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네미로비치단첸코 씨가 일본의 어느 시골 정거장에서 무심코 기차 창으로 고개를 내밀자, 울타리 밖에서 놀고 있던 코흘리개 개구쟁이들이 뜻밖에도 “이진바카(異人馬鹿)!”(이방인 바보) 하고 손뼉을 치며 놀려대니, 씨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도로 들이민 일이 있다. 그 후로 이 “이진바카”가 귓가에 매달려, 교토의 수려한 산하를 마주해도 미야지마의 절경을 바라보아도, 그 외침이 떠오르면 한 줄기 쓴 감정이 소나기구름이 하늘에 퍼지듯 느닷없이 마음을 뒤덮어, 모처럼의 흥취가 이로 인해 망쳐졌다 하여, 씨는 곧장 이를 일본인의 배외사상으로 보고, 일본의 아까운 흠 가운데 으뜸으로 꼽고 계시다.
그 일은 루스코예 슬로보(《러시아의 말》)에 연재된 씨의 기행에도 실려, 이곳 각 신문이 진귀한 일이라며 모두 그 한 토막을 전재하니, 한동안 잠깐 화제가 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일을 입에 올리는 통에, 나는 덕분에 성가신 노릇을 겪었다.
단첸코 씨는 시골 정거장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것이지만, 요즘 노보예 브레먀(《새 시대》)를 보니, 작년 천장절에 도쿄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학생에게 “이진바카” 소리를 들은 러시아인이 있다. 이 신문의 통신원으로 E. I. J.라는 사람이다. 워낙 이상한 이야기이니, 행여 싶어 그 통신문의 한 토막을 아래에 발췌 번역해 본다.
군중에 떠밀려 우리 일행(독일인 아무개와 이 통신원이다)도 앞으로 나아갔다. 갈수록 분위기는 들떠올라 여기서도 저기서도 “만세” 함성이 들리고, 폭죽이 쉴 새 없이 솟아올랐다. 그러는데 대학생 몇이 사람 물결을 헤치며 우리 곁을 지나가려다, 무례하게 우리 얼굴을 빤히 노려보더니 “이진바카!” 하고 외쳤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그 소리에 맞장구를 치며 술렁였다.
메이지 41년의 대학생이 외국인을 두고 “이진”이라 불렀다니, 고금의 진문(珍聞)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진문은 그뿐이 아니다. 이 통신원이 어느 깃발 행렬 뒤를 따라가니 모두가 “만세 (어명, 御名)!”라 외쳤다는데, “굿모닝, 자, 리틀존” 따위의 격이라, “우라, 니콜라이”라는 식은 우리 쪽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 또한 고금의 진문이다.
대체로 이 통신문은 진문으로 가득하다. 아니, 진문 천지라 잘못 발을 들이면 진문을 밟고 지나갈 정도이지만, 그 가운데 진문 중의 진문은 이러하다. 으레 이 깃발 행렬은 전승의 영예를 기리는 신사 따위로 가는 것이리라 짐작하고 뒤를 따라가니, 요시와라(吉原, 옛 유곽)라는 곳에 다다랐다고 한다. 문맥으로 보아 그 외에는 달리 읽히지도 않는다. 요시와라의 풍경을 묘사하는 대목에도 진문이 꽤 있으나 그건 줄이고, 이 통신원 일행과 함께 온 독일인이 어느 격자문 앞에 서 있었다……고 적혀 있지는 않으나 분명 서 있었으리라. 그러자 호객꾼이 아닌 그 집 주인장이 다가와, 문명한 노국(露国, 러시아)에서는 도무지 들어볼 수 없는 추잡하기 짝이 없는 말을, 야만한 일본인이라 태연히 늘어놓으며 유흥을 권한다. 그것을 통변(通弁, 통역)이 차례로 옮겨주는 것을 듣고 있노라니, 마침 그때 그 격자문 앞 길거리에서 대로 연설이 시작되었다. 변사가 번갈아 나서며 애국심을 부추기니, 만세와 “이진바카” 외침이 점점 더 거세지고, 끝내는 모두가 들쭉날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라.
“니폰 카타,
라샤 마키타”
통신원은 실제로 있었음이 틀림없는 이 사실의 의미를 풀어, 이는 미카도(帝)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 모인 도쿄 주민들이, 일본의 수출품 중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을 눈앞에 두고 사기가 단박에 치솟아 그 자리에서 애국 연설을 시작하고, 외국인을 매도하며, 일본의 영광스러운 장래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사실이 이미 진무류이니, 풀이도 또한 진무류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황제의 탄생일은 올해 도쿄에서는 이렇게 축하되었다. 이에 나는 독일인에게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만약 베를린에서 카이저의 명명일(命名日, 생일에 해당)에, 누군가가 이런 자리에서 애국 시위 운동을 꾸민다면, 독일의 경찰과 사회는 과연 이를 무어라 하겠느냐고. 과연 일본을 좋아하는 독일인도 이 순간만큼은 입을 다문 채 답할 바를 알지 못했다.” 노보예 브레먀의 사내(社内)에는 상식이 풍부한 신사도 적지 않다. 그 당당한 노보예 브레먀가 이런 통신원의 이런 통신을 태연히 게재하는 진의야 나도 알 길 없으나, 그러나 이러한 통신이 보수 색채의 러시아인에게 두루 환영받는 것은 사실이다. 수요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