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렬전 2 — 국가의 위기와 충렬의 성장
불길이 일어나니, 웅장한 고루거각이 홍로 점설되어 있고, 전후의 쌓인 세간은 추풍낙엽처럼 다 타더라. 부인이 창황 중에 충렬의 손을 잡고 홍선을 흔들면서 담장 밑에 은신하니, 화광이 충천하고 흰 연기 만지하여 구산 같이 쌓인 기물이 화광에 소멸하니 어찌 아니 망극하랴. 사경이 당하매 인적이 고요하고, 다만 중문 밖에 군사 둘이 지키거늘, 문으로 못 가고 담장 밑에 배회하더니, 창망한 달빛 속으로 두루 살펴보니 중 단자 안에 나갈 길이 없는지라. 다만 물가로 통하는 수채 구멍이 보이거늘, 충렬의 옷을 잡고 그 구멍에 머리를 넣고 엎드려 나올 제, 겨우 쌓인 담장 수채 구멍으로 지나 중문 밖에 나서니, 충렬과 부인의 몸이 모진 돌에 긁혀 백옥 같은 몸에 유혈이 낭자하고, 월색 같이 고운 얼굴이 진흙빛이 되었으니, 불상하고 가련함은 천지도 슬퍼하고 강산도 비감하는구나. 충렬을 앞에 안고 사이 길로 나오며 남쪽을 바라보고 갓 없이 도망할 새 한 고대 다른
편에 높은 산이 있으되, 높기는 만 길이나 하고 봉우리에 오색구름 사면에 어렸거늘, 자세히 보니 이 산은 천제하던 남악 형산이라. 전일 보던 얼굴이 부인을 보고 반기는 듯, 뚜렷한 천제당이 완연히 뵈이거늘, 부인이 비회를 금치 못하여 충렬을 붙들고 방성통곡하는 말이, 네 이 산을 아느냐. 칠 년 전에 이 산에 와서 산제하고 너를 낳았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니 네 부친은 어디 가고 이런 변을 모르느냐. 이 산을 보니 네 부친 본 듯하다. 통곡하고 슬픈 마음 어찌 다 측량하리. 충렬이 그 말 듣고 부인의 손을 잡고 울며 왈, 이 산에 산제하고 나를 낳았다는 말이 적실하다면, 산신은 이러한 연유를 알 것이련마는 산신도 무정하구나. 부인이 말 듣고 목이 메어 말을 못 하거늘 충렬이 위로한대 이윽고 진정하여, 충렬을 앞세우고 번양수를 건너 회수 가에 다르니, 날이 임우서 산에 걸려 있고, 원촌에 전역이 나고, 청강에 노닐던 물새는 양류 속에 날아들고, 청천에 뜬 가마
구는 운간에 울어들고, 해상을 바라보니 원포에 가는 돛대 저문 안개에 떠 있고, 강촌에 이적 소리 가는 비 속에 흩날렸다. 슬픈 마음 진정하고 충렬의 손을 잡고 물가에 배회하되, 건너갈 배 전혀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마지 아니하더라. 이때 정한담 최일귀가 유심의 집에 다가 불을 놓고 사이로 엿보더니, 일진 풍광에 화광이 일어나며 웅장한 고루거각에 일편 재물 없어졌으니 그 안의 든 사람이 씨도 없이 다 죽겠다 하고, 별당에 들어가 도사를 보고 다시 물어 왈, 전일 외 우리들이 대사를 이루고자 하였더니 선생의 말씀이 영웅이 있다 하여 근심하더니, 이제도 그러한지 다시 바라보옵소서. 도사 밖에 나와 천기를 살펴보고 방으로 들어와 하는 말이, 이제는 삼태성이 황성을 떠나 번양 회수에 빛쳤으니, 그 일이 수상한지라. 내 생각에 유심의 가권이 적소를 찾으려 하고 회수 가에 갔나 싶노라. 한담이 말 듣고 안마음에 생각하되, 화광이 그렇게 엄장
하니 일정 소멸하여 죽었다 하였더니, 일정 영웅이면 벗어났으리니 괴이치 아니하다 하고, 외당에 나와 날랜 군사 다섯 명을 속출하여 분부하되, 너희들이 바삐 이 밤에 번양 회수 가에 다달아, 내 전갈로 분부하되, 금명일 간에 어떠한 여인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물을 건너려 하거든 즉시 결박하여 물에 넣으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회수의 사공과 너희들을 낱낱이 죽이리라. 한대 나졸이 대경하여 회수에 나는 듯이 달려오니, 과연 물가에 인적이 있어 여인의 울음소리 들이거늘, 사공을 불러내어 한담의 하던 말을 낱낱이 이르니, 사공이 대경하여 대왈, 감히 대감의 명을 죽기로 어찌 피하오리이까 하고 소선 일척을 대어 대령하더라. 부인이 충렬을 데리고 건널 배 없어 물가에 주저하던 차에, 난데없이 소선 일척이 떠오며 부인을 청하거늘, 그 간계를 모르고 충렬을 이끌고 배에 올라 중류에 당하매, 일진광풍이 일어나며 양돛대 선창에 잡아지고 난데없는 적
선이 달려들어 부인을 잡아 매고, 무수한 적군들이 사면으로 달려들어 부인을 결박하여 적선에 축겨 달고, 충렬을 물 가운데 내던지니, 가련하다. 유 주부 천금 귀자가 백사장 가는 비 속에 무주 고혼이 되는구나. 만경창파 깊은 물은 풍랑이 일어나니, 일점 혈육 충렬의 백골인들 찾을손야. 육신인들 건질손야. 월색은 창망하고 수운은 적막하여, 명한 구름 속에 강신이 우는 소리 강산도 슬퍼하고 천신도 비감한데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삼 하랴. 이때 장부인이 도적에게 결박하여 배 안에 꺾어져 충렬을 찾은들 수중에 빠졌거든 대답할 수 있을손야. 한 번 불러 대답 않고 두 번 불러 소리 없으니, 천만 번을 남 부른들 소리 점점 사라지고, 사면에 있는 것은 흉악한 도적놈이라. 또한 노를 바삐 저어 부인을 재촉하여 소리 말고 가자 하는들, 부인이 망극하여 물에 빠져 죽고자 한들, 굵은 악한 배 닷줄로 연약한 간은 몸을 사면으로 얽었으니 빠질 길이 전혀 없고. 결항하여 죽자
한들 섬한 수족을 변틈없이 결박하였으니, 결항할 길 전혀 없어 도적의 배에 실려 하릴없이 재끌려 가니, 동방이 밝아오며 또한 고대 배를 매고 부인을 잡아내어 마상에 앉히고 말을 채질하여 달려가니, 세상에 불상한들 이보다 더하랴. 이때 회수 사공 마용이라 하는 놈이 세 아들을 두었으되 다 용맹이 과인하고 검술이 신묘한지라. 장자의 이름은 마철이요 일찍 상처하고 아직 취처치 못하였으니, 마침 때를 당하여 장부인의 얼굴을 보고, 월태는 감추었으나 화용은 늙지 아니하고 수색이 만면하여 골격이 수려하나 아직은 춘색이 그대로 있는지라. 대저 장부인이 충렬을 낳을 때에 옥황이 선녀로 하여금 천도를 갖다 먹였으니 연광은 반이나 되었으되 춘색은 불변이라. 그런 고로 회수 사공 놈이 충렬을 물에 넣고 부인은 데려다가 안해를 삼고자 하여 이런 변을 지었더라. 이때 장부인이 하릴없어 도적의 말에 실려 한 고대 다르니, 태산 같은 암석을 의지하여 수삼 가
마을이 있는지라. 새벽에 날이 밝을 때 초옥 속에 들어가니 큰 굴방이 있으되, 사면에 주석으로 싸고, 출입하는 문은 쳘편으로 지어 달고, 그 방에 부인을 가두니, 가련하다. 장부인이여, 팔자도 무쌍하고 신세도 망측하다. 수대 장상서 규중 여자로 유씨에게 출가하여 연광이 반이 넘도록 무자녀하다가 천행으로 자식 하나 두었더니, 멀리 연경에 가 군을 잃고 천리 해상에 자식을 잃었으되, 모진 목숨 죽지 못하고 도적놈에게 잡혀와 이 지경이 되었으니. 또다 분백사창 어디 두고 도적놈의 토굴방에 앉았으며, 천금 같은 자식 잃고 만금 같은 가군 이별하고, 나 혼자 살아서 구천에 돌아간들 유 주부를 어찌 보며, 인간에 살아 있은들 도적놈을 어찌 볼고. 무수히 통곡하니 기운이 진하여 토굴 속에 누웠더니, 비자 한 년이 석반을 가져왔거늘, 기진하여 먹지 못하고 도로 보내니, 또한 미음을 가지고 와서 먹기를 권하니, 부인이 안마음에 생각하되, 내 아들 충렬은 천신이 감동
하고 신령이 도운 바라 일후에 응당 귀히 될 것이니, 서이제 언경으로 가서 주부를 데리고 충렬을 볼진대 인제 죽으면 후회가 있으리라 하고 강작하여 일어앉아 미음을 마시니, 비자 반겨 적장에게 고한대, 도적이 대희하여 그날 밤에 토굴방에 들어가 예하고 앉으며 왈, 부인은 이러한 누지에 와 나 같은 이를 섬기고자 하니 진실로 감격하나이다. 부인이 그 말을 들으매 분심이 창천하나 신세를 생각하니 연약한 몸이 함정에 든 범 같은지라, 하릴없어 거짓 대답하여 왈, 팔자가 기박하여 수중에 죽게 되었더니 그대 날 같은 잔명을 구완하여 백년 동거하고자 하니 감격한 말씀을 어찌 다 측량하리요마는, 다만 미안한 일이 있으니 금월 초삼일은 내 부친 기일이라. 아무리 여자라도 부친의 제사날 당하여 어찌 길례를 지내오며, 또한 백년을 함께할진대 어찌 기일을 가리지 아니하리요. 도적이 그 말을 듣고 기쁜 마음 측량치 못하여 정답게 하는 말이, 진실로 그러하니
진대 장인의 제사날에 사위인들 잊지 아니하고 정성을 하리요 하고, 제물을 극진히 장만할 것이니 무더 염려 말고 안심하옵소서. 부인이 치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아니하고 반기하니, 도적이 감사하여 안심하고 안으로 들어가며 비자를 보내어 부인을 모시라 하니, 비자 들어와 곁에 누워 잠을 깊이 들어 인적이 고요하거늘, 부인이 그날 밤 삼경에 도망하여 나오더니, 방에 자는 비자 년이 문득 잠을 깨어 만져보니 부인이 간 데 없고 중문이 열렸거늘, 부인을 부르며 쫓아오거늘, 부인이 대경하여 거짓 앉아 뒤보는 체하고 비자를 꾸짖어 왈, 언제 고상하여 목이 마르기로 냉수를 많이 먹었더니 비가 불안하여 나와 뒤를 보거늘, 네 이런 잔말을 하여 집안을 놀래느냐. 비자가 무류하여 방으로 들어가고 부인도 속절없이 방으로 들어가 자더니, 그 밤을 지낸 후에, 이튿날 도적 한 이가 부인의 말에 속하여 노속을 데리고 제물을 장만하거늘, 부인이 목욕하고 방으로 들어와 사면
을 살펴보니, 동벽 위에 무언가 놓였거늘 떼어보니 기묘한 것이로다. 비목비석이요 비옥비금이라. 광채 찬란하여 일광을 가리고 운색이 휘황하여 안채가 쏘이는 중에, 천지조화를 모이 갈무리하고 강산 정기는 복판에 새겨 쓰니, 고금에 못 보던 옥함이라. 용궁의 조화가 아니면 천신의 수품이라. 전면을 살펴보니 황금 대자로 둘러 새겨 쓰되, 대명국 도원수 유충렬의 개탁이라 하였거늘, 부인이 옥함을 들고 대경실색하여 바음에 생각하되, 세상에 동성동명이 또 있단 말가. 진실로 내 아들 충렬의 기물일진대 어찌 이곳에 있는고 하며, 충렬아, 네 옥함은 여기 있다마는 너는 어디 가고 네 기물을 모르느냐. 옥함을 곳 체 씩씩 써서 그곳에 놓고 밤 들기를 기다리더니, 밤이 당하매 도적 한 이가 제물을 많이 장만하여 부인의 방에 들어왔거늘, 부인이 받아 차례로 진설하였다가 자야 반을 지낸 후에 제사를 파하고 음복한 후에 각기 잠을 자는 새, 도적과 노속들과 종
일토록 피곤하여 기진하여 다 잠이 들었거늘, 부인이 옥함을 서여 행장에 깊이 싸 가지고 밖에 나와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갓 없이 도망할 제, 한 고대 다르니 날이 임우 밝으며 큰 길에 내닿거늘, 행인에게 길을 물은즉 영릉관 대로라 하거늘, 주점에 들어가 대당에 다다르니 앞에 큰 물이 있고, 또한 풍랑은 도천하며 창파는 만경이라. 사고무인 적막한 데 청산만 푸르러 있고, 십 리 장강 비낀 물가에 구진 비는 무슨 일고. 무심한 저 백구는 사람 보고 놀라는 듯 이리저리 날아갈 제, 슬픈 마음 긴 한숨에 피 같은 저 눈물이 뚝 떨어져 백사장에 나려지니, 모래 위에 붉은 피가 만점도 피는 꽃인 듯하고, 무정한 저 물새는 춘국인가 날아들고, 유의한 청강 소리는 속절없이 목을 메치니 어찌 아니 한심하랴. 부인이 종일토록 행역에 기운이 곤하여 인가를 찾아가 밤을 지내고자 하나 배 없어 물가에 주저하더니, 이때 여서 날이 일모하고 흰 이슬이
의 명이 성하니 진퇴유곡이라. 하릴없어 물가에 찾아가니, 그 길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산곡 사이로 연이어 있거늘, 길을 잃지 아니하고 점점 들어가니, 무인 적막한 데 다만 들리는 이두견 접동 울음소리와 슬픈 원성이 소리뿐이로다. 청임을 더욱 찾아 바간수를 밟아가니, 창망한 달빛 속에 수간 초옥이 보이거늘 반기어 급히 들어가니, 시문에 개가 짖으며 한 노구 문밖에 나오거늘, 노구 보고 예를 한대 노구 답례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하니, 부인이 들어가 앉으며 살펴보니 사면에 여복이 없고 남복만 걸려 있고, 또한 옆 방으로서 남정 소리 나거늘, 심신이 불안하여 좌불안석이라. 석반을 먹은 후에 노구 할매 문왈, 그대는 뉘 집 부인이관대 어찌 혼자 이 고대 왔나이까. 부인이 대왈, 나는 본디 황성 사람으로 친정에 갔다가 해상에서 수적을 만나 명을 도망하여 이 고대 왔나이다. 노구 이 말 듣고 옆 방으로 들어가 자식에게 일러 왈, 저 여인의 말을 들으니 가장 고이하도
다. 수일 전에 들으니 석장동 당질 놈이 회수 사공 하다가 금월 초에 해상에서 한 부인을 얻어 백년 동거하고자 한다더니, 저 여인의 말을 들으니 수적을 만나 도망하여 왔다 하니 정녕 당질 놈이 어든 제집이라. 바삐 이 밤 삼경에 석장동을 득달하여 마철을 보고 데려다가 이 집 잃지 말라 하는데, 노구 자식이 말을 듣고 급히 후원에 들어가 말 한 필 내어 타고 바삐 채질하여 나서니, 본디 이 말은 천리마라 순식간에 석장동에 당도하였는지라. 이때 장부인이 행역이 곤하여 노구 방에 잠을 깊이 들었더니, 비몽간에 한 노옹이 언연히 들어와 부인 곁에 앉으며 왈, 금야에 대변이 날 것이니 부인은 무슨 잠을 자시나이까. 급히 일어나 동산에 올라가 은신하였다가 변이 일어나거든 바삐 물가에 내려가면, 일엽 표주 물가에 있을 것이니 그 배를 타고 급히 환을 면하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천금 귀체를 안보하기 어려울지라 하고 사라져 없거늘, 놀라 깨어나니 남가
일몽이라. 급히 일어나 보니 노구도 간 데 없거늘, 행장을 옆에 끼고 동산에 올라가 은신하고 동정을 살펴보니, 과연 남으로서 일성 방포 소리 나며 화광이 충천하는 중에, 무수한 도적이 사면으로 에워싸고, 한 도적이 함성하여 왈, 그 제집이 여기 있느냐 하는 소리 산곡이 진동하니, 부인이 대경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고 천지도지 동산을 넘어 물가에 다르니, 사고무인 적막한 데 난데없는 일엽 표주 물에 매여 있으며, 배 가운데 일개 선녀가 선창 밖에 나서며 부인을 재촉하여 배 안에 들라 하니, 부인이 창황 중에 배에 올라 선녀를 보니, 머리 위에 옥연화를 꽂고 손에는 봉미선을 들고 청의홍상에 백옥패를 찼으니 진짓 선녀요 인간 사람 아니로다. 부인이 황송하여 국궁배례하여 왈, 박명한 천첩을 이때 구완하니 선녀의 깊은 은덕을 어찌 다 갚으리이까. 선녀 대왈, 소녀는 남해 용왕 장녀옵더니, 금일에 부왕이 분부하시기를 대명국 유충렬의 모 장부인이 금야에 도적의
변을 볼 것이니 네 바삐 가 구완하라 하시기로 왔사오니, 부인의 명은 상제도 아는 바라 소녀 같은 계집이야 무슨 은혜 있다 하리이까. 부인이 상제께 치하할 제 맞지 못하여, 도적이 벌써 물가에 다달아 방포 일성에 난데없는 화광은 강수가 끓는 듯하고, 일척 소선이 양돛을 높이 달아 살같이 달려드니, 부인의 탄 배에서 두어 발 남은지라. 적선 중에서 일원 도적이 창검을 높이 들고 선창을 두드리며 함성하는 말이, 네 이 년 어디로 갈다. 천신이 아니어든 물속으로 들어갈까. 지 말고 게 있거라. 내 호통한 소리에 나는 새라도 떨어지고 닫는 짐생도 못 가거든, 요망한 계집이 어디로 가려 하느냐. 이리타시 소리하니, 배 가운데 있는 부인의 혼백이 있을손야. 창황 중에 돌아보니 도적의 배가 선창으로 달려드니, 부인이 하릴없어 통곡하며 하는 말이, 무지한 도적놈아, 나는 남경 유 주부의 안해니라. 간신의 참소를 만나 이 지경이 되었으니 네 안해 될 수 있느냐. 차
라리 물에 빠져 청백 고혼이 되리라. 도적이 말 듣고 분심이 창천하여 창검으로 내리칠 제, 부인의 탄 배가 거의 잡히게 되었더니, 난데없는 광풍이 동남으로 일어나며 백사장 싸인 돌이 풍편에 흩날려 비오듯이 떨어지니, 만경창파 깊은 물이 풍랑이 도도하여 벽력 같이 내리지니, 강산이 두렵거든 도적놈의 일엽 주가 제여이 뗠손야. 풍랑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며 적선의 양돛대가 부러져 물 가운데 내려지니, 천하 항장사라도 해상에 배를 타고 가자 한들 돛대가 없으니 어디로 가리요. 적선은 하릴없어 빈 배만 둥둥 떠 있고, 부인의 일엽 주는 용왕의 포주라, 바람 분들 파선할손야. 범 중류에서 높이 떠 살같이 달아갈 제, 그 배 앞 편 고요하여 창파는 잔잔하고 월색은 은은한데, 옥황이 분부하여 용왕이 주신 배이거든 염려가 있을손야. 순식간에 배를 언덕에 대이고 부인을 인도하여 암상에 내린 후, 부인이 정신을 진정하여 무수히 치사하고 행장을 간수하여 물가로
올라갈 제 기운이 진하여 촌보도 못 갈 듯하더라. 종일토록 가다가 한 고대 다르니, 산천은 수려하고 기령이 단정하니, 이 땅은 천덕산 할인동이라. 그곳에 당도하매 날이 또한 저물거늘, 부인이 피곤하여 물가에 쉬어 앉아 잠간 졸더니, 전일 현몽하던 노옹이 부인을 깨워 왈, 부인은 악이 다 지났으니 이 산곡으로 들어가면 자연 구할 사람이 있을 것이니 바삐 가라. 하거늘 놀라 깨어보니 청산은 울하고 새벽이 진하는지라. 일어나 찾아 들어갈 제, 백옥 같은 고운 수족으로 험한 산곡 길을 발 벗고 들어가니, 모진 돌에 치이며 모진 남에 도채이며 열 발가락이 하나도 성한 데 없어 유혈이 낭자하고 알신이 흉측하니, 세상이 귀찮은지라. 월태 황용 고운 얼굴 수심이 만면하여 피골이 상연하여 살 마음이 전혀 없어 죽을 마음만 간절하다. 슬피 앉아 우는 말이, 연경을 가자 하니 연경이 사만 오천 육백 리라. 여자의 일신이 천산만수를 어찌 가며, 며칠을 못 하
여 이런 변이 당하는데 연경으로 가다가는 내 신세 혜절하고 내 목숨 살 수 없겠다. 차라리 이 고대서 죽어 백골이나 고향으로 흘러갈까. 나문한 백이라도 황성을 다시 보리라. 행장을 끌어 옥함을 내어 놓고, 비단 수건에 주홍 글자로 새겨 쓰되, 모년 모월 모일에 대명국 동성문 안에 사는 유충렬 모 장씨는 옥함을 내 아들 충렬에게 전하노라. 죽은 혼백이라도 받아보라. 이리 새겨 수건으로 옥함을 매어 물속에 넣고, 대성통곡하며 초매를 무름씌고 물에 빠져 죽으려 할 제, 산곡 사이로 어떠한 여인이 동이를 옆에 끼고 금간수에서 물을 길다가 부인을 보고 급히 내려와 말유하여 암상에 앉히고 문왈, 부인은 무슨 일로 이러하신고. 저 집으로 가자 하거늘, 부인이 문득 노인이 선몽하던 말을 생각하고 따라가니, 암상 석경 사이에 수간 초옥이 정교한데, 채운이 어리어 쓰니 군자 사는 데요 신선 있는 곳이로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갈건야복은 벽상에 걸려 있
고, 만권 서책은 안상에 놓았으니, 부인의 마음이 반갑고 안정하여, 고상하던 전후 말과 연경을 찾아가다가 중로에서 봉변하던 말을 낱낱이 고한대, 주인도 낙루하고 손도 슬피 우니 그 아니 가련한가. 원내 이 집은 대명국 성종황제 때에 벼슬하던 이인학의 아들 이처사의 집이니, 인학의 모친은 유 주부의 종숙모라 이별한 지 적년이라. 처사는 마음이 청백하고 행실이 표치하여 벼슬을 하다가 하직하고 산중에 들어와 농업에 힘쓰며 학업을 일삼더니, 심양강 오류촌에 도처사의 행실이요 부춘산 칠리탄에 엄자릉의 절개로다. 세상 공명은 장자방이 벽곡하고 인간 부귀는 소태부가 산금하니, 만고의 일인이요 일대의 하나이라. 뜻밖에 부인의 말을 듣고 대경하여 중당에 맞아 예를 마친 후에 전후 수말을 다 마치고 낙루하여 왈, 주부 처숙을 이별한 지 적년이라. 그 사이 인사가 변하여 이 지경이 될 줄 어찌 알리요. 서로 울며 마음을 위로하여 음식 거처를 편히 공양
하니 부인의 일신은 무량하나, 다만 흉중에 맺힌 한이 종시 떠나지 아니하여 세월을 보내더라. 회사정에 행봉대인하고 옥문관에 적거 노자 상하다. 각설이라. 이때 충렬은 모친을 잃고 물에 빠져 살 길이 없어 떠내려가더니, 문득 두 발이 닿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물 속에 큰 바위라. 그 위에 올라앉아 하늘을 우러러 어미를 찾더니 간 데 없고, 사면을 돌아보니 청산은 울하고 다만 들리는 이 물새 소리뿐이로다. 강천에 낭자한 원성이 소리 삼경에 슬피 우니, 충렬이 통곡하며 섰더니, 이때 남경 장사들이 재물을 많이 싣고 북견으로 떠나갈 제, 회수에 배를 놓아 범 중류 내려가더니, 처량한 울음소리 풍편에 들이거늘, 서인들이 고이하여 배를 바삐 저어 우는 곳을 찾아가니, 과연 일 동자가 물에서 슬피 울거늘, 급히 건져 주중에 놓고 연고를 물은즉, 해상에서 수적을 만나 어미를 잃고 우는이다. 선인들이 비감하여 물가에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