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3

오후쿠라는 노파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저 같은 늙은이더러 무어라도 한마디 해 보라고 하셔도, 요즘 젊으신 분들 귀에 들려 드릴 만한 진귀하고 색다른 이야기는 없사옵니다. 그래도 오래 살다 보면, 저 한 사람에게만큼은 진귀하다 싶은 일이 아주 없지는 않더군요. 이것도 그런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옵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던 해, 문구 2년(1862년)이옵니다. 그 무렵 저희 집은 혼고 센다기사카 아래 마을, 누구나 아시는 국화 인형으로 이름난 당고 고개 아래에서 자그마한 술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그 고개에 경단을 구워 파는 찻집이 있었던 까닭에 당고 고개라는 이름이 남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오늘날과 달리 그 무렵의 네즈며 고마고메 일대는 무척이나 한적한 곳이어서, 저희가 살던 사카시타 마을에는 오가사와라 님의 큰 저택과 묘렌지라는 절, 그리고 하타모토 집이 일고여덟 채 있었고, 그 밖에는 마을집뿐이었사옵니다. 당고 고개 근방에는 화원도 있고 농가의 밭도 있고 하여, 오늘날의 변두리보다도 더 적적했지요.

그 묘렌지 앞에 아사이 소에몬이라는 낭인 무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오슈의 시라카와인지 니혼마쓰인지 어느 번에 속해 있었다는데, 무슨 일인가 있어 낭인이 되고는 칠팔 년 전에 에도로 올라와 부자(父子) 둘이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소에몬이라는 분은 그때 마흔너댓쯤이었고, 부인과는 몇 해 전에 사별하여 홀몸이었습니다. 외아들 요이치로라는 청년은 스무 살 가량으로, 살결이 희고 얌전한 사람이었지요.

낭인이다 보니 이렇다 할 생업이 있을 리 없었지만, 근방 아이들을 모아 글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며 글씨 선생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생계가 설 리는 없는데도, 어느 정도 모아 둔 게 있는 사람이었던지 별 탈 없이 칠팔 년을 지내 왔지요. 아버지는 잠자리 전 한 잔, 한 홉 가량을 매일 밤 거르지 않고 비웠습니다.

이 부자가 처음 그곳으로 이사 왔을 무렵에는 저도 아직 어린아이였던 까닭에 자세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근방 사람들이 이런 소문을 주고받았다고 하더군요.

“저 사람들도 머지않아 놀라서 떠나 버릴 게야.”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무어라 모를 재앙이 따른다 하여, 오륙 년 사이에 열 사람가량이나 바뀌었다 하옵니다. 그중에는 한 달도 채 안 되어 부랴부랴 떠나 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했지요. 도대체 어떤 재앙이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어쨌든 오륙 년 동안 그 집에서 장례가 세 번이나 나갔다는 것만은 저도 분명히 알고 있사옵니다. 아사이 댁 부자도 그 사정을 알고 빌렸던 것이옵니다. 집세야 물론 헐했던 게 분명하지요. 집세가 헐한 데 혹해서 저런 도깨비 집이나 다름없는 곳에 들어와 살고 있으니, 아무리 무사라 한들 머잖아 놀라 자빠질 거라고 모두들 뒷전에서 수군대고 있었답니다.

“세상에 무슨 재앙 따위가 있을 턱이 있겠소.” 소에몬이라는 분은 그렇게 웃었다 하더군요. 하기는 이 사람은 얼굴에 검은 곰보 자국이 있는 큼직한 체구의 남자로, 한눈에도 강해 보이는 낭인이었기에 정말로 재앙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보다 증거라고, 머잖아 무슨 일인가 일어나리라는 소문이 돌면서도 아사이 댁 부자는 태연히 그곳에 눌러앉아 살고 있었던 까닭에, 나쁜 소문도 자연히 사그라들어 근방 사람들도 안심하고 제 자식들을 글 배우러 보내게 되었지요. 칠 년이고 팔 년이고 무사히 살고 있는 이상, 정말로 소에몬 어른이 말한 대로 세상에 재앙 따위는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저희 부모님도 이따금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전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리도 부산스레 떠나 버렸던 것일까요. 아마도 근방 소문을 듣고는 그저 어쩐지 께름칙해져,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 겁먹어 부랴부랴 도망쳐 나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장례가 세 번 났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운수의 돌고 돎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요즘 사람이라면 물론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옛사람들도 차차 그런 식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옵니다.

아사이 댁도 처음에는 글씨 선생 노릇만 하더니, 나중에는 검술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따로 도장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뒤뜰 빈터에서 노천 수련을 하였기에 저희도 곧잘 구경하러 가곤 하였지요. 그 무렵은 에도도 어느덧 말기에 접어들어 세상이 점점 어수선해져 가던 때라, 마을 사람 가운데에도 죽도 따위를 휘두르는 자들이 생겨, 아사이 어른께 입문한 젊은이들이 열 명쯤은 있었사옵니다.

자, 이제부터가 본 이야기이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문구 2년, 이 해는 정월 초하루부터 큰눈이 내렸고, 그 뒤로도 매일같이 바람이 그치질 않아 곳곳에 불이 났습니다. 정월 그믐날에는 고이시카와 사시가야 마을에서 불이 일어나, 저희 근방까지 옮겨붙어 타들어 왔지요. 그해 봄부터는 우에노의 중당이 큰 보수 공사에 들어간 까닭에 꽃놀이를 금했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으나, 대개는 삼가 우에노로 꽃놀이를 가지 않았습니다. 무코지마에서는 무사들의 난동이 흔해져, 술김에 칼을 빼 들고 휘두르는 자들이 많은 통에 그곳에도 여자며 아이가 함부로 나설 수 없었지요. 게다가 길목 베기는 흔하고 가택 침입 강도는 많고, 참으로 흉흉한 세상이어서, 저희 같은 젊은 것들은 무엇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정신이 아득하여, 험한 세상이라며 떨고 있을 뿐이었사옵니다.

그런데 또 그런 시절이 뜻밖의 행운이 되어, 요즘 말로 하자면 실업자나 다름없던 낭인들이 여기저기로 불려 나가 녹봉을 받게 되는 일도 생겼사옵니다. 아사이 어른도 그중 한 사람이라, 한때 낭인이 되었던 옛 번주의 저택으로 귀참하게 되었던 까닭에 아버지도 아들도 크게 기뻐하였고, 근방 사람들도 경사라며 함께 축하하였지요.

“다름이 아니라, 오랜 세월 신세 진 데 대한 감사 인사도 드리고자 하니, 변변치 못하나 마음만이라도 담은 잔치를 열고 싶소. 폐가 되더라도 부디 들러 주시기 바라오.”

이렇게 일러, 아사이 어른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근방 사람들을 청하였습니다. 집이 넓지 않은 까닭에 초대를 이틀로 나누어, 첫날 저녁에는 근방 사람들을 모으고, 다음 날 저녁에는 검술 제자들을 모으기로 하였지요. 저희 아버님도 첫날 저녁에 청을 받아 가셨는데, 주인도 흡족하고 손님도 흡족하여 모두가 경사로다, 경사로다 하는 말을 거듭하며 기분 좋게 돌아오셨답니다.

자, 그런데 그 다음 날 저녁,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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