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二葉亭四迷

사명을 받들어 구름 저편의 노도(露都, 페테르부르크)를 향해, 6월 12일 비를 머금은 하늘이 어쩐지 눅눅하던 저녁, 가녀린 아내와 어린 자식, 친척의 누구누구, 그리고 새로 사귄 이와 옛 벗까지 그리운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바시에서 오사카행 객차에 올랐다. 이십 년 사귄 벗 요코야마 텐가이 군은 통계를 좋아하는 메마른 머리에도 이슬 같은 정의 촉촉함은 있어, 같은 차에 올라 국부진(코즈)까지 배웅해 주었다. 덕분에 지루함을 면한 것이 기뻤으나, 국부진부터는 온전히 혼자가 되어 마침내 비까지 후두둑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한 러시아인이 있었는데, 관광차 일본에 왔다가 이제 우라지오스토크(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는 길이라 하기에 그 뒤로는 이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갔다. 저격연대의 중위라 하며 이름은 초르니 군이라 한다. 초르니란 ‘검다’는 뜻이라니, 별난 이름도 다 있구나 싶었다. 야마키타에 이르러 식탐의 본성을 드러낸 나는 급사를 시켜 늘 먹던 은어 초밥을 사려 했더니, 초르니 군도 “나에게도 한 입” 하고 청했다. “자네, 초밥이라는 것은 초에 절인 생선을 등에 얹은 쌀밥일세” 했더니, 초르니 군은 “오―” 하고 놀라며 내밀었던 손을 도로 거두었다. 내 몫을 나누어 주려 했지만, 선생(초르니 군)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끝끝내 입에 대지 않았다.

이윽고 밤이 깊어 가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쿠울― 쿠울―” 하고 일어난다. 목을 푹 꺾고 헐겁게 칸막이에 기댄 잠자리는 아무리 봐 줘도 점잖지 못하고, 하물며 침까지 흘리는 지경에 이르면 차마 눈 뜨고 보아 줄 수 없지만, 정말 얄미운 것은 두 사람용 소파식 벤치를 혼자 차지하고 팔걸이를 베개 삼아 잘도 곤히 잠들었다가 이따금 머리를 쳐들고는 잠꼬대로 “목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네” 하고 투덜대는 작자들이다.

초르니 군이 졸린 듯 하품을 하며 이르길 “일본은 싫은 곳이오” 한다. 내가 놀라 돌아보자 곧바로 “기차에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하고 덧붙인다. 내가 “4엔을 내시오. 늘 편히 잘 수 있소” 했더니, 선생은 잠시 목을 움츠리고 말없이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속을 부린 농이긴 하나 나도 실은 같은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출발 전 분주함에 사흘 밤이나 변변히 잠을 못 잤으니 조금 졸리다. 자꾸 생하품이 나온다. 초르니 군은 어느새 말없이 고개를 떨구더니 큰 몸집이 자꾸 내 쪽으로 기대어 온다. 자연 이쪽에서도 살짝 기대지 않으면 균형이 맞질 않는다. 이것을 ‘러일 기대기’라 할까 싶어 마음속으로 웃으면서 한참 잠자코 있노라니, 문득 오늘 신바시에서 헤어진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막내 겐보가 누군가에게 안긴 채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던 얼굴, 후쿠다 여사에게 무슨 말인가 듣고 부끄러워하던 듯한 토미보의 얼굴이 보인다. 큼직한 산잔 주필의 얼굴이 보이고, 술기로 살이 오른 후로 형의 얼굴도 보이고, 길쭉한 마쓰야마 형의 얼굴도 보인다. 산잔 군은 살짝 능청을 떨며 “후훗” 웃는 버릇이 있고, 후로 군은 아랫입술을 안쪽까지 보이도록 “흥” 하고 입을 굳게 다물어 어려운 얼굴을 짓는 것이 버릇이며, 마쓰야마 군의 말에는 억양이 없다는 둥 시시한 일을 떠올리는 사이에 시시하게 까무룩 잠이 든다.

나고야에서 눈을 뜨고 마이바라에서 초르니 군과 헤어져, 오사카에서 내려 숙소에 들자마자 옷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깊이 잠들었다.

기2(其二)

쓰루가행(敦賀行)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뜨니, 얼굴을 씻고 밥을 먹는다. 배가 차자마자 나가타 군을 친구라는 핑계로 내버려 둔 채 서둘러 신문사로 나갔다.

기3(其三)

오사카 본사에서 협의를 마치고, 오사카에 닿은 그날 다시 오사카를 떠나 고토 남작을 영접하러 쓰루가로 갔다. 쓰루가에는 그리운 이가 여럿 있다. 모두 이른바 마음의 벗이다.

오랜만이라며 이 사람들이 어느 요릿집으로 청해 거나하게 마셨다. 이 박정한 세상에 보기 드물게 두터운 정이 고마워 그만 너무 마신 끝에 진흙처럼 취해, 인력거에 부축되어 실려서 여인숙으로 돌아와 정신을 잃고 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숙 안주인에게 깨워져 펄쩍 일어나 부랴부랴 인력거를 부두로 달리게 했다. 작은 증기선에 뛰어올라 호잔마루(鳳山丸)에 이르러 갑판으로 오르니, 살롱이라 짐작되는 방 앞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그림자를 이루고 있었다. 어떤 이는 양복, 어떤 이는 프록코트, 어떤 이는 하카마와 하오리, 제각각의 차림이라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가운데 회색 양복에 검은 야마타카보(보울러 햇)를 쓰고 코걸이 안경을 건, 영자가 늠름한 한 위장부가 있었다. 마중 나온 이들이 번갈아 그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지라, 정면에 선 나에게도 곧장 그분임을 알 수 있었다.

하여 사람들의 뒤를 따라 앞 사람이 물러나기를 기다려 그분 앞으로 나아가 명함을 건네고 인사를 드리니, 아마 다쓰이 비서였던 듯한데, 옆에서 “후타바테이 시메이 군이올시다” 하고 소개해 주었다. 남작은 “오, 그런가” 하고 응대해 주셨다.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누구인지 아실 까닭이야 없으니 잠깐은 어리둥절하셨을 것이다. 라쿠고 가(만담사)로 보일 얼굴도 아니고 승려 같지도 않으니, “아하, 알겠다. 역시 이토 아무개의 아류로 장사(壮士) 출신 나니와부시 가타리(浪花節語り) 따위렷다” 정도로 결론이 나셨으리라. 흥, 좋은 낯짝이로구나.

남작께서 상륙하신 뒤의 모습은 그 무렵 전보에 다 적혔으니 여기서는 줄인다.

남작에 관해서는 이전부터 이런저런 소문을 들어 왔다. 그러나 소문이라는 것은 저마다 자기 눈에 비친 남작을 전할 뿐, 참된 남작은 전하지 못하며, 그나마 소문을 옮기는 이의 안목으로 미루어 보면 그가 본 것은 매우 미덥지 못하다. 나 또한 감히 남작을 알았노라 〔말하지는 못한다〕. 다만 포도 같은 내 눈에 비친 남작은 이상가이면서 또한 실제가이시다. 이 이상에 따라 이른바 사람의 일을 다하시는 자리에서 남작은 지극히 치밀한 주의를 기울이시고 세심하게 헤아림을 더하시므로, 호방함 속에 신중함을 깃들이시어 일의 세세한 부분까지 좀스레 매달리지는 않으나, 큰 국면을 잡으실 때에도 대충 뭉뚱그려 잡지는 않으신다. 반드시 참담한 고심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어긋남 없는 자리를 잡으신다.

지금 세상에도 이상가는 있다. 그러나 많은 이상가의 이상은 죽은 이상이라 쓸모가 없다. 실제가는 본디 많으나, 실제가는 이상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그 하는 바가 자칫 쇄말한 곁가지에 흘러 그저 살아 가는 일에 끌려다니고 휘둘린다. 이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제에 휘둘리지 않으며, 초연히 마음을 사물 밖에 두면서도 감연히 몸을 사물 안에 던져 살리고 죽이는 일이 자유자재인 솜씨를 부리는 참된 인간은 뜻밖으로 적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겠지만, 내가 본 그분이야말로 그러한 인물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 그분은 구태여 남을 흉내 내지 않으시며, 또한 남이 자신을 흉내 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신다. 고토 신페이는 하늘 끝까지 닿고 땅에 굳건히 선 한 사람의 고토 신페이이시다.

오후 한 시, 남작과 동승하여 쓰루가를 떠나 마이바라에서 작별하고 하행 열차로 옮겨 탔다. 객실 안에는 나 말고 단 두 사람의 손님이 있을 뿐. 나는 팔걸이에 턱을 괴고 깊이 그분의 사람됨을 헤아리며 오사카로 내려갔다.

유로기(三) (遊露記)

오사카에 머문 이틀 동안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 거의 짬이 없었다. 자질구레한 일에 멋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천 가지 백 가지로 한 몸에 모여들어 숨조차 돌릴 수 없는 가운데 무한히 곱씹을 만한 묘미가 있다. 한가함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바다.

출발 전날 밤 동료 여러분이 나를 위하여 쓰키지의 다케시키에서 축연을 베풀어 내 행로를 장하게 빛내 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도쿄의 어느 군에게 편지를 쓰려고 밤새 붓을 놓지 않다가 겉봉을 다 쓸 무렵, 어느새 날이 밝았더라.

17일 오전 7시 9분 오사카 발, 무라야마 사장과 소가와 군 등이 배웅해 주셨다. 산노미야에서 내리니, 나와 형체와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나가타 군이 스테이션에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의 사귐은 차라리 적은 편이지만, 그나마 있는 이들은 모두 친한 벗이며 모두 이처럼 정성스레 챙겨 준다. 사람들도 내가 박복하다 하고 나 역시 그리 여기지만, 이 점을 떠올리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보다 앞서 오사카의 쇼킨(요코하마 정금) 지점에서 노도(露都) 앞으로 송금환을 끊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고베의 지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홍콩 상하이 은행에서 얼마간의 돈을 서큘레이팅 노트(여행자수표)로 바꾸어 겨우 목적을 이루었다. 뒷날 떠날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 사정을 여기 적어 둔다.

오전 10시 반, 나가타 군과 오바 군(오사카 마이니치), 고베 지국의 어느 군의 배웅을 받으며 고베마루에 올라탔다. 캐빈에 들어서니 꽃 같은 미인이 있어 살짝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건넨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했더니, “아니에요, 히나타의 안사람이올시다” 하시기에 그제야 알았다. 아, 이분이 내 친한 벗의 부인이로구나.

오사카에 머문 이틀 동안은 자질구레한 일이 모여들어 거의 숨조차 돌릴 수 없었다. 자질구레한 일에 멋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주함에는 분주함의 멋이 있다. 적어도 한가하고 일 없는 것보다는 만 배 낫다. 그동안 사(社) 안팎의 여러 벗들에게 진 신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축연을 받기도 했고, 전별을 받기도 했고, 배웅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한 벗으로 말하자면, 기슈의 어느 온천에서 병을 다스리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오사카로 나와 나를 기다리고, 내가 고베를 떠날 때까지 형체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종이 주인 시중들 듯 살펴 주었다. 나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내이지만, 다만 이런 벗을 둔 것 하나만은 자그마한 자랑으로 삼는다.

비잔 씨의 부고를 접하였다.

17일 오전 오사카를 떠나 고베로 와서 다롄행의 고베마루에 올라탄다. 나가타 군, 오바 군, 히나타 군의 대리로 그 분신과 같은 타네코 씨, 그리고 지국에 있는 어느 군 등이 배까지 배웅해 주셨다. 나는 이 여러분이 일을 마치고 작은 증기선에 올라 돌아가는 그림자가 보일 때까지 뱃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금까지는 벗의 손에서 벗의 손으로 건네져,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이 모두 좋도록 처리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제 일을 건사해야 한다. 그것이야 당연한 노릇이지만, 이러한 벗과 헤어져 외기러기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 어쩐지 마음이 시리다. 나는 호걸도 무엇도 아니니 구태여 호기를 부리지는 않겠다.

오전 11시, 배는 닻을 거두고 고베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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