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분부쿠차가마(分福茶釜)
구스야마 마사오
1
옛날, 고즈케노쿠니(上野国) 다테바야시(館林)에 모린지(茂林寺)라는 절이 있었답니다. 이 절의 큰스님은 자못 다도(茶の湯)를 좋아하셔서, 갖가지 별난 다도 도구를 모아 두고는 날마다 그것을 매만지며 즐거움을 삼고 계셨지요.
어느 날 큰스님은 볼일이 있어 읍내에 다녀오시던 길에, 한 도구상에서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의 찻솥을 발견하셨습니다. 큰스님은 곧 그것을 사 가지고 돌아오셔서 손수 거처방에 모셔 놓고는,
“어떻소, 자못 좋은 찻솥이 아니오?”
하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보여 주시며 자랑하셨답니다.
어느 날 밤 큰스님은 여느 때처럼 거처방에 찻솥을 모셔 둔 채, 그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말 곤히 잠들어 버리셨지요.
큰스님 방이 워낙 조용하기에, 동자승들은 어찌 된 일인가 하여 살그머니 장지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큰스님 옆에 이부자리 펴고 가만히 앉아 있던 찻솥이, 저절로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어라.” 하고 보는 사이에, 찻솥에서 불쑥 머리가 나오고, 굵은 꼬리가 돋아나고, 네 다리가 나와서, 이윽고 어슬렁어슬렁 방 안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자승들은 깜짝 놀라 방 안으로 뛰어들어 와서,
“어이쿠, 큰일났어요. 찻솥이 둔갑을 했어요.”
“큰스님, 큰스님. 찻솥이 걸음을 떼고 있어요!”
하고 저마다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떠들어 댔습니다. 그 소리에 큰스님은 잠을 깨시고는,
“시끄럽다, 무엇을 그리 떠드는 게냐.”
하시고는, 눈을 비비시며 꾸짖으셨습니다.
“하지만 큰스님, 좀 보세요. 보세요, 저것 좀, 찻솥이 걸어 다닌다니까요.”
이렇게 저마다 우겨 대기에, 큰스님도 동자승들이 가리키는 쪽을 보셨더니, 찻솥에는 이미 머리도 다리도 꼬리도 없습니다. 멀쩡히 본래의 찻솥이 되어, 어느 틈엔가 이부자리 위에 올라앉아 시치미를 떼고 있었답니다. 큰스님은 노여워하시며,
“무슨 소리냐.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하지만 이상한걸요. 분명 걸어 다녔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동자승들은 신기한 듯 다가와 찻솥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찻솥은 “캉.” 하고 울렸지요.
“보거라. 그저 보통 찻솥이 아니냐.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아, 모처럼 단꿈에 들어 있던 사람을 깨우다니.”
큰스님께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동자승들은 풀이 죽어, 투덜투덜 군말을 늘어놓으며 물러갔답니다.
그 이튿날 큰스님은,
“기껏 찻솥을 사 와서 바라보기만 해도 재미가 없지. 오늘은 한번 시험 삼아 써 봐야겠다.”
하시며, 찻솥에 물을 길어 부으셨습니다. 그러자 자그마한 찻솥인 주제에, 다짜고짜 손물통(手桶) 하나 가득 들어 있던 물을 벌컥 들이켜 버렸지요.
큰스님은 조금 “이상하다.” 하고 여기셨지만, 달리 별다른 일도 없기에 마음을 놓으시고 다시 물을 부어, 화로에 거셨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엉덩이가 따끈따끈해지자, 찻솥은 별안간 “뜨거워!” 소리를 지르며 화로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어라 하고 보는 사이에 너구리 머리가 나오고, 네 다리가 나오고, 굵은 꼬리가 돋아나서는, 어슬렁어슬렁 다다미방 안을 걸어 다녔으니, 큰스님은 “왁!” 소리를 지르며 그만 펄쩍 뛰어오르셨습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찻솥이 둔갑을 했다. 누구든 좀 와 다오.”
큰스님이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부르짖자, 동자승들은,
“옳거니, 또 시작이로구나.”
하면서, 머리띠를 이마 앞에 질끈 동여매고는 빗자루며 먼지떨이를 들고 뛰어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이미 본래의 찻솥이 되어 이부자리 위에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요. 두드려 보면 또 “캉. 캉.” 하고 울렸답니다.
큰스님은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하신 채,
“참, 좋은 찻솥을 손에 넣었다 싶었더니, 엉뚱한 물건을 떠안고 말았구나.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계시는데, 문 밖에서,
“헌 물건 사오, 헌 물건!”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옳지, 마침맞은 때에 헌 물건 장수가 왔구나. 이 따위 찻솥은 차라리 헌 물건 장수에게 팔아 버려야겠다.”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헌 물건 장수를 불러들이게 하셨습니다.
헌 물건 장수는 큰스님이 내놓으신 찻솥을 손에 들고서, 매만져 보기도 하고, 두드려 보기도 하고, 바닥을 뒤집어 보기도 한 끝에,
“이건 참으로 좋은 물건이올시다.”
하고는, 찻솥을 사 들고, 폐품 바구니에 넣어서 가지고 갔답니다.
2
찻솥을 사 들인 헌 물건 장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이건 근래에 보기 드문 횡재로다. 어떻게든 도구 좋아하는 부자를 꽉 잡아서 좋은 값에 팔아넘겨야지.”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그날 밤은 소중하게 찻솥을 머리맡에 모셔 두고 푹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한밤중을 지난 무렵에, 어디선가,
“여보세요, 헌 물건 장수님, 헌 물건 장수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화들짝 잠을 깨고 보니, 머리맡에 두었던 그 찻솥이 어느 틈엔가 털북숭이 머리와 굵은 꼬리를 내놓고는, 얌전히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헌 물건 장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답니다.
“이런, 큰일이다. 찻솥이 둔갑을 했구나.”
“헌 물건 장수님,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고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찻솥에 털이 돋아 걸어 다니는데, 누구라도 놀라지 않겠나. 대체 너는 무엇이냐.”
“저는 분부쿠차가마라고 하는데, 사실은 너구리가 둔갑한 찻솥이지요. 실은 어느 날 들판에 나가 노닐고 있는데 대여섯 명의 사내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찻솥으로 둔갑하여 풀숲에 굴러 있었더니, 또 그 사내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이번엔 찻솥이로구나, 찻솥이야,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 이걸 어디든 팔아넘겨서 다 같이 맛난 것을 사 먹자고 하더이다. 그래서 저는 헌 도구상에 팔려 가서 가게 앞에 진열되어, 갖은 옹색한 일을 다 겪었답니다. 게다가 아무것도 먹여 주지 않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절의 큰스님께 팔려 갔지요. 절에서는 겨우 손물통 하나 가득 차 있던 물을 받아 한 모금에 벌컥 들이켜고는 휴 한숨 돌렸더니, 다짜고짜 화로에 얹혀, 엉덩이부터 불에 데였을 때에는 어찌나 혼이 났는지요. 정말이지 그런 데는 이젠 진절머리가 다 납니다요. 보아하니 당신은 사람 좋고 친절하신 분 같으니, 부디 얼마간만 저를 댁에 두고 거두어 주시지 않겠어요. 꼭 보답해 드릴 테니까요.”
“음, 음, 두는 정도라면 어려울 것도 없지. 한데 보답을 한다니, 어떤 식으로 할 셈이냐.”
“네에. 흥행 자리에서 갖가지 재미난 묘기를 보여 드려서, 당신이 톡톡히 돈벌이를 하시도록 해 드리겠어요.”
“흠, 묘기라니 도대체 어떤 묘기를 한단 말이냐.”
“자, 우선 줄타기 곡예에다, 분부쿠차가마의 신명 춤을 해 보이지요. 이젠 헌 물건 장수일랑 그만두시고, 흥행사가 되어 보세요. 내일부터 톡톡히 돈이 벌릴 거예요.”
이런 말을 듣고 헌 물건 장수는 그만 귀가 솔깃해져 버렸답니다. 그리하여 찻솥이 권하는 대로 헌 물건 장수 일을 그만두어 버렸지요.
그 이튿날 동이 트자, 헌 물건 장수는 곧장 흥행 채비에 나섰습니다. 우선 읍내의 번화가에 흥행 천막 한 채를 세워 두고, 분부쿠차가마의 줄타기와 신명 춤을 그린 큰 간판을 내걸고, 흥행주와 표 받는 이와 호객꾼을 자기 혼자서 도맡았습니다. 그러고는 표 받는 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자, 자, 소문이 자자한 분부쿠차가마, 털이 돋아나고, 손발이 돋아나, 줄타기 곡예에서 신명 춤까지, 별별 신기한 묘기로다, 평판이로다, 평판이로다!”
하고 외쳐 댔습니다.
길 가던 사람들은, 신기한 간판과 재미있어 보이는 호객 소리에 이끌려, 줄줄이 흥행 천막으로 몰려와서는, 어느새 만원이 되어 버렸답니다.
이윽고 딱따기(拍子木)가 울리고 막이 오르자, 분부쿠차가마가 어슬렁어슬렁 무대 뒤에서 나와, 첫 인사를 올렸습니다. 보니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큼지막한 찻솥에 손발이 돋은 도깨비라, 구경꾼들은 모두 “앗!” 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지요.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건만, 그 찻솥 도깨비가 양손에 종이 우산을 펴 들고, 부채를 펼치고는, 줄 위에 두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무거운 몸을 솜씨 있게 균형을 잡아 가며, 줄타기 한 자락을 척척 해내었으니, 구경꾼들은 더더욱 감탄하여, 천막이 터질 듯한 갈채를 퍼부었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해도, 분부쿠차가마가 색다른 묘기를 해 보일 때마다 구경꾼들은 좋아라 하며,
“이렇게 재미난 구경거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늘어놓고, 또 줄줄이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분부쿠차가마의 평판은 이곳저곳으로 퍼져, 인근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먼 고을에서까지 일부러 짚신 신고 보러 오는 사람들로 매일 밤낮 큰 성황을 이루었으니, 잠깐 사이에 헌 물건 장수는 큰 부자가 되었답니다.
그러는 동안 헌 물건 장수는, “이렇게 분부쿠차가마 덕에 언제까지나 돈벌이를 하고 있어 봐야 끝이 없는 일이니, 이쯤에서 좀 쉬게 해 주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분부쿠차가마를 불러,
“너를 이만큼 부려 먹을 만큼 부려 먹어, 덕분에 나도 자못 큰 부자가 되었구나.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처럼 욕심을 부리는 것은 못된 짓이니, 오늘로 너를 흥행에 내세우는 일은 그만두고, 본래대로 모린지에 바치기로 하자. 그 대신 이번에는 큰스님께 부탁해서, 보통 찻솥처럼 화로에 얹어 불에 데이고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소중하게 절의 보물로 모셔서, 비단 이부자리에 올려놓고, 그야말로 안락한 은거 신세로 받들어 모시도록 해 드리려는데, 어떠하냐.”
이렇게 말하자, 분부쿠차가마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지쳤으니, 이쯤에서 조금 쉬게 해 주시지요.”
하고 답했습니다.
그리하여 헌 물건 장수는 분부쿠차가마에다, 흥행으로 벌어들인 돈의 절반을 곁들여, 모린지의 큰스님께 가져다 드렸답니다.
큰스님은,
“허허, 그것 참 기특하구나.”
하시며 찻솥과 돈을 받아 두셨지요.
분부쿠차가마도 그대로 지쳐 잠들어 버린 것일까요, 그 뒤로는 별달리 손발이 돋아나 춤을 추거나 하는 일도 없이, 이 절의 보물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