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가을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얼마 전 나는 어느 글 끄트머리에 올여름 일을 짤막하게 덧붙이려 했다가, 뜻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줄줄 써 내려갔다. 친척이 보내 준 복숭아 잎으로 간신히 땀띠를 달랬던 일, 밤늦도록 문도 닫지 못한 채 쉬이 잠들지 못한 밤이 이어졌던 일, 기억해 두어야겠다 싶은 것들이 꽤 많다고 써 본 것이다. 이 드문 대혹서를 잊지 않으려고, 흘리고 또 흘린 뜨거운 땀을 툇마루 앞 가을풀에라도 부쳐, 잠꼬대 같은 글이나마 남겨 두고 싶다는 마음도 그때 함께 불려 나왔다. 올해 같은 해도 드물다. 내가 사는 동네 일대에서는 가을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말라 죽어 간 풀이 많았다. 비탈 내려가는 길목에 바싹 마른 돌계단 옆 잔디도 그 중 하나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화원 주인이 가져다준, 뿌리도 얕은 화분의 가을 들풀(七草)도 진작 죽어 간 동무들이었다. 이 가뭄 더위를 버텨 내고 어찌어찌 살아남은 한두 가지 가을풀의 모습이 내 눈앞에 있다. 많은 산촌 출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풀과 나무 없이는 살지 못하는 편이라, 지금껏 이것저것 심어 보기는 했으나, 햇볕도 잘 들지 않고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 골짜기 바닥 같은 이 동네 안에서는 어떤 풀도 마음껏 자라지 못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내가 좋아하는 난향풀(薫)만은 살아남았다. 우리 집 정원에서 보여 주고 싶은 것이라 한들, 정말이지 고양이 이마만큼도 안 되는 좁은 곳에 풀 몇 포기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이 중국 난(蘭)이 한창 꽃을 피울 때만큼은 보여 주고 싶다. 난향풀은 봄에 피는 춘란에 대응하여 가을 난(秋蘭)이라 불러도 좋을 것으로, 긴 겨울 동안 서리와 눈을 견디며 꽃봉오리를 준비할 만한 힘을 지닌 북방 것이 있다면, 이것은 맹렬한 여름 더위를 이겨 내고 꽃을 피우는 남방 것이다. 푸른 잎이 함께하고 흰 꽃이 피어나는 무렵은 참으로 맑은 가을풀의 느낌이 깊다. 지금 이 난향풀이 한창이다. 그러고 보면, 오래 도시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도심으로 찾아오는 여름의 정취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나, 여름은 나도 좋아해서 여러 경물과 정취가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데다, 더워도 아랑곳없이 일 년 중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황금기처럼 여겨 지금껏 거의 피서 여행을 떠난 적도 없었다. 올해도 그것을 낙으로 기대하고 있던 참에 이런 날씨였다. 이상하게도 올해만은 여름다운 짧은 밤의 느낌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좋은 바람이 드는 저녁도 드물었고 이슬 서늘한 아침도 드물었으며, 새벽부터 울어 대는 매미 소리에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라디오 체조 구령 소리까지 귀를 파고들어, 날마다 30도를 웃도는 달아오른 도시의 공기 속에서 밤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옛사람의 은일(隱逸)을 배우려는 것도 아니고, 이 더위를 어떻게든 버텨 보려는 궁리로, 집 앞의 좁은 골목에 열너댓 그루의 대나무를 세우고 세 칸 남짓의 울타리를 엮어 거기에 나팔꽃을 심었다. 이웃집에 둘러쳐진 높은 함석 담장에서 오는 반사광이 그대로 내 집 입구의 격자문과 골목에 잇닿은 창문을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나팔꽃에 물을 주는 것이 생육을 돕는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되어, 그것을 매일 아침 일과처럼 하는 사이에 거기서도 귀여운 가을풀의 성장을 보았다. 꽃도 잎도 덩굴도 저마다 제 모습을 달리하는 것을 보면, 나팔꽃은 꽤 오래된 풀이 아닌가 싶다. 무더워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뒤 같은 때면, 나는 동네 하늘이 밝아 오기도 전에 일어나 새벽 전 고요함을 즐기기도 한다. 이층 창문을 열면 아직 울타리도 어두컴컴하다. 이윽고 붉은빛과 남색이 뒤섞인 빛깔을 바탕으로 유리빛으로도, 주홍빛으로도, 옅은 보라로도 번지고, 그 끝에서 흰빛으로도 이어지는 꽃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여 왔다. 풍류스러운 식구들이 모인 집이라, 꽃의 풍취를 사람의 모습에 빗대어, 어떤 것에는 오토와야(大音羽屋, 가부키 배우 가계명), 어떤 것에는 다치바나야(橘屋, 가부키 배우 가계명), 또 어떤 것에는 노력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도,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생기를 내뿜는 풀 한 포기에 기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장난이었다. 때로는 오모리(大森) 쪽에서 생선을 팔러 온 남자가 좁은 골목에 짐을 내려놓다가 봉오리를 달고 있는 풀뿌리를 밟아 꺾는 일도 있었다. 한 점 바람도 없는 뜨거운 한낮에도, 그 울타리 앞만은 비탈로 이어지는 돌계단 쪽에서 가늘게 불어 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오가며, 나팔꽃광(狂)이라 불릴 만큼 이 꽃에 심취했던 사메지마 이학사(鮫島理学士)를 떠올렸다. 손이 긴 품종, 사자 품종, 모란 품종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이학사의 목소리가 아직 내 귀에 남아 있다. 이번에 나는 그가 사랑하던 것을 스스로 조금 심어 보고서, 어떤 풀이든 꽃 피는 절정의 때를 갖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어떤 예술가도 꽃의 순수함을 형상화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로댕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진실 역시 수긍이 간다. 나팔꽃을 가을풀이라 부르는 것이 언제부터 누가 하기 시작한 말인지는 모르나, 장마가 걷힌 뒤부터 가을바람이 올 때까지를 맛보게 해 주는 이런 꽃도 드물다 싶다. 내가 이것을 쓰는 날은 9월 12일이다.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이미 이층 방 안에도 가득 차 왔다. 이 한여름 동안 나는 평년의 삼분의 일에 해당할 만큼도 내 일을 해내지 못했고, 그나마 아프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사람들에게 들으며 겨우 위안을 삼을 만한 나날을 보내 왔다. 그러나 꽃은 그 사이 이틀을 쉰 것뿐으로, 울타리 어딘가에 눈을 뜨지 않는 아침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 아침도 우리 집에서는 열여덟아홉 송이의 눈이 번쩍 뜨이는 녀석들이 저마다 작은 생명을 다투듯 피어 있다. 이제 차츰 꽃도 작아지고, 가을 깊은 공기 속에 피어 남는 것들도 또한 버리기 아까운 풍정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