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 명희의 묘책과 만초의 정체
제5장 · Akal Myeong-hui dan Pengungkapan Mancho
하루는 김참령이 병정 수십 명을 거느리고 박참봉의 집으로 나가서 조사할 일이 있다 하고 집안 구석구석이 가택수색을 할 새, 안방에서 박참봉의 딸이 나오는 것을 본즉 참 일색이라, 김참령이 정신을 잃고 물끄러미 보고 섰다가 조사할 것을 다 마친 후에 박참봉을 불러 앉히며 하는 말이,
(대) "박참봉 죽고 사는 것은 오늘 내 손에 달렸지."
(박) "살려주십시오."
(대) "내가 나이가 사십여 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어서 자손을 보기 위하여 다시 한번 장가들려 하는데 마땅한 데가 없더니, 들은즉 박참봉의 따님이 과년하고 또 유승지 집과 혼인하려다가 지금은 못하게 되었다 하니, 내 말을 들으면 박참봉이 목숨도 살고 우리 집과 척분을 맺어 좋을 일이 많을 터이니 어떠한가."
(박) "……"
(대) "내 말을 아니 들으면 지금 당장 포살이여, 자―, 어서 좌우간 대답을 하여."
박참봉의 생각은 그렇게라도 하여주고 목숨이나 살아났으면 하고 허락을 하려 하나, 딸의 마음을 짐작하는 고로 딸의 마음을 들어 보아야 하겠는지라, 그 연유로 말을 한즉, 김참령은 제 욕심만 채워서 하는 말이,
(대) "물어볼 것 무엇 있나. 박참봉의 허락이면 그만이지. 물어볼 터이면 이리로 나오래서 물어볼 일이지."
이때에 박참봉의 부인과 명희는 어찌 되는 일인고 염려하여 뒷문 밖에서 엿듣던 차라.
명희가 김참령이 자기 부친을 위협하는 거동을 보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나 부친 목숨에 해가 될까 염려하여 온순한 언사로 문밖에서 하는 말이,
(명희) "아버님께 여쭈옵나이다. 대대장 영감께서 나라의 왕명을 몸 받아 지방 인민을 안돈시키려고 이 고을에 내려오사, 무죄한 사람은 죽이실 리 없고 유죄한 사람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실 터인데 일개 소녀로 인연하여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무죄한 아버님이 목숨을 취하겠다 하시오나, 소녀는 이왕 정혼한 곳이 있어, 말하자면 남편 있는 계집이오니 왕명을 몸 받아 오신 그 영감님께 이렇게 하시는 것은 국가의 불충이요 소녀로 하여금 정절을 깨트리게 함이온즉 옳지 못한 일인가 생각하나이다. 그 말씀은 결단코 봉행할 수 없사오니 돌려 생각하십사 하고 말씀하시옵소서."
김참령이 처음에는 허락하는 말인가 하고 아리따운 목소리에 그 향기로운 살결이 자기 등어리에 대어 있는 듯하여 등이 간질간질하더니, 나중에 결단코 봉행할 수 없다 하는 말에 화증이 와락 나서, 내친걸음이라 병정 불러 호령하되,
"이 놈 내다 포살하여라." 하니 병정 십여 명이 우르르 들어와서 박참봉을 끌어내어 살결박을 하는지라, 명희가 이 광경을 보고 정신이 산란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방문을 펄쩍 열고 들어가서 김참령 앞에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푹 숙이고 하는 말이,
(명) "소녀가 지금 영감의 말씀을 듣자 하오면 두 번 시집가는 음녀가 될 것이오, 아니 듣자 하면 부친의 목숨을 구완치 못하는 불효가 될 터이오니, 효와 열을 쌍전할 수 없는 지경이오면 차라리 효도나 지킬 수밖에 없사오니 소녀의 부친을 살려주시옵소서. 소녀가 영감의 말씀을 봉행하오리다."
(대) "아―, 기특하다. 진작 그리할 일이지. 어서, 그만 두어라. 박참봉을 풀어놓아라."
병정이 박참봉의 결박하였던 것을 풀어놓고 나간다. 명희가 일편단심을 내어 보일까 하다가 다시 돌쳐 생각하고 말을 온순하게 한다.
(명) "소녀가 허락하는 자리에 따로 또 청할 말씀이 있사오이다."
(대) "응, 무엇. 무엇이든지 소청은 다 들어주지. 채단 말인가."
(명) "아니올시다. 그런 말씀이 아니라, 혼인은 인간대사요, 또 영감께서는 부인이 계신 터이니, 소녀가 댁에 들어가면 이렇듯이 어엿하게 행세할 수 있겠삽나이까. 지금 여기서 병정들이라도 이러한 형편을 눈으로 보았은즉 서울 가서 소문새라도 흉하게 나오면 영감 전정에 관계가 적지 아니할 터이오니, 원주에 출주하여 계신 연대장 영감과 소녀의 부친과 영감이 한자리에 합석하여 앉으시고 정중하게 혼인을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니, 그리하신 후에 연대장 영감으로 증인을 삼고 혼인하는 것이 옳을까 하나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영감께서 위협으로 혼인하였다고 소문이 괴악하오리다."
(대) "아―, 그것 참 명철한 말이로고. 연대장은 나와 대단히 친한 터이오. 또 이 달 보름께는 이리로 오실 터이니 원주로 갈 것 없이 그때 연대장이 오거든 그렇게 하지, 며칠 안 되니까."
원주에 있는 연대장이 각 대대를 시찰할 차로 돌아다니다가 철원읍에 이르니, 김참령은 연대장 오기를 잔뜩 기다리던 터이라, 배반을 성설하여 간곡히 대접한 후에 첩장가 드는 말을 한다.
(대) "하관이 간절히 청할 말씀이 있습니다."
(연) "응, 무슨 말이오."
(대) "다른 말씀이 아니라 하관이 지금까지 혈속이 없어 항상 걱정하던 터에 상당한 처녀가 있으면 치첩을 하여 자손을 볼까 하더니, 마침 이 고을에 사는 박참봉이라 하는 사람의 딸이 있는데 하관도 마음이 간절하고 박참봉도 허락이 된 터이오니 상관께서 한 번 수고하시와 중매되시면 혼인이 영광스럽겠사오이다."
(연) "그것이야 어려울 것 무엇 있나, 그리하지. 그러면 박참봉을 지금 이리로 부르시오."
박참봉의 집에서는 연대장이 철원 고을에 들어와서 대대장과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말을 듣고 명희의 혼인 수작이 되려니 짐작하였으며, 명희도 역시 말은 아니하나 속마음에 작정한 일이 있는 모양이라.
하루는 연대장과 대대장이 합석하여 앉고 박참봉을 청좌한다는 말을 듣고 명희가 그 부친 박참봉에게 말을 하여, 자기 집에서 주안을 차리고 연대장과 대대장을 오라 하여 혼사를 말하게 하였더라.
연대장과 대대장도 또한 좋은 일이라 하고 박참봉 집으로 나와서 술잔씩이나 먹은 후에 혼인 이야기가 시작되며, 사랑방 뒷문이 열리며 향내가 방안에 가득하고 옹용한 태도로 윗방자리에 나와 섰는 사람은 명희라.
(명) "연대장 영감께 여짜올 말씀이 있삽나이다. 소녀는 일개 미혼 전 처녀로 감히 좀전에 말씀하옵기 황송하오나, 소녀는 조부 생존시부터 김도사 손자 되는 지금 본대 소장으로 있다가 서울로 갈려간 김용필이와 혼인을 정하여 성례만 아니하였다 뿐이지 성혼한지 이미 오래오니, 소녀는 남편 있는 기집이온즉 다시 다른 곳에 시집갈 수 없사온데, 대대장은 속에 짐승같은 음흉한 마음을 품고 위협으로 소녀를 탈취하려 하여 부친을 의병에 관련 있다고 얽어 몰아 가두고, 김참위가 소녀의 예혼한 남편인 줄 안 후에 김참위를 무고하여 서울로 올리 쫓고 병정을 거느리고 소녀의 집에 와서 부친을 위협하고 소녀를 탈취하려 하옵기, 소녀가 부친의 생명을 염려하와 거짓 허락하고 연대장 영감의 중매를 청하온 것은, 저 금수 같은 김참령의 행위를 연대장 영감께 말씀한 후 죽기로 자처함이오니 살피시기를 바라나이다."
고은 목소리는 녹음 중에서 나는 꾀꼬리 소리 같고, 엄숙한 태도는 심산 중에 앉은 호랑이의 위험 같도다. 김참령은 얼굴이 붉다 못하여 숯검정 같고 박참봉은 죽어 가는 사람같이 벌벌 떠고 있으며, 연대장은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듣는다. 연대장이 이 말을 듣더니 김참령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
"나라의 명을 받아 백성을 안돈시키러 내려온 사람이 마음을 이렇게 음흉하게 먹고 행위를 이렇게 부정하게 하면 저 처녀로 하여금 정절을 깨트리게 하는 동시에 영감은 나라에 대해여 역적됨을 면치 못하겠소."
경사로 이루려 하던 혼인 담판은 살풍경으로 깨어지고, 김참령은 도망하여 서울로 가고, 연대장은 원주로 돌아가서 보고서를 써서 서울로 보고하니, 김참령은 파면을 당하여 육군법원에 갇히고, 김용필은 대대장으로 승차 되어 철원에 출주하고 세상이 평정한 후에 명희와 김용필은 성례하여 지금 화락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세상이 잠깐이라, 벌써 아들을 형제나 낳았지…….
"이리 오너라. 너 안악에 들어가서 영감 내외분더러 아기네들 데리고 이리 나오라 하여라."
하인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기우 헌앙한 장부 사나이가 요조숙녀 부인을 데리고 아들 형제를 앞세우고 나온다.
그 노인이 나더러 인사를 붙인다.
"자네 인사하게. 이 사람은 김용필인데 내 조카요, 저기 저는 내 조카 며느리, 애명이 명희인데 박참봉의 딸이오, 이 아이들은 그 아들들……."
이야기하던 노인은 만초 선생인 줄을 그제서야 깨달았도다.
차차에 탐정순사(探偵巡査)라 명칭한 일편(一篇)과 외국인(外國人)의 화(話)라 칭한 일편(一篇)이 유(有)하나 경무총장(警務總長)의 명령(命令)에 의하여 삭제(削除)하였사오며, 본(本) 책자(冊子)의 체재(体載)가 완미(完美)치 못함은 독자 제군의 서량하심을 요(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