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강감찬과 일곱 지옥
第四章: 강감찬과 일곱 지옥
이때에 당하여 사방을 돌아보니 억센 놈도 어디 가고, 다리 긴 놈도 어디 가고, 겁 많은 놈도 어디 가고, 돈 많은 놈도 어디 가고, 얼굴 좋은 아가씨도 어디 가시고, 온 옥중에 있는 사나이나 계집이나 모두 오래 젖에 주린 아이가 어미 몸을 보는 듯하여 콱 엎드리자 흑흑 느끼어 가며 운다. 강감찬이 보시더니 불쌍히 여기사 물으시되,
"왜 처음에 지옥이 무서운 줄 몰랐더냐? 죄를 왜 지었느냐?"
하니 옥중이 묵묵하여 아무 대답이 없거늘 한놈이 나서며 여짜오되,
"우리가 나가고 싶단 말도 없었는데 임이 우리를 인간에 내시고 우리가 오겠다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임이 우리를 지옥에 넣으시니 우리들이 임의 일이 답답하여 우나이다."
강감찬이 웃으시며,
"임이 너희들을 내셨다더냐? 또 지옥에 올 때도 임이 가라고 하시더냐?"
"그러면 누가 내시고 누가 이리 오게 하셨습니까?"
강감찬이 크게 소리를 질러,
"네가 네 일을 모르고 누구에게 묻느냐?"
하고 꾸짖으니 온 옥중이 모두 한놈과 함께 황송하여 일제히 그 앞에 엎드리며,
"미련한 것들이 알지 못하오니 사자님은 크게 사랑하사 미혹을 열어 주소서."
강감찬이 지팡이를 거꾸로 받드시더니 모든 옥수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짓지 않으면 지옥이란 이름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지옥은 임이 지은 것이 아니라 곧 너희들이 지은 지옥이니라."
한놈이 일어서 아뢰되,
"우리가 지은 지옥이면 깨기도 우리 힘으로 깰 수 있습니까?"
강감찬이 가라사대,
"작은 죄는 자기 손으로 깨고 나아갈지나 큰 죄는 제 손은 그만두고 님이 깨어 주려 하여도 깰 수 없나니 천겁 만겁을 지옥에서 썩을 뿐이니라."
한놈이 묻되,
"어떤 죄가 큰 죄오니까?"
강감찬이 가라사대,
"처음에 단군이 오계를 세우시니,
옛적에는 오계에 하나만 범하여도 큰 죄라 하여 지옥에 내리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일이 급하여 다른 죄를 이루 다 다스릴 수 없어 오직 나라에 대한 죄만 큰 죄라 하여 지옥에 내리느니라."
한놈이,
"나라에 대한 큰 죄가 몇입니까?"
물으매 강감찬이,
"네가 앉아 들어라!"
하시더니 하나씩 세신다.
첫째는 국적을 두는 지옥이 일곱이니,
둘째는 망국노를 두는 지옥이니,
이 밖에도 지옥이 몇몇이 더 되나 너희들이 알아둘 지옥은 이만하여도 넉넉하니라.
온 옥수(獄囚)가 악머구리 울듯 하며,
"사자님은 크게 어진 마음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이곳을 떠나게 하소서."
강감찬이,
"공은 공대로 가며 죄는 죄대로 간다."
하고 부채로 썩 가리우니 모든 옥수가 어디에 있는지 보지는 못하나 마음에 그 참형당할 일이 애달퍼 강감찬의 앞에 나아가 매국적 같은 큰 죄는 할 수 없거니와 그 나머지는 다 놓아 보냄을 청하니 강감찬이 한놈의 등을 만지며,
"그대가 이런 마음으로 임나라에 갈 만하지만 다만 두 사랑이 있으므로 이곳까지 옴이로다."
하거늘 한놈이 그제야 미인의 홀림으로 풍신수길을 놓치던 일을 생각하고 묻자와 가로되,
"나라 사랑하는 사람은 미인을 사랑하지 못하옵니까?"
강감찬이 땅 위에 놓인 칼을 가리키며,
"이 칼 놓은 자리에 다른 것도 또 놓을 수 있느냐?"
"안 될 말입니다. 한 물건이 한 시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습니까?"
강감찬이 이에 손을 치며,
"그러하니라. 한 물건이 한 시에 한 자리를 못 차지할지며 한 사상이 한 시에 한 머릿속에 같이 있지 못하나니 이 줄로 미루어 보아라. 한 사람이 한 평생 두 사랑을 가지면 두 사랑이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고로 이야기에도 있으되 '두 절개가 되지 말라' 하니 그 부정함을 나무람이니라."
한놈이 또 묻되,
"그 줄이 있습니까?"
강감찬이 대답하되,
"소경은 귀가 밝고 귀머거리는 눈이 밝다 함은 한 길로 가는 까닭이라. 그러기에 석가여래가 아내와 아들을 다 버리고 보리수 밑에서 아홉 해를 지내심이니라."
"애국자의 일도 종교가와 같으오리까?"
"하나는 출세자(出世者)의 일이요, 하나는 입세자(入世者)의 일이니 일은 다르지만 종교가가 신앙밖에 다른 사랑이 있으면 종교가가 아니며, 애국자가 나라밖에 다른 사랑이 있어도 애국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몸은 안 아끼는 이 없지만 충신이 일에 당하면 열두 번 죽어도 사양치 않으며 누가 처자를 안 어여삐하리요만 열사가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나니 이와 같이 나라밖에는 딴 사랑이 없어야 애국이어늘 이제 나라도 사랑하며 술도 사랑하면 술로 나라 잊을 적이 있을지며, 나라도 사랑하며 미인도 사랑하면 미인으로 나라 잊을 때가 있을지니라."
한놈이 절하며 그 고마운 뜻을 올리고 그러나 지옥에서 나가게 하여 달라 하니 강감찬이 가로되,
"누가 못 나가게 하느냐?"
"못 나가게 하는 사람은 없사오나 몸이 쇠사슬에 묶이어 나갈 수 없습니다."
강감찬이 웃으시며,
"누가 너를 묶더냐?"
하니 한놈이 이 말에 대철대오하여 본래 묶이지 않은 몸을 어디에 풀 것이 있으리요 하고 몸을 떨치니 쇠사슬도 없고 옥도 없고 한놈의 한 몸만 우뚝하게 섰더라.
천국은 하늘 위에 있고 지옥은 땅 밑에 있어 그 상거가 천 리나 만 리인 줄 아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라 실제는 그렇지 않아서 땅도 한 땅이요, 때도 한 때인데 제치면 임나라고 엎치면 지옥이요, 세로 뛰면 임나라고 가로 뛰면 지옥이요, 날면 임나라며 기면 지옥이요, 잡으면 임나라며 놓치면 지옥이니, 임나라와 지옥의 상거가 요것뿐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