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도쿄 시 소요 중의 낚시

이시이 켄도

소요와 경범죄

메이지 38년(1905년) 9월 5일의 국민 대회로부터 뜻밖에도 경찰서 방화(警察焼打)라는 결과가 빚어지자, 시내는 순식간에 무경찰 상태에 빠졌다. 이때다 싶어 보란 듯이, 일부러 웃통을 벗고 큰길을 활보하는 자, 자랑스럽게 맨발로 거리를 누비는 자, 등불도 없이 인력거를 끄는 자들이 우글거려, 위경죄(違警罪) 위반자들로 거리가 넘쳐났으니, 실로 오싹한 광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심이 흉흉하여 편안히 지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낚시 여관에서 전해 들은 바로는, 소요가 이어진 사흘 동안은 낚시를 나가는 이가 씨가 말라 사실상 폐업이나 다름없었다 한다. 그럴 만도 하였다. 그런데 이 시끄러운 혼란을 틈타 평소 살생이 금지된 연못에 낚싯줄을 드리워 영지(靈地)를 더럽히고 잠깐의 쾌락을 탐한 천한 자들이 적지 않았으니,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낚시꾼 이야기꾼(漁史)이 직접 보고 들은 한두 가지를 여기 추려 적어 훗날의 기록으로 삼고자 한다.

낚싯대, 화를 살 뻔하다

6일 낮, 찾아온 손님이 말하기를, “나는 어제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소. 생각만 해도 오싹하오” 하였다. “국민 대회 구경이라도 나갔다가……” 하고 물으니, “아니오, 후카가와(深川)로 오보코 낚시를 나갔다가 해질 무렵, 여느 때처럼 낚싯대를 어깨에 메고 어롱(魚籃)을 손에 들고 오와리초(尾張町) 4가 모퉁이에서 유라쿠초(有楽町) 쪽으로 접어드는데 심상치 않은 소란이 들리더군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전차 길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자니 점점 혼잡이 심해졌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툭 치는 거요. 돌아보니 마흔 남짓 된 상인 풍의 사내가, ‘그쪽에서 그런 칼 같은 것을 메고 가셨다가는 큰일 납니다’ 하고 주의를 주더군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지금 내무대신 관저가 이러저러해서’ 하며 관민이 서로 칼을 휘두르는 수라장을 이야기해 주었소. ‘그렇다면 대 자루를 벗기고 낚싯대를 드러낸 채로 가겠습니다’ 하니, ‘그러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고 동의해 주어, 두터이 감사를 드리고 헤어진 뒤, 낚싯대 자루를 벗겨 어롱을 꿰어 메고서, 백 번 우레가 치는 듯한 함성과 어두운 밤 갯가의 성난 파도 같은 충돌 소리를 멀리 들으면서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소. 만약 그 고마운 분의 충고가 없이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다면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오” 하였다. 아슬아슬한 일이었도다.

아사쿠사 공원의 공개(?) 낚시터

6일 밤에는 소문대로 또 방화 소동이 있었고, 이튿날 7일에는 시내가 완전히 무경찰 상태를 드러내었다. 아사쿠사 공원(浅草公園) 연못에서는 단속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잉어 낚시가 크게 성황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낚시의 역사에 기록할 만한 광경이니 한번 보지 않을 수 없겠다 싶어, 점심 식사 후 곧장 이리야 고게쓰초(入谷光月町)를 지나 릉운각(凌雲閣) 아래를 거쳐 공원 제6구의 연못가로 느긋이 나섰다.

가서 보니 소문보다 훨씬 대단한 성황이었다. 연못 주위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새까만 인파가 담처럼 둘러서 있었다. 평소에는 구경거리 사이사이에 흩어져 영업하던 걸기 낚시(引懸釣) 가게에도 손님이 넘쳐흘렀거늘, 하물며 하루 이틀 전까지만 해도 돌멩이 하나 던질 수 없었던 연못에서 한 자(약 30cm)가 넘는 잉어를 마음껏 낚아 올릴 수 있는 공개(?) 낚시터로 변해 버렸으니, 수백 명의 낚시꾼과 수천 명의 구경꾼이 개미떼처럼 모이고 노루떼처럼 몰려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성대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는 광경이었다.

낚싯대를 든 사람들

섬으로 이어진 다리, 평소 야키후(焼麩, 구운 밀떡)를 파는 이가 자리했던 그 부근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막혀 버려, 필자는 살짝 들여다보려 했으나 발을 들여놓을 길이 없어 그냥 돌아서서 교번(파출소) 타다 남은 터 쪽으로 가 발끝을 세우고 바라보았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연못을 향해 뻗어 나온 낚싯대가 몇 백 개인지 셀 수가 없었다. 이음 낚싯대(継竿), 통대 낚싯대(丸竿), 잠자리 잡이용 막대기 그대로인 것, 연줄을 단 것도 적지 않았다. 한 손은 기슭의 소나무며 버드나무를 잡고 있는 사람, 발을 둥근 돌 위에 올려 원숭이팔처럼 쭉 뻗은 자, 쪼그려 앉아 담배를 뻐끔거리는 자. 완전한 낚시터 그 자체였다.

낚싯대를 든 이들 중에는 배받이에 짧은 한텐(切絆天), 짙은 무명천(盲縞) 작업바지(股引) 차림의 무리가 많았다. 허름하고 흰 머리칼의 노인이 손수 꽃칠을 올린 듯한 대나무 모자를 쓴 채 있는가 하면, 아이들도 서넛 중 하나쯤은 섞여 있었으리라. 잡히는 물고기의 크기 탓인지, 아니면 그저 충동적인 취흥인지, 어롱을 준비한 이는 드물었다. 다만, 두 자 다섯여섯 치(약 75~80cm)나 될 법한 종려 밧줄을 단 대형 어물통을 옆에 갖춰 놓은 사내도 있었으니, 이런 자는 즉흥적인 충동으로 볼 수 없었고 죄 깊은 부류의 하나였음이 분명하였다.

만세 소리

평소 야키후 하나만 던져도 앞다퉈 무리를 지어 수면으로 몰려들도록 길들여진 잉어들이었다. 이를 낚아 올리는 데 기술이나 솜씨가 필요할 리 없었다. 튼튼한 채비만 있으면 힘껏 들어 올리기만 해도 아이든 어른이든 낚을 수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서른 살쯤 된, 메밀국수 가게 배달부처럼 생긴 사내가 수면에서 당겼다 당겨졌다 한참을 씨름하더니 두 자(약 60cm)가량의 잉어 한 마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구경꾼들 사이에서 백 번 우레가 치듯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맞은편 기슭에서 또 한 마리가 올라오자, 다시 “만세!” 소리가 일었다. 한 마리를 올릴 때마다 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것이 이곳의 관례인 모양이었다.

이 많은 낚시꾼과 구경꾼 외에, 한 가지 이색적인 무리도 눈에 띄었다. 긴 자루 달린 뜰채(玉網)를 손에 들고, 누군가 낚아 올리는 낌새를 보일 때마다 냅다 달려가 그 곁에 붙어 건져 올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기특한 자(?)들이었다. 이쯤 되면 광태도 극에 달했다 할 만하였다.

낚시꾼의 정찰대

이곳저곳에서 한 마리가 올라올 때마다 “만세!”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 누구 입에서인지 “온다, 온다!” 하는 소리가 퍼졌다. 그러자 일동이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짐짓 딴 곳을 바라보며 서로 모르는 척을 가장하였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순사가 나타난 것이었다. 정찰대로부터 “순사 출현!”이라는 신호를 받고 일제히 낚시를 멈춘 것임을 알아차렸다. 순사가 지나가자마자 다시 삽시간에 연못을 에워싸고 낚싯바늘을 드리우는 것이 이전과 같았다. 보초 딸린 낚시란 것을 일생에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세!” 소리 속에 또 한 마리를 들어 올린 자가 있었으나,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 없이, “뭐야, 비단잉어잖아. 누구한테든 줘버려야겠군”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 살쯤 된 아이가 “아저씨, 저 주세요!” 하고 달려들었다. “뭘, 못 먹을 것도 없어. 살이 좀 물렁거리긴 하지만……” 하며 건네주자, 아이는 옷자락에 싸 들고 냅다 달아났다.

이 사내, 또 한 마리를 낚았으나 “체형이 마음에 안 들어” 하며 역시 곁에서 구경하던 남자에게 주어 버렸다. 보통 낚시꾼이라면 사흘 나흘 애를 써 “펄떡이는 놈” 한 마리를 올려도 천금같이 기뻐하며 몇 번이고 어롱 속을 들여다보며 아끼고 또 아끼거늘, 한 자가 넘는 잉어를 이렇듯 아무렇게나 나눠 주며 망둑어 한 마리쯤으로도 여기지 않으니, 사이교 법사(西行法師)의 탈속함과도 흡사한 호방하고 무욕한 낚시꾼이로다 싶었다. 들으니 한 사람이 일곱여덟 마리를 얻어 간 이도 적지 않았다 한다.

잉어의 풍년인가

걸음을 옮겨 맞은편 기슭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 눈앞의 노인이 이웃 낚시꾼에게, “참으로 대단한 낚시꾼이로군. 낚시터가 이 정도로 성황이면 큰 대박이겠네” 하자, “이 정도 대박을 맞았다가는 개업 이삼 일에 망하겠지요. 저기 저 녀석 좀 보세요, 아침부터 열여섯일곱 마리나 올렸으니 확실히 3, 4엔어치는 벌었을 겁니다”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아이를 보니, 무릎까지 오는 셔츠 한 장 걸친 열두셋쯤 된 소년이었다. 생각건대, 이 일대 집집마다 이 이삼 일간의 반찬거리는 온통 잉어 요리였을 것이다. 저 오코이 마님(お鯉御前)은 대신의 눈에 들어 성도 없이 화려한 마차에 올랐고, 이 공원의 잉어는 죄도 없이 구경꾼들(野次馬)의 녹슨 낚싯바늘에 걸려 빈민가 밥상을 풍성히 한다. 참으로 올해는 잉어의 풍년이로다, 하는 쓸데없는 공상을 하며 구경하였다.

방생지의 작은 거북

비록 직접 낚싯대를 쥐지는 않았으나 유쾌한 기분도 들지 않아 곧 그 자리를 떠났는데, 관음당(観音堂) 앞에 이르러 또 하나의 난장판을 목격하였다. 아와시마 신사 앞(淡島さま前) 작은 연못은 논배미에서 하는 물 긁어내기와 다름없이, 온통 흙투성이가 된 남녀노소가 뒤엉켜 휘젓고 있었다. 평소 수면 위며 돌 위에 무리 지어 노닐던 방생지(放生池)의 남생이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지금 너나없이 손을 뻗어 찾는 이들의 목적이 남생이였음은 불을 보듯 뻔하였다. 그 중에 “잡아도 상관은 없는데 거북이 없어요” 하고 껄껄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오후 세 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날 이치가야 미쓰케(市ヶ谷見付) 일대의 해자(濠渠)에도 낚시꾼이 들끓었다 한다. 계엄령(戒厳令) 호외를 파는 방울 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속에서도 태연히 낚싯줄을 드리우고 세상사를 한바탕 웃음으로 흘려버리며 돌아보지 않으니. 낚시꾼이야말로 참으로 선객(仙客)이로다, 선객이로다.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