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어느 옛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직 아무도 자살자 자신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적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자살자의 자존심이나 혹은 자신에 대한 심리적 흥미의 부족 때문이리라. 나는 자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가운데 분명히 이 심리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내가 자살하는 동기는 굳이 자네에게 전하지 않아도 좋다. 르니에는 그의 단편 속에 어느 자살자를 그리고 있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를 자기 자신도 모른다. 자네는 신문의 사회면 기사 따위에서 생활고라느니 병고라느니, 혹은 또 정신적 고통이라느니 갖가지 자살의 동기를 발견하리라.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동기의 전부가 아니다. 그뿐 아니라 대개는 동기에 이르는 도정(道程)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자살자는 대체로 르니에가 그린 것처럼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를 모르는 법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행위할 때처럼 복잡한 동기가 들어 있다. 다만 적어도 내 경우는 그저 어렴풋한 불안이다. 무언가 내 장래에 대한 그저 어렴풋한 불안이다. 자네는 어쩌면 내 말을 미덥게 여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십 년에 걸친 내 경험은,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가까운 처지에 있지 않은 한, 내 말은 바람 가운데의 노래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왔다. 그러니 나는 자네를 탓하지 않는다. ……

나는 이 두 해 남짓 동안은 죽을 일만 줄곧 생각해 왔다. 내가 사무치는 마음으로 마인렌더를 읽은 것도 이 사이의 일이다. 마인렌더는 추상적인 말로 솜씨 있게 죽음을 향하는 도정을 그려 두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같은 것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족들에 대한 동정 따위는 이러한 욕망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 역시 자네에게는 「Inhuman」(비인간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리라. 허나 만약 비인간적이라 한다면, 나는 한 면으로는 비인간적이다.

나는 무엇이든 정직하게 적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나는 내 장래에 대한 어렴풋한 불안도 해부했다. 그것은 내 「어느 바보의 일생」 속에 대체로 다하였다고 여기고 있다. 다만 나에게 미친 사회적 조건――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봉건시대의 일만은 일부러 그 안에도 적지 않았다. 어찌하여 또 일부러 적지 않았는가 하면, 우리 인간은 오늘날에도 적잖이 봉건시대의 그림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 있는 무대 바깥의 배경이며 조명이며 등장인물의――대개는 내 행동을 적으려 했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 조건 따위는 그 사회적 조건 안에 있는 나 자신에게 분명히 보일지 어떨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액사(縊死)는 물론 이 목적에 가장 들어맞는 수단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목매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사치스럽게도 미적 혐오를 느꼈다. (나는 어느 여인을 사랑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의 글씨가 서툴렀다는 이유로 갑자기 사랑을 잃은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익사(溺死) 역시 헤엄을 칠 줄 아는 나에게는 도저히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만일 성취된다 하더라도 액사보다는 고통이 많을 것이다. 역사(轢死)도 나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미적 혐오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권총이나 칼을 쓰는 죽음은 내 손이 떨리는 탓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빌딩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역시 보기 흉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러한 사정으로 약품을 써서 죽기로 하였다. 약품을 써서 죽는 것은 액사하는 것보다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액사하는 것보다 미적 혐오를 주지 않는 데다 다시 깨어날 위험이 없다는 이로움이 있다. 다만 이 약품을 구하는 일은 물론 나에게 쉽지 않다. 나는 마음속으로 자살하기로 정하고는, 온갖 기회를 이용해 이 약품을 손에 넣으려 했다. 동시에 또 독물학의 지식을 얻으려 했다.

그다음으로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자살할 장소이다. 내 가족들은 내가 죽은 뒤 내 유산에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유산은 백 평의 땅과 내 집과 내 저작권과 내 저금 이천 엔이 있는 것이 전부이다. 나는 내가 자살한 까닭에 내 집이 팔리지 않을 것을 마음에 걸려 했다. 따라서 별장 하나라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자네는 이러한 내 말에 어딘가 우스움을 느끼리라. 나 또한 지금은 나 자신의 말에 어딘가 우스움을 느끼고 있다. 다만 이 일을 생각했을 때에는 사실상 사무치게 불편을 느꼈다. 이 불편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나는 그저 가족들 외에 되도록 시신을 보이지 않고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수단을 정한 뒤에도 절반쯤은 삶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니 죽음으로 뛰어들기 위한 스프링보드를 필요로 하였다. (나는 서양인들이 믿는 것처럼 자살하는 것을 죄악이라 여기고 있지 않다. 부처는 실로 「아함경(阿含經)」 속에서 그의 제자의 자살을 긍정하고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는 이 긍정에도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따위 말을 덧붙이리라. 그러나 제삼자의 눈에 「부득이한」 경우라 하는 것은, 빤히 보면서 더 비참하게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비상한 변고의 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다 자살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 「부득이한 경우」일 때에만 행하는 법이다. 그 앞에 결연히 자살하는 자는 오히려 용기가 풍부해야 마땅하다.) 이 스프링보드의 구실에 들어맞는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여인이다. 클라이스트는 자살하기 전에 거듭하여 그의 친구에게 (남자) 동행이 되어 줄 것을 권유했다. 또 라신도 몰리에르나 부알로와 함께 센 강에 몸을 던지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불행하게도 이러한 친구를 가지지 못하였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여인은 나와 함께 죽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는 이루지 못할 의논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스프링보드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그것은 함께 죽어 줄 사람이 없는 데에 절망한 까닭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츰 감상적이 되어 간 나는 비록 사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 아내를 보살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또 나 혼자 자살하는 것은 둘이 함께 자살하는 것보다 한결 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또 내 자살할 때를 자유로이 고를 수 있다는 편익도 있었음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궁리한 것은 가족들에게 알아채지 못하게 솜씨 좋게 자살하는 것이다. 이는 몇 달 준비한 끝에 어쨌든 어떤 자신에 다다랐다. (그것의 세부에 걸친 일은,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적을 수가 없다. 다만 여기에 적었다 한들, 법률상의 자살방조죄(自殺幇助罪)만큼 우스운 죄명은 없다. 만약 이 법률을 적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범죄인을 더하게 될 것인가. 약국이며 총포점이며 면도칼 가게는 가령 「모른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말이나 표정에 우리의 의지가 드러나는 한, 적잖은 혐의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사회나 법률은 그것들 자체가 자살방조죄를 구성하고 있다. 끝으로 이 범죄인들은 대개 더없이 다정한 심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차분하게 이 준비를 마치고, 지금은 그저 죽음과 노닐고 있다. 이 앞으로의 내 마음은 대체로 마인렌더의 말과 가까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인간이라는 짐승(人間獸)인 까닭에 동물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른바 생활력이라 하는 것은 실은 동물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나 또한 인간이라는 짐승의 한 마리이다. 그러나 음식과 색(食色)에도 싫증을 느끼는 것을 보면, 차츰 동물력을 잃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얼음처럼 맑게 비치는, 병적인 신경의 세계이다. 나는 어젯밤 어느 매소부(賣笑婦)와 함께 그녀의 임금(!) 이야기를 하면서, 사무치게 「살기 위해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가련함을 느꼈다. 만약 스스로 달가이 영원한 잠으로 들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행복은 아닐지라도 평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언제 결연히 자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자연은 이러한 나에게 평소보다 한층 더 아름답다. 자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 또 자살하려 하는 내 모순을 비웃을 것이다. 허나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내 임종(末期)의 눈에 비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보고, 사랑하고, 또 이해하였다. 그것만은 괴로움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적잖이 나에게는 만족이다. 부디 이 편지는 내가 죽은 뒤에도 몇 해 동안은 공표하지 않고 두어 주게나. 나는 어쩌면 병사한 것처럼 자살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나는 엠페도클레스의 전기를 읽고서, 스스로를 신으로 삼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오랜 것인가를 느꼈다. 내 수기는 의식하고 있는 한 스스로를 신으로 삼지 않은 것이다. 아니, 스스로를 한낱 범부(大凡下)의 한 사람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자네는 그 보리수 아래에서 「에트나의 엠페도클레스」를 두고 논했던 이십 년 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시절에는 스스로를 신으로 삼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다.

(쇼와 2년 7월,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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