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엽서를 부치려고 밭길을 지나 역 앞 우체통 쪽으로 걸어갔다. 이 근방은 아직 집이 두세 채 들어섰을 뿐, 예전 그대로의 밭이다. 석양이 새빨갛게 하늘을 물들이고, 다카이도 역 쪽에서 상행 전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늘 다니는 뒷길인데, 오늘은 어쩐 셈인지 오 년 전 어느 저녁이 떠올라 버렸다.
쇼와 이십일 년(1946) 초가을 무렵이었던가, 가지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직 지금처럼 물자가 다 갖추어지지 않아 먹는 일로 모두가 고생하던 때였고, 소카이(疎開, 전시 피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더더욱 형편이 딱한 듯했다. 그 저녁 마침 이 밭을 지나가는데, 무언가 큰 소리로 누가 호통을 치고 있어 나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호통을 치는 이는 키 큰 청년으로, 그 가지밭 주인인 이 동네에서 부유한 농가의 아들이었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사람을 우습게 보고 있어! 먹을 게 없다고 잠자코 남의 밭 것을 가져가면 어쩌라는 거야. 우리 집도 일해서 먹고살고 있다고. 피난 가서 남의 밭 들쑤시는 짓을 배워 가지고 온 게지. 다시는 안 오게 한 대 갈겨 주마. 나오라고” 하고 그는 노발대발했지만, 상대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가지밭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는 나이 든 부인으로 (나보다는 젊어 보였다) 오시마(大島) 명주 몸뻬를 입고, 조금 낡은 검은 지리멘(縮緬, 오글오글한 비단) 하오리를 걸치고, 유젠(友禪) 사라사 무늬 장바구니를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쪼그리고 있었다. 그 자루 속에 이 소동의 발단이 숨어 있었지만, 그녀는 자루를 부여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유쾌한 광경이 아니었으니 나는 서둘러 지나치려다, 무심코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그냥 드려 버리세요” 하고 나는 작은 소리로 말하고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청년이 한 번 더 목청을 높여 “썩 돌아가”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입으로는 무어라 호통을 쳐도, 노부인을 차마 때리지 못하는 속내는 갸랑(gallant)한 신사인 것이다.
우체통 볼일을 마치고 자잘한 장을 본 뒤, 다시 한번 그 밭길을 지나가 보았다. 호기심에서다. 부인은 이미 없었고, 청년이 가지밭 옆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까는 주제넘게 참견을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나는 말을 건넸다. 그는 쓴웃음을 짓더니 “아니, 저는 저런 게 영 질색이라서요. 훔친 적 없다고 한다니까요. 그럼 남의 밭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 하니, 지쳐서 쉬고 있었다는 거예요. 어서 돌아가 달라고 했더니, 가라 마라 하지 않아도 갑니다, 이렇게 망신을 당하고……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며 돌아갔어요. 그러면서 가지를 고작 세 개만 떨어뜨리고 갔지 뭐예요. 손이 재네요. 피난 가서 들치기를 배워 가지고 온 모양이에요” 하고 그는 밉살맞다는 듯 말했다.
“정말 빛깔 고운 가지로군요. 좀 사 갈까요?” 하고 말하니 “대여섯 개쯤이라면 그냥 드리지요, 사지 않으셔도” “그래요? 고마워요. 그럼 무어라도 담을 것을 가져올 테니……” 하고 나는 비꼴 뜻 없이 말했는데, 그가 와하하 웃기 시작했다. “그게 좋겠네요, 그게 좋겠어요, 하하하핫” 하고 불쾌한 기분을 죄다 흩뿌려 버리듯 웃고 있었다.
그 부인이 호통을 들으며 밭에 웅크리고 있던 모습이 눈에 떠올라, 나는 웃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일을 조금씩 조금씩 익혀 가며, 그때까지 갖가지 괴로운 일도 굶주린 일도 다 겪고 도쿄로 돌아온 것이리라. 나는 가엾은 살림을 하고 있어도 아직 굶주림은 모르니, 저 사람에게 돌을 던질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오 년이 지나, 같은 밭길에서 그런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봄 삼월의 멋진 보리밭이다. 그 시절보다 나는 한층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래도 아직 굶주림은 모른다. 한 번 더 전쟁이 나서,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어쩌면 나도 남의 밭에 발을 들이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