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모래를 씹다

사카구치 안고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처음으로 자식이 생긴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마땅히 생길 만해서 생겼다는 것과는 느낌이 달라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한 기분 쪽이 도리어 강하다. 무척이나 쑥스럽다. 자제분은 요즈음에 어떻습니까, 따위로 남에게 한마디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쑥스러워져 버린다.

그런 까닭에 자식에게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어지간히 고심하였다. 아빠, 라는 것은 쑥스러워 영 못 쓰겠다. 자식에게 아빠 따위로 불리면, 살아 있는 한 오싹해야 할 듯한 기분이라, 자식이 갓 태어났을 무렵에는 마음이 가라앉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아마도 외국에서도 그런 모양이지만) 자식이 생기면 아내까지 갑작스레 남편을 아빠라 바꿔 부르는 습관이 있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합치면 어딘지 께름칙해질 따름이었다.

결국 파파마마라는 호칭을 채택하기로 하였는데, 이건 다른 나라의 말이라 전혀 실감이 없어서 좋다. 음습한 구석이 없다. 자식이나 아내에게 파파라 불려도 남의 일인 양 산뜻하여, 직접 살갗을 만지는 듯한 거북함이 없어 좋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쉰이 되어 태어나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라, 쓰는 쪽에서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가 파파, 어머니가 마마라는 것은 영어 책을 읽을 때라면 헷갈릴 걱정이 없는 일이지만, 막상 당사자가 일상에서 써먹으려 들면 그렇게 되지가 않아서, 자기 자신을 마마라 말해 버리거나, 아내를 파파라 말해 버리거나 하여 혼란해지고 만다. 한 번 그 혼란이 시작되면, 그것이 의식에 얽혀 드는 까닭에 더더욱 혼란이 심해진다. 「쉰에 시작한 손익힘은 너무 늦다」는 사실을 절절히 맛본 셈이다.

아빠가 이 꼴이다 보니 요즈음 자식 녀석이 파파와 마마에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녀석도 자신이 없어진 까닭에, 나를 마마라 부르며 눈치를 살피거나, 파파라 부르고 나서는 곧 마마라 고쳐 부르거나 하던 끝에, 요즈음에는 나와 아내 어느 쪽에게 말을 걸 때에도 파파마마라고 둘을 잇따라 말하게 되었다. 나도 아내도 파파마마이다. 듣고 보니 이쪽이라면 어느 한쪽은 맞는 셈이라 걱정이 없다. 녀석도 이거라면, 하는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그러한 자식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한심한 일이 되어 버렸구나 싶다. 다른 나라의 말을 함부로 일상에 채택할 일은 못 되는 모양이다. 다만 이는 나뿐이고, 아내는 헷갈리는 일이 없으니, 나이 탓일까 헤아리고 있다. 생기지 않으리라 여겼던 자식이 생긴 데서 오는 당혹스러움이리라. 평생 갈 일이라 각오는 하고 있지만, 모래를 씹는 듯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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