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기리가미네에서 와시가미네로

도쿠다 슈세이

올해는 어느 모로 보나 하이킹에 적합지 못한 해이다. 평원 하이킹이라면 그래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산악이 많은 일본의 하이킹이라면 어느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의미가 서지 않는데, 올해처럼 이렇듯 추적추적 가을장마가 길게 이어지고 보면,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은 한 하이킹의 쾌미를 만끽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비가 내리면 운연이 산을 깊이 봉해 버리는 까닭에, 모처럼 산에 들어간다 한들 산을 볼 수가 없고, 어지간히 단단히 비 채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한 몸은 흠뻑 젖어, 웬만한 사람은 감기에 걸리고 만다. 내 경우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평소의 긴자 산책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던 터라, 삼 리에 못 미치는 산비탈을 올라 기리가미네 휘테(산장)에 다다른 무렵에는 신발도 모자도 흠뻑 젖어 있었으니, 휘테의 욕탕과 고타쓰로 몸을 덥히지 않았더라면 폐기종이라는 지병이 있는 나는 어쩌면 폐렴에 걸려, 산을 내려오기가 어려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출발한 날은 날씨가 좋았기에, 아침 일찍 신주쿠를 떠나 시모스와든 가미스와든, 어쨌거나 그날 안으로 기리가미네에 다다라 버렸다면, 비록 거기서 하룻밤 묵었다 해도 이튿날 오전 중에는 가을 청명한 산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비 내리는 날은 아니었을 터이니, 가을 고원 답사는 자못 유쾌한 것이었으리라. 다만 우에노에서 출발한 까닭에, 모처럼의 와다토게에 당도한 것은 이미 밤이었고, 이튿날은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 모양이었음에도 청명함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다시 어느 지점까지 길을 겹쳐(시모스와에서 히가시모치야까지) 거기서 와시가미네, 기리가미네로 도섭을 시작하였으니, 결국 아까운 첫날의 호청을 기차와 버스에 헛되이 보낸 셈이 되고 말았다.

시모스와의 기쿄야에서, 본사의 야마나카 씨와 우리 부자(父子)는 지국의 나카지마 씨, 그리고 휘테의 주인이자 독실한 산의 연구자로 「산향풍물지(山郷風物誌)」 등 흥미로운 저술을 가지고 있는 나가오 히로야(長尾宏也) 씨라는, 기리가미네 스키장의 개척자로 알려진 청년이 일부러 산에서 안내역으로 내려와 있어, 그를 소개받고는 별안간 마음이 든든해졌다. 더하여 기리가미네의 지질과 생물에 관한 과학적 예비지식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튿날 히가시모치야 부근에서 자동차를 내려 비탈을 오르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올해의 짓궂은 날씨로 여름 이래 시달려 온 호흡기에 압박을 느껴 이거 좀 곤란하구나 하였으나, 이윽고 한 차례 쉬어 가며 여관에서 나가오 씨가 감아 준 감기 각반(巻脚絆)을 풀어 버리고 나서는 한결 편해졌다. 오르막이라고는 해도 각별히 험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거니와, 나가오 씨는 내 다리를 얕잡아보아 보통 두 시간 반 걸리는 길을 그 갑절인 다섯 시간이라는 핸디캡을 매기는 식이었으니, 물론 그토록 걸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쉬엄쉬엄, 은회색 베일에 감싸인 푸른 산의 자태를 지호지간(指呼之間)에 바라보며 와시가미네 산기슭마저 지나, 마침내 야시마가이케 못가에 내려설 무렵에는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가까운 산 능선에 칠해진 잿빛 물안개가 둥실둥실 낮게 떠돌고 있었다. 못가에는 억새가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못이라고는 하나 물은 거의 말라,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일면이 이끼 같은 풀로 뒤덮여 있었다. 나가오 씨가 고층습원지(高層湿原地)라 일컬었던 뜻도, 야시마가이케와 가마가이케라는 물웅덩이를 품은 이 일대의 늪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과연 그러하다고 끄덕여졌다.

일행 네 사람은 스키어를 위해 지어진 오두막 하나로 들어가, 형식뿐인 화로 가에 걸상을 둘러 모으고는, 잎갈나무 마른 가지며 판자 부스러기 따위를 주워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오두막에는 마루도 없다. 흙바닥 위에 짚을 깔고, 그 위에 거적을 놓았을 따름이다. 어디나 할 것 없이 축축하니, 여기에 스키어가 여럿이 묵는 일도 있는 모양이나 물론 도회인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물을 끓여 느긋이 도시락을 들었다. 나가오 씨에게서 여우며 토끼며 너구리 이야기를 듣는 사이, 담배를 피우거나 사과를 베어 무는 동안, 은회색의 연우(煙雨)가 바로 입구 가까운 풀숲에 쓸쓸히 핀 미야마린도(深山竜胆, 고산용담)며, 다소 납작하게 변형된 옅은 빛깔의 엉겅퀴 꽃 따위를 스치며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시들고 시든 풀들은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으나 운수 사납게도 비는 점점 거세져, 게다가 길은 가까스로 앞장선 나가오 씨의 발자취를 더듬어야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아득히 끝없는 억새 들판 한가운데, 길이라면 길인 그곳을, 젖은 풀을 손과 무릎으로 헤쳐 가며 나아가는 까닭에 이삼십 정(町)을 가니 신발도 바지도 흠뻑 젖어 버리고 말았다. 풀뿌리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거뭇한 점토와 암석이 완만히 늘어진 비탈을 올랐다 내렸다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해발 육천 척 못 미치는 기리가미네 정상까지 올라 있었다. 큰 화산암이 너부러진 방화지대로 들어서니, 마침내 당당한 호텔의 풍채를 갖춘 나가오 씨의 휘테가 왼편으로 약간 낮은 곳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뒤를 돌아보면 청록빛 산의 이마며 어깨며 허리가, 깊은 운무 틈을 훔쳐 내며 우리의 지친 다리를 위로해 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자사미네며 조초미야마, 구루마야마, 다테시나야마 따위였으리라.

휘테에 대해서는 쓰자면 길어지므로 생략해 두지만, 텍스를 두른 벽이며, 삼중으로 된 창이며, 사 척 사방이나 됨직한 두 개의 고타쓰 따위를 보고 있노라면 스키 시즌인 한겨울의 눈보라가 절로 짐작이 가는 동시에, 우리가 이튿날 아침 비 갠 사이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던 알프스 연산의 곱고 단아한 자태를 가까이 바라보면서, 육천 척 고원지에서 은령(銀嶺)에 빛나는 자외선을 쐬며,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도약하는 스키의 유쾌함은 가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는 나가오 씨의 환대에 몸을 맡긴 채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이튿날 오후 빗속을 뚫고 가미스와로 내려왔다. 그리고 누노한(布半) 온천에서 식어 버린 몸을 덥히고, 젖은 양복과 신발을 건조실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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