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하마

나카지마 아쓰시

하마의 노래

엷은 분홍빛으로 큼지막이 벌린 하마의 입속에 양배추가 떨어져 들어 행방을 알 수 없도다

물 위에 둥실 떠 있는 하마의 얼굴은 향수(鄕愁)도 모르는 양 보이누나

이 하마에게도 기분 좋고 나쁨이 있다 하니 우습기는 하나 어쩐지 웃음이 나지 않네

검붉은 탱크처럼 나란히 늘어선 하마들 그 암수를 나는 분간하지 못하노라

물 위로 귀와 눈만 빠끔히 내놓고 가엾어라 그 작은 모습이여

×    ×

내 앞에 거대한 하마의 엉덩이가 우람하게 태연자약 미동도 없이 버티어 있도다

무례하게도 내 눈앞에 펼쳐진 하마의 둔부 그 두툼하고 우락부락한 살집이여

엉덩이 한복판에 자리한 세모꼴의 꼬리가 어여쁘구나 마치 유부 한 조각인 양

이것이 곧 나일강의 풍습인가 나에게 엉덩이를 들이댄 채 하마는 똥을 누는도다

일을 마치자 작은 꼬리가 찰싹찰싹 엉덩이를 두드리는도다 잽싸고 야무진 그 손놀림이여

언덕처럼 우뚝 솟은 엉덩이를 가까스로 지탱하고 선 그 다리의 짤막함이여

세모꼴 꼬리 끝에서 흐린 물방울이 아직 뚝뚝 떨어지건만 하마는 꿈쩍도 않는구나

너구리

봄낮의 고요함 속에 한참을 너구리의 무뚝뚝한 얼굴을 기리며 바라보노라

짚더미 위에 놀란 듯한 표정의 너구리야 어쩌면 너는 쇼펜하우어를 닮지 않았느냐

남을 속인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을꼬 도리어 저 자신이 속아넘어가 신세를 한탄할 듯한 얼굴이로다 너구리는

흑표(黑豹)

새카만 흑표의 털도 윤기가 자르르 봄볕에 흠뻑 젖어 빛나고 있도다

사념을 못 견뎌 서성이는 듯하니 칠흑 같은 흑표는 아직 홀몸인 모양이로구나

망토비비

망토비비는 키 석 자 남짓에 털은 길고 빛깔이 흰빛이라. 새하얀 망토를 두

른 듯하다. 다만 얼굴과 엉덩이만은 선명한 붉은빛(분홍빛에 가까움)을 띤다.

은백색 털은 풍성하건만 망토비비는 엉덩이의 붉은 민살은 가릴 길이 없구나

망토비비의 엉덩이가 너무 붉은 탓에 처녀들은 못 본 척 외면하고 가버리누나

백곰

반듯이 누워 손발을 활짝 펼친 채 백곰이 둥실 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없이 한가롭도다

백곰의 흰 빛깔을 보고 있자니 옛날 길을 떠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문센이 떠오르는구나

잠든 사자의 노래

언제 보아도 잠자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 없는 사자의 신세가 가엾어지누나

참으로 보잘것없는 꼴이 아니랴 백수의 왕이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는 양을 보노라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자의 발바닥을 한번 살그머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구나

바다 건너 에티오피아에서 왔다는 이 사자도 지금은 잠들어 있도다

정신없이 잠든 남편의 코앞에 엉덩이를 들이댄 채 이 또한 잠들어 있구나 암사자도

제 나라의 황제가 이미 몽진(蒙塵)했음도 모르는 양 사자는 그저 한결같이 잠들어 있노라

새끼 사자

사자 새끼도 강아지처럼 어미에게 장난을 치며 매달리는 모습이 우습고도 사랑스럽도다

살이 아직 야무지게 여물지 못한 새끼 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놀이 상대를 찾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누나

어미 사자는 잠들어 있도다 봄볕 아래 따분한 듯한 새끼 사자의 그 얼굴이여

낙타

살아 있는 것이 짊어지지 않을 수 없는 고뇌의 상징이런가 낙타의 그 혹은

순한 눈매의 낙타가 입에 거품을 머금은 채 울타리 너머로 목을 길게 뻗어 오는구나

공작의 노래

자세히 보니 공작의 눈초리가 위로 치솟아 사나운 새의 상이 또렷이 드러나 보이도다

인도의 잎사귀 너른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한껏 펼쳐 자랑하리라 이 공작의 꽁지를

참으로 얄미운 자긍심이로다 공작은 모이 한 알을 줍는데도 꽁지를 다칠세라 조심하니

육궁(六宮)의 분단장한 미녀들도 빛을 잃으리라 공작이 한번 그 꽁지를 활짝 펼친다면

얼룩말

얼룩말의 줄무늬가 선명하니 럭비 선수의 유니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구나

펠리컨의 노래

펠리컨은 물 얕은 곳에 응연히 마치 장식품처럼 가만히 서 있도다

미역을 감고 깃을 곱게 빗었으리라 펠리컨의 그 젖은 날갯죽지의 분홍빛 솜털이여

바다 건너온 비누의 향기마저 풍길 법한 엷은 분홍빛 펠리컨의 깃털이여

펠리컨의 동그란 붉은 눈을 가만히 보고 있건만 끝내 움직이지 않으니 의안 같구나

긴 부리 아래 늘어진 주머니마저 푹 꺼져 있도다 부풀어 있는 양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대머리수리

프로메테우스를 괴롭히던 그 독수리이런가 대머리수리도 오늘은 추운 듯이 깃을 부풀려 어깨를 잔뜩 곤두세우고 있도다

안데스의 바위 뿌리 험준한 산봉우리에서 매섭게 쏘아보는 그 눈매로구나 콘도르의 눈은

정글에 우거진 양치풀과 머루덩굴 사이를 표범은 쉴새없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도다

짤막한 손을 후루(布留)의 신스기처럼 캥거루는 봄이 왔다고 사람을 부르는 양 흔드는구나

봄볕 아래 그 짤막한 손으로 천부신성한 캥거루는 귀를 긁으려 함인가

작년에 보았을 때와 같은 구석에 돌거북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도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산초어

산초어는 산초어다운 표정을 한 채 물에 잠겨 있도다 그저 무심한 듯

먹이를 찾아 거니는 단정학 앞에 잠시 가만히 지켜보고 섰노라 마음 맑아짐을 느끼며

얕은 물에 단정히 선 학은 야위어 입술 연지만 한 볏의 발그레함이여

화식조

화식조라 하니 불뿐이랴 돌이고 나무고 모래고 진흙이고 죄다 먹어치울 듯한 그 매서운 상판대기로다

호로새

호로호로 호로새가 운다고 하더라 서리 무늬 같은 가슴팍을 부풀려 가며

타조

장애물쯤이야 손쉽게 뛰어넘으리라 너의 다리가 저렇게 늠름하고 길쭉한 것을 보면

어디였던가 어느 골동상의 진열장에서 본 적이 있도다 이 녀석의 그 얼굴을

어찌하여 저토록 긴 목인고 한가운데를 꽉 움켜쥐면 꽥 하고 울지 않을까

대사(大蛇)

구불구불 휘감기고 얽혀 있는 비단뱀이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구나

큰초록도마뱀

입을 벌리니 큰초록도마뱀의 가느다란 혀가 번쩍번쩍 푸른빛으로 내달리는도다

다시, 산초어에 대하여

산초어는 산초어대로 슬픔을 지니고 있는 듯하구나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기린의 노래

검정과 노랑의 줄무늬 넥타이가 산뜻하구나 멋쟁이로 보았다면 그것이 잘못 본 눈이런가

봄밤의 샹젤리제 거리를 마담을 동반한 채 무슈 지라프가 어슬렁어슬렁 거니는도다

사교계의 소문이런가 기린 씨가 아내를 돌아보며 뭐라 한마디 건네는 듯하구나

중산모라도 씌우고 싶은 사내다움이로다 기린은 점잖이 한 걸음씩 걸어가더라

진창을 피해 길을 가는 예복 차림의 신사라 일컬을 만하구나 기린의 그 걸음새는

빈틈없는 멋쟁이로다 셔츠의 얼룩 따위도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리라

하이에나(鬣狗)

죽은 자식의 사망신고서를 대신 써주는 대서업자를 닮았구나 하이에나의 그 얼굴은

캥거루

힘없는 메뚜기처럼 봄볕 아래 깡충깡충 뛰고 있도다 캥거루 두 마리가

우리 안의 모래는 메마르고 봄바람에 캥거루는 뛰는도다 그 도약이 어쩐지 쓸쓸하구나

두 발로 일어서서 절을 하는 곰이 가슴팍의 흰 반달무늬가 어여뻐 고구마 한 조각을 던져 주었노라

곰이 일어서니 목구멍의 반달무늬가 새하얀 나비넥타이처럼 보이는 듯도 하구나

코끼리의 노래

늙어버린 잿빛 코끼리 앞에 서 있자니 까닭 없이 마음이 쓸쓸해지는도다

코끼리의 발에 굵직한 쇠사슬이 채워진 것을 보았노라 봄날에 마음이 무거워짐은 나 혼자만이 아닐 터

마음이 풀리지 않는 듯한 모양으로 전병을 줍고 있는 코끼리는 정글을 영영 잊지 못함이런가

×    ×

아이 한 명 과자조차 던져주지 않으니 긴 코를 늘어뜨린 채 코끼리는 서성이고 있도다

벚꽃 가린 흐린 사월의 한낮 코끼리의 긴 코가 흔들흔들 느릿느릿 흔들리고 있더라

서성이는 코끼리의 가느다란 눈매 그 영리한 눈에 체념의 빛이 어쩐지 우수에 잠긴 양 비치는도다

이 코끼리는 늙어 있는 모양이라 배는 때가 묻고 코에는 마디가 잡혀 있고 상아마저 잘려나갔구나

코끼리의 턱에 희끗희끗 보이는 털은 뻣뻣하고 입에는 침이 가득 고여 있는 듯하구나

악어의 노래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악어가 화가 나 먹이도 먹지 않고 그만 죽어 버렸다 하더라

까닭 없이 살던 곳에서 끌려와 모르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거부하였음인가

굶어 죽은 악어의 분노를 나는 곰곰이 생각하노라 내 분노와 닮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리

박쥐

오가사와라의 큰박쥐는 온종일을 도롱이벌레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도다

대낮을 잠으로 보내는 거꾸로 매달린 박쥐가 자세히 보니 음흉해 보이는 눈을 슬며시 뜨고 있구나

손가락 뼈가 가늘고 어쩐지 으스스한 박쥐는 능청맞은 얼굴로 무엇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오소리

덧없는 세상을 한탄함인가 가엾어라 오소리는 우리 안쪽 깊숙이 들어앉아 시무룩하게 울상을 짓고 있도다

오소리의 코가 새카만 것을 보고 있자니 중학교 시절 문법 선생님이 떠오르는구나

오소리의 그 검은 코가 자꾸 마음에 걸리네 집에 돌아와서도 아직껏 잊히지 않는도다

봄볕을 흠뻑 받으며 들새인 꿩이 오로지 모래 목욕에 여념이 없도다

집에서 키우는 닭의 그 익숙한 냄새가 떠오르는구나 들새인 꿩의 우리 앞에 서 있노라니

부엉이

어디에 그 낡은 두건을 두고 왔는지 무엇인가 허전해 보이는구나 너의 그 머리가

크고 익살스러운 두 눈도 환한 햇빛 속에선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니 어쩐지 가엾은 마음이 드는도다

멧돼지

짚 부스러기와 진흙을 뒤집어쓴 채 투덜거리며 멧돼지가 입을 우물우물 먹이를 뒤지고 있도다

카멜레온

하루에 여덟 번 빛깔을 바꾼다 하는 열대의 기회주의자(푸른 마술사) 그것이 바로 카멜레온이라

파리가 다가오면 잽싸게 뻗어내는 카멜레온의 살빛 혀를 그 한순간 보았도다

길고 둥글둥글한 살빛 혀가 번쩍 빛나는가 싶더니 카멜레온의 입은 탁 하고 닫혀 버렸구나

카멜레온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의지하고 있는 그 가느다란 꼬리가 빙글빙글 도르르 말려 있는 모양새의 신기로움이여

카멜레온의 몸통이 어찌나 얇은지 갈비뼈마저 비취빛으로 일렁이는 배에 도드라져 떠올라 보이는도다

가마우지의 노래

즈슈(豆州) 이나토리 해안에서

산이 곧장 바다로 무너져 내리는 바위 위에 물보라를 뒤집어쓰며 가마우지가 우뚝 서 있도다

내가 던진 돌은 미치지 못하는구나 절벽 아래 차가운 비가 퍼붓는 거친 물가의 가마우지에게는

갑작스레 바다가 검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바위 위 가마우지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는도다

비 섞여 휘몰아치는 바람이 사나워 바위 위 가마우지는 날개를 접은 채 그저 견디고 있구나

앵무의 노래

잠시 졸다가 문득 눈을 뜬 다홍 앵무가 나를 보고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구나

진홍 옷의 큰부리 앵무가 나를 한번 흘낏 보더니 또다시 나른한 듯 눈을 감아 버리는도다

유녀(遊女)의 의상을 두르고 있는 철학자로다 앵무는 눈을 감고 깊은 사념에 잠겨 있구나

옛날의 달마대사를 닮았더라 진홍 옷자락을 끌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양

눈을 감고 햇볕에 따스하게 데워진 다홍 앵무가 뺨의 깃털이 빠져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는도다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가슴 깃털 속에 부리를 파묻은 채 앵무는 꾸벅꾸벅 졸고 있구나

삼씨를 쪼아 먹는 앵무는 곁에 있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결같이 먹어대고만 있도다

아래위 부리가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로 앵무의 새카만 혀가 도르르 말려 보이는구나

삼씨의 껍질을 무서운 기세로 튀겨 내고 있구나 진홍빛 옷자락 앵무 그 한결같음이여

늙은 큰 다홍 앵무 그 날개 끝이 유리(瑠璃)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멋쟁이 같아 보이는도다

작은 새우의 노래

――도이(土肥) 해안에서 본 것――

썰물이 빠진 바위 우묵한 곳의 작은 물웅덩이에 수많은 작은 새우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도다

엿빛으로 햇빛에 비쳐 투명한 작은 새우들이 무엇에 놀란 듯 갑자기 어지러이 흩어지는구나

수많은 새우들이 숨어든 자리에 일어난 모래 먼지가 이윽고 가라앉으니 물이 다시 맑아지더라

모래 먼지의 모래알 하나하나가 소리 없이 가라앉아 새우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도다

감성돔의 노래

――도이(土肥) 낚시터에서――

바위그늘은 새파랗게 비치고 감성돔의 꽁지지느러미가 희뜩희뜩 야릇하게 번뜩이는도다

동굴 속에는 빛이 들지 않으니 검은 물이 솟아오르는 듯이 감성돔이 무리지어 있구나

새끼 염소의 노래

아타가와(熱川) 바닷가에 한 마리 새끼 염소가 있어

바다를 향해 자꾸만 울어대니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거친 바닷가에 새끼 염소가 한 마리 울고 있더라 가엾어라 새끼 염소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오시마(大島)도 검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도다 새끼 염소는 무엇을 보려고 함인가

흐린 날의 바다를 향해 외로이 서서 울어대고 있는 새끼 염소는 아직 뿔이 짧기만 하구나

바닷바람에 짤막한 수염을 나부끼고 서 있는 새끼 염소의 그 눈 속이 슬퍼 보이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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