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숲속 샘가에 오늘도 젊은이는 홀로 우두커니 쪼그려 앉아 있었다. 관모는 끈이 풀려 있고 신발에는 구멍이 났으며, 턱에는 까칠까칠 까치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광대뼈 아래에는 끌로 파낸 듯 움푹한 자국이 있었다. 가만히 한곳을 응시하는 서늘한 눈에는 깊은 슬픔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으로 젊은이는 아까부터 한 쌍의 원앙을 물리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오색으로 곱게 물든 아름다운 원앙 한 쌍은, 자기들을 들여다보는 구경꾼 따위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다소곳하면서도 다정스레 노닐었다. 둘은 한순간도 떨어지는 법 없이, 수련 옆을 지나기도 하고 분수 물보라 아래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 물보라 속에는 고운 무지개가 꿈결처럼 떠 있었다. 겉모양만으로는 어느 쪽이 수컷이고 어느 쪽이 암컷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젊은이는 늘 앞장서 가는 쪽이 수컷이고 그 뒤를 신이 나서 종종거리며 따르는 쪽이 분명 암컷이리라 여겼다. 때는 한낮, 산들바람 한 점 없어 분수마저 멈춘 듯, 비단실로 늘어뜨린 발처럼 보였다. 젊은이는 그때,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왼손으로 바꾸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어렴풋이 무엇인가의 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거기에는 낯선 노인이 젊은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백로처럼 야위고, 백로처럼 기품이 있는 노인이었다. 손에는 한 자루 피리를 들고 있었다. 젊은이는 그 풍채에서 일찍이 알지 못하던 위압감을 느낀 터라, 저도 모르게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노인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한 걸음 다가와, “무슨 근심이라도 있어서 매일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젊은이는 이 노인을 보는 것이 오늘 처음이었기에, 자신이 매일 이곳에 오는 것을 노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례지만 어르신은 어느 분이시온지요?” 그가 되물었다. “나는 이 물 밑에 살고 있는 물의 정령이라네.” 노인이 대답했다. 젊은이는 깜짝 놀라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노인은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물 밑 깊이 잠겨 날마다 피리를 분다네. 다만 내가 부는 피리 가락은 그대들 같은 땅 위의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오.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물속에 사는 것들뿐이지. 한 치 남짓한 송사리에서 한 자짜리 잉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고기, 백로며 백조며 원앙이며 오리며 두루미며 물에 친근한 새들 모두, 또 물 위에 피어나는 부평초의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그것을 듣는다네. 어찌하여 그들에게 피리 소리를 들려주느냐고 묻고 싶은가? 그들 마음에서 흐림을 걷어 내 주려 함이라네. 내가 이 피리를 불기 시작하면, 먼저 샘물이 위쪽부터 깊은 산속의 대기처럼 맑아 오지. 그러면 물고기들의 마음, 새들의 마음, 꽃들의 마음도 물처럼 맑게 갠다네. 그들 마음에서 온갖 흐림이 사라져, 오직 한 가지 빛깔로, 슬픔이라면 다만 슬픔으로, 기쁨이라면 한결같은 기쁨으로 맑아져 버리는 것이라네.” “잠시만요.” 젊은이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끊었다. “그러면, 저 한 쌍의 원앙은 오로지 맑디맑은 사랑만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옵니까? 그 사랑 속에 외로움이 있다거나, 그 사랑 속에 미움이 있다거나, 그 사랑 속에 의심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사옵니까?” “그런 것은 일절 끼어들지 않네. 다만 한 가지 사랑뿐이지. 그러니 한쪽이 사라지는 날에는, 남겨진 쪽은 한결같은 슬픔에 잠기어, 마침내 그로 인해 제 몸마저 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네.” “역시 그러하셨군요.” 젊은이는 마침 그때 노인 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원앙 한 쌍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잣말처럼 입을 떼었다. “역시 그러했군요. 저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부러워 매일 이곳에 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헤아리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이한 사랑이옵니다. 부디 들어 주시옵소서. 저와 그 여인은 어린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있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저희의 사랑은 예닐곱 살 무렵 둘이서 곧잘 어울려 놀던 신부 놀이의 천진한 장난에서 그 싹이 텄던 것이옵니다. 다만 진정한 연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둘이 열대여섯이 되던 무렵부터였습니다. 그것이라 한들 이른 사랑이긴 합니다. 그 시절에는 순진한 애정을 품고 한결같이 그를 사랑했습니다. 서로를 끌어안고 나무 그늘에 둘이 있을 때, 저는 이대로 죽어도 한이 없겠노라고 그에게 말했고, 또 제 마음으로도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여인 말씀이옵니까. 물론 그도 진심에서 우러난 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머잖아 도성에 나아가 진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학업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에도 한순간조차 그를 잊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데 그러는 사이에 저는 제 마음이 둘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본디부터 있던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 또 하나는 그에게서 떨어져 차갑게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뒤쪽 마음이 해를 거듭할수록 자라나, 저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옵니다. ‘저런 여인은 차라리 버리는 편이 낫다. 네가 앞으로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를 적에 저 여인은 아내로 어울리지 않는다. 마음씨는 곱지만 지혜의 깊이가 얕다. 그리고 용모도 결코 으뜸가는 미인이라 할 수 없다. 그 외에 가문으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저 여인은 너의 미래 아내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저는 그것이 마음의 미혹이라고, 그런 말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이 불순한 마음은 늘기는 하여도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올해 저는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학수고대하던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는 무사히 돌아온 저를 보자 미친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그다지 들뜨지 않았습니다. 둘이 서로를 끌어안고 나무 그늘을 거닐 적에, 옛날 이리 있을 때 이대로 죽어도 좋다 여겼던 일을 떠올리고는,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하고 가만히 자문해 보니, 제 가슴에는 그것을 강하게 거스르는 소리가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옛날 그대로의 한결같은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 주는데, 이렇게 갈라진 마음을 가슴에 품고서 겉만 꾸미고 있는 것은 죄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단숨에 그를 떠나려고, 어느 날 그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저는 결심했던 것이옵니다. 영영 그의 곁을 떠나기 위하여, 이른 아침 짐을 챙겨 그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성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정해 놓고 보니, 끊어 낼 수 없는 미련이 뭉게뭉게 머리를 들어 제 뒷덜미를 힘껏 잡아당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까짓 일에 무너지랴, 하고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걸었습니다. 그러나 부질없는 애였습니다. 그날 밤도 약속을 믿고 저를 기다리고 있을 그를 떠올리니, 저는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기슭을 떠난 나룻배를 사공에게 부탁해 본디 기슭으로 돌려 달라 하여,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영부영 그와 함께 나날을 보내 왔습니다. 한결같이 사랑할 마음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단숨에 떨쳐 버릴 마음도 일지 않습니다. 이 두 마음이 제 가슴속에서 늘 맞물려 으르렁대고 있으니, 제가 이렇듯 초췌해져 버린 것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차라리 저 순진한 원앙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순한 마음이 얼마쯤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 매일 이곳에 와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대는 그 불순한 마음을 거두어 내고자 한다는 말이로군.” 다 듣고 난 노인이 물었다. 그리고 젊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진실로 그렇게 바란다면, 내 힘으로 그리해 주지 못할 것도 없네.” 젊은이의 얼굴에는 환희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말을 이어 갔다. “다만 그러려면 그대는 연인과 함께 원앙이 되어야만 하네.” “네, 원앙이라니요.” 젊은이가 놀라 외쳤다. “그렇다네.” 노인이 낮게 힘을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앙이 되지 않으면 내 힘이 닿지 않기 때문이지.” “원앙이 되면 어르신의 피리 가락을 들을 수 있는 것이옵니까?” “물론 들을 수 있네.” 젊은이는 한참을 깊이 고개를 떨군 채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윽고 얼굴을 들고 단호히 말했다. “되겠습니다. 원앙이 되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 달이 뜬 뒤에, 연인을 데리고 이곳으로 나오시오.” 노인이 말했다. 젊은이는 약속했다. 노인의 모습은 젊은이의 눈앞에서 점차 옅어지더니, 한 줄기 안개 같은 것이 되었다가, 이윽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젊은이는 그 빼어난 선술에 넋을 놓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이윽고 관모의 끈을 다시 매고는 신이 나서 발걸음을 돌렸다. 밤이 되어 달이 떠오르고, 못의 수면이 희끄무레 어른어른 빛나기 시작할 무렵, 젊은이는 연인과 함께 잔디 위 이슬을 밟으며 다시 샘가로 나왔다. 낮의 원앙은 어디인가 바위 그늘에 몸을 맞대고 잠들었는지, 수면을 흩뜨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밤에도 그치지 않는 분수 물줄기가 솟아오르다 흩어져 이슬방울이 되어, 가만히 떨어지며 비단 주름 같은 잔물결을, 그것도 못 한가운데께에만 너울거리게 했다. 물가에서는 카지카개구리 두세 마리가, 단단하고 둥근 나무 구슬을 맞부딪치는 듯 정겹고 맑은 소리로 또르르 울고 있었다. 젊은이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직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못가의 한 그루 목서 그늘에 기대어, 밤이슬을 피하며 노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처녀는 손을 내밀어 목서의 꽃가지를 꺾더니, 젊은이의 뒤로 돌아가 관모에 꽂아 주고, 자신의 머리에도 꽂았다.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그곳에 쪼그려 앉자, 두 사람의 머리에서는 향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신선이 나를 원앙으로 만들어 이 샘 위에 풀어놓는다면 너는 어찌할 셈이냐.” 젊은이가 못의 수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저도 그분께 청을 드려 원앙으로 변하여 가겠어요.” 연인이 따뜻한 손을 젊은이의 손 위에 포개며 말했다. “그것이 진심이냐?” 젊은이는 다짐하듯 물었다. “어찌 거짓을 말씀드리겠어요.” 연인이 포갠 손에 부드럽게 힘을 주며 말했다. “저 같은 것을 원앙으로 만들어 주시지 못하신다면, 오리든 논병아리든 무엇이라도 좋으니 그대 곁으로 가겠습니다.” 그러자 그때, 분수 곁에 또 하나의 분수처럼 흰 물보라 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그것이 얇은 비단 휘장처럼 펼쳐져 흘러가, 못 가장자리에 이르자 그 휘장 속에서 낮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젊은이의 연인은 그것을 보자 두려움의 외침을 터뜨리려 했으나, 젊은이가 손을 꼭 그러쥐어 그것을 막았다. “찾아왔습니다.” 젊은이는 일어서서 노인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면 한시바삐 두 사람을 원앙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젊은이를, 달빛이 무엇에도 가려지지 않은 고운 잔디밭 위로 데리고 갔다. 젊은이의 등 뒤에는 그 무엇보다 새카만 그의 그림자가, 마치 악마처럼 으스스한 윤곽을 잔디밭 위에 또렷이 그리고 있었다. 노인은 젊은이의 등 뒤로 돌아가 그 그림자의 끝자락을 두 발로 단단히 밟았다. “자, 못 쪽으로 걸어가시오.” 젊은이는 들은 대로 걸으려 했다. 그러나 어떤 야릇한 힘이 등 뒤에서 자신을 잡아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걸으시오.” 노인이 명하듯 말했다. 작은 새가 끈끈이에서 떨어지려 애쓰듯, 젊은이는 손발을 푸드덕푸드덕 휘저으며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온몸에 쇠 같은 힘을 모아 가까스로 한 걸음을 떼었을 때, 젊은이는 그 그림자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야릇한 힘에서 풀려난 젊은이는 검은 그림자를 노인의 발치에 남겨 둔 채, 못 쪽으로 내려가 물가에 이르자 멈춰 섰다. “물속으로 들어가시오.” 노인의 목소리가 틈을 주지 않고 등 뒤를 따라왔다. 젊은이는 각오한 듯 눈을 감고 바위 위에서 수면 위로 몸을 던졌다. “앗.” 하는 연인의 외침을 귓전으로 듣는가 싶었던 다음 순간, 젊은이는 자신의 몸이 새털 이불처럼 가볍게 수면 위에 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눈을 떠 제 몸을 보았더니, 어느새 한 마리 원앙이 되어 있었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었던 연인은, 이윽고 제정신이 돌아오자, 노인이 자신을 홀로 남겨 둔 채 물속으로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 구르듯 노인 쪽으로 달려가 무릎에 매달렸다. “부디 청하옵나니, 저만 남겨 두지 마시옵소서. 저도 물새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원앙이 안 된다면 오리든 논병아리든 상관없습니다.” “그리하시오.” 노인이 답했다. “저 젊은이가 뛰어든 곳에서, 그대도 뛰어드시오.” 처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의 작은 심장을 두 손바닥에 쥐인 작은 새처럼 콩닥거리며 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바위 위에는 젊은이의 옷과 신발과 목서 꽃이 꽂힌 관모가 놓여 있었다. 처녀는 젊은이의 신발 곁에 자신의 작은 자수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푸른 치맛자락을 뒤로 끌며 수면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머잖아 수컷 원앙 곁에, 한결 작은 암컷 원앙이 부리로 제 깃털을 가다듬으며 다정스레 다가가 있었다. 두 마리 어여쁜 물새는 서로 마음 가득 사랑의 기쁨을 느끼는 듯, 작은 두 꽁지깃을 다투듯 흔들고 있었다. 다시 한참이 지나자 원앙들은 부리를 가슴깃 속에 묻고, 검푸른 동그란 눈을 저마다 감았다. 물 밑에서 노인이 부는 오묘한 피리 가락이 가만히 떠오르기 시작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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