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칼라일 박물관
나쓰메 소세키
공원 한 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는 자가 있다. 맞은편에서 솥처럼 끝이 뾰족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낡은 외투를 새우등으로 걸친 노인이 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연설자를 바라본다. 연설자는 딱 연설을 그치더니 성큼성큼 이 촌학자가 우뚝 서 있는 앞으로 다가온다. 두 시선이 맞부딪힌다. 연설자는 탁한 시골 가락으로, 자네가 칼라일 아닌가 묻는다. 그래, 내가 칼라일일세 하고 촌학자가 답한다. 첼시의 철인이라고 사람들이 떠받드는 이가 자네냐고 묻는다. 과연 세상에서는 나를 두고 첼시의 철인이라 부르는 모양이지. 세이지란 새 이름인데, 사람을 두고 세이지라 하니 별일일세 하고 연설자는 껄껄 웃는다. 촌학자는, 과연 개나 소나 모두 같은 사람일진대 굳이 철인이라고 별호를 붙이는 것은 새라고 별명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 사람은 그저 사람으로 두는 편이 좋을 듯한데. 하고 답하며 이쪽 또한 껄껄 웃는다.
나는 만찬 전에 공원을 거닐 때마다 강가 의자에 걸터앉아 건너편을 바라본다. 런던에 특유한 짙은 안개는 특히 강기슭에 많다. 내가 벚나무 지팡이에 턱을 괴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멀리 건너편 거리를 기어다니는 안개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 오 층짜리 거리 줄기 아래로부터 차츰 이 흔들리는 장막 너머로 옅어져 간다. 마침내 먼 미래의 세상을 눈앞에 끌어내듯 아득한 하늘 속에 종잡을 수 없는 토비색(鳶色, 솔개 빛깔의 어둑한 갈색) 그림자가 남는다. 그러면 그 토비색 깊은 안쪽으로부터 똑똑 둔한 빛이 방울지듯 비치기 시작한다. 삼 층 사 층 오 층 모두 가스등을 켠 것이다. 나는 벚나무 지팡이를 짚고 하숙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는 으레 칼라일과 연설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저 어둑하니 가스 안갯속에 섞여 드는 곳이 옛날 이 촌학자가 살던 첼시인 것이다.
칼라일은 없다. 연설자도 죽었으리라. 그러나 첼시는 예전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아니, 그가 오래도록 살던 집조차 지금도 의연히 보존되어 있다. 1708년 체인 로우(Cheyne Row)가 들어선 이래 얼마나 많은 주인을 맞고 보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오늘날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칼라일이 세상을 뜬 뒤에는 뜻있는 이들의 발의로 그가 생전에 쓰던 기물·집기·도서·전적을 모아 각 방에 자리 잡게 하고, 호기심 있는 이라면 언제든지 마음껏 둘러볼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해 두었다.
문학자로서 첼시와 인연이 있는 이를 꼽자면, 옛날에는 토머스 모어, 그 아래로 스몰렛, 다시 내려와 칼라일과 동시대에는 리 헌트 같은 이가 가장 이름났다. 헌트의 집은 칼라일의 바로 이웃이어서, 실제로 칼라일이 이 집으로 옮겨 온 날 저녁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칼라일의 기록에 적혀 있다. 또 헌트가 칼라일의 부인에게 셸리의 소상(塑像)을 선물했다는 일도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엘리엇이 살던 집과 로세티가 머물던 저택이 바로 곁의 강가에 면한 길에 있다. 그러나 이들 집은 모두 이미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 살고 있으므로 구경할 수 없다. 다만 칼라일의 옛 거처만은 6펜스를 내면 누구든 또 언제든 마음대로 관람할 수 있다.
체인 로우는 강기슭 큰길을 남쪽으로 꺾어 든 좁은 길로, 칼라일의 집은 그 오른쪽 한가운데쯤에 있다. 번지수는 24번지다.
날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안개 속의 첼시를 바라보던 나는 어느 아침 마침내 다리를 건너 그 유명한 암자의 문을 두드렸다.
암자라 하면 어딘지 고요하고 호젓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소쇄하다거나 풍류라거나 하는 관념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칼라일의 암자는 그런 기름지고 화사한 풍취와는 거리가 멀다. 길가에서 바로 문을 두드릴 수 있을 만큼 한길에 바짝 붙여 세운 사 층짜리 반듯한 사각의 집이다.
툭 튀어나온 곳도, 안으로 들어간 곳도 없이 그저 곧추서 있다. 마치 큰 공장의 굴뚝 밑동을 잘라다가 천장을 덮고 창을 낸 것처럼 보인다.
이 집은 그가 북쪽 시골에서 처음으로 런던에 올라와 찾고 또 찾고 나서야 겨우 점찍은 집이다. 그는 서쪽을 뒤지고 남쪽을 뒤지고 햄스테드 북쪽까지 뒤졌으나 끝내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체인 로우에 와서 이 집을 보고도 곧장 결정을 내릴 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사천만의 우인(愚人)이 천하에 가득하다고 호통친 그도 살 집 앞에서는 뜻을 굽혔는지, 그 우인 가운데 마땅히 헤아려 넣어야 할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 그 의향을 물었다. 부인의 답은 이러했다. “말씀하신 셋집은 두 채 모두 별다른 흠이 없는 듯하오니 제가 런던에 올라갈 때까지 둘 다 비워 두시기 바라오며, 만일 그 사이에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거든 당신 뜻에 따라 어찌하시든 처분해 주시기 바라옵나이다.” 칼라일은 책 위에서나 혼자 다 안 듯 큰소리를 칠 뿐, 살 집을 정하는 데에는 부인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고 각오를 한 모양인지, 부인이 올라올 때까지 손을 묶고 기다렸다. 나흘 닷새 지나 부인이 도착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둘이서 다시 동서남북을 뛰어다닌 끝에, 결국 체인 로우가 좋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두 사람이 이리로 이사한 것은 1834년 6월 10일로, 이사 도중 하녀가 안고 있던 카나리아가 새장 안에서 지저귀었다는 사소한 일까지 알려져 있다. 부인이 이 집을 고른 것은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달리 마땅한 데가 없어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 굴뚝처럼 사각진 집은 한 해 350엔의 집세로 새 살림을 차린 부부를 맞이한 것이다. 칼라일은 이 크롬웰 같고 프리드리히 대왕 같으며 또 공장 굴뚝 같은 집 안에서 “크롬웰”을 쓰고 “프리드리히 대왕”을 쓰고, 디즈레일리의 주선으로 내려진 연금을 물리치며 사각으로 반듯하게 살았다.
나는 지금 이 사각진 집의 돌계단 위에 서서 도깨비 얼굴을 한 노커를 똑똑 두드린다. 잠시 후 안에서 쉰 줄의 통통한 노파가 나오더니 들어오시지요 하고 말한다. 처음부터 구경꾼인 줄 짐작한 모양이다. 노파는 이내 방명록 같은 것을 내밀며 성함을 적어 달라고 한다. 나는 런던에 머무는 동안 네 번 이 집에 들어와 네 번 이 방명록에 내 이름을 적은 기억이 있다. 이때가 실로 내가 처음 이름을 적어 넣은 날이었다. 되도록 정성스럽게 쓰려 했으나 늘 그렇듯 보기 흉한 글씨가 되어 버렸다. 앞장을 펼쳐 보니 일본인의 성명은 한 명도 없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으로서 이곳에 온 이는 내가 처음이로구나 하는 시시한 일이 새삼 흐뭇하게 느껴진다. 노파가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기에 왼쪽 문을 열고 거리를 향한 방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옛날 응접실이었다고 한다. 갖가지 물건이 줄지어 놓여 있다. 벽에는 그림과 사진이 걸려 있다. 대개 칼라일 부부의 초상인 듯하다. 뒷방에는 칼라일이 직접 도안했다는 책장이 있다. 거기에 책이 잔뜩 들어차 있다. 어려운 책이 있다. 시시한 책이 있다. 낡은 책이 있다. 도무지 못 읽을 듯한 책도 있다. 그 밖에 칼라일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주조했다는 은패와 동패가 있다. 금패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패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단단하게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언제까지나 태연히 남아 있는데, 그것을 받은 이의 연기 같은 짧은 수명과 견주어 떠올려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나서 이 층으로 올라간다. 여기에도 큰 책장이 있어 책이 여느 때처럼 가득 들어차 있다. 역시 도무지 못 읽을 만한 책, 들어 본 적 없을 책, 들어 있을 리 없는 책이 많다. 헤아려 보니 백서른다섯 부쯤 되었다. 이 방도 한때는 응접실이었다고 한다. 비스마르크가 칼라일에게 보낸 편지와 프로이센의 훈장이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전(傳)” 덕분으로 보인다. 부인이 쓰던 침대가 있다. 자못 투박하고 꾸밈없는 물건이다.
안내인이란 어느 나라에서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아까부터 노파는 방 안의 그림과 기물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더해 준다. 오십 년간 안내만 닦아 온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텐데도 몹시 능숙하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어찌 됐고 어찌 됐다고 마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듯 늘어놓는다. 더구나 그 유창한 변설에는 억양이 있고 절주(節奏)가 있다. 가락이 흥겨워서 그쪽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처음 한동안은 되묻고 다시 묻기도 했으나 마침내 귀찮아져, 당신은 당신대로 마음껏 안내 멘트를 늘어놓으시라, 나는 나대로 자유로이 둘러볼 터이니 하는 태도를 취했다. 노파는 사람이 듣건 말건 안내 멘트만은 반드시 끝까지 전한다는 식으로, 별달리 싫증 난 기색도 없고 게으른 기색도 없이 몇 년 몇 월 며칠을 늘어놓고 있다.
나는 동쪽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잠시 가까운 데를 둘러보았다. 눈 아래에 열 평쯤 되는 마당이 있다. 오른쪽도 왼쪽도, 그리고 정면도 돌담으로 막혀 있어 그 모양은 역시 사각이다. 사각은 어디까지 가도 이 집의 부속물인가 싶다. 칼라일의 얼굴은 결코 사각이 아니었다. 그는 차라리 깎아지른 벼랑 중턱이 무너져 풀밭 위로 엎어진 듯한 용모였다. 부인은 잘 익은 락교(辣韮)처럼 보인다. 지금 나를 안내하고 있는 노파는 팥빵처럼 둥글다. 내가 노파의 얼굴을 보며 과연 둥글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노파는 또 몇 년 몇 월 며칠을 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칼라일이 이르되, 뒤뜰 창에서 내다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잎이 우거진 나무 둥치, 푸르른 들판, 그리고 그 사이사이 점점이 박힌 가파른 경사의 붉은 지붕뿐이라. 서풍이 부는 요즈음의 풍경은 더없이 맑고 마음이 시원하노라.
나는 우거진 잎을 보려 하고, 푸른 들을 바라보려 하여 실은 뒤뜰 창에서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고개는 이미 두어 차례 내밀어 보았으나 푸른 것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편에 집이 보인다. 왼편에도 집이 보인다. 정면에도 집이 보인다. 그 위로는 납빛 하늘이 한 면 가득 위장병 환자처럼 늘어지듯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나는 고개를 움츠려 창 안으로 들였다. 안내인은 아직도 몇 년 몇 월 며칠의 다음 대목을 낭랑하게 외고 있다.
칼라일이 또 이르되, 런던 쪽을 바라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세인트 폴 대성당의 높은 첨탑 끝뿐이라. 그 밖의 환영 같은 전당과 누각은 매연을 머금은 구름 그림자가 가는 데 따라 숨었다 드러나노라.
‘런던 쪽’이라는 말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다. 오늘날 첼시에 서서 런던 쪽을 바라본다는 것은 집 안에 앉아 집 쪽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치여서, 자기 눈으로 자기 자리를 들여다본다 한들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칼라일은 스스로 런던에 살고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시골에 한가로이 들어앉아 도시 한복판의 거대한 사원을 멀리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나는 세 번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그가 말하는 ‘런던 쪽’으로 시선을 뻗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도 보이지 않고, 세인트 폴 대성당도 보이지 않는다. 수만의 집, 수십만의 사람, 수백만의 소음이 나와 사원 사이에 서 있고, 출렁이고, 움직이고 있다. 1834년의 첼시와 오늘의 첼시는 아예 별개의 것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였다. 노파는 묵묵히 내 등 뒤에 가만히 서 있다.
삼 층으로 올라간다. 방 한구석을 보니 칼라일의 침대가 차갑게 가로놓여 있다. 푸르스름한 휘장이 조용히 드리워져 비어 있는 자리 안쪽은 적막하고 어슴푸레하다. 무엇으로 만든 나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공은 그저 무뚝뚝하고 소박할 뿐 별다른 특색이라곤 없다. 그 위에 몸을 누이던 사람의 일도 더불어 떠오른다. 곁에는 그가 평소 쓰던 욕조가 구정(九鼎)인 양 위엄을 갖춘 채 놓여 있다.
욕조라고는 하나 큼지막한 양동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이 큰 솥 안에서 런던의 매연을 씻어 냈는가 생각하면 그 사람됨이 더더욱 그려진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벽 위에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본떴다는 회반죽 데드마스크가 걸려 있다. 이 얼굴이로구나, 한다. 이 고타쓰 받침틀(炬燵櫓, 화로 위 나무 틀) 높이쯤 되는 욕조에 들어앉아, 이 검소한 침대 위에 누워 사십 년간 시끌벅적한 잔소리를 줄곧 토해 내던 얼굴은 바로 이것이로구나, 한다. 노파의 막힘없는 안내 멘트가 마치 전화기 너머로 요코하마 사람의 인사를 듣는 양 들려온다.
괜찮으시면 올라가시지요 하고 노파가 말한다. 나는 이미 런던의 먼지와 소리를 까마득한 아래 세상에 두고 오 층탑 꼭대기에 홀로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있는데, 귓전에서 “올라가시지요” 하는 재촉을 들으니 아직도 더 위가 있는가 싶어 의아했다. 그래, 올라갑시다 하고 동의한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묘한 심정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사 층에 올라왔을 때는 어쩐지 종잡을 수 없이 기뻤다. 기쁘다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묘했다. 여기는 다락이다. 천장을 보니 좌우는 낮고 가운데가 높아 마치 말갈기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그 가장 높은 등줄기를 따라 유리로 덮인 채광창이 달려 있다. 이 아틱(attic, 다락)에 새어 드는 광선은 모두 머리 위로부터 곧장 내려온다. 그리고 그 머리 위는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온 세계로 통하는 너른 하늘이다. 눈을 가리는 것이라곤 티끌 하나 없다. 칼라일은 자기 손으로 이 방을 만들었다. 만들고 나서 이를 서재로 삼았다. 서재로 삼아 여기에 들어앉았다. 들어앉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계획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여름은 더워서 견디기 어렵고, 겨울은 추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안내인은 낭독조로 여기까지 늘어놓고 나를 돌아보았다. 둥글둥글한 얼굴 밑바닥에 웃음의 그림자가 비친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칼라일은 무엇을 위해 이 하늘에 가까운 방을 짓느라 그토록 애를 썼는가. 그는 그의 글이 보여 주는 그대로 번갯불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신경질은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거리낌 없이 일어나는 음향을 무심히 흘려들으며 저술에 잠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양금(洋琴, 피아노) 소리,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앵무새 소리, 온갖 소리는 죄다 그의 예민한 신경을 찔러 그를 한시도 가만 두지 않았기에, 끝내 그는 하늘에 가장 가깝고 사람으로부터는 가장 멀어진 거처를 이 사 층 천장 아래에서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에이킨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르되 “이 여름내 활짝 열어 둔 창으로 들려오는 소음에 시달림이 한이 없사오며 이런저런 수선도 시도해 보았사오나 손톱만 한 효험도 없사옵기로, 깊이 생각한 끝에 집의 바로 위에 스무 자 사방의 방을 새로 올리기로 작정하였나이다. 이 방은 벽을 이중으로 세우고, 광선은 천장에서 받아들이며, 환기는 한 가지 궁리를 더하여 별 지장이 없도록 꾸밀 작정이오니, 다 짓고 나면 설령 천하의 닭들이 한꺼번에 목청껏 울어 댄다 한들 결코 굴하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이렇게 기대를 모은 서재는 2,000엔의 비용을 들여 그럭저럭 뜻대로 완성되어 기대한 만큼의 효험을 거두었지만, 그와 동시에 뜻하지 않은 장애가 또 한 차례 주인공의 귓전에 닥쳤다. 과연 양금 소리도 멎고, 개 짖는 소리도 멎고, 닭 우는 소리도 앵무새 소리도 짐작대로 들리지 않게 되었으나, 아래층에 있을 때는 미처 떠올리지도 못한 절의 종소리, 기차의 기적 소리, 그리고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아래 세상의 소리가 마치 저주처럼 그를 따라붙어 예전 그대로 그의 신경을 들볶았다.
소리. 영국에서 칼라일을 괴롭힌 소리는 독일에서 쇼펜하우어를 괴롭힌 그 소리다. 쇼펜하우어가 이르되, “칸트는 활력론을 저술하였으되, 나는 도리어 활력을 조상(弔喪)하는 글을 짓고자 한다.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소리, 무엇인가를 때리는 소리, 무엇인가를 굴리는 소리는 모두 활력의 남용이며, 나는 이 때문에 날마다 고통을 받고 있노라. 음향을 듣고도 아무 감응을 일으키지 않는 다수가 내 설을 들으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이치도 느끼지 못하고 사상도 느끼지 못하며 시가도 느끼지 못하고 미술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 무리임을 잊지 말지어다. 그들의 두뇌 조직이 거칠고 깨달음이 둔한 것이 그 까닭임은 의심할 바 없다.” 칼라일과 쇼펜하우어는 실로 십구 세기의 좋은 한 짝이다. 내가 이렇게 회상에 잠겨 있을 때 예의 노파가, 이제 내려가 보실까요 하고 재촉한다.
한 층씩 내려갈 때마다 아래 세상으로 다가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명상의 껍질이 한 꺼풀씩 벗겨져 가는 것 같다. 계단을 다 내려와 맨 아래 난간에 기대어 거리를 내다볼 즈음에는 결국 여느 속인 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안내인은 태연한 얼굴로, 부엌을 보세요, 한다. 부엌은 한길보다도 아래에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다시 대여섯 단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이곳은 지금 안내를 맡고 있는 노파의 거처가 되어 있다. 한쪽 구석에 큼직한 부뚜막이 있다. 노파는 늘 그렇듯 낭독조로, “1844년 10월 12일에 이름난 시인 테니슨이 처음으로 칼라일을 찾아왔을 때, 두 분은 이 부뚜막 앞에 마주 앉아 그저 담배만 태우실 뿐 두 시간 동안 한마디도 나누지 않으셨답니다” 한다. 천상에서 음향을 꺼리던 그가 지하에서는 침묵을 사랑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부엌문에서 정원으로 안내된다. 예의 사각진 마당을 둘러보니 나무다운 나무, 풀다운 풀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노파의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는 벚나무도 있었다, 포도나무도 있었다. 호두나무도 있었다고 한다. 칼라일의 부인은 어느 해 25전어치쯤 되는 호두를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노파가 이르되, “마당의 동남쪽 모퉁이에서 다섯 자 남짓 떨어진 땅속에는 칼라일이 사랑하던 개 니로가 묻혀 있답니다. 니로는 1860년 2월 1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표도 그 무렵에는 남아 있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 후에 치워져 버렸지요” 하며 자못 자세하다.
칼라일이 밀짚모자를 뒤로 비뚜름히 쓰고 잠옷 차림 그대로 곰방대를 입에 문 채 거닐던 곳이 바로 이 정원이다. 한여름에는 그늘 깊은 포석 위에 자그마한 차일을 치고 그 아래에 책상까지 내어 놓고는 다른 데에 마음을 쓰지 않은 채 저술에 몰두하던 곳이 바로 이 정원이다. 별빛이 환한 밤, 마지막 한 모금을 다 피우고 나서 그가 하늘을 우러러 “아아, 내가 마지막으로 그대를 보는 때는 잠깐 뒤이리라. 전능하신 신께서 지으신 가없는 큰 극장, 눈에 들어오는 무한, 손에 닿는 무한, 이 또한 내 눈썹과 눈을 스쳐 지나가리라. 그리고 나는 끝내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내 힘쓴 바가 헛되지 아니하고, 알고자 함도 간절하였노라. 그러나 나의 앎은 다만 이렇듯 미미할 따름이라” 하고 외친 곳도 바로 이 정원이다.
나는 노파의 수고에 보답하고자 노파의 손바닥 위에 은화 한 닢을 얹었다. 고맙습니다 하는 그 한마디조차 낭독조였다. 한 시간 뒤, 런던의 먼지와 매연과 거마(車馬)의 소리와 템스강은 칼라일의 집을 별세계인 양 먼 저편으로 멀찌감치 갈라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