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높은 산, 새들만이 찾아드는 험준한 절벽에, 신파쿠(真柏, 분재 노송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답니다. 그 나무는 그곳에서 수십 년이 넘도록 세월을 보내왔던 것이지요.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산이라고는 해도, 그 긴 세월 동안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답니다. 사람의 발이 미치는 곳, 또 손이 닿는 곳의 나무들은 베이거나 뽑혀 가거나 했지요. 그것은 인간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답니다.
어떤 때는 비가 이어져 홍수가 나고, 어떤 때는 무서운 폭풍이 몰아치고, 또 진정 두려운 눈까지, 위협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생명을 지닌 인간이 하는 일에 견줄 수도 없는, 헤아릴 수 없는 폭력을 품은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고 나무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험준한 곳에서 자라났기에, 신파쿠는 무사히 오늘날까지 날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연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왜냐하면, 설령 인간의 힘으로는 그곳까지 닿지 못했다 해도, 자연의 힘은 언제나 자유로웠으니까요. 실제로, 몇 해 전 일이었는데, 마침 이른 봄이었던가, 우렁찬 소리와 함께 눈사태가 쏟아졌을 때, 줄기의 절반이 찢겨 눈과 함께 골짜기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뿌리가 물고 있던 바위 모서리가 부서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것이 무너졌더라면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이었을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상처 자국도 오래되어 낡아버리고, 줄기에는 고아한 운치가 더해져, 촘촘히 우거진 초록빛 잎은 더욱 금빛을 띠며, 아침저녁으로 안개에 젖어, 질풍에 몸을 흔들면서도, 기사처럼 당당하게 보였답니다.
겨울에도 이 바위굴 안에서 해를 넘기는 바위제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팔랑팔랑 푸른 하늘을 스치듯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날아다니다가, 이윽고 바람에 실려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신파쿠 가지 위에 내려앉았지요.
“눈이 가까워졌어요. 서쪽 하늘이 불처럼 붉거든요. 이번에 폭풍이 오면 틀림없이 눈을 몰고 올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바위제비는 점점 어스름해져 가는 깊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차가운 바람이 작은 몸뚱이를 채어가 이미 어두워진 골짜기로 내동댕이치려 했답니다.
신파쿠는 그때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지요.
“아니요, 그게 나을 거예요. 당신들은 바위굴 안에서 푹 쉬세요. 이러저러하다 보면 금세 사오월이 될 테니까요. 수정처럼 맑은 그 눈 녹는 봄 경치는 뭐라 형언할 수 없거든요. 그때까지 저는 폭풍과 눈보라가 부르는 노래라도 즐겨 듣고 있겠어요. 그리고 당신들이 바위굴 안에서 박쥐 할머니한테 들은 신기한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저는 서풍이 노래하던 북쪽 나라의 노래를 불러 드리겠어요.”
“어쩐지 내년 봄이 기다려지지만, 이제 인간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바위제비는 불길한 예감이 든 것처럼, 생기 있던 얼굴을 흐렸습니다.
신파쿠는 또 한차례 질풍에 얼굴을 흔들면서,
“요즘은 밤이 되면 서리가 내려요. 그리고 별빛은 마물의 눈처럼 기이하게 빛나고요. 어떤 사람도 노숙은 못 할 거예요. 저 푸르스름한 한밤중 경치를,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군요.”
말없이 신파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위제비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고는 황급히 바위굴로 돌아가 버렸지요.
한밤중쯤, 나무는 머리 위로 푸른 불꽃 꼬리를 끌며 흘러가는 별을 보았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운명에 지배되어 끊임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답니다.
그 이튿날, 바로 가까이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원숭이처럼 바위 모서리를 타고 밧줄에 의지해 내려오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허리에는 바위를 깨고 뿌리를 자르는 도구를 매달고 있었으므로, 신파쿠는 누구를 목표로 찾아오는지 금세 알아차렸답니다.
“아, 좋은 나무구나. 오랫동안 눈여겨봐 왔는데, 정말이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곳이었어.” 하고, 나이 든 남자는 혼잣말을 했답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신파쿠를 바위 모서리에서 끊어내고, 뿌리째 파낸 뒤 단단히 등에 짊어지고는 밧줄을 당기며 올라가 버렸습니다. 신파쿠는 일찍이 자연을 두려워하며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 크나큰 오산이었음을, 바로 이 순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앞일은 알 수 없었지요.
나무가 겨우 기운을 되찾아 또렷이 보고 또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어느 큰 분재 장인의 정원에서였답니다. 자신은 진귀한 도자기 화분에 심겨, 한 단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이었지요.
밤이 되면 바람은 불었지만, 채찍을 휘두르고 말발굽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듯한 폭풍은 아니었습니다. 별빛은 문득 멀어지고, 은하수 빛은 보일 듯 말 듯 희미했습니다.
“내 삶은 달라졌구나. 그 바위에서 뽑혀 나올 때는 시들어 죽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그 폭풍으로부터도, 눈보라로부터도, 이제 완전히 안심이구나. 인간이란 얼마나 신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인가.”
신파쿠는 인간을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화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좋은 신파쿠군요.”
나무는 모두가 자신을 칭찬해 주는 것이 기뻤습니다. 바위제비나 박쥐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인간에게 칭찬받는 쪽이 더 기쁜 것 같았지요.
“목숨을 걸고 나를 산에서 데려와 아껴 주는 것이니까.”
이렇게 나무가 생각하니, 언젠가 구름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산에서 자란 것이 속세로 내려가면, 모두 죽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안개와 폭풍과 눈 속의 삶을 원망하지 말거라. 뭐라 해도, 그것이 귀하고 빛나는 것이니까.” 그 말이 이제는 어리석게만 느껴졌답니다.
어느 날, 훌륭한 신사가 아가씨를 데리고 이 정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윽고 신파쿠 앞에 서서,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웬만해서는 갈 수 없는 곳이랍니다. 높은 산의, 그것도 깊숙한 험준한 절벽 바위 모서리에 자라나, 거센 폭풍에 시달리던 나무지요. 이 얼룩은 눈사태에 맞은 상처 자국이랍니다.”
“한번쯤 그런 산에 올라가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저희에게는 그런 기력이 없군요. 아쉬운 대로 이 나무라도 바라보며, 동경하던 산에 간 셈 치고 있겠지요.”
신사는 값비싼 돈을 치르고 신파쿠를 수레 안에 실었습니다. 이때, 신파쿠는 목숨을 걸고 캐어다 길러 준 사람이 돈으로 팔아 버렸다는, 그 사랑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세계의 법도이기도 하겠구나 싶었답니다.
마침내, 신파쿠는 바위 꼭대기 대신 자단목 탁자 위에서 가지를 드리우게 되었답니다. 별 대신 화사한 전등이 비추었지요. 주위를 맴도는 것은 저 가련한 바위제비가 아니라 인간 남녀였습니다. 들리는 것은 폭풍의 노래가 아니라 피아노 선율이었지요. 이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나무는 시시각각 자신의 생명이 시들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보기 전에는 모두가 동경하지만, 동화 속 세상은 결코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저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가슴 깊이 깨달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