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쓸쓸한 시골 살이 신세인 우리가, 어느 날, 이웃 마을 식료품점에 급한 볼일이 생겨, 한나절 걸려 이런저런 절박한 용무를 다 마친 끝에, 마침내 마을을 향해 발길을 돌리던 해질녘의 길 위였다. 동행은, 늘 그랬듯 우리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지내는 대학생 H와 T, 그리고 내 아내, 또 마을에 단 한 곳뿐인 우리가 마메이드라 부르며 드나드는 선술집 딸 메이코, 이런 식구들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식료품으로 가득 찬 륙색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리고 과일 봉지를 손에 들고 있는 자도 있었다. 채소 다발을 안고 있는 자도 있었다. H와 T는 굵은 지팡이에 가솔린 작은 통을 꿰어 둘이서 양 끝을 메고 있었다. 등산대라기에는, 차림새가 너무도 칠칠치 못한, 기묘한 길동무였다.
“장 보고 돌아오는 마차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물레방앗간 영감도— 그 놀기 좋아하는 영감도, 마누라 채찍이 점점 매서워져서 사오 일 전부터 부지런히 물레방아를 돌리기 시작했다 싶더니, 오늘 아침엔, 자못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읍내로 나갔지— 이봐, 오늘 밤은 내가 큰손 노릇 하며 거들먹거릴 테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마메이드에서 밥도 먹지 말고 기다려 달라! 어쩌고 큰소리치면서 말이야—”
“그 큰손 행세가 마메이드까지 지속만 된다면야, 참으로 경사스러운 얘기지만— 머잖아, 빈 마차에 올라타서, 멍하니 부엉이 같은 눈을 하고 돌아오겠지. 죽을 맛이었다, 죽을 맛이었어! 어쩌고 중얼거리면서—”
“영감은 어찌 되든 좋은데, 그 빈 마차가 그립단 말이야. 거기라면 우리 다섯이 단번에 편히 올라탈 수 있으니까.”
우리는 제멋대로 떠들면서 읍내 변두리 솔밭 둑에서 쉬고 있었다.
“이봐, 이봐, 놓치면 안 돼, 이제 꽤 어둑어둑해졌으니까.”
“염려 없다니까— 이 둑 위 검문소에서 버티고 있으면, 들개 한 마리도 그냥 못 지나가게 할 테니까…….”
그러자, 맞은편, 한쪽으로만 길이 난 거리의 잡화점에서 무언가 볼일을 보고 있던 아내 곁에 있던 메이코가,
“잠깐 와 보세요.”
하고 난데없이 톡 튀는 목소리로 우리를 손짓해 불렀다. 그 음색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기색이었기에 우리는 짐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서,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악당이라도 나타났냐?”
하고 저마다 외치며 달려갔다.
잡화상 옆은, 한 채의 초라한 고물상이었다. 메이코는 황급히 내 팔을 잡고, 그 가게 앞으로 끌고 가더니,
“저거, 당신 거 아니에요?”
하고, 한구석에 있는 가죽 가방을 가리켰다. “당신 나팔이 분명한데요.”
“그렇군. 내 호른인 모양이네.”
나는,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십 년이나 내가 쓰고 익숙해진 놋쇠 나팔 호른이다. 나는, 별다른 애착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손에 있던 물건이, 가게 앞에 그런 식으로 굴러다니는 걸 보니, 시답잖은 우스움을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잠깐만요— 안 계세요?”
메이코가 안쪽을 향해 불렀다. 나이 든 가게 주인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보자, 환한 미소를 띠며, 내가 미처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호른 가방의, 한쪽 끝에 S・M이라는 로마자가 적힌 가죽 가방을 가리키며,
“이거 말씀이지요?”
하고 말하면서, 눈짓을 하며 무엇이 우스운지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우리 뒤에서 들여다보던 T가,
“앗— 큰일 났다, 큰일 났어.”
하고 중얼거리며 맞은편으로 달아나 버렸다.
“아직 더 있어요— 이런 것도…….”
주인이 선반을 가리켜서, 보니, 거기에는 우리의 큼지막한 손풍금이, ‘금 삼 엔’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채, 얹혀 있었다. 등에 십자 모양으로 가죽 띠를 둘러 메고서 연주하는 식의 어지간히도 시대에 뒤떨어진 핸드 오르간이다.
“두 개 다, 빌려 가도 될까요— 아저씨.”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거 아니에요. 다음번에 돈 생기면 바로 갚을게요.”
메이코와 아내는, 내가,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만류했음에도, 주인을 향해 염치 좋은 되사기 흥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흥정은 이내, 매듭이 지어졌다.
악기를 챙긴 우리가 T를 따라잡고서,
“아직 마차 안 와? 혹시 벌써 지나가 버린 거 아냐?”
하고 불안한 물음을 던지자, T는 거기엔 답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가격표를 떡하니 붙여 놓다니, 뭐 저런 짓궂은 영감이 다 있어. 무례하기는—. 곧 찾으러 올 테니까 하고 약속하고 맡겨 둔 건데—”
“그래서 T씨는, 읍내 카페에 놀러 갔던 거예요?” 하고 아내도 짓궂게 받아쳤다.
모두가, T를 가운데 두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둑을 따라 걷고 있노라니, 뒤에서,
“어이, 어이!”
하고 목청껏 부르는 자가 있었다.
돌아보니,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둑한 시각이었다. 다만, 초롱불 하나가 높이 치켜들려, 이쪽을 향해 연신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었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초롱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보니, 물레방앗간 R의 마차였다.
“너희들이 읍내 왔다는 소리를 들어서 나는, 정거장 근처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장에선 어떻게 됐어?”
대학생 H는, 그런 걸 R에게 물었다.
“대실패였어— 내 안색, 안 좋지?”
“아니야, 굉장히 좋은 안색이로군.”
“그건— 그건, 너희들이, 길이라도 엇갈려서 먼저 갔나 싶어서, 부랴부랴 말을 몰아 달려온 탓이겠지. 아아, 시시해, 시시해, 모처럼 일했는데, 이 모양이니 무얼 할 기운도 안 나.”
“R군, 푸념일랑 그만하고 기운 좀 내. 여기 자네가 좋아하는 블랙 앤 화이트가 한 병 있으니 마개를 따자고. 식료품점 점원이, 주인 몰래 챙겨 준 거야— 다 같이 마차 위에 올라서서 한 잔씩 흥분제를 들이켜고, 어쨌든 한시라도 빨리 마메이드로 들어가자.”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서 등에 진 자루를 내리고 있는데, 또 뒤에서 달려오는 마차가 있었다. 마부는, 채소밭 소작인인 B였다.
“아아 정말 비관스럽다. 이 마차에 채소를 산더미처럼 싣고 장에 갔는데, 그 매상금으로는, 겨우 하루 식비 말고는 담배 하나도 못 사겠다는 꼴이야— 어쨌든 흥분제 한 잔 마시게 해 줘.”
모두가 마차 위에서, 와글와글 떠들고 있는 사이에 말은 고삐도 잡힌 데 없이, 어슬렁어슬렁 둑 위를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D씨, 거기 있어?”
왼쪽 밭 쪽을 향해 누군가가 부르자, 번소 안에서,
“너희들 돌아오기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하고, 굵은 목소리로 답이 돌아왔다.
“위스키 있다고— 빨리 안 와?”
H가 이렇게 외치자, 그 번소 맞은편에 있는 헛간 문이 열리며,
“나도 가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강가에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던 자도 있었던지, 그쪽에서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는 소리가 걸려 왔다.
“정종 통도 하나 있어.”
T가 기세를 올렸다. 붉은 등불이 밝혀져 있는 헛간 뒤쪽에 있는 초가지붕 장지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되게도 기다리게 했군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게 했더라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고.”
“그것! 돌격이다.”
하고 저마다 부르짖으며 세 사내가 맨발 그대로 단숨에 달려왔다.
마차는, 기묘한 술잔치를 싣고 유유히 둑을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마차에 다 올라탈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차 바퀴 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잔을 든 채 팔을 뻗고는 와글와글, 흥에 겨워 마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마을에 닿을 즈음엔 귀한 통이 비어 버릴지도 모르겠는걸—”
“뭐야, 쩨쩨한 소리 좀 하지 마. 어디서 마시든, 어차피 다 마셔 버릴 술이 아닌가. 그쪽 자루엔 뭐가 들었어, 안주 좀 내놔. 술안주 내놔.”
“이 마차에 큼지막한 포장을 둘러서— 갈 곳 정함 없는 캐러밴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안 돼. 도리안(말) 녀석은, 길을 야무지게 알고 있어서, 내버려 둬도 이렇게— 그 슬픈 마을로 우리를 데려다 주잖아.”
“하하하…… 슬픈 마을이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구의 목소리인지, 누구의 말인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저 멀리 작은 산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고갯마루 소나무가, 또렷이 보였다. 정말이지 얼마 안 되는 술을 실은 마차의 도착으로, 이 흥겨움, 이 떠들썩함, 이 즐거움— 이었다.
“개선이라도 하는 듯하군…….”
나는 어느새 거나해져서, 양배(컵)를 든 채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고는 가슴을 펴고 산 위의 달을 바라보았다.
“다들 눈치채지 못하게, 슬슬 속도를 올리도록 해 봐, 메이짱.”
“네에—. 이런 이상한 떠들썩함에 어울리는 건 사양이지요. 별안간, 휙 채찍을 휘둘러 달리기 시작하면, 저 술꾼들이 얼마나 깜짝 놀랄까요. 한번 해 볼까요?”
아내와 메이코는, 어느 틈엔가 마부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둑 사이는 위험하니까 큰길로 나가거든, 갑자기 해 봐요.”
두 사람이 그런 짓궂은 꾀를 꾸미는 게 문득 내 귀에 들어왔지만, 나는, 이 신비로운 한순간의 흥취가 깨질 것이 아쉬워서, ‘오늘 밤은 어쩐지 내 마음, 환상 솟구쳐 끝이 없어라’— 하는 요한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풍금을 켰다. 그에 맞추어, 아내도 메이코도, 그리고 술꾼들도 일제히 목소리를 모아, 달의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모습이었다.
큰길에 다다를 즈음에는, 아마도 술이 떨어질 무렵일 테니, 도리안이 달리기 시작하면 도리어 안성맞춤이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