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가을 겹옷
히구치 이치요
까닭 모를 두통이 가시지 않은 채, 꿈인 듯한 어제 오늘. 뜬세상은 어느덧 어린잎 우거진 그늘로 옮겨 가, 첫 두견새 한 차례 울고 가는 무렵이 되었으니, 작년에 입던 가을 겹옷을 예스러이 꺼내 들었음은 참으로 어수룩한 짓이로구나. 울타리 곁의 죽순이 껍질을 막 벗어 던지고, 노간주 잎에 맺힌 이른 아침 이슬이 그토록 새로워 보이는 모습 앞에서는, 마음이 부끄러울 따름이라.
비 오는 밤
뜰의 파초가 어찌 그리 우뚝 자랐는지, 잎은 울타리 위로 다섯 자도 너끈히 솟구쳤다. 올해는 어인 일인지 도통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줄곧 입에 올렸건만, 여름이 저물 무렵 유난히 무더운 날이 이어지더니, 단 하루 이틀, 사흘조차 되지 않아 놀랄 만큼 자라 버렸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면 잎 끝부터 가뭇없이 찢기어, 정취가 차츰 쓸쓸해지는 그 무렵, 비 오는 밤의 그 소리야말로 사무치게 애절하구나. 가는 비가 보슬보슬 듣는 소리는 풀숲에 숨어 우는 귀뚜라미의 가락마저 흩뜨리지 않고, 바람 한 줄기 휙 몰아쳐 내리는 소리는 저 파초 잎에만 부딪치는가 싶어 안쓰럽기 그지없다.
비는 언제 들어도 애틋하건만, 가을비는 더더욱 사무쳐 닿는 것이 많다. 밤이 깊어 갈수록 등불 그림자마저 어찌 그리 쓸쓸한지, 잠 못 이루는 밤이라 잠자리에 든들 무엇하리 하여, 자투리 천을 챙겨 둔 다토우가미(畳紙·바느질감 싸 두는 종이)를 꺼내 들고는 무심결에 바늘을 잡아 본다. 아직 어렸을 적 백모님께 바느질을 배우던 시절, 옷섶 끝이며 옷자락 모양 같은 것을 까다롭게 일러 주시던 일,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이것을 익혀 내지 못하고서는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리라 마음먹고, 집 가까이 있는 어느 신사에 매일 참배를 드리던 일이 있었거니와, 돌이켜보면 그것조차 옛일이 되었구나. 가르쳐 주시던 그분은 이끼 아래에 고이 잠드시고, 배워 받든 이 몸은 어느새 거의 잊고 말았다. 이렇게 어쩌다 한 번 꺼내어 들어도 손끝이 굳은 듯하여 도무지 야무지게 꿰매지지를 않으니, 그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한심하다고 여기시려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되살아나며, 옛 시절이 그리워져 까닭 없이 소매가 젖어 든다.
멀리서 소리 내며 다가오는 듯한 빗줄기, 가까이 빈지문에 한꺼번에 부딪치는 그 소란스러움, 어느 것 하나 쓸쓸하지 않은 것이 없다. 늙으신 어버이의 야윈 어깨를 주무를 적, 뼈가 손에 닿는 그 감촉마저, 이런 밤이면 더욱이 마음이 가눌 길 없이 허전해지고 만다.
달밤
조각구름이 조금 끼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갓 닦아 낸 듯 맑은 달빛 속에 샤쿠하치(尺八·통소) 소리가 들려오면, 솜씨 좋은 이가 부는 것이라면 한결 운치가 있으리라. 샤미센도 마찬가지이고, 거문고는 니시카타마치 어귀의 어느 울타리 너머로 들은 적이 있는데, 더없이 좋은 달밤에 타는 이의 그림자까지 보고팠으니, 마치 옛이야기 같아 마음이 끌리었다. 가까운 벗과 헤어진 무렵의 달은 어찌 그리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하던지. 천 리 밖까지 달빛이 따라간다 한들 이 몸 또한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인지라, 그저 부럽기만 하여, 이 달을 잠시 거울 삼는다면 그 사람의 모습도 비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떠오른다.
조그만 뜰 연못 물 위에 어른어른 흔들리는 그림자는 마치 무슨 말을 건네는 듯하여, 난간 같은 곳에 기대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떠 있는 듯하던 것이 차츰 깊이 가라앉아 보이고, 이 연못의 깊이가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듯한 마음이 들어, 달은 그 바닥 깊고 깊은 곳에 깃들어 사는 무엇처럼 여겨진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면, 하늘에 뜬 달과 물에 비친 그림자, 어느 쪽이 참모습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쩐지 마음이 들떠, 하코니와(箱庭·작은 분경) 안에 얹어 두었던 돌 하나를 살며시 수면에 떨어뜨리니, 잔물결이 갈라지며 그 위로 달 그림자가 일렁였다. 이런 부질없는 짓을 보여 주었더니, 어린 조카가 따라 한답시고, 누나가 하는 일을 저도 하겠다며 어느새 들고 나온 벼룻돌을, 저도 달님 부수어요, 하고는 첨벙 던져 버렸다. 그 벼루는 돌아가신 오빠의 것을 물려받아 더없이 소중히 여겨 오던 것이었건만, 어이없는 일로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죄스럽기 짝이 없다. 이 연못 물을 갈아내자고 거듭 일렀건만, 아직도 그대로 있다. 날이 밝으면 달은 하늘로 돌아가 자취조차 남기지 않거늘, 벼루는 어찌 되었을까, 밤이면 밤마다 그 그림자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싶어 애처롭다.
반가운 것은 달밤의 손님이라, 평소에는 발길이 뜸하던 사람이 마음 편한 얼굴로 찾아드는 일. 남자라도 반갑거니와, 하물며 여인의 벗으로 그러한 이가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직접 나서기 어렵거든 글월이라도 보내 주시면 좋으련만. 시 짓는 척하는 글은 도리어 미운 법이지만, 이런 밤에 건네는 한마디라면 가슴에 사무치는 벗으로 삼고도 남으리라. 큰길을 지나가는 쓰지우라(辻占·점치는 종이) 장수의 외침, 멀리 울리는 기적 소리마저, 어쩐지 혼이 그 자리를 떠나 떠도는 듯한 심사가 든다.
기러기
새벽달의 자취가 아직 하늘에 남아 있고, 꾸었던 꿈의 여운조차 채 가시지 않은 듯한 무렵, 빈지문을 살며시 열고 바깥을 내다보노라면, 휙 불어 든 바람이 댓잎의 이슬을 털어 내리어, 까닭 없이 서늘한 한기가 온몸에 사무친다. 그 결에, 마치 떨어져 내리듯 기러기 우는 소리가 들려오니, 외로이 하나만 우는 소리도 그러하거니와, 떼 지어 나란히 가는 모습 또한 애틋하여라. 그리는 사람을 머나먼 시골에 보내고서, 아침저녁으로 소식을 기다리며 지내는 무렵 이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마음이 어떠하랴 싶어 더더욱 애틋하다. 아침 안개와 저녁 안개에 가리어 소리만 흘려 보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가 있고, 깊어 가는 베갯머리에 종소리가 들려와 달빛 맑은 논 수면에 비쳐 들 그 그림자를 떠올려 보는 것 또한 정이 깊다. 길 위의 잠자리든, 외로이 사는 이의 살림집이든, 어디에서 들어도 시름을 더해 주는 빌미가 되리라.
언젠가 시타야 어귀에 잠시 살림을 차리고서, 장사꾼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가게 형편으로, 그저 자질구레한 물건 몇 가지를 늘어놓고 아침저녁 입에 풀칠하는 거리로 삼던 무렵의 일이다. 처마 끝은 다 헐어 있어 달빛이 들어올 만한 자리도 못 되었거늘, 맞은편 집 이층 한 귀퉁이로 빠끔히 새어 나오는 그 그림자가 어찌나 그리웠는지, 큰길에 나가 마음 가눌 길 없이 우러러보았더니, 가을바람이 드높이 불며 하늘에는 한 점 구름조차 없었다. 아아, 이런 밤이면, 시 짓는 벗 누구누구가 모여 앉아 조용히 뜬세상 너머의 이야기 같은 것을 두런두런 나누었었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사무쳐 그 시절이 그리워 눈물이 글썽이는 차에, 벗과 떨어진 기러기 한 마리가 외로이 하늘에서 울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쓸쓸함이야 세상의 흔한 일이라지만, 목숨조차 야속하게 여겨졌다. 다듬이질 소리에 섞이어 들려오는 그 우는 소리는 또 어떠했을까. 짓궂은 장난 노래를 외치며 어린아이가 큰길을 내달리는 모습은, 그토록 쓸쓸한 풍경 가운데에서 도리어 우습게 들려오니 부럽기까지 하더라.
벌레 소리
울타리의 나팔꽃이 점차 작게 피어, 어제오늘은 잎 그늘 사이로 한 송이 겨우 보이는 모습마저, 처음 피어나던 시절이 떠올라 애틋한데, 마쓰무시(松虫·가을 풀벌레)며 스즈무시(鈴虫·방울벌레)도 어느새 우는 소리가 잦아들고, 아침 햇살이 들 무렵에 꼽등이가 가뭇없는 가락으로 우는 소리만 남았다. 좁은 도랑 가, 벽 안 어디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들려오는 그 목숨의 길이, 늙으신 분이며 병든 몸으로 듣는다면 어찌나 견주어져 마음이 서글프랴. 아직 첫서리가 내릴 때도 아니거늘, 올해는 벌레들의 목숨이 유난히 짧아 어느덧 소리가 끊길 듯 가늘어졌구나. 쿠쓰와무시(轡虫·여치과 큰 벌레)는 시끄러운 울음과 우람한 몸피가 어지간히 옹골차 보이건만, 어찌하여 그도 잠깐 사이에 시들어 가는 것일까. 사람 가운데에도 그러한 부류가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스즈무시는 떨치고 우는 소리가 어찌나 어여쁜지, 시샘이라도 받아 명이 짧은 것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마쓰무시도 마찬가지이건만, 이름과 속이 어울리지 않으니 의아하게 여겨지는도다. 사철 푸른 소나무를 이름에 빗대었건만, 천년은 못 가더라도 메마른 들판이 다할 때까지는 우는 줄 알았더니, 싸리꽃이 흩날려 떨어지자마자 곧 소리가 끊기어 간다. 그토록 한창때가 짧은 벌레이니, 잠시나마 닮으라고 이런 이름을 지어 준 것일까. 이름 지어 준 이를 한번 알고 싶을 따름이다.
이 벌레를 한 해는 광주리에 길러, 이슬에도 서리에도 닿게 하지 않으려고 정성껏 보살피던 적이 있다. 그 무렵 병들어 누우신 오빠께서, 밤마다 우는 그 소리가 귀에 박혀 어찌나 처연하고 거슬리는지, 저 소리만 없으면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을, 하고 말씀하시기에 그 또한 도리이겠거니 하여, 부랴부랴 광주리를 내려 뜨락 풀숲에 놓아 주었다. 그날 밤 우는가 싶어 가만히 귀 기울였건만 도무지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니, 갑자기 이슬이 몸에 차게 닿아, 우는 기운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함께 안쓰러워하였다. 그해가 저물고 오빠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시었다. 이듬해 가을, 오늘이 그날 그 무렵쯤이 아니던가 하고 떠올리고 있던 차, 어느 날 깊은 밤에 가까운 울타리 안에서 그 소리 그대로 울음이 들려왔다. 설마 그럴 리 있으랴 하면서도, 다만 그 벌레인 양 그리워, 반가운 마음에 신기한 마음에 눈물만 자꾸 떨어져, 이 벌레와 마찬가지로, 비록 다른 존재라 한들 목소리며 모습이 똑같은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걸어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나는 그 소매를 덥석 부여잡아 놓아 드리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는 기쁨에 말씀도 못 하시고 눈물만 그저 흘리시겠지, 아버지는 또 어떻게 하실까 따위, 부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틀 밤쯤은 울었다. 그 후로는 어디로 갔는지, 아예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마쓰무시 우는 소리를 들으면 곧 그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서글퍼지니, 광주리에 가두어 기르는 일은 아예 떠올리지조차 않게 되었거니와, 들녘에서 절로 우는 소리가 차츰 잦아들어 가는 모습은, 그저 그분과 영영 헤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따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