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노래의 갖가지
이시카와 다쿠보쿠
(1)
○날마다 모여 오는 응모 노래를 읽고 있노라면, 문득 야릇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있다. 작자 본인에게 누가 가지 않을 한도에서 한두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다. 요즈음에야 겨우 손을 댄 시월 중 도착분 가운데, 간다(神田)의 아무개라는 이가 반지(半紙) 두 번 접은 종이에 가로로 스무 수의 노래를 적고 「내 지금의 처지」라 제목을 붙여 보낸 것이 있었다.
○읽으면서 나는 이상하게 여겼다. 노래가 능숙한 까닭에서가 아니다. 노래는 글씨와 더불어 오히려 서툴렀다. 또 그 노래에 담긴 사연이 유달리 새로웠던 까닭에서도 아니었다. 내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빠뜨린 글자가 많다는 점이었다. 오자나 가나 오기는 수백 응모자 가운데 자주 하는 이가 있다. 오히려 놀랄 만큼 많다. 그러나 이리 탈자가 많은 경우는 좀처럼 없다. 부질없는 짓이라 여기면서도 헤아려 보니, 스무 수 가운데 일곱 군데에 탈자가 있었다. 세 수에 한 군데 꼴이다.
○노래에 담긴 사연인즉 이러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가을바람이 불어 왔다고 한 것이 있었다. 비뚤어진 마음을 일으키는 건 나쁘다 나쁘다 여기면서도 어느샌가 그것이 버릇이 되었다고 한 것이 있었다. 열여덟 살부터 살림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이 있었다. 평온히 잠든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보면 눈물이 흐른다고 한 것이 있었다. 동생의 천진함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노래도 있었다. 돈이라는 것에 갖가지 원망을 늘어놓은 것도 있었다. 종일 일에 시달린 피로를 노래한 것도 있었다.
○이 아무개는 본디 덜렁대는 사람일까? 소학교 시절부터 글자를 빠뜨리거나 셈을 틀리거나 물건을 잊는 버릇이 있던 사람일까? 이런 일을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제멋대로요, 작자에 대해 무례한 추측이며, 따라서 그 답 또한 제멋대로의 추측에 지나지 않으나,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는 여겨지지 않았다. 나아갈 길을 나아가지 못하고 처지의 희생이 된 사람이, 그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불만이 있으면 있을수록, 기력도 안색도 남보다 먼저 시들어, 행복한 이라면 이제부터 비로소 세상에 나서 보겠노라 할 나이에 일찌감치 고치기 어려운 신경 쇠약에 빠져 있는 예는, 내가 아는 범위에도 두셋이 아니다. 나는 「열여덟부터 살림의 고통을 안 사람」과 「탈자를 많이 하는 사람」을 따로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아무개의 응모는 아마도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날이거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만큼 기쁜 일이라도 있는 날에 쓴 까닭에 이렇게 탈자가 많았으리라.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여기에 내가 제멋대로 상상한 것 같은 사람이 있어, 아무개가 노래한 것 같은 사연을 누군가 앞에 호소하였다면, 그 사람은 과연 무어라 답할까.
○나는 갖은 경우, 갖은 사람의 그에 대한 답을 상상해 보았다. 모두가 참으로 지당한 말뿐이었다. 그러나 그 꾸짖음, 그 격려, 그 동정은 과연 얼마나 그 불행한 청년의 처지를 바꿔 줄 것인가. 그뿐 아니라 나는 또 이런 것도 생각해야 했다. 스무 수 노래에 일곱 군데 탈자를 할 만큼 머리가 둔해진 사람이라면, 그 평소의 일에도 「탈자」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 처세술에도 「탈자」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 내 마음은 어느덧 다시, 지금의 갖가지 아름다운 제도와 아름다운 도덕을 그대로 길이 우리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빚어내야 하는가 하는 데로 옮겨 갔다. 그리하여 사무치는 마음이 되어 다음 응모의 봉투를 뜯었다.
(2)
○꽤 오래된 일이다. 이바라키였는지 지바였는지 혹은 또 군마 쪽이었는지, 아무튼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縣)의 어느 군 어느 마을 소학교 안 아무개라는 이로부터 노래가 왔다. 며칠인가 지나 그 노래 가운데 몇 수가 신문에 실렸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나는 같은 사람이 보낸 긴 편지를 곁들인 두 번째 응모를 받았다.
○그 편지는 후보문(候文, 메이지 격식 서간체)과 보통문을 뒤섞어 빚은 듯한 문체로, 우선 자신이 「가련한 시골 구석의 소학교 교사」라는 데서 글머리를 떼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자기 직무에 도무지 흥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누구 하나 풍취를 알아 줄 이 없는 시골 구석의 무미함, 그러는 사이 평소 애독하던 아사히신문 가단이 마련되어 공곡공음(空谷跫音, 적막 골짜기의 발소리)이라 여겼다는 것, 요즈음은 신문이 닿으면 가장 먼저 가단을 본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자기도 전력을 다해 노래를 연구할 작정이니 잘 부탁한다, 오늘부터 매일 반드시 한 통씩 응모하겠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이 편지가 받는 이인 내 마음에 일으킨 결과는, 응당 이 아무개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바였으리라. 어찌하여인고 하니, 나는 이것을 읽고 났을 때 내 마음에 분명히 일종의 반감이 일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나 노래나 그 밖의 문학에 종사하는 일을, 인간의 다른 갖은 활동보다 무언가 격별히 귀한 일이라 여기는 미신. 그것은 언제 어떤 사람의 입에서 나오든 내 마음에 어떤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적이 없다. 「노래 만드는 일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여기는, 멍청한 녀석이다.」 나는 그렇게 여겼다. 그러고는 또 과연 자신이 말한 대로 가련한 소학교 교사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다. 편지에는 가나 오기도 문법 어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반감도 곧 거두어야 했다. 「부럽구나, 이 사람.」 하는 듯한 느낌이 가벼이 옆으로부터 흘러 왔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가련한」이라 부르고 있으나, 얼마나 가련하며 어찌하여 가련한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 오히려 그런 식의 사고를 하지 않는 기질의 사람임은,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한 처지에 있으면서 전력을 다해 노래를 연구하겠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점, 게다가 그 노래가 지극히 평범한 서사·서경의 노래에 지나지 않는 점, 그리고 다른 부지런히 애쓰는 마을 사람들을 풍취를 모르는 자들이라 비웃으며 가까스로 흡족해하는 듯한 점들로써 알 수 있었다. 자기가 하는 일, 말, 생각에 대해 그것을 하면서, 말하면서, 생각하면서 늘 일일이 반성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마음, 무슨 일이든 정면으로 그 문제에 맞서 밑바닥까지 파고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마음, 매일매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세상으로부터도 갖가지 부조리와 모순을 발견하고, 그 발견에 의해 도리어 더욱 자기 자신의 삶에 부조리와 모순을 깊게 만들어 가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은 내가 자주 겪는 바였다.
○나는 어떤 시골 소학교의 숙직실에 뒹굴뒹굴 하고 있는 한 젊은 준훈도(准訓導)를 상상해 보았다. 그 사람은 진정으로 사람을 화나게 할 만한 욕설을 하나도 가슴에 품어 두지 않은 사람이다. 막연히 교과서에 있는 만큼의 자구를 학생에게 가르치고, 막연히 자기 처지의 가련함을 시인하며, 막연히 앞으로 한껏 노래를 지어 보겠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일찍이 자기 마음속이며 신변에 일어나는 사물에 대해, 그 뿌리내린 곳이 얼마나 깊은지, 그 미치는 바가 얼마나 먼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매일 신문을 읽으면서도, 우리 마음을 뒤에서 자꾸자꾸 재촉하며 매일 새로이 펼쳐지는 시대의 진상에 대해 어떤 절실한 흥미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의 한평생에 시원하게 입을 열어 웃을 기회가 내 것보다 분명 많으리라 여겼다.
○이튿날 출근했을 때는 내 머릿속에 더는 그 아무개의 일이 없었다. 그러다 전날과 같은 빛깔의 봉투에 같은 이름을 쓴 한 통을 다른 응모들 사이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매일 응모할 작정인가 싶어 약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았다. 그 이튿날도 왔다. 또 그 이튿날도 왔다. 어느 때는 우편 시간을 놓쳤는지, 하루 건너 다음 날에 두 통이 한꺼번에 오기도 했다. 「또 왔다.」 나는 늘 그렇게 여겼다. 짓궂은 일이지만, 나는 이 사람이 부질없는 노력에 언제까지 싫증 내지 않고 버티려나에 흥미를 가지고, 내색 없이 매일 기다렸다.
○그것이 분명 이레인가 여드레쯤 이어졌다.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질렸군.」 하고 여겼다. 그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 뒤로 이미 두 달, 나는 다시는 이 아무개의 옅은 먹빛,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글씨를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온 노래만 해도 자못 많은 수에 이르렀으나, 다만 이른바 노래가 됨 직한 풍물을 막연히 서른한 자의 형식에 담았을 따름이라, 신문에 실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이 일을 적어 오면서, 그 뒤 이 아무개는 어찌 지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역시 신문이 닿으면 그저 문예란이며 가단이며 소설만 흥미를 가지고 읽고 있을까. 막연히 노래를 짓기 시작했다 막연히 그만두어 버린 것처럼, 다시 또 막연히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만일 이 아무개가 단 한 가지 일, 가령 자신이 자기를 가련하다 한 일에 대해서라도, 그것이 어떻게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를 정면으로 맞서 생각해, 그곳에 어떤 움직일 수 없는 숨겨진 사실을 받아들일 때, 그 아무개의 노래는 저절로 생기 있는 인간의 노래가 되리라고.
(3)
○멍하니 집 앞까지 걸어왔을 때, 느닷없이 기르던 개가 달려들어, 「어이쿠 놀랐다. 이 자식!」 하고 자기도 모르게 입에 내는, 그런 예는 흔한 일이다. 시시한 말장난 같지만, 사람은 놀라면 욕설을 내뱉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이 자식」이라 하지 않더라도, 시로(白)면 시로, 포치(ポチ)면 포치라 부르면 좋지 않은가. 만일 꼭 무어라 불러야만 한다면.
○도키 아이카(土岐哀果) 군이 11월호 「창작(創作)」에 발표한 서른몇 수의 노래는, 이 사람이 여태껏 남의 칭찬과 비방을 도외시하고 홀로 일구어 온 새로운 밭에 마침내 즐거운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불탄 자리 벽돌 위에서
syoben(소변)을 누면 사무치게
가을 기운이 든다
는 한 수가 있었다. 좋은 노래라고 나는 여겼다. (소변(小便)이라는 말만 일부러 로마자로 쓴 것은, 작자의 뜻으로는 아마 이 말을 종래의 한자로 썼을 때 따라붙는 좋지 않은 연상을 뿌리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여긴다.)
○그러자 이번 달 들어, 나는 친구 하나로부터, 어느 잡지가 일부러 이 노래를 들어 도키 군의 가풍을 매도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의외로 여겼다. 물론 이 노래가 같은 작자의 노래 중에서 가장 빼어난 노래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나쁜 노래가 되지 않는다. 평자는 어찌하여 이 날카로운 실감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는 앞서 말한 「이 자식」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평자는 분명 노래라는 것에 대해 어떤 좁은 기성 개념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새로운 노래의 감상가로 자임하면서도, 어느샌가 노래는 이러한 것, 이러해야 한다는 보수적 개념을 빚어내고는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곳으로 울타리 틈에서 기르는 개가 튀어나오듯, 소변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와, 그 보수적이고 구차한 기성 개념의 옷소매에 덥석 물고 늘어진 것이다. 그러나 기르는 개가 주인의 귀가를 반겨 달려드는 데 아무 이상함도 없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 쓰는 말이 우리 노래에 들어왔다 한들 무어 놀랄 일이 있겠는가.
○내 「얏 하는 사이 가쓰라 수상에게 손 잡힌 꿈을 꾸다 깨어 버린 가을밤 두 시」라는 노래도 어느 잡지에서 도키 군의 소변 노래와 같은 운명을 만났다. 다만 이 노래는, 마찬가지로 실감의 토대를 두면서도 가쓰라 수상을 꿈에 본다는 지극히 드문 사실을 내용에 끌어들였기에, 다시 말해 만인의 공감을 얻기에 너무 한정된 내용을 노래했기에, 소변의 노래만큼 노래로서 존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고(故) 돗포(獨歩)는 일찍이 그의 이름난 소설 가운데 하나에 「놀라고 싶다」는 것을 적어 두었다. 그 뜻에 있어서는 나도 지금에 이르도록 놀라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과 전혀 다른 뜻에서, 나는 지금 (놀라고 싶지 않다)고 여긴다. 무슨 일에도 놀라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으로 그 문제에 맞서고 싶다고 여긴다. 그것은 소변과 가쓰라 수상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또 노래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우리 일본인은 특수한 역사를 과거에 가져 왔던 만큼, 지금 그야말로 거의 모든 새로운 일에 대해 놀라야 할 처지에 있다. 그리하여 놀라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백 번 「이 자식」을 거듭 외친들, 시계 바늘이 한 초라도 멈추어 줄까.
○역사를 존중함은 좋다. 그러나 그 존중을 거꾸로 장래로 향해서까지 유지하려고 일체의 「놀라야 할 일」에 손으로 뚜껑을 덮으려 할 때, 그 보수적 개념을 엄밀히 따져 들어가다 보면, 일본이 일찍이 의회를 연 일부터가 우선 국체(國體)에 저촉되는 셈이 되지는 않을 것인가. 우리의 노래 형식은 만요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오늘의 노래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오늘의 노래다. 우리의 내일의 노래도 역시 어디까지나 우리의 내일의 노래여야 한다.
(4)
○책상 위에 한쪽 팔꿈치를 짚고 담배를 빨면서, 나는 글쓰기에 지친 눈을 탁상시계 바늘에 두고 놀게 했다. 그리하여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릇 모든 일은, 그것이 우리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기에 이를 때, 우리는 그 불편한 점에 대해 거리낌 없이 개조를 시도해도 좋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남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노래라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한 수의 노래를 한 줄에 이어 적는 일에 어떤 불편함과 어떤 부자연스러움을 느껴 왔다. 그러니 이는 노래마다의 가락에 따라 어떤 노래는 두 줄로, 어떤 노래는 세 줄로 적도록 하면 된다. 설령 그것이 노래의 가락 그 자체를 깨뜨린다는 말을 듣더라도, 그 종래의 가락 자체가 우리 감정에 꼭 맞지 않게 되었다면, 무어 거리낄 필요가 없다. 서른한 자라는 제한이 불편할 때는 자꾸자꾸 자수 초과(字餘り)도 행해야 한다. 또 노래할 내용에 있어서도, 이는 노래답지 않다거나 노래가 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제멋대로의 굴레를 그만두어 버리고, 무엇이든 노래하고 싶다고 여긴 일은 자유로이 노래하면 된다. 이렇게만 해 가면, 바쁜 삶의 틈에 마음에 떠올랐다 사라져 가는 찰나찰나의 느낌을 아끼는 마음이 인간에게 있는 한, 노래라는 것은 멸하지 않는다. 가령 지금의 서른한 자가 마흔한 자가 되고 쉰한 자가 되더라도, 어쨌든 노래라는 것은 멸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에 의해, 그 찰나찰나의 생명을 아끼는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마침 초침이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기 마음이 차츰차츰 어두워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은 노래를 한 줄에 이어 적는 일만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나 자신이 지금에 있어 뜻대로 고칠 수 있는 것, 고쳐도 좋은 것은, 겨우 이 책상 위의 탁상시계나 벼루상자나 잉크병의 자리, 그리고 노래 정도이다. 말하자면 어떻든 좋은 일들뿐이다. 그러고는 그 밖의 진정 나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고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갖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지 않은가. 아니, 그것에 굴종하고, 그것에 굴복해, 처참한 이중의 삶을 이어 가는 것밖에 이 세상에서 살아갈 방도를 갖고 있지 못하지 않은가. 스스로 갖가지 변명을 자기에게 늘어놓아 보아도, 내 삶은 역시 지금의 가족 제도, 계급 제도, 자본 제도, 지식 매매 제도의 희생이다.
○눈길을 옮겨, 죽은 것처럼 다다미 위에 던져진 인형을 보았다. 노래는 나의 슬픈 장난감이다. (메이지 43년 12월)
(메이지 43년 12월 10일~20일 「도쿄 아사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