의 정기 곧 성광일정(星光日精)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을 기려 즐겼으리라 헤아려진다. 그러니 송나라 시인 범석호(笵石湖)처럼 원예미의 만족을 구한 국화 가꾸는 이는 아니었으리라 헤아려지건만, 이것이 과연 들어맞는지 어떤지는 알 도리가 없다.
국화를 먹는다는 일은 조금은 거칠고 부끄러운 듯한 느낌도 없지 않으나, “네 죽거든 절에는 보내지 않으리, 태워 가루로 빻아 술에 풀어 마시리” 하는 장난 노래의 가락과는 다르더라도, 사랑의 끝에 시든 모습을 눈에 담느니 잠깐의 장난삼아 따다가 그 맑은 향과 빼어난 빛깔을 입에 대는 것을 그리 탓할 일까지는 아니리라. 이미 『초사(楚辭)』에도 “가을 국화의 낙영(落英)을 먹는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낙영’의 낙(落) 자가 성가신 것이, 국화는 흩날리며 지는 꽃이 아니므로, ‘낙’은 일전에 어떤 군에게서 질문받은 ‘치누루(チヌル)’ 곧 한문 ‘成’의 옛 훈독과 관련이 있는 낙성(落成)의 낙 자로 보아, ‘낙영’이란 곧 활짝 핀 꽃이라는 설도 있으나, 어딘지 어색한 풀이이기는 하다. 국화 꽃이 지느니 지지 않느니 하는 일을 두고 훗날 왕안석(王安石)과 소동파(蘇東坡) 사이에 가벼운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이야기의 곁가지로 빠지는 것을 피해 지금은 접어 두자. 자, 먹는 국화는 보통 노란 겹꽃이나 만겹의 작은 국화로, 요리용 국화 곧 료리기쿠(料理菊)라 하여 시장에도 나오기는 하나, 안주의 곁들이로밖에 쓰이지 않으니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다. 드물게 삼배초·이배초의 무침 따위로 작은 접시나 작은 술잔에 홑으로 담길 때도 있으나, 그렇더라도 화젯거리가 될 정도는 아니다. 다만 국화에는 본디 단것과 쓴것 두 가지가 있음이 박과 같아서, 또한 마치 박도 모양 좋은 것에는 쓴 성질의 것이 많고 술을 담으면 묵었어도 다소 쓴맛을 띠게 하듯이, 국화도 어쨌든 꽃이 크고 살이 두툼하며 빛깔 좋은 것에는 쓴 것이 많다. 그렇다고 단 국화에도 종류가 많아, 보통의 료리기쿠처럼 평범 무던하여 별난 데 없는 것뿐만은 아니다. 아키타의 사사키 씨(佐々木氏)에게서 얻은 연지빛 국화로 관상 꽃잎의 길이가 여섯 치를 넘어 살이 두툼한 것 따위는, 참으로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았다. ‘감국(甘菊)’이라는 두 글자가 붙는 만큼, 그 밖에도 큰 국화 가운데 단것이 더러 있다. 이런 국화들은 매실 살로 갈무리하면 백 일을 넘게도 그 빛깔과 향을 지킬 수 있으니, 우리네같이 가난한 자의 한주(寒厨)에서도 수시로 조금 별난 안주를 얻을 수 있다. 꽃 가운데 맛 좋은 것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모란이지만, 이는 좀처럼 넉넉히 손에 넣을 수가 없다. 유스게(ゆふ菅)의 꽃도 은은한 단맛이 있고 은은한 기운에 사랑할 만한 데가 있어 마뜩하나, 그러나 결국은 산사람의 가냘픈 야찬(野饌)에 지나지 않는다. 단 국화 가운데 큰 것이야말로 참으로 기쁜 것이다. 한 평짜리 마당도 없는 집으로 느닷없이 옮긴 그때 온통 국화를 잃고 만 뒤로, 이제는 감국 한 그루도 갖지 못하지만, 가을이 깊어 술이 맛있을 때, 지금은 다만 료리기쿠도 아닌 내버려 두고 피게 한 흰 작은 국화 한두 송이를 씹으며 한 잔을 들이켜면, 쓰다, 쓰다, 그래도 맑은 향이 잇새에 스미고 속까지 사무쳐, 맛 너머의 맛에 담백한 즐거움을 느낀다.
국화의 이름에는 갖가지 까다로운 것이 있는데,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란세쓰(嵐雪)가 갈파한 이백 년 남짓 옛날부터, 지금에 와서도 갖가지 더더욱 까다로운 것이 생겨난다. 그리고 옛 이름이 과연 그 실속을 풀어 보이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먹는 국화, 약용의 국화로는 ‘누레사기(ぬれ鷺, 젖은 백로)’라는 국화가, 도쿠가와 시기의 이름으로, 좋은 것이라 전해 온다. 까닭 없이 누레사기의 이름이 전해 오고 있을 리는 없을 터이니, 어떻게든 그것을 얻어 보고 싶다고 여긴 것도 오랜 일이건만, 진짜로 그것다운 것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채로 끝날 듯하다. 약용이 되는 까닭은 필시 국화라면 국화의 그 본디의 기운과 맛을 굳게 쥐고 있음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진보는 진보일 것이나, 달리아처럼 되어 버린 국화보다는, 본디의 기운과 맛을 굳게 쥐고 있는 것을 얻어 보고 싶다. 그렇다면 들국화나 산길 국화나 용뇌국(龍腦菊)으로 족하리라 한다면 그 또한 그러하다. 후지국(富士菊)이나 도가쿠시국(戸隠菊)을 기려 그것으로 족하다 한다면, 그 또한 그러하다.
(쇼와 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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