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읍의 사내
송화읍의 사내
이틀 후-
칠성이는 그의 마을로부터 육 리나 떨어져 있는 송화읍 어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읍에 와서 돌아다니나 수입이 잘 되지 않으므로, 이렇게 송화읍까지 오게 되었고, 피래서야 겨우 큰년의 옷감을 인조견으로 바꾸어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 밤이나 어디서 지낼까 망설이다, 어서 발리 이 옷감을 큰년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 또는 큰년의 혼사 사건이 궁금하고 불안해서 그는 가기로 결정하고 걸었다.
쳐다보니 별도 없는 하늘, 검정 강아지 같은 어둠이 눈 속을 아물아물하게 하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푹 놓이고, 어떤 희망으로 그의 눈은 차차로 열렸다. 산과 물은 그의 맘속에 파랗게 솟아 있는 듯, 그렇게 분명히 구별할 수 있고, 신작로에 깔린 자갈돌은 심심하면 장난치기 알맞았다.
사람들이 연락부절하고. 자동차가 먼지를 피우며 달아나는 그 낮길보다는 오히려 이 밤길이 그에게는 퍽 좋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걸었다.
가다가 우뚝 서면 산 냄새 그윽하고 또 가다가 들으면 물소리 돌돌 하는데, 논물내 확 풍기고, 간혹 산새 울음 끊었다 이어질 제, 멀리 깜박여오는 동네의 등불은 포르룽 날아오는 것같다가도. 다시 보면 포르릉 날아간다.
그가 숨을 크게 쉴 때마다 가슴에 품겨 있는 큰년의 옷감은 계집의 살결 같아 조약돌을 밟는 발가락이 짜르르 울리었다. <고것 어떡허나.>그는 무의식간에 입을 쩍 헐리고 무엇을 물어 당길 것처럼 하였다. 지금 큰년이와 마주섰던 것을 그려본 것이다. 이제 가서 옷감을 들려주면 큰년이는 너무 좋아서 그 가무레한 눈썹 끝에 웃음을 띄울 테지. 가슴은 소리를 내고 뛴다.
차츰 동녘 하늘이 바다와 같이 훤해 오는데, 난데없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는 놀라 자꾸 뛰었으나 비는 더 쏟아지고, 멀리서 비 몰아오는 소리가 참새 무리들 건느듯 했다. 그는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가 빗발에 묻히어 어림해 보이는 저 동리로 부득이 발길을 옮겼다. 큰년의 옷감이 아니면 이 비를 맞으면서도 가겠으나. 모처럼 끊은 이 옷감이 비에 젖을 것이 안되어 동네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한참 오다가 돌아보니. 신작로가 뚜렷이 보이고, 어쩐지 마음이 수선해서 발길이 딱 붙는 것을 겨우 떼어놓았다.
동네까지 오니, 비에 젖은 밀짚내 콜콜 올라오고, 변소 옆을 지나는지 거름내가 코밑에 살살 기고 있다. 그는 어떤 집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몸이 오솔오솔 춥고 눈이 피로해서 바싹 벽으로 다가서서 웅그리고 앉았다. 그의 마을 앞에 홰나무가 보이고, 큰년이가 나타나고,,,,,, 눈을 번쩍 떴다.
빗발 속에 날이 밝았는데, 먼 산이 보이고 또 지붕이 옹기종기 나타나고, 낙수물 소리 요란하고. 그는 용기를 내어 일어나 둘러보았다.
그가 서고 있는 이 집이란 돈푼이나 좋이 있는 집 같았다. 우선 벽이 회벽으로 되었고, 지붕은 시커먼 기와로 되었으며 널판자로 짠 문의 규모가 크고 또 주먹 같은 못이 툭툭 박힌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얼었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횐 돌로 된 문패가 빗소리 속에 적적한데, 칠성이는 눈썹 끝이 희어지도록 이 문패를 바라보고 생각을 계속하였다. -오냐, 오늘은 내게 무슨 재수가 들어닿나보다. 이 집에서 조반이나 톡톡히 얻어먹고 돈이나 쌀이나 큼직히 얻으리라 -------얼른 눈을 꾹 감아보고, <눈도 먼 체할까. 그러면 더 불쌍하게 봐서 쌀이랑 돈을 더 줄지 모르지.>애써 눈을 감고 한참을 견디려 했으나, 눈등이 간지럽고 속눈썹이 자꾸만 떨리고 횐 문패가 가로 세로 나타나고, 못 견디어 눈을 뜨고 말았다.
어떡허나, 내 옷이 너무 희지, 단숨에 뛰어나와서 흙물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 섰던 자리로 왔다. 아까보다 더 춥고 입술이 떨린다. 그는 대문 틈에 눈을 대고 안을 엿보려 할 때. 신발소리가 절벅절벅 나므로, 날래 몸을 움직이어 비켜섰다. 대문은 요란스런 소리를 내고 열렸다. 언제나처럼 칠성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어떤 사람의 시선을 거북스러이 느꼈다.
「웬 사람이야?」
굵직한 음성, 머리를 드니 사내는 눈이 길게 찢어졌고 이 집의 고용인인 듯 옷이 캄캄하다.
「한술 얻어먹으러 왔슈.」
「오늘은 첫새벽부터야.」
사내는 이렇게 지껄이고 나서 돌아서 들어간다. 이 집의 인심은 후하구나, 다른 집 같으면 으례 한두 번은 가라고 할 터인데 하고 어깨가 으쓱해서 안을 보았다.
올려다 보이는 퇴 위에 높직이 앉은 방은 사랑인 듯했고, 그 옆으로 조그만 대문이 좀 비딱해 보이고, 그리고 안 대청마루가 잠깐 보인다. 사랑채 왼편으로 죽 달려 이 문간에 와서 멈춘 방은 얼른 보아 창고인 듯, 앞으로 밀짚 낟가리들이 태산같이 가리어 있다. 밀짚대에서 빗방울이 다룽다룽 떨어진다. 약간 누른 빛을 띠었다. 뜰이 휘휘하게 넓은데 빗물이 골이 져서 흘러내린다.
저리로 들어가야 밥술이나 얻어먹을 텐데, 그는 빗발 속에 보이는 안대문을 바라보고, 서먹서먹한 발길을 옮겼다. 중대문을 들어서자, 안 부엌으로부터 개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나온다. 으르릉 하고 달려들므로 그는 개를 얼릴 양으로 주춤 물러서서 혀를 쩍쩍 채었다, 개는 날카로운 이를 내놓고 뛰어오르며 동냥자루를 즉 물고 늘어진다. 그는 아찔하여 소리를 지르고 중문 밖으로 튀어나오자, 사랑에 사람이 있나 살피며 개를 꾸짖어줬으면 했으나 잠잠하였다. 개는 눈을 뒤집고서 앞 발을 버티고 뛰어오른다. 칠성이는 동냥자루를 입에 물고 몸을 굽혔다 폈다 하다가도 못 이겨서 비슬비슬 쫓겨 나왔다. 개는 여전히 따라 큰 대문에 와서는 칠성이가 용이히 움직이지 않으므로 으르릉 달려들어 잠방이 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그는 악 소리를 지르고 달아 나왔다. 아까 나왔던 사내가 안으로부터 나왔다.
「워리 워리.」
개는 들은 체하지 않고 비죽한 주둥이로 자꾸 짖었다. 저놈의 개를 죽일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부쩍 일어 그는 휘 돌아서서 노려볼 때 사내는 손짓을 하여 개를 부른다. 그러니 개는 슬금슬금 물러나면서도 칠성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갑자기 속이 메식해지고 등어리가 오싹하더니, 온몸에 열이 화끈 오른다, 개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큰 대문만이 보기 싫게 버티고 있었다. 또 가볼까 하는 마음이 다소 머리를 드나, 그 개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났다. 해서 단념하고 시죽시죽 걸었다.
비는 바람에 섞이어 모질게 갈겨치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 도랑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뻥뻥할 지경이다. 붉은 물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그 위엔 밀짚이 허옇게 떠 있고, 파랑새 같은 나뭇잎이 뱅글뱅글 떠돌아간다.
비에 젖은 옷은 사정없이 몸에 착 달라붙고 지동치듯 부는 바람결에 숨이 혹흑 막힌다. 어쩔까 하고 둘러보았으나 집집이 문을 꼭 잠그고 아침 연기만 풀풀 피우고 있다. 혹 빈집이나 방앗간 같은 게 없나 했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무거운 눈엔 그 개가 자꾸만 어른거리고 또 뒤에 다우쳐 오는 것같다. 개에게 찢긴 잠뱅이 가랑이가 걸음에 따라 너덜너덜하여 그의 누런 다리 마디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푹 눌러쓴 밀짚모에선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물같이 건건한 것을 입술에 느꼈다. 문득 그는 큰년의 옷감이 젖는구나 생각되자 소리를 내어 칵 울고 싶었다.
그는 우뚝 섰다. 들은 자욱하여 어디가 산인지 물인지 분간할 수 없고, 곡식대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그 속으로 무슨 큰 짐승이 웡웡 우는 듯한 그런 크고도 굵은 소리가 대지를 울린다.
지금 그는 빗발에 따라 마음만은 앞으로 앞으로 가고 싶은데, 발길이 딱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바라보니 동네도 거반 지나온 셈이요, 앞으로 조그만 집이 두 셋이 남아 있다. 그리로 발길을 돌렸으나 들에 미련이나마 있는 듯 자주자주 멍하니 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개에게 쫓긴 것이 이번뿐이 아니요, 때로는 같은 사람한테도 학대와 모욕을 얼마든지 당하였건만, 오늘 일은 웬일인지 견딜 수 없는 분을 일으키게 된다.
「이 친구 왜 그러구 섰수.」
그는 놀라 보니 자기는 어느덧 조그마한 집 앞에 섰고, 그 조그만 집은 연잣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를 넘석하여 내다보는 사내는 얼른 보아 사오십 되었겠고, 자기와 같은 불구자인 거지라는 것을 즉석에서 알았다. 사내는 쫑긋이 웃는다. 그는 이리 찾아오고도 저 사내를 보니 들어가고 싶지 않아 머뭇거리다도 하는 수없이 들어갔다. 쌀겨내 가득히 흐르는 그 속에 말똥내도 훅훅 풍겼다.
「이리 오우, 저 옷이 젖어서 원,,,,,,」
사내는 나무다리를 짚고 일어나서 깔고 앓았던 거적자리를 다시 펴고 자리를 내놓고 비켜 앉는다. 칠성이는 얼른 희뜩희뜩 세인 머리털과 수염을 보고 늙은 것이 내 동냥해온 것을 뺐으려나 하는 겁이 나고 싫어졌다.
「그 옷 땜에 칩겠수. 우선 내 헌옷을 입고 벗어서 말리우.」
사내는 그의 보따리를 뒤적뒤적하더니.
「자 입소. 이리 오우.」
칠성이는 돌아보았다. 시커먼 양복인데 군데군데 기운 것이다, 그 순간 어디 좋은 옷 얻었는데, 나도 저런 게나 얻었으면 하면서 이상한 감정에 싸여 사내의 웃는 눈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동냥자루나 뺏을 사람 같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소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았다. 사나이는 나무다리를 짚고 이리로 온다.
「왜 이러구 섰두. 자 입으시우.」
「아, 아니유.」
칠성이는 성큼 물러서서 양복저고리를 보았다. 난생전 입어보지 못한 그 옷 앞에 어쩐지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허 ! 그 친구 고집 대단한데. 그럼 이리 와 앉기나 해유.」
사내는 그의 손을 끌고 거적자리로 와서 앉히운다. 눈결에 사내의 뭉퉁한 다리를 보고 못 본 것처럼 하였다.
「아침 자셨수?」
칠성이는 이 자가 내 동냥자루에 아침 얻어온 줄을 알고 이러는가 하며, 힐끔 동냥자루를 보았다. 거기에서도 물이 떨어지고 있다.
「아니유.」
사내는 잠잠하였다가,
「안 되었구려. 뭘 좀 먹어야 할 터인데,,,,,,」
사내는 또 무슨 생각을 하듯 하더니. 그의 보따리를 뒤진다.
「자, 이것 적지만 자시유.」
신문지에 싼 것을 내들어 펴 보인다. 그 종이엔 노란 조밥이 고실고실 말라가고 있다.
밥을 보니 구미가 버쩍 당기어 부지중에 손을 내밀었으나. 손이 말을 안 듣고 떨리어서 흠칫하였다. 사내는 이 눈치를 채었음인지 종이를 그의 입 가까이 갖다대고,
「적어 안 되었수.」
부끄럼이 눈썹 끝에 일어 칠성이는 눈을 내려 뜨고 애꿎이 코를 들여 마시며 종이를 무릎에 놓고 입을 대고 핥아먹었다. 신문지내가 잇사이에 나들고 약간 쉬인 듯한 밥알이 씹을수록 고소하였다. 입맛을 다실 때마다 좀 더 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혀끝에 날름거리고 사내편을 항한 귓바퀴가 어쩐지 가려운 듯 따가 움을 느꼈다.
「적어서 원,,,,,」
사내의 이러한 말을 들으며 신문지에서 입을 떼고 히 하고 웃어 보이었다. 사내도 따라 웃고 무심히 칠성의 다리를 보았다.
「어디 다쳤나보! 퍼가 나우.」
허리를 굽히어 들여다본다. 칠성은 얼른 아픔을 느끼고 들여다보니, 잠뱅이 가랑이에 피가 빨갛게 묻었고, 다리엔 방금 선혈이 흐르고 있다. 별안간 속이 무쭉해서 그는 다리를 움츠리고 머리를 들었다. 바람결에 개비린내 같은 것이 흠씬 끼친다.
「개. 개한테 그리 되었지우.」
「아, 그 기와집 가셨수--,,,, 그 개를 길러도 흉악한 개를 기르거든. 흥! 한 놈이 아니우, 어디 이리 내놓우, 개에게 물린 것이 심상히 여길 것이 못 되우.」
사내는 그의 다리를 잡아당기었다. 그는 얼른 다리를 치우면서도, 코 안이 싸해서 몇 번 코를 움직일 때 뜻하지 않은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사나이는 이 눈치를 채고 허허 웃으면서 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친구 우오. 울기로 하자면,,,,,, 허허, 울어선 못쓰오.」
칠성이는 머리를 번쩍 들어 사내를 바라보니, 눈에 분노의 빛이 은은하였다. 다시 다리로 시선이 옮겨질 때. 가슴이 턱 막히고 목에 무엇이 가로질리는 것 같아, 시름없이 머리를 숙이고 무심히 부드러운 먼지를 쥐어 상처에 발랐다.
「아이고 ! 먼지를 바르면 되우?」
사내는 칠성이 손을 꽉 붙들었다. 칠성이는 어린애 같이 히 웃고 나서,
「이러면 나유.」
「아 원, 그런 일 다시는 하지 마우. 약이 없으면 말지, 그런 일 하면 되우? 더 성해서 앓게 되우.」
칠성이는 약간 무안해서 다리를 움츠리고 밖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또다시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기는 것 같다.
바람이 비를 안고 싸싸 밀려들고, 천장에 수 없는 거미줄은 끊어져 연기같이 나부꼈다. 바라 뵈는 버드나무의 잎은 팔팔 떨곤 아래로 시뻘건 물이 활활 소리를 내고 흐른다. 어깨 위가 어찔해서 돌아보면 큰 매매이 쌀겨를 뽀얗게 쓰고서 얼음같은 서늘한 기를 품품 피우고 있다.
「배안의 병신이우?」
사내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칠성이는 머리를 숙이고 머뭇머뭇하다가,
「아, 아니유.」
「그럼 앓다가 그리 되었구려--- 약 써봤수?」
칠성이는 또다시 말하기가 힘든 듯이 우물쭈물하고 다리만 보았다. 한참 후에,
「아, 아니유, 못 못 썼어유.」
「흥! 생다리도 꺾이우는 지경인데. 약 못 쓰는 것쯤이야, 허허,,,,,,」
사내는 허공을 향하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소름이 오싹 끼쳐 힐끔 사내를 보았다. 눈을 무섭게 뜨고 밖을 내다보는데, 이마엔 퍼런 힘줄이 불쑥 일었고, 입은 꼭 다물고 있다.
「허. 치가 떨려어. 내 왜 그리 어리석었는지 지금만 같으면, 지금이라면 죽더라도 해볼걸. 왜 그꼴이었어! 흥!」
칠성이는 귀를 밝혀 이 말을 새겨들으려 했으나 무엇을 의미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는 칠성이를 돌아보았다. 눈 아래 두어 줄의 주름살이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와 흡사했다.
「이 친구, 나도 한 가정을 가졌던 놈이우. 공장에선 모범 공인이었구. 허허 모범 공인------다리가 꺽인 후에 공장에서 나오니, 계집은 달아나고, 어린 것들은 배고파 울고, 부모는 근심에 지레 돌아가시구,,,,,, 허 말해서 뭘하우.」
사내는 칠성이를 딱 쏘아본다. 어쩐지 칠성의 가슴은 까닭 없이 두근거려, 차마 사내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꺾인 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사내의 다리 밑에 황소같이 말없는 땅을 보았다.
어느덧 밖은 안개비로 자욱하였고, 먼 산이 눈물을 머금고, 구불구불 솟아 있으며, 빗소리에 잠겼던 개구리소리가 그의 동네 앞 인가도 싶게 했고 또한 큰년의 뒷매가 홰나무 아래 어른거려 보인다. 칠성이는 부시시 일어났다.
「난, 난 집에 가겠수.」
사내도 따라 일어났다.
「아. 집이 있수? ,,,,,, 가보우. 」
칠성이는 머리를 드니 사내가 곁에 와서 밀짚모를 잘 씌워주고 빙긋이 웃는다. 어머니를 대한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의지하고 싶은 생각과 믿는 마음이 들었다.
「잘 가우-----, 세월 좋으면 또 만나지.」
대답 대신으로 그는 마주 웃어 보이고 걸었다. 한참이나 오다가 돌아보니, 사내는 우두커니 서 있다. 주먹으로 눈을 닦고 보고 또 보았다.
길 좌우에 늘어앉은 조밭 수수밭은 고랑마다 물이 충충했고, 조이삭, 수수이삭이 절반 넘어져 물에 잠겨 있다. 올해도 흉년이구나 할 때, 어디서 맹하니 또 어디서 꽁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귀 시끄럽게 우짖는 개구리소리는 무심한데. 이제 그 어딘가 곁에서 맹꽁 한 그 소리는 사람의 음성같이 무게가 있었다.
안개비 나실나실 내려온다. 조금 말라오려던 옷이 또 촉속히 젖고, 눈썹 끝에 안개비 엉기어 마음까지 묵중하고 알 수 없는 의문이 뒤범벅이 되어 돌아간다.
그가 그의 마을까지 왔을 때는 다시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시원해 보이는 홰나무도 찡그린 하늘 아래 우울해 있고, 동네 뒤로 나지막히 둘려 있는 산도 빗발에 묻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큰년이가 물동이를 이고 이 비를 맞으면서도 저 산 아래 박우물로 달려가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집집의 울바자며 채마 밑의 긴 바자가 차츰 선명히 보일 때 선뜻 들어 그의 발길을 허둥거렸다.
집에까지 오니 어머니는 눈물이 그득해서 나왔다.
「이놈아, 어미 기다릴 것도 생각지 않고 어딜 그리 다니느냐.」
어머니는 동냥자루를 받아 쥐고 쿨적쿨적 울었다. 칠성 이는 잠잠히 방으로 들어오니, 빗물 받는 그릇으로 절반 차지했고, 뚝뚝 듣는 빗소리가 장단 맞추어 났다. 칠성이는 그만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몸은 아까보다 더 춥고 떨리어서 견딜 수 없다.
칠운이와 아기는 아랫목에 누워 있고 아기 머리엔 무슨 헝겊으로 허옇게 싸매 있었다. 그들의 그 작은 몸에도 빗방울이 간혹 떨어진다.
「아무 데나 앉으렴. 어쩌겠니,,,,,, 에그, 난 어젯밤 널 찾아 읍에 가서 밤새 싸다니다 왔다. 오죽해야 술집 문까지 두드렸겠니. 이놈아, 어딜 가면 간다고 하지 이게 뭐이.」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어 운다. 남편을 잃은 뒤 그나마 저 병신 아들을 하늘같이 중히 의지해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다. 칠운이는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성 왔네 ! 성 왔네!」
눈을 잔뜩 움켜쥐고 뛰었다. 그 통에 파리는 우그르르 끓고, 아기까지 키성키성 보챈다. 칠운이는 두 손으로 눈을 비비치고 형을 보려다는 못 보고 또 비비친다.
「이 새끼야. 고만두라구. 그러니 더 아프지. 에그 너 없는 새 저것들이 자꾸만 앓아서 죽겄다. 거게다 눈까지 덧치니. 그런데 이 동리는 웬일이냐. 지금 눈병 때문에 큰일이구나. 아이 어른 모두 눈병에 걸려 눈을 못 뜬다.」
칠성이는 지금 아무 말도 귀에 거치지 않고. 비 새지 않는 곳에 누워 한잠 푹 들고 싶었다. 칠운이는 마침내 응응 울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뒷문 밖으로 나가더니 오줌을 내뻗치며 그 오줌을 눈에 바른다.
「잘 발라라. 눈등에만 바르지 말고 눈 속에까지 발러,,,, 저것도 반가와서 저리도 눈을 뜨려는구. 어제는 성아 성아 찾더구나.」
어머니는 또 운다. 칠성이는 등에 선뜻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여 앉으니, 이번에는 콧등에 떨어져 입술에 흐른다. 그는 콧등을 후려치고 화를 버럭 내었다.
「제, 제길」
「글쎄 비는 왜 오겠니. 바람이나 불지 말아야 할 터인데, 저 바람 ! 기껏 키운 조는 다 쓰러져 싹이 싸겠구나. 아이구,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으냐. 하느님 맙시사.」
두 손을 곧추 들고 애걸한다, 그예 머리는 비에 젖어 이기어 붙었고, 눈은 눈꼽에 탁 엉기었고, 그 속으로 핏줄이 뻘겋게 일어 눈이 시커매서 바라볼 수 없는데, 시커먼 옷에 천정 물이 어룽어룽 젖었다.
칠성이는 얼른 샛문턱에 걸터앉아 눈을 딱 감아버렸다. 눈이 자꾸만 피곤하고 그래선 새 속눈썹이 가시 같아 눈 속을 꼭꼭 찌른다.
그는 눈을 두어 번 굴렸을 때 문득 방앗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