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가을의 기백

도요시마 요시오

가을이라 하면 사람들은 곧장 단풍을 떠올린다. 그러나 단풍 그 자체는 가을의 본질과는 꽤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단풍나무의 붉은빛에서 은행나무의 노란빛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단풍의 색채, 그 색채에서 곧장 전해 오는 느낌은, 사무치도록 오롯한 가을의 정취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도시에서야 그렇지도 않으나, 한 걸음 시골로 들어서 보면 산자락 숲의 단풍이며, 무르익을 대로 익은 논밭의 노란 작물이며, 붉디붉게 내리쬐는 햇살 따위는, 그것을 그대로 떼어 내어 음미할 때에는 차라리 늦더위에 속할 것이지, 진정한 가을의 영역은 아니다. 시험 삼아 우리 집이며 거실을 그러한 색채 가운데 어느 하나로 통째로 칠해 놓는다면, 우리의 생활 기분은 꽤나 안정감 없는 것이 되리라. 그리고 이 들뜸은 가을의 미덥지 못한 기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단풍에 가을의 기분을 부여하는 것은, 단풍 안에 깃든 활력의 결여이다. 나는 여기에서 푸른 잎이 어찌하여 단풍이 드는가 하는 과학적 설명을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단풍에 활력이 없다는 점만을 말하고자 한다. 가령 들과 산의 단풍이 그 빛깔 그대로 싱싱하게 자라나는 세계를 상상해 보면, 그것을 가을의 세계라 일컬을 사람은 누구도 없으리라. 활력 없는 단풍이기에 비로소 가을에 어울리는 것이 된다. 가을의 산야를 덮은 붉은빛 노란빛은 풍성한 소년의 금발이 아니라, 한 평생을 다 살아낸 초로의 사람의 붉은 머리이다.

생활력 없는 단풍은 하룻밤 사이 찬바람에 흩어져 간다. 그리고 이 낙엽이야말로 진정 가을의 것이다. 뜰에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장에서, 숲속을 흩날리며 떨어지는 무수한 나뭇잎, 또는 반쯤 서리에 시든 들풀의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죄다 가을 정취에 짙게 물들어 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 내는 낙엽을 밟으며 숲속의 오솔길을 걸을 때, 사람은 가장 깊이 가을을 느낀다.

어디서 흘러오는지 모를 잔바람에, 늘푸른나무의 시든 잎과 낙엽수의 단풍은 어떤 안간힘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지 끝에서 땅 위로 흩날려 떨어진다. 땅의 것은 땅으로, 대자연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더구나 땅에 내려앉은 마른 잎은 거기에서마저도 머물지 못한 채 어디로인가 바람결 따라 흩날린다. 그 방향을 따라 숲을 빠져나가면, 수확이 끝난 너른 논밭이 맨살을 시야가 닿는 데까지 펼치고 있고, 서리에 시든 풀숲에서는 열매를 맺은 잡초의 줄기가 쓸쓸하게 쭉쭉 뻗어 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 또한 제 살갗의 한기 어린 쓸쓸함에 떠밀려, 머나먼 지평선 어귀로 떠돌며 나아간다. 그 지평선 너머에는 옅은 꿈결 같은 동경의 세계가 있다.

가을은 쓸쓸하다, 라는 말은 진실이다. 가을은 모든 것의 외피를, 불필요한 것이든 필요한 것이든, 온갖 외피를 스스로 떨쳐 내게 하여 만물을 발가벗은 채 우뚝 세운다. 가을은 쓸쓸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옷을 벗고 알몸으로 우뚝 선 순간의 묘하게 처량하고도 미덥지 못한 쓸쓸함을, 둔감하기 때문이거나 후안무치하기 때문이거나,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부류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낙엽의, 곧 벗겨낸 세계에 다시금 특수한 정취를 더하는 것은, 옅으면서도 날카로운 햇빛이다. 다소 남쪽으로 기운 햇살과 북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잔바람 탓에 그 빛은 약하고 옅어지면서도, 극도로 맑게 갠 하늘과 대기 덕분에 매우 날카롭게 곧장 내리꽂힌다. 마치 진공 가운데에서처럼 무엇에도 가로막힘 없는 그 빛이, 얼마나 또렷한 양지와 그늘을 땅 위에 던져 놓는지를 볼 때, 사람은 한층 깊이 가을을 느끼게 된다. 낙엽 위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논두렁 풀잎의 그림자, 들 위의 새 그림자, 그리고 비좁은 도시 가운데에 있어도, 이끼 낀 뜨락의 처마 그림자, 장지문에 비치는 정원수 가지 그림자, 그러한 것들이 환한 양지와 단호히 구획되어 있는 모습을 볼 때, 사람의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떨림이 전해 온다.

이 떨림이야말로 가을이 본디 지닌 정취이다. 고요히 가라앉고 맑디맑게 갠 벗겨낸 세계 위에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명암의 구획은, 곧장 사람의 마음으로 밀려들어, 발가벗은 마음 안에도 또렷한 빛과 그늘이 던져진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을 응시하는 오롯한 시간 속으로 들어선다. 순수한 것, 순수하지 않은 것, 맑은 것, 흐린 것, 그러한 것들이 단호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발가벗은 응시의 눈은, 그 자체의 성질상 미래로 향하지 못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 곧 과거를 짊어진 현재의 모습으로만 향한다. 그리하여 자연도 사람도, 가을의 세계 전체가, 자기의 발가벗은 모습을 지켜보는 오롯함 가운데 침묵에 잠긴다.

이 오롯한 침묵, 그것을 견뎌낼 수 있고, 그것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는 자에게만, 가을은 쓸쓸하지도 처량하지도 않다. 거기에는 다만 청정한 명상이 있을 따름이다. 머나먼 지평선 너머까지 떠돌아 나간 영혼이, 그 동경을 그대로 품은 채 가슴 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건강하고 맑은 감격이 온갖 잡념을 쓸어 내고, 자기 존재감을, 곧장 뱃속에 사무쳐 오는 존재감을 한층 또렷이 새긴다.

이러한 의미에서만 가을은 찬미할 만하다. 그리하여 수도원의 기도를 떠올리게 하는 상쾌한 새벽녘과, 영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달 밝은 밤은, 그 어떤 비속한 기분에도 흐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진다.

가을은, 응시의 계절이며, 오롯함의 계절이며, 자기의 존재를 음미해야 할 계절이다. 가을의 진정한 기백에 닿을 때, 그릇된 생존 양식, 곧 그릇된 삶의 방식은 단번에 꺾여 버리리라. 그 대신 올바른 생존 양식, 곧 올바른 삶의 방식은 더욱더 힘차게 건실하게 뿌리를 뻗으리라. 봄에서 여름에 걸쳐 갖가지 잡초가 무성히 우거진 우리네 삶은, 가을의 기백을 만나서 그 뿌리와 줄기가 또렷이 드러나, 청정한 거울에 환히 비쳐 보이는 것이다. 가을에 자기를 응시하며 사무치는 환희를 음미할 수 있는 자야말로 행복하다 할진저.

가을에는, 비좁은 서재에서, 또는 무더운 공장에서, 바깥 대기 속으로 나가, 들이며 산에서 노닐 일이다. 노닐고 그리하여 땅 위에 드러누워 볼 일이다. 너른 하늘 아래 너른 땅 위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외로운 자기를, 끝까지 지켜보고 그리하여 음미해 볼 일이다. 그러나 그때 진정으로 가을을 찬미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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