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高村光雲

동네에 야스도코(安床)라는 이발소가 있었답니다.

그곳이 저희 집에서 늘 다니던 단골이었기에, 저는 더운물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다듬어 받으려고 그리로 갔지요.

“오, 고보(光坊)냐, 너 얼마 전에 머리 손질했잖느냐. 아사쿠사 관음(浅草の観音)에라도 가는 게냐.”

주인 야스 씨가 그렇게 말하기에,

“아니에요, 내일 저는 봉공(奉公)을 가요.”

하고 답하니,

“그래? 봉공살이를 가는 게냐. 너는 몇 살이 되었느냐.”

하며 말을 걸어왔는데, 열두 살이 되었으니 핫초보리(八丁堀)의 목수 댁으로 봉공살이를 들어간다고 이야기하자, 야스도코는, 목수란 장인의 으뜸이니 목수가 되는 것도 좋겠노라고 크게 찬성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이 사람이 실은 사람한테 부탁받은 일이 있었지. ……참으로 아까운 일을 했구나.”

하고 못내 아쉬운 듯이 말하기에 까닭을 물으니, 그건 본디 이 동네에 살던 분이지만 지금은 크게 출세하여 조각의 명인이 되어 있다고. 들으니까 일본 제일가는 조각공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다카무라 도운(高村東雲)이라는 분인데, 오랜만에 이 가게에 들르셔서, 야스 씨, 좋은 제자 한 사람을 두고 싶은데 짚이는 데가 없겠나, 하나 주선해 주지 않겠나, 하고 부탁하고 가셨다네. 이 사람이 지금 네 이야기를 듣고 그 일이 떠올랐다만, 참으로 아까운 일을 했지. ……그렇지만 고보야, 너는 목수님 댁으로 내일 들어가기로 정해졌다지만, 그건 어떻게 안 되겠느냐. 목수가 되는 것도 좋다만, 조각사가 되는 편이 네 앞날에는 더없이 좋을 것이야. ……라는 이야기를 야스 씨가 제 머리를 손질하면서 열을 올려 말하시기에, 저도 어린 마음에 살짝 마음이 동하여,

“아저씨, 그 조각사라는 게, 저 이나리초(稲荷町)의 가게에서 뚝딱뚝딱 일하는 그거예요?” 하고 저는 심부름을 가는 길목에 그 무렵 있던 어느 조각사의 가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런 것 따위가 아니란다. 저건 조각 목수라고 하는데, 미야보리(宮彫り)라고 하지. 이 사람이 말하는 다카무라 도운 선생 쪽은, 그건 훨씬 더 품위 있는 것이란다. 불상이라든가 장식 조각이라든가, 손이 많이 가고 품격이 좋은, 진짜 조각을 만드시는 분이라, 저런 이나리초의 거친 것과는 격이 다르다. 그건 상등의 것이지. 그러니 너, 그저 목수나 미야시(宮師) 따위와는 격이 달라서 굉장한 게란다. 고보야, 네가 할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이 네 아버지께 말씀드려 주마. 양쪽 모두 아는 사이이니, 이 사람이 가운데에 들어 주마.”

이렇게 야스 씨가 자꾸 저에게 권하시는 통에, 저도 어느새 그 마음이 들어,

“그럼 아저씨, 저는 목수보다는 조각사가 될래요.” 하고 승낙해 버렸지요.

그래서, 성미 급한 야스도코는 밤이 되어 일을 마친 뒤 저희 아버지를 찾아오시어, 그건 그렇고 가네 씨(兼さん), 이러저러한 자초지종을 우선 이야기하고는, 그러고 나서,

“그 도운이라는 분은, 자네 집 옆에 살던 사람으로, 그 왜, 니혼바시 도리 1초메(日本橋通り一丁目)의 스하라야 모헤에(須原屋茂兵衛)가 판각 간행한 『에도 명소 도회(江戸名所図会)』를 도맡아 인쇄한 분이지. 오쿠무라 후지베에(奥村藤兵衛) 댁의 자제 후지지로(藤次郎)라는 분이……이분이 그 도운이라는 분으로, 지금은 아사쿠사 스와초(浅草諏訪町)에 번듯한 집을 차리고 계시고……” 하며 소탈한 어조로, 통통한 몸을 앞으로 내밀며 이야기하시기에, 아버지도 마음이 움직여,

“듣자 하니, 그 도운 선생은 같은 나가야(長屋)에서 태어난 분이라 하고, 자네와 가까운 분이라 하니, 그렇다면 한번 그 조각 쪽으로 부탁드려 볼까. 이미 정해진 목수 쪽은 친척이라 도리어 좋다고 여겼다만, 다시 생각해 보니 봉공 가는 곳이 친척이라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거북할지도 모르겠소. 모처럼 자네가 그렇게 권해 주는 일이니, 한번 부탁드려 보기로 하지요. 다만, 무엇보다 본인의 뜻이 으뜸이니 자식에게 물어봅시다.” 하고 말하니, “그 일이라면 본인은 벌써 진작 알고 있는 일일세. 좋은 일은 서두르라 하지 않던가. 머리도 손질해 둔 김이니, 곧장 내일 이 사람이 데려가지요.”

하고, 여기서 이야기가 정해졌습니다.

이 야스 씨라는 분은 그 무렵 마흔 즈음으로, 성품이 더없이 유쾌하고 남 챙기기를 좋아하는 분이셨기에, 곧장 그쪽에 그 이야기를 전하고, 이튿날 저를 도운 선생의 댁으로 데리고 가 주셨습니다.

그것이 마침 제 열두 살의 봄, 분큐 3년(文久三年, 1863년) 3월 10일의 일이었으니, 공교로운 일이 연이 되어, 목수가 될 터였던 것이 조각 쪽으로 길을 바꾸게 된 셈, 제 한평생의 운명이 글쎄 이 야스 씨의 주선으로 정해진 듯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저로서는 이 야스 씨야말로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올시다.

훗날 저는 이 야스 씨 부부의 위패를 불단에 모셔 두고, 오늘날까지 그 공양을 거르지 않고 있는 그런 사연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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