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언제까지나 조금도 트이지 않는, 해안에서 먼 기울어진 마을이다.
― 골목은 좁고 언제나 거무칙칙하고 지저분하다. 양쪽으로 빼곡히 집이 들어서 있고, 처마에는 흰 먼지가 흐릿한 햇빛에 바래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태양을 모르는 이가 많고, 모두 마비된 듯 보인다 ―
신지는 대장간을 하는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떴다. 형이 있었지만 얼이 모자라서, 나이는 이미 많이 들었건만 어린아이 같은 옷을 걸치고 근처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만 했다. 형의 이름은 우마에몬이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우마에몬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우마’라고 불렀다.
“우마, 너 영리하니?”
“영리해.”
“뭐가 될 건데?”
“대장.”
어린 아이들이 자기를 놀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형을 볼 때마다, 신지는 서글퍼졌다. 형은 자주 옷을 더럽혀 왔다. 어린 녀석들한테 속아 도랑 같은 데 빠지고 온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신지는 옷을 빨아야 했다.
“형아.” 신지가 이렇게 불러도 우마에몬이 대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우마에몬은 누구에게서든 ‘우마’라고 불리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다) 자꾸 이렇게 불렀다. 그래도 역시 멀뚱히 있으며 대답 없는 형을 보면, “형아”라고 하면 “응”이라고 대답해 주는 형을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신지는 작년 소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아버지 일을 돕는 한편 살림도 혼자 맡아야 했다. 언제나 그는 자기 집 도랑 속처럼 어둡고 씁쓸한 생각에 잠겼다.
밥을 짓고 나서, 검게 빛나는 차가운 이불 속으로 파고든 뒤에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
어머니만 살아 계셨더라면. 우마에몬만 좀 더 멀쩡해서 아버지 쇠망치를 대신 잡아 준다면,
아버지만 술을 끊어 준다면……
하지만 곧 “그런 게 다 이뤄진다면 세상 사람 모두 행복해지고 말 것 아닌가”라며 내던지듯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주정뱅이 아버지였다. 한창 일하는 중에도 비틀비틀 나가더니 이윽고 파리한 얼굴에 눈을 멍하니 고정시킨 채 돌아왔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파래지고, 눈은 흐리멍덩하게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장례식 같은 데 불려 가서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내뱉어 대는 탓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그는 육십에 가까운 노인으로, 키가 유난히 컸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반드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었다. 하지만 코를 크게 골거나 하지도 않았다. 죽은 듯 자다가 때때로 눈을 떠서는 훌쩍훌쩍 울었다. 그럴 때면 신지는 유난히 어두운 마음이 들었다.
학교 선생님이 한번 신지네 집에 왔을 때, 젊은 선생님은 술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신지의 아버지는,
“술은 독입니다, 아주 독합니다, 저는 끊으려고 합니다, 정말 맛있지도 않습니다, 씁니다, 저는 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역시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는, 공허한 목소리로 “허허허” 하고 웃었다.
우마에몬이 불쑥 돌아오더니, 철책용으로 쓸 굵직한 철봉 하나를 끌어내어 말없이 불 속에 찔러 넣었다. 혼자 일하고 있던 신지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내버려 두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철봉을 우마에몬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쇠망치를 내려치려는 순간순간, 벌겋게 달아오른 목 근육이 꽉 조여드는 걸 신지는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다. 수건을 온 힘으로 짜는 듯한 상쾌함이 신지의 몸속을 흘렀다. 우마에몬에게도 힘이 있다! 힘이! ……
“뭘 만들려고?”
“가다나.” 침을 흘리며 우마에몬이 말했다.
“칼? 칼 같은 거?”
나무 열매라 생각하고 주웠더니 결국 빈 껍질에 지나지 않았던 때처럼, 신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문득 힘껏 한 대 갈겨 버릴까 싶었지만, 부풀어 오른 우마에몬의 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옆을 지나는 전차길 공사에 많은 조선인이 이 마을로 몰려오고 대장간 일이 늘어나면서, 신지네도 얼마간 활기를 띠었다.
아버지도 신지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 술 좀 줄여요. 술은 독이고, 일도 안 되잖아요.”
신지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술은 독이다, 술은 쓰다, 그래도 나는 끊지 못하겠다, 너는 술꾼 되지 말게.” 아버지가 말했다.
문득 눈을 떠 보니, 그을음 낀 신단(가미다나) 아래에서 술을 마시는 우마에몬의 모습이 5촉광 붉은 전등 빛 속에 보였다. 신지는 도둑을 잡은 것 이상으로 놀라, 머릿속이 하얘지는 듯한 오한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유난히 고요한 붉은 빛 속에서, 우마에몬의 목이 꿀꺽꿀꺽 움직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아버지가 남겨 둔 술병(도쿠리)을 우마에몬의 왼손이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우마에!”
신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가 벌떡 머리를 쳐들었다.
우마에몬은,
“윽” 하며 붉어진 얼굴을 이쪽으로 돌리고, 흐물흐물한 입을 보였다.
아버지가 헐떡헐떡 어깨를 들썩이며 숨 쉬는 것이 신지는 무서웠다. 아버지의 눈은 가만히 백치인 우마에몬을 응시하고, 정맥이 뚜렷이 드러난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우마에, 네 놈이 술을 마시느냐……”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우마에몬에게 다가갔다.
“이놈!” 아버지가 외치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우마에몬의 뺨에 퍽 하고 한 대 먹였다. 우마에몬은 웃음을 뚝 멈췄다.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는 갈수록 거세졌다.
그리고 또 때리려 했다. 신지는 자기도 모르게 뛰쳐나가 아버지를 막았다.
“아버지, 우마는 모자란 사람이잖아요. 때려 봤자 소용없어요.”
아버지는 눈을 내리깔고,
“그래, 우마에는 모자란 놈이었지”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소동에 술이 쏟아져 버렸기 때문에, 우마에몬도 잠자리에 들었다. 신지는 잠깐 치우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신아.”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응.”
“나 술 끊겠다.” 이불 속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어딘가 몸이 안 좋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신지는 혼자서 쇠망치를 치켜들었다. 아버지는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그래도 평소 술 때문에 교류가 끊겼던 아버지에게 문병을 와 주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쇠망치를 치켜들면서, 신지는 아버지가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아버지가 죽으면 어쩌나, 우마에몬은 백치이고……
술을 사다 온 신지가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무겁게 고개를 움직여,
“응”이라고 대답했다.
“술 사 왔으니까 드세요.”
“술을 사 왔다고? 신아, 왜 술 같은 걸 사 온 거냐.”
힘없는 목소리로 신지를 나무랐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반짝 어렸다.
“아버지, 드세요.”
신지는 살그머니 아버지의 머리맡을 떠나 일터로 돌아오자, 검게 그을린 기둥에 얼굴을 비비고 울었다. 울었다.
언제까지나 조금도 트이지 않는 해안에서 먼 기울어진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