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금춘회(金春会)의 “스미다가와(隅田川)”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어느 이른 봄밤, 후지미초(富士見町) 호소카와 후작의 노(能) 무대로 금춘회(金春会)의 공연을 보러 갔다. 아니, 정확히는 사쿠라마 킨타로의 “스미다가와(隅田川)”를 보러 갔다고 해야 옳다.
내가 사지키(桟敷, 귀빈석)로 들어선 것은 “하나카고(花筐)”인가 뭔가가 끝난 뒤, “스미다가와”가 아직 시작되기 전이었다. 나는 어떤 공연을 보러 가더라도, 마루 관람석을 가득 채운 관객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난 적이 없다. 물론 내 친구가 쓴 새 연극은 예외다. 그런 공연을 볼 때는 대체로 관객 따위는 잊고 만다. 같은 칸에 앉아 자기 자신의 연극을 바라보는 작가야말로 관객보다 훨씬 볼 만한 구경거리이기 때문이다. 뭐, 그런 건 어떻게 되든 좋다. 어쨌든 공연의 관객은 공연 자체보다 재미있기 마련인데, 노 역시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요즘 노 관객 사이에는 아가씨들이 많이 섞여 있다. 그 아가씨들은 한 명 빠짐없이, 작은 하품을 억지로 참으면서 장엄한 위의(威儀)를 갖추고 앉아 있다. 게다가 그날 밤 관객은 아가씨들이 많을 뿐이 아니었다. 내 좌우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프랑스 대사 클로델을 비롯해 남녀 서양인이 대여섯 명, 오페라 글라스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스미다가와”를 보기도 전에, 도미에의 풍자화 한 장 같은 이 관객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했다. 물론 나 자신도 그 풍자화 속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각오한 일이다.
“스미다가와”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이 ‘조용히’는 아무 생각 없이 붙이는 진부한 형용사가 아니다. “저는 무사시 나라 스미다가와의 뱃사공이옵니다”라는 호쇼 신(宝生新)의 대사와 함께, 멀리 아득히 펼쳐지는 변방의 큰 강이 눈앞에 떠오르는 그 순간이 어찌나 고요하게 완성되는지. 나는 바람 한 줄기 속에서 먹잇감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희미한 전율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실은 우타이(謡, 노의 노래)도 배우지 못했고 노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믿을 수 없는 감상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짧은 신의 대사는 분명 나에게 전율을 안겨 주었다. 그뿐 아니라 내 경험으로는, 그것은 예술적 흥분의 도래를 미리 알리는 봉화(烽火)였다. 이것만은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는 젊은 여행자 한 명이 천천히 하시가카리(橋がかり, 등장 통로)를 걸어 나왔다. 이 배우가 어떤 노 배우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정말이지 “구름과 안개 지나, 저 멀리 산 너머 / 고개고개 길을 따라, 나라나라 지나서” 온 것 같은, 살집이 없는 청년이었다. 호쇼 신의 뱃사공은 당당하다. 그토록 묘하게 사내다운 풍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뱃사공이 예로부터 스미다가와에서 배를 저었을 리 없다. 그러나 그 당당한 뱃사공을 부조화로 느끼지 않는 것은, 가부키(歌舞伎)에서 달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부조화로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노는 가부키보다 한층 더 사실(寫實)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현실감이 부족해도 그것은 순식간에 시(詩)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현실감의 과잉만은 오히려 무대의 일루전을 깨뜨리는 힘을 지닌다. 나는 이 야윈 여행자의 모습에서 약간의 현실감 과잉을 느꼈다. 쉽게 말하자면, 그 여행자는 나리히라(業平) 이래 스미다가와의 나루를 건너는 물에도 개 시체가 떠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살짝 떠올리게 했다. 이는 물론 여행자 역을 맡은 노 배우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 역을 맡게 된 박명(薄命)의 탓이다. 나 자신도 마른 편이라, 불만스러우면서도 여행자에게 크게 동정했다.
그렇다고 이 여행자가 야위었을망정, 평범한 여행자는 아니다. 스미다가와의 나루를 찾아온 쓸쓸한 수많은 여행자를 한 몸에 대표하는 명예로운 역이다. 게다가 “도읍에서 여성 모노구루이(女物狂ひ, 실성한 여인)가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 관객에게 알리러 온 예술상의 선구자 역이기도 하다. “잠시, 뒤쪽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인데 무슨 일이오”라는 뱃사공의 대사와 함께, 나는 무사시노(武蔵野)의 풀이 물결치는 사이로 한 줄기 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옛날의 햇빛이 그 길 저편에, 어렴풋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비추고 있다. 도읍에서 내려오고 있는 실성한 여인도 그 속에 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광녀(狂女)는 어느새 전등 불빛이 밝은 하시가카리를 사뿐사뿐 걸어 무대 위로 나오고 있었다.
광녀는 사쿠라마 킨타로이다. 니노마쓰(二の松, 하시가카리의 두 번째 소나무)에 이른 킨타로의 모습을 보고, 나는 아름다운 미치광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검은 칠을 한 삿갓이 희미하게 빛나고, 고오모테(小面, 젊은 여성 가면)에 은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옅은 청색 의상이 가냘프게 흘러내린 모습은, 다이마데라(当麻寺)의 두루마리 그림 속 여인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광녀는 “진실로, 사람의 부모 마음이란”이라며 천천히 탄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도, 목소리는 선뜻 설명하기 어렵다. 억지로 설명하자면, 화사하면서도 고요히 사무치는 목소리라고 할까. 내 옆에 앉아 있던 영국인도 아내와 얼굴을 마주 보며 “원더풀 보이스”인가 뭔가 했다. 목소리만은 외국인에게도 전해지는 모양이다. 시오리(しをり, 소매로 눈가를 가리는 울음 동작)의 섬세함도, 고오모테의 원망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표정도. 나는 다시 한번 셔츠 아래로 희미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광녀는 지우타이(地謡, 코러스)의 목소리 속에서 간신히 스미다가와의 나루에 다다랐다. 그러나 풍채 좋은 뱃사공은 그냥 배에 태워 주려 하지 않는다. “도읍 사람이라 하고, 미치광이라 하거든, 재미있게 미친 모습을 보여주시오” 하며 제멋대로인 주문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 두 사람의 문답 속에서 천재의 비극을 발견했다. 천재도 이 광녀처럼 무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그런 정열을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길을 걷는 여행자조차 냉연히 그 고통을 외면한다. 하물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것 외에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행복한 천하의 뱃사공은 마치 천재의 정열을 개 곡예 정도로 착각한 듯, 삼천 년 전부터 태연히 “미친 모습을 보여주시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천재도 입에 풀칠하려면 고통을 구경거리로 팔 수밖에 없다. 광녀는, 광녀도 이제는 뱃사공 앞에서 숨겨 온 기예의 춤을 선보이고 있다.
광녀의 춤도 아름다웠다. 특히 흰 버선을 신은 발이 어쩌면 그리도 절묘하게 움직이던지. 그 발만은 지금 떠올려도 참으로 섬뜩한 물건이다. 나는 실제로 그 발에 손을 대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적어도 흰 버선을 벗긴 채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그 발은 평범한 신체의 일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분명 발바닥 주름 사이에 가느다란 눈이라도 달려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도 모든 비평가처럼 “그러나”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굳이 흠을 잡자면, 킨타로의 예능은 약간 너무 아름다운 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기교 과잉의 폐(繊巧の病)를 낳을 위험이 있다. 옛 명인들은 결코 이 경지에 안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창고(蒼古)한 깊이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배에 태워 주소서 뱃사공이여, 제발 부탁이오니 태워 주소서”라는 지우타이의 노랫소리가 잦아들자, 광녀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버티고 선 뱃사공 앞에 사라질 듯 합장했다. 나는 선대 슈초 이래 이름난 온나가타(女形, 가부키의 여성 전문 배우)도 조금은 보아왔다. 그러나 아직 이때의 킨타로만큼 아름답다고 느낀 기억은 없다. 창고한 옛 정취를 얻는 것이야 물론 좋은 일이겠지. 그러나 얻지 못하더라도, 이 정도 아름다움에 다다른다면 적어도 부족하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의 “스미다가와”를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은 쓸데없는 말만 낭비할 뿐이다. 과연 코카타(子役, 아역)를 쓰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외한인 나로서는 논할 자격도 없거니와, 논할 흥미도 없다. 다만 나는 우메와카마루(梅若丸)의 유령 같은 것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았다. 아니, 실은 이런 경우에도 굳이 코카타를 사용한 것은 어떤 기회에 미소년을 한 명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던 아시카가 시대(足利時代)의 유풍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스미다가와”에서 아름다운 것을 본 만족감을 느꼈다. 그것만 말하면 충분하다.
굳이 덧붙이자면, 처음부터 흥미를 가졌던 노 관객 이야기다. 버나드 쇼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감상하려면 드러누운 채로 귀만 열어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런 충고가 필요한 것은 저 먼 서양의 미개국뿐이다. 일본인은 모두 배우지 않아도 감상의 도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날 밤도 노 관객은 대부분 우타이본(謡本, 노의 대본집)을 앞에 펼쳐 놓은 채로, 좀처럼 무대 따위는 바라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