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제 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해 보라 분부하셔도 딱히 이렇다 하게 여쭐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저는 이른바 학생 생활을 한 세월이 매우 적어서, 차라리 학생 생활을 하지 않은 채 보내고 말았다 해도 좋을 정도이니, 제 옛이야기를 늘어놓아 지금의 학생 여러분께 들려드리려는 것 따위는 실로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므로 부디 사양하겠습니다. 어느 학교 기숙사에라도 머물렀다든가 하는 경력이 있었다면 하찮은 이야기든 무엇이든 한두 마디 해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굳이 이야기 하나 없겠느냐 물으신다면, 어쩔 수 없이, 제가 잠시 동안, 그러니까 열여섯 일곱 살 무렵에 다닌 적이 있는 한학과 수학의 사숙(私塾) 풍경이라든지, 그 시절의 자질구레한 일이라든지, 같은 학사(學舍)에 다닌 벗들의 모습에 관해서나마 이야기해 보지요. 지금도 그 무렵의 옛 모습을 간직한 사숙이 시내를 뒤지면 조금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거의 끊겼다 해도 좋을 것입니다. 사숙이라 하면 어차피 규모가 큰 것은 없습니다만, 그 사숙들은 참으로 작은 규모의 것이어서, 학사라기보다 그저 살림집이라 부르는 편이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선생은 한 분, 선생을 도와 사숙의 잡사를 챙기고 갖은 편의를 학생들에게 받게 해 주는 숙감(塾監) 같은 살림꾼이 두세 명, 이들은 곧 사숙 학생 가운데 선배 격인 이들로서, 따로 선생에게서 후배를 돌보라는 임명을 받아 그런 일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선생의 가르침을 받는 동안 자연히 그런 자리에 서야만 하게 되어 자연히 갖추어진 살림꾼이라, 사숙은 곧 선생과 이러한 호의의 살림꾼인 윗자리 제자(上足弟子)들 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런 사숙에 가서 가르침을 청하는 것은, 누군가 소개자만 있으면 그것으로 좋았기에, 그 무렵에도 영학(英學)이나 수학 쪽 사숙은 다소 영업적이어서 규칙서가 있고 월사속수(月謝束修)의 제도도 정연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만, 한학 쪽은 아직 옛 풍이 짙어, 숙규(塾規)가 없지는 않으되 지극히 막연한 것이라, 월사니 무엇이니 일체의 일이 규칙적·법률적·영업적이 아니고, 도덕적·인정적·의리적인 것으로 매듭지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다닌 사숙 또한 그러한 옛 풍의 사숙이었고, 더구나 선생은 따로 살림길이 있어 번듯하게 살아가시는 분이었던지라, 더더욱 더없이 너그러운 것이었습니다. 소개자가 데리고 가 주어 약간의 폐백, 곧 속수(束修)를 금품이든 물품이든 바치고, 그러고는 머리 조아려 부탁드리면, 곧바로 그날부터 학생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으레 살림꾼 노릇을 해 주는 선배가 거처와 성명을 입문부(登門簿)에 적어 넣으면, 그것으로 입학은 끝난 것입니다. 저마다 제멋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어 가서 제멋대로 묻는 것, 그것이 유일한 공부법이었습니다만, 더러 무엇을 읽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솔직히 선생께 그 뜻을 말씀드려 여쭙고, 그렇다면 무엇을 읽으면 좋을지를 학력에 알맞게 책을 정해 주시는, 그러한 식으로 누구나 공부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마다 제멋대로의 책을 읽으니 선생께서는 꽤 성가시었겠습니다만, 그 대신 저마다 제 집에서 한껏 애써 읽어 가다가, 글자를 모르면 자전을 찾고, 뜻이 잡히지 않으면 거듭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는 식으로 공부한 끝에, 정 모르겠다는 대목만을 선생 앞에 들고 와서 여쭙는 것이라, 한 사람이 선생의 몇 분이나 허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지간히 공부한 사내라도 십 분이나 선생을 성가시게 하는 일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개는 대단한 친구다, 사기 열전(史記列傳)만을 백일 만에 깡그리 읽어 깨쳤다” 같은 소문이 사숙 안에 돌면, “뭐, 이 몸이라면 오십 일 만에 구석구석까지 읽어 보이리라” 하는 따위로 호언하는 걸물이 나오고, “이 몸은 그렇다면 본기와 열전을 아울러 한 달 만에 샅샅이 연구해 내고 말겠노라” 하는 호걸이 나타납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 격려하니, 게으름뱅이는 마음대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라 언제까지나 늘지 않는 대신, 공부하는 자는 쑥쑥 늘어, 공평히 말하자면 기형적으로 발달했다 해도 좋을 정도지만, 어쨌든 발달해 가는 속도는 꽤나 빠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공부만 하다 보면 혼자만의 짐작으로 끝내고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라, 그래서 윤강(輪講)이라는 것이 행해집니다. 그것은 매일 윤강하는 책이 바뀌어, 일주일째에 다시 전에 했던 책을 윤강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곧 월요일에는 맹자(孟子), 화요일에는 시경(詩經), 수요일에는 대학(大學), 목요일에는 문장궤범(文章規範), 금요일에는 무엇, 토요일에는 무엇이라는 식이어서, 쉬운 것은 학력이 낮은 이들을 위해, 어려운 것은 학력이 익은 자를 위해라는 이치였습니다. 그래서 차례차례 저마다 할당받은 장을 강의하고, 틀린 데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파고들고, 논쟁을 벌이고, 선생이 판가름하시고, 틀린 쪽은 장부에 흑구슬이 매겨지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자 거만한 낯을 하고서, 잘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으스대고 있다, 한번 혼쭐을 내주자” 하는 분위기였으니, 지금 떠올리면 우습기 짝이 없는 다툼을 벌이곤 했던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골탕 먹이려고, 자전을 한껏 뒤져, 물론 평소에도 자전을 곧잘 뒤지던 사내였습니다만, 글자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까지 조사해 두고서, 상대가 강의를 마치기를 기다리다 못해 난문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어찌나 단단히 조사해 두었던지 끈질기게 글자 풀이를 따져 드는 통에 강의하던 자는 톡톡히 골탕을 먹은 것이었지만, 너무 골탕을 먹은 나머지 이윽고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따지던 자를 향해 “나는 글을 읽음에 다만 그 대강을 잡으면 그만이라, 구두훈고(句讀訓詁)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노라” 하는 식으로 서로 치열히 다투곤 했던 것입니다.
이 밖에 복문(復文)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것은 번역해 읽은 한문을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노 미스테이크인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다. 투문투시(鬪文鬪詩)가 한 달에 한두 번 있고, 선생의 강의가 일주일에 한두 번 있고, 우선 그 정도로, 그 밖에 이렇다 할 규정은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사숙은 우선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택의 수련으로는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문장이나 시를 베끼기도 하고 발췌하기도 하고 외기도 하였으며, 지즈카 레이스이(遲塚麗水)군과 제가 서로 다투며 장자(莊子)의 전문을 베껴 적었던 일 따위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휴지로 만들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지난번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들으니, 레이스이군은 지금도 그때 베낀 것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학생 생활의 시기가 지극히 짧아, 한학 사숙에조차 그리 오래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곧 윤강을 하다가 골탕만 먹어 장부에 흑구슬만 매겨지고, 마구 두 손 들 일만 당한 채로 끝내, 남을 두 손 들게 만드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퇴숙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서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