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준설선

하야마 요시키

나는 행리(行李, 짐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그 행리 안에는, 죽은 사람의 내장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고무장화의 정강이 부분만 남은 것. 아라비안 나이트의 좁쌀 같은 활자로 빼곡한, 표지와 본문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 영역본. 꼭지가 빠진, 프랑스 수병이 쓰는 털모자. 인도의 무엇인가라는 귀족이라며, 데크 패신저(deck passenger)로 미국에 철학을 연구하러 간다고 하던 청년에게 받은, 곤돌라 모양에 금색이 도는, 내 발에는 맞지 않는 구두. 날 없는 안전면도기. 양철처럼 딱딱해진 오버롤 세 벌.

“제기랄!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떡갈나무 쟁반 같은 얼굴을 한 이등 항해사(セコンドメイト)는, 나와 나란히 걸으면서, 살짝 뒤처지려고 슬그머니 시도하고 있었다.

“흥, 나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 가는 일은 없을 거다. 뒤통수나 목덜미에 한기라도 드는 거냐”

나는 또, 실은, 이등 항해사가 내 눈앞에 ― 곁눈으로는 안 되고, 정면으로 ― 녀석의 롤러 같은 목덜미를 보여 주기만 하면, 내가 메고 있던 행리로, 그 위에 얹혀 있는, 칠칠치 못한 매트 같은 “대갈빡”을 땅바닥까지 두들겨 박아 주겠다! 라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너는 어디까지나 해사국에서 버틸 작정인 거냐?”

하고, 이등 항해사는 나에게 물었다.

“개수작 마라. 어물어물 우는소리 그만해. 나는 각오가 돼 있어. 네놈 쪽에서 시비를 걸어 온 거잖아”

나는 사실 걷는다는 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내 왼발은 복사뼈 부분이, 못 빠진 경첩 같이 되어 있었다.

“너는 그딴 소리를 하니까 치료비도 못 받는 거야. 게다가 나한테 대들어 봤자, 어쩔 수 없잖아, 응? 제대로 탄원만 하면, 선장도 위로금이라도 던져 주지 않을 리가 없는 거야. 그걸, 네가 마구잡이로 떠드니까, 선장도 화내는 거다”

이등 항해사는 꿀바른 듯 달콤한 말투로 늘어놓았다.

그 달콤한 말 속에는 사카린이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쥐약(猫いらず)까지 섞여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제정신을 잃을 만큼 단것에 굶주려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녀석의 말을 삼키려 들고 말았다.

침이라도 흘리듯, 내 눈은 눈물을 글썽이려 하고 있었다.

“바보 자식!”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호통쳤다. 이등 항해사의 쥐약을 막아 냄과 동시에, 속아 넘어가기 쉬운 내 센티멘털리즘을 향해 호통친 것이었다.

창고는 거리를 따라 줄지어 갑각을 말리고 있었다.

아직 인적은 그리 없었다. 신문이며 우유 배달이며, 새벽 귀가하는 선원이, 가끔, 우리와 엇갈렸다.

빵이라든가 생선 토막이라든가 토모에야키 따위의 포장지였던, 헌 신문지가 바람에 휩쓸려, 인적 드문 거리를 휘달려 갔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내 가슴 속에서는 독사가 머리를 쳐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오는 발의 통증과, “오늘부터의 살림 걱정”이, 독사를 쿡쿡 찔러 댄 것이다.

“이봐, 이제 와서 입으로 얼버무리려 해 봤자 소용없어. 박제 짐승도 아니고, 상처에 그저 솜만 처박아 두고, 그걸로 상처가 낫는다면, 의사 같은 건 굶어 죽는다! 알겠냐, 똑똑히 기억해 둬! 만주마루(万寿丸)는 무로하마 항해다. 한 달에 세 번은 싫어도 항구에 들어와. 해사국이라고 해 봐야 내 말 따위 듣지도 않는다는 건, 네놈이나 선장이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도 없이 이쪽도 알고 있어. 결국 끝장까지 가면, 나도 벌레만도 못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되면 알몸과 알몸이다. 일대일이다. 목발을 짚고서라도 들이받아 주고 말 거다”

목발! 나는 그때도 사실은, 목발을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만큼 발이 아팠고, 상처 안쪽은 화농되어 있었다.

나는 그 쓸모도 없는, 썩은 헌 행리를 더는 메고 걷는 게, 너무도 무겁고, 발에는 견딜 수 없는 고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길은 만조의 운하 위 다리에 걸쳐 있었다. 나는 다리 위에 행리를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운하에는 준설선이 묵직하게 터를 잡고 있었다. 준설선의 데크에서는, 석유통으로 만든 시치린(七輪)에서 석탄 연기가 갑자기 바람에 흩날리고, 아래쪽 구멍에서는 날름날름 붉은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밥이 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채 같은 거룻배(胴船)가 준설선 옆구리에 붙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양손으로 턱을 괴고 운하의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뭇조각이며 헌 가마니 따위가 만조에 실려 바다에서 강 쪽으로 거꾸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등 항해사는 나와 나란히 서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검사라도 하듯, 내 시선을 좇고 있었다.

나는 왼쪽 사타구니에 손을 갖다 대고, 상처에서 비롯된 림프선의 부음을 살짝 어루만졌다. 마치 횡현(横痃, 사타구니 림프선 종창)이라도 든 양, 그것은 욱신욱신 아팠다.

―횡현일지도 모르겠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안 좋을 때는 뭐든 다 안 좋은 법이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 대신 말이야, 쓸쓸하게는 안 죽을 거다”

나는 너덜거리는 행리의 버드나무 가지를 잡아 뜯어 내, 운하로 던져 넣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봐! 그런 자포자기 같은 말 하지 마라. 그것보다, 얌전히 ‘합의 해고’로 처리해 줄 테니까, 보륭으로 한 달이라도 쉬고, 상처를 낫게 한 다음 일은 또 나라도 알아봐 줄 테니까. 너처럼 막 나가는 건 손해다. 긴 것에는 휘감겨라, 대세에는 따르라는 말도 있잖아. 응, 네가 아무리 버텨도, 선장도 말했다시피, 일억 엔 선박회사한테는 이길 수 없는 거니까”

이등 항해사는 데크 위에서와 다리 판자 위에서가, 레코드 양면처럼, 정반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시한 말을 해서 자기가 분노 폭발의 표적이 되어서는 헛수고라고 깨달은 것이다.

“세컨드메이츠. 긴 것이 긴 것 주제에, 휘감기지를 않는 거야. 한번 휘감기면 꽉 조여져, 숨통이 끊어져 버린단 말이야. 견습 선원을 봐. 그 녀석은 울며 분 삭이기라고 하고 싶다만, 울며 분 삭일 정도가 아니지, 울다가 죽어 버리지 않았냐. 흥, 털도 안 난 풋내기 새끼도 아니고, 아직, 이 몸은 울다가 죽지는 않아. 쓸쓸하게는 죽고 싶지 않다고”

“흥. 그렇게 큰소리는, 더 일찍이나 더 늦게 말하지 그러냐. 뭐, 발이라도 낫고 나서나. 첫째로, 너는 선장한테 할 말을 나한테 해 봤자 안 되는 일 아니냐”

“좋다. 선장이든 너든, 먼지부스러기다”

나는 일어섰다.

걸터앉아 있던 행리를 어깨에 들어 올렸다.

이등 항해사는 내가 행리를 들어 올렸기에, 두어 걸음쯤 걸었다.

나는 행리를 운하 안으로 있는 힘껏 던져 넣었다.

“흥, 우리는 말이지, 행리까지 빼빼 말랐단 말이지. 첨벙거리고 있더라. 풍덩 소리도 안 내는구나. 너든 나든 이 행리와 다를 바가 없는 거다. 세컨드메이츠!”

행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물을 빨아들여 가라앉을 때까지, 쓰레기 부스러기와 함께 떠서 흘러갔다.

“어떻게 된 거냐. 도대체, 너 정신이라도 나간 거 아니냐”

이등 항해사는 풍덩 하는 물소리에 뒤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목 없는 시체를 처넣은 거다. 거긴 썩은 내장만 들어 있는 거야. 너도, 저 행리 안에 들어 있는 거다. 나도 내 행리가 필요 없어지면 해고를 먹는 거지, 흥. 잘 가시오, 안녕히. 목 없는 분. 이라는 거다. 핫핫하하”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윗눈꺼풀을 위로 치켜올렸다. 행리는 나처럼 흐느적거리며 흘러갔다.

이등 항해사는, 내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말을 해도 “분개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모양이었다.

―만약, 지금, 이놈에게 불을 붙이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할 게 뻔하다. 내가 해사국에 가고 나서 톡톡히 따끔한 맛을 보여 주면 되는 거다. 그때까지는, 두부 속에 머리를 처박은 미꾸라지처럼, 날뛸 만큼 날뛰게 놓아 두는 거다.―

이등 항해사가 기름 칠한 쟁반처럼 얼굴을 붉게 번들거리고 있는 데서, 나는 그의 속생각을 읽어 냈다.

나도 또한, 말의 비꼼이나 자기 행리를 던져 넣는 분풀이 정도로, 이 사건의 결말에 만족이나 단념을 얻으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평생! 한평생, 나는 저주해 주마, 설령 앞으로의 내 한평생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또 짧더라도, 나는 저주해 주마. 해치워 주마. 나만의 괴로움이 아니다, 수십, 수백, 수만, 수억의 괴로움이다. “설령 너희가 재판소에 가져간다 한들, 이쪽은 일억 엔의 자본을 거느린 대회사다. 게다가, 재판은 이쪽 사정으로 5년이고 10년이고 끌고 갈 수 있다. 그동안 너는 어떻게 먹고살래. 재판 비용은 어디서 나오나. 헷헷헤” 라고, 요시타케 아리(吉武有)라고 하는, 주조해 굳힌 캡스턴 같은 그 선장 놈이 지껄여 댔다. 지껄여 댔다. 제기랄! “어떻게 먹고살래? 어떻게 먹고살래?” 라고 녀석은 떠들어 댔다.―

나는 다리 판자 위에 주저앉아 버렸다.

발과 머리의 통증이, 나를, 나와 같은 양의 피로 만들어 다리 판자 위에 흘려 보낸 듯이, 그곳에 흥건히 들러붙어 늘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제기랄!―

“세컨드메이츠! 사람의 발이 아프다고. 모르겠냐, 이 얼간이 자식! 사람의 발이 땅에 닿은 곳이 욱신거리고 있다고. 피를 뿜고 있다고!”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호통쳤다.

이등 항해사는, 내가 머리를 감싸 쥐고 젖은 김처럼 다리 판자에 들러붙어 있는 것을 보고, “얼마간 걱정이 되어서” 들여다보러 올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 어이, 정신 차려라. 정말 못 걷겠냐”라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러 올 것이다. 그러고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을 것이다. 어이.

―손만은 아직 나는 멀쩡하니까. 퍽! 하고 나는 녀석의 코로 가야 한다. 입은 안 된다. 눈이라면 그래도 좀 낫다. 하지만 코가 가장 효과 있으니까. 꼴 좋게 됐구나, 코피 따위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말이지―

나는 본선에서 거룻배로, 거룻배에서 잔교로, 잔교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솔직히 말해 발을 완전히 망쳐 버렸다. 일주일, 꼬박 일주일을, 그 때문에 자리에 누운 채 끙끙거리고 있던 발의 상처 위에 이 몸을 얹어 걸었으니, 환부에 엄청난 충혈을 부른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 있는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부모가 이 꼴을 본다면―

하고, 나는 어쩐 일인지 부모님 일을 떠올렸다.

내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과, 부모뻘 나이의 세상 사람들이 보여 주는 짓은, 얼마나 심하게 다른가.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마구잡이로 잔뜩 많은 생각을 휘젓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이나 머리에, 이등 항해사의 손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5분이나 그러고 있었다. 그러나 손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들었다.

지나가는 길에 나를 자동차에 태워 도와, 자기 저택으로 데려가 주는, 소설 속의 아름다운 여주인공도, 거기에 서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등 항해사마저도, 더는 못 기다리겠다고 보였는지 사라져 버린 뒤였다.

준설선 옆구리에 붙어 있던 거룻배에서는, 사공 부부가 데크 위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운전수와 화부가 사공에게 뭐라 농담을 던지며 명랑하게 웃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러고는 다리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준설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날 밝는 새벽바람이 으슬으슬 차게, 산뜻하게 불어왔다. 갯내음이 상쾌했다. 다음 순간에는, 준설선에서 증기를 올리느라 잔뜩 처넣은 석탄이, 그대로 녹아내린 듯한 짙은 연기가 되어, 내 콧등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모두 건강하고 상쾌한 정경이었으며, 게다가 “아침”의 활기참을 띠고 있었다.

선체의 흔들림 그 한순간까지, 내 발의 복사뼈에 잭나이프가 꿰뚫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에게도 이른 새벽의 상쾌함과 활기참이 있었다. 그러나 선체가 한 번 출렁인 뒤로는, 내 발의 복사뼈부터 앞쪽으로 신경은 사라졌고, 많은 혈관이 끊겨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새롭고 활발한 욱신거림만이 남았다.

“어이, 어젯밤엔 잘 놀았냐?”

퍼널의 연기를 좇고 있던 화부가, 연기 끝에서 나를 발견하고 데크에서 호통쳤다.

“잘 됐지. 지옥 귀신한테!”

나는 마주 호통쳤다.

“어떤 귀신이냐”

“선장이라는 귀신이었지”

“크게 웃기지 좀 마라. 겐지명(源氏名)은 뭐냐?”

“겐지명도 선장이지”

“빨리 돌아가. 진짜 선장한테 혼쭐난다”

“돌아갈 곳 따위 없어. 막 페이드오프(paid off, 해고) 먹은 참이라고”

준설선 데크에서, 여덟 개의 눈이 나에게로 쏠렸다.

“무슨 마루냐?”

“만주마루야!”

“그딴 흙배라면 페이드오프 쪽이 훨씬 깔끔하지. 잘된 일이야”

그들은 아침 만조에 씻긴 공기에 어울리게 명랑하게 웃었다.

그것은, 부상만 입지 않았다면 화부의 말 그대로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한 푼의 상해수당도 없이, 게다가 징계 하선 절차까지 밟힌 것이다.

이미 이등 항해사는 해사국에 가 있는 게 분명했다.

준설선은 증기를 올렸다. 세이프티 밸브(safety valve)가 다급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운전수가 핸들을 잡았다. 정적이 깨지고 굉음이 아침을 갈라 놓았다. 운전수도 화부도, 날카로운 표정이 되어 기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놀고서는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일한다. 일하다 다쳐도, 일할 수 없게 되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묵직한 계획을 행리 대신 짊어지고, 부러진 이처럼 욱신거리는 발로 잔교로 되돌아갔다.

―1926,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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