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바닷안개
아리시마 다케오
남쪽 바다에서 끓어올라 혼슈의 동해안을 적시며 북으로 달리는 흑조(黒潮, 쿠로시오)가, 쓰가루 곶에서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흘러간다. 가라후토(사할린)의 얼음에 갇혀 있던 바닷물이, 차고 묵직한 한 줄기 흐름이 되어, 네무로와 구시로 앞바다를 스치듯 지나 서남쪽으로 돌진해 온다. 그리하여 이 두 해류가 부딪히는 곳에 짙은 안개가 인다. 북쪽 사람들이 말하는 “바닷안개”란 그것이다.
유월의 어느 날, 해 질 무렵에 무로란을 떠나 하코다테로 향하는, 기선이라 부르기에도 무엇한 작은 기선 한 척이 있었다.
그는 그 갑판에 서 있었다. 한차례 휘몰아쳐 내려간 서풍 너머로 해가 지려는 참이었다. 고마가다케는 구름에 가려 물론 보이지 않는다. 레분게 고개의 뾰족한 봉우리마저,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흐트러진 초여름 구름의 한 자락인가 싶을 만큼 어슴푸레했다. 해는 떼지어 일어나 물어뜯으려 드는 구름을, 빛의 채찍으로 후려 가르며 지고 있었다. 채찍 맞은 구름은 눈이 부실 만큼 핏빛을 뒤집어쓴다. 남아도는 핏빛은, 두려워 흩어져 물러난 무수한 비늘구름을 노랗게 붉게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해도 이윽고 지쳐, 떼구름의 핏빛 연기를 제 몸에도 받아 새빨갛게 달궈진 구리처럼 되었다. 단단히 쌓아 올린 구름의 주검 사이를, 단말마의 고통에 빙글빙글 팽이처럼 돌면서 가라앉아 간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음을 서두르듯이 해는 밤을 서두른다. 그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응시했다.
해는 보는 사이 조금 모습을 감추었다. 보는 사이 절반이 가렸다. 보는 사이 완전히 사라졌다. 바다는 푸르고 아득하게 한 빛으로 푸르러졌다. 어렴풋한 노란빛의 느릿한 숨결을 이어가며 하늘 또한 바다의 한탄을 전했다.
그 순간 만상은 소리를 끊었다. 황혼은 무성(無聲)이다. 그곳에는 외쳐 부르는 낮도 없다. 또 속삭이는 밤도 없다. 임종의 두려운 침묵이 하늘과 바다를 거느렸다. 하늘과 바다가 침묵 그 자체가 되었다.
기관 소음이라 할 것인가. 그런 것은 소리가 아니다, 하물며 음성이 아니다. 해는 영원히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으리라. 그는 몸을 떨며 그렇게 생각했다.
왔던 쪽을 돌아보니 다이코쿠 섬 등대의 불빛만이, 성자의 열반 같은 광경 속에서, 잔망스레 사라졌다 빛났다 하고 있다. 무로란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 등대 불빛마저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밤이다. 귀를 기울이면 스르르 멀어져 버리는 밤의 속삭임이 바다에서도 하늘에서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또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밤, 의지 같기도 하고 운명 같기도 한 밤, 그 밤이 영원히 자기를 둘러싸는구나 생각하니, 그는 몸이 굳은 채 선수루(船首樓)에 그대로 서서 시간이 흐르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 같은 낮이면서도 시간이 나아갈수록 밝음이 더해 가듯, 같은 밤이면서도 밤이 깊어 갈수록 어둠은 깊어 간다. 주위에는 인기척이 끊겼다. 어찌하면 승객들은 배 밑바닥에서 그토록 편히 잠들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 해가 떠올랐다 하여 내일 다시 해가 떠오를 것이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는가. 조금 전 해가 지는 것을 본 자는 해가 죽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태연하다. 대체 그들은 무엇에 저마다의 운명을 맡기고 있는 것인가. 신에게인가. 부처에게인가. 무지에게인가. 그들은 내일 아침 이 배가 하코다테에 닿으리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본 일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들보다 더 용감하고 안심한 채, 한결같이 소리도 내지 않고 잠들어 있다.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그는 밤이슬에 젖은 어깨를 두드리면서, 함교 쪽을 돌아보았다. 캄캄한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잠들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것은 선장이다. 그 사람은 밤의 음영을 입은 어렴풋한 자태를 움직이며 하늘을 우러러 육분의를 다루고 있었다. 그 또한 거기에 이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높아지기도 하고, 눈썹에 닿을 듯 낮아지기도 하는 밤하늘은, 무수한 별에 인광을 뿜으며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는 또 생각했다. 큰 바다 한가운데를 떠도는 작은 배를, 수천만 마일 저편에 있는 저 별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힘이 이 비천한 노역을 별에게 명한 것이다. 선장은 한 자루의 육분의로 별을 부리는 자신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 수백, 적어도 수십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가뿐히 그 어깨에 얹고 있다. 승객들 모두는, 선장의 머리에 깃든 수천 년에 걸친 인간 지혜의 축적에 온전히 신뢰하여, 한 점 의심도 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지혜를 믿는다, 이는 사람의 긍지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망설이는 자기는 당치도 않은 비겁자라 해야 마땅하다.
반 시간마다 쓸쓸한 종이 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배는 난류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그는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를 견디지 못해 뱃머리에서 선미 쪽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 놓인 손키에 몸을 기대고 서 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살며시 귀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시원함에 어루만져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돌연 그는 차가움을 얼굴에 느끼고, 어느새 빠져 있었던 선잠에서 눈을 떴다. 바람은 사르르 동쪽에서 선미를 거쳐 뱃머리로 불어 나가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몸서리가 일도록 식어 있었다. 보니 동쪽 하늘은 눈높이만큼 장막을 펼쳐 두른 듯 새카만 무엇으로 덮여 있었다. 해면이 갑자기 솟구친 것이 아닌가 싶은 그 너머에는 별 하나 빛나지 않았다. 그 검은 것은 시시각각 높이를 더하며 다가온다. 바람이 동풍으로 바뀌어 바닷안개가 덮쳐 오는 것이로구나 알아챘을 때에는, 그 검었던 것이 흑진주 같은 은회색으로 빛나며 두세 마장쯤 되는 거리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바다에 닿은 자락은, 바람에 부풀려지는 장막 자락처럼 펄럭이며, 악몽의 섬뜩함을 띠고 다가온다. 자꾸자꾸 다가온다. 돌연 바람에 찢겨 떨어진 짙은 안개의 한 덩어리가 그를 감쌌다. 그의 눈은 멀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곧장 뱃머리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는가 싶더니 두 번째 덩어리가 왔다. 그것도 지나갔다. 셋째, 넷째, 그것도 지나갔는가 싶기도 전에, 그는 마침내 숨이 막힐 듯한 차고 흰 무엇 속에 둘러싸여 버렸다. 눈앞에 둥글게 펼쳐져 있던 바다는 차차 둘레를 좁혀 가더니 끝내 눈앞 한 자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놀라 황급히 더듬듯 손키를 잡으니, 그것을 덮은 캔버스 천은 흠뻑 젖어 빳빳이 굳어 있었다. 돛대 끝에 내걸린 등불이 빠르게 흐려져, 다만 있는 듯 마는 듯한 둥근 빛으로 변해 버렸다.
그는 선장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그 머리에 깃든 수천 년에 걸친 인간 지혜의 축적에 매달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한 덩이 안개가 수천 년의 인간의 노력을 티끌처럼 짓밟아 버린 것이 아닌가. 이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선장은, 가슴을 졸이며 망연히, 현교 위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을 것이다.
잠시 동안 배는 별일 없이 항로를 잡고 나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서행으로 바뀐 것은 십 분도 지나지 않은 짧은 사이였다. 돌연 이 기이한 잿빛 어둠을 가르며, 시각을 알리는 종이 잇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휘몰아 지나가는 짙은 안개에 갇혀, 그 종소리는 음울하게 쓸쓸히 울려 퍼졌다.
배는 그렇게 경계하며 다시 십 분쯤 나아갔으나, 이윽고 그는 발 아래에서 프로펠러의 흔들림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뱃길이 멎은 선체는, 사흘 묵은 다도 찻잔처럼 섬뜩하게 흔들리는 채로 멈춰서, 파도에 따라 떠돌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하며 돌연 기적이 울려 퍼졌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울부짖음 같은 그 기적. 갈라지면서 울부짖고, 갈라지면서 울부짖다가, 울부짖기를 그치면 쓸쓸한 종이 다시 울려 이어진다.
그의 폐에는 공기보다도 더 많은 물기가 흘러드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정말로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옷깃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귀와 코는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해는 다시 태어나 오지 않는다, 그리 생각했던 그의 예감은 슬프게도 들어맞아 보였다. 그는 여러 남녀가 군맹(群盲, 눈먼 무리)처럼 더듬으며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가엾음을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기적이 배 안 사람들의 눈을 깨운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뜬 자들은 남김없이 갑판 위로 기어 올라왔다.
종소리와 기적 소리 사이로 모든 승객의 한탄과 호소의 음성이 거품 터지듯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닷안개는 동쪽 하늘로부터 밀려온다. 그가 타고 온 배는 안개의 큰 강 그 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한 잎의 병든 잎새에 지나지 않는다. 승객은 극도의 불안에 이르렀다. 화살보다도 빠르게 흘러가는데도, 짙은 안개의 끝은 언제 올지 가늠할 길이 없다. 광기 어린 흐느낌이 여인과 어린아이로부터 처참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장례 같은 쓸쓸한 종은 끊임없이 울린다. 모든 사람을 멀미하게 하지 않고는 두지 않으려는 듯, 배는 멎은 채 기우뚱 흔들린다.
그의 마음에는, 죽음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만 찾아드는 섬뜩한 체념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때 기적처럼 바람이 방향을 바꾸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고 있던 안개가 발목이 걸린 듯 잠깐 주춤한다 싶더니, 보는 사이 사람들의 눈이 어렴풋한 시력을 되찾았다. 하늘은 어슴푸레 밝아지고, 사람들의 몸 둘레에 작은 세상이 열려 갔다. 이윽고 멀리 높이 미소 짓는 듯한 푸른 하늘 한 조각이 바라보였다. 그러는가 싶은 사이에 바닷안개는 꿈에서 깨어나듯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황망한 마음보다도 더 황망하게.
안개가 걷히고 보니 밤은 이미 새어 있었다. 새파란 바다, 새파란 하늘, 그리고 새 아침의 해.
그러나 안개가 지나가는 것과 함께, 배의 우현에 덮어씌우듯 우뚝 솟은 에산의 깎아지른 절벽을 보았을 때에는, 선원도 승객도 “아!” 하고 혼이 빠진 채 그 자리에 굳어 섰다. 짙은 안개에 떠밀려 흐르는 사이 배는 알지 못하는 사이 이러한 위태로운 곳에 다다라 있었음을 선원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 분만 안개가 더 늦게 걷혔더라면! 배 자신이 마치 영혼이라도 지닌 듯 놀라 방향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이 악마 같은 깎아지른 절벽은 끝내 배를 물어뜯어 박살냈을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하코다테에 닻을 내린 기선의 트랩에서 승객들은 들뜬 채 웃고 떠들면서 뭍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은 듯, 그들은 태평히 눈을 뜬 채 신기할 것 없다는 양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그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 해를 우러르듯 해를 우러러보았다. 처음 하코다테를 보듯 하코다테를 바라보았다. 새 세계가 다시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