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옛날 어느 곳에 훌륭한 신사가 한 명 살았습니다. 가진 거라곤 구두주걱 하나와 빗 하나, 그게 전부였지요. 그 대신, 이 신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칼라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을 이야기는 바로 그 칼라에 관한 것이랍니다.
어느덧 칼라도 나이가 찼습니다. 슬슬 결혼을 해볼까 싶어졌죠. 그러던 어느 날, 빨랫감 속에서 우연히 양말 대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이런!” 칼라가 말했습니다. “지금껏 당신처럼 날씬하고 고상하면서 얌전하고 아름다운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드릴 수 없어요.” 양말 대님이 말했습니다.
“어디에 사십니까?” 칼라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양말 대님은 워낙 부끄럼이 많은지라, 그런 걸 대답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 싶었습니다.
“당신은 분명 허리띠겠죠,” 칼라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옷 안에 두르는 허리띠. 실용적인 데다 멋도 낸다는 걸 저도 잘 알지요. 귀여운 아가씨!”
“말 걸지 마세요.” 양말 대님이 말했습니다. “말 붙일 기회를 드린 적 없어요.”
“천만에요, 당신처럼 예쁘시다면,” 칼라가 말했습니다. “기회는 이미 충분하죠.”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양말 대님이 말했습니다. “당신 참 뻔뻔하시네요.”
“저는 엄연히 훌륭한 신사입니다,” 칼라가 말했습니다. “구두주걱과 빗도 갖고 있다고요!”
물론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구두주걱과 빗을 가진 건 칼라의 주인이었으니까요. 칼라가 허풍을 떤 것이었습니다.
“곁에 오지 마세요.” 양말 대님이 말했습니다. “이런 일에 익숙지 않거든요.”
“잘난 체하기는,” 칼라가 말했습니다.
그때 칼라는 빨랫감 속에서 꺼내졌습니다. 풀을 먹이고 의자 위에서 햇볕에 말린 뒤, 다림질 판 위에 눕혀졌습니다. 그러자 뜨거운 다리미가 찾아왔습니다.
“아주머니!” 칼라가 말했습니다. “사랑스러운 과부 아주머니. 저 이제 완전히 달아올랐어요. 딴 사람이 된 것 같다고요. 주름도 다 펴지고 이렇게 반듯해졌잖아요. 게다가 탄 구멍까지 하나 내주셨네요. 아, 뜨거워! 당신에게 청혼합니다!”
“흥, 넝마 주제에!” 다리미가 말하고는 칼라 위를 으스대며 지나갔습니다. 다리미는 자존심이 대단했거든요. 스스로를 기차를 끄는 기관차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요.
“넝마 주제에!” 다리미가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칼라 가장자리가 조금 해졌습니다. 이번엔 가위가 와서 해진 부분을 잘라내려 했습니다.
“어머, 어머!” 칼라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분명 일류 댄서시군요. 발이 어쩜 그렇게 잘 뻗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건 아직 본 적이 없어요. 세상 어느 누구도 당신을 흉내 낼 수 없겠죠.”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가위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백작 부인이 되셔도 손색이 없어요.” 칼라가 말했습니다. “저한테 있는 건 훌륭한 신사와 구두주걱과 빗뿐이지요. 여기에 백작령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청혼하는 거죠?” 가위가 말했습니다. 가위는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 기세에 그만 너무 크게 잘라버렸습니다. 결국 칼라는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자, 이렇게 됐으니 빗에게라도 청혼해야겠군. 귀여운 아가씨! 이빨이 어쩜 그렇게 가지런해요!” 칼라가 말했습니다. “지금껏 약혼이라는 걸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물론이죠.” 빗이 말했습니다. “이미 구두주걱 씨와 약혼했는걸요.”
“약혼이라고!” 칼라가 말했습니다. 이제 청혼할 상대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칼라는 결혼이란 걸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칼라는 제지 공장 넝마 상자 안에 들어왔습니다. 상자 안에는 넝마가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끼리, 나쁜 것은 나쁜 것끼리였죠. 모두 할 말이 넘쳤습니다. 그중에서도 칼라가 가장 많았습니다. 칼라는 대단한 허풍선이였으니까요.
“나한테는 연인이 산더미처럼 있었다고.” 칼라가 말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한시도 쉴 틈이 없었지. 그래도 난 엄연히 훌륭한 신사였어. 빳빳하게 풀 먹인 신사. 게다가 한 번도 쓴 적 없는 구두주걱과 빗까지 갖고 있었다고. 그때의 나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반듯이 접혀서 드러누워 있던 그 시절의 나 말이야.
그나저나, 첫 연인은 잊을 수가 없어. 그 사람은 정말이지 고상하고 상냥하고 예쁜 허리띠였거든. 나를 위해 빨래통 속까지 뛰어들었다니까. 맞아, 과부도 있었지. 그 사람은 완전히 달아올랐는데, 나는 그냥 놔뒀어. 새카맣게 될 때까지.
그다음이 일류 댄서야. 그 여자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데, 자, 봐봐,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잖아. 참 드센 여자였어. 그러다가 이번엔 내 빗까지 날 사랑하게 됐지. 그 사랑의 고통에 이빨이 죄다 빠져버렸다고. 이런 얘기라면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내가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저 양말 대님, 아니, 빨래통 속까지 뛰어들어온 그 허리띠야. 그건 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어. 생각해 보면, 이제 내가 하얀 종이가 되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그리하여 칼라는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넝마들도 모두 하얀 종이가 되었지요.
그런데 칼라가 된 하얀 종이가 뭔지 아세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하얀 종이, 바로 이 이야기가 인쇄된 종이랍니다. 칼라가 있지도 않은 일까지 터무니없이 허풍을 떨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이 사실을 잘 기억해 두고,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넝마 상자 속에 들어가 하얀 종이가 될지 모르거든요. 그것도 자기 이야기가, 아주 은밀한 이야기까지 인쇄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꼭 이 칼라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