坂口安吾
오이 히로스케(大井広介)를 처음 만난 것은 쇼와 15년(1940년) 섣달그믐 오후 일곱 시, 엽서로 약속해 두고 가미나리몬에서였다. 그날 밤 오이 히로스케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은 엉터리 레뷰의 애호가이며, 여성미는 레뷰의 율동 속에서 극치를 이룬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딸도 레뷰걸로 만들 작정이라고 했다. 세 살 때부터 레뷰를 보여 주며 가르쳐 왔는데, 다리가 길어 레뷰걸 체격인데도 타고난 춤 재능이 없어 곤란하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술에 취해 있던 것도 아니고, 정색을 한 채 그러는 것이다. 평론을 쓰는 사람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기기괴괴한 선생이로구나 싶어, 이 양반에게 그만 푹 빠져 버렸다. 그래서 “현대문학” 동인이 되기를 승낙했다.
그 뒤에 오이 군 집에 처음 찾아갔더니, 뒷골목 셋집에 눌러앉아 빚쟁이들과 입씨름이나 하며 사는 떠돌이쯤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으리으리한 대저택의 주인장이라 어이가 없어졌다. 그러는데 내 눈앞으로, 겨울인데도 셔츠 한 장만 걸친 가벼운 차림으로 딸이 줄넘기 줄을 휘두르며 뛰쳐나오는 통에,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어느 날, 오이 부인이 내 쪽을 보며, 우리 진페이(장남 말이다)는 어린 녀석이 책 읽기를 좋아해서 하루에 세 권씩이나 읽어 대니 큰일이에요. 에라부 뱀장어니 베링해니 제가 모르는 것까지 알고 있어서, 저런 얄미운 녀석이 또 어디 있겠어요, 하며 노발대발이다. 그러자 오이 히로스케가 나타나, 아니, 정말이지, 건방진 것만 알아 가지고 저놈에겐 못 당합니다. 닌자 책이라도 읽혀 볼까 싶어 책방을 뒤졌습니다만, 요새는 닌자 책을 안 팔더라구요, 한다. 어허 참으로 신기한 가족이다. 이 집에서는 매일, 아니, 매시간, 봄여름가을겨울 입씨름이 그칠 줄 모른다. 식구들은 영원토록 입가에 거품을 물고 입씨름에 빠져 있으며, 손님 눈치를 보아 중단하는 따위의 비참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오이 히로스케는 손님과의 대담을 갑자기 중단하는가 싶더니, 멀리 떨어진 방의 식구를 향해 조금 전 입씨름을 다시 짖어대기 시작한다. 우리 어머니는 밥 지을 줄도 모르면서 그걸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언어도단이올시다, 하면, 어머님이 후다닥 달려와 장지문을 드르륵 열며, 뭔 자랑이라고. 식모가 많아서 밥 안 지어 봐서 모른다고 한 것뿐이여. 그 말투부터 이미 자랑이고만. 식모가 많아서 모른다는 게 어디 있나. 한바탕 난리법석이다. 족자를 찢고 죽도를 휘두르며, 일대 성황을 이루니, 참으로 즐거워 보이고, 조금도 어둡지 않고, 비참하지도 않다. 입씨름 금지령이라는 것이 내려지는 날에는 이 가족은 어찌 될까. 집은 침묵의 주문에 사로잡히고, 식구들은 베개를 나란히 한 채 염세 자살을 결행하고 말 것이다. 다른 집에서는 부부 싸움이라 하면 우선 사기그릇부터 던지고 깨고 한다지만, 그 음향은 심히 비예술적이어서 양식 있는 인사들이 결코 좋아하지 않는 바이다. 살피건대 오이 가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 쉬지 않고 입씨름이 벌어지고 값비싼 족자 따위가 찢겨 나가곤 하지만, 접시 한 장 깼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심히 그윽하다 아니할 수 없다.
나카하라 추야는 문학 수업을 위해 상경할 때 멘코(딱지)니 들여다보기 안경이니 하는 것을 종이 상자에 가득 채워 그것을 소중히 어루만지며 올라왔다지만, 오이 히로스케는 카지노 폴리를 비롯해 수만 장의 프로그램을 비장(秘藏)하고는 그것을 모조리 외고 있고, 칵테일북을 면밀히 베껴 적어 비장하고는 그것마저 모조리 외고 있고, 아사쿠사 칼집에 주문해 활극용 죽도와 창을 몇 자루씩 만들게 해서는 매일 아침저녁 식사 때마다 식당에서 머리띠를 동여매고 활극 연습에 여념이 없으며, 하루에 엽서 서른 장씩을 써 대고, 손님 얼굴을 보면 옳거니 하고는 1분에 6만 단어씩 떠들어 대기 시작해 세 시간째쯤 되어서야 비로소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약간 알아들을 만해진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응응 하며 맞장구는 쳐 주고 있지만 실은 전혀 듣고 있지 않다. 이런 신기한 인물이 어떠한 수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에 이르렀는가에 관해서는 내가 더없이 알고 싶은 바이지만, 오이 군 어머님께 무심코 그의 소년 시절 교육법을 물었다가는 옳거니 하고 이번엔 또 1분에 6만 단어씩 6년간이나 내리 떠들어 대고 마실 것이다.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 섣불리 묻지 못한다. 단순괴기, 도무지 손쓸 도리 없는 가족들이다.
검극 배우, 레뷰걸, 어떠한 단역의 어설픈 무 배우라도 오이 히로스케에게 물으면 즉석에서 이름이 나온다. 영화배우, 산단메(三段目) 이상의 스모 선수, 사나다 십용사, 무엇이든 알고 있다. 내가 사는 야구치노와타시 일대에 가재가 번식하는데, 가재 요리는 서양에서는 최고급의 하나라는 이야기다. 어떤 요리인지 사전을 뒤져 보아도 모르겠다. 그러다 박학한 어떤 선생이, 그건 자네 “역사는 밤에 만들어진다”라는 영화에 나오는 요리가 그것이라네, 라기에 일부러 보러 갔다. 다르다. 그것은 평범한 새우 요리다. 이 이야기를 오이 히로스케에게 했더니, 그렇습니다, 그것은 새우 요리입니다. 세자르 식 무어무어의 무엇무엇이라는 이름입니다, 하면서 이 길고 긴 요리 이름을 오이 히로스케는 면밀히 외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외고 있었던 것일까! 그 영화를 열 번 본 영화광 미짱은 있을지 몰라도, 그 요리 이름을 외고 있을 리는 없다. 어처구니없음이 이쯤 되면 그야말로 범인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영화광 미짱·하짱과 이세야 막과자집 아들놈에다 술집 잔심부름꾼 백 명 분을 합쳐 놓은 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사내다. 묘한 식으로 비책을 굴리고는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사려는 손톱만큼도 없다. 이런 격이 다른 괴인은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이었다.
오이 히로스케의 평론도 엉터리다. 그러나 그의 인물됨만큼 엉터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못쓰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평론에는 발자크 옆에 아키노우미가 등장하고, 야구도 레뷰도 닌자 술법도, 알고 있는 것이 모조리 등장한다. 이는 매우 좋은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고립되지 않고, 생활의 전부가 문학 속에 들어와 나타난다. 도대체 일본 문학자들은 문학 이야기만 하고, 문학 바깥의 것은 입에 담지 않아야 순수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이는 거꾸로라고 나는 본다. 진정으로 문학에 살고 있다면 생활의 전부가 문학이 되어야 마땅한 법이고, 이른바 문학만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곧 생활의 전부가 문학이 아니라는 증거여서, 결국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혼인보 슈사이가 좋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프로 바둑꾼과 아마추어 바둑꾼이 어디가 다르냐 하면, 프로도 아마추어도 같은 정도로 연습하고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만 프로는 사회면 기사를 읽어도 스모를 보아도 요리를 먹어도, 그것을 늘 바둑과 결부시켜 생각한다. 생활의 모든 것을 바둑과 결부시켜 생각한다. 그것만이 프로와 아마추어가 다른 점이다, 라고 했다. 명인의 지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무라 명인의 스모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스모를 쇼기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었다. 과연 명인이다.
오이 히로스케의 평론에는 스모건 야구건 생활의 전부가 나타나고, 일본 평론에서는 이례에 속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이 군의 평론이 앞날에 크게 기대할 만하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아직 명인의 길로부터는 까마득히 멀다. 왜냐하면 그가 스모의 입장이나 각도에서 논하지, 문학의 입장이나 각도에서 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도리어 거꾸로 스모의 입장에서 발자크를 논하거나 마스기 시즈에를 논하거나, 내버려 두면 도무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종잡을 데 없는 엉터리 짓을 한다. 이것이 또 그의 좋은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지않아 문학의 진수를 터득했을 때, 이 엉터리스러움이 독자적인 형태를 띠고 되살아나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독단가인 주제에, 일부러 죽기 살기로 공부해 시시한 책을 읽고 공식적인 평론 방식을 흉내 내거나 한다. 예술은 독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식적인 비평은 자못 스마트해서 얼핏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알맹이가 아무것도 없으며, 문학에 공평이라느니 공정한 비평이라느니 하는 것이 있을 까닭이 없다. 오이 군은 독단이라는 천부의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 애써 시시껄렁한 공식 따위를 공부한다. 가장 시시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이 히로스케에게는 “우울”이니 “센티”니 하는 것의 그림자가 티끌만큼도 없다. 가끔 무언가에 화가 나서 정말이지 우울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고는 있지만, 이른바 인생의 우울이라느니 허무라느니 감상이라느니 그러한 것과는 도무지 인연이 없는 것이 오이 군이다. 도대체 문학을 하면서 우울이라느니 감상이라느니 하는 것과 전혀 무관하다는, 이런 어이없는 사내가 지금까지 존재했던가. 지금,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실제 그의 불가사의한 성격이 문학 위에서 결정(結晶)된다면 통쾌한 것이 만들어질 게 틀림없다. 태어나서 이날까지 대자연의 풍경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남의 흠집을 찾아내고는 크게 기뻐하며, 그놈이 죽거든 이 재료를 살려서 거창한 추도문을 써 주리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근대 문학의 지성이니 감수성이니 하는 것에는 전혀 불구자이지만, 그러므로 만약 그가 불구자가 아닌 때가 온다면 이번엔 근대 문학 쪽이 전혀 불구자라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이지, 근대 문학이 그에게 이해될 까닭이 없다. 왜냐하면 근대 문학이라는 것은 일렬일체 우울이라느니 감상이라느니 하는 것을 뿌리 삼아 자라난 수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근대 문학 따위 알 필요는 없다. 그저 문학을 알면 된다. 그리하여 우울이니 감상이니 하는 것과는 인연도 연고도 없는, 그 자신만의 제멋대로의 문학을 빚어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매우 통쾌한 것이 탄생할 터이다. 그런 주제에 천연 그대로의 순정이라, 여자를 꾀는 따위는 영원히 못 할 사내다. 그의 성격대로의 독자적인 문학이 완성되면, 당장 내 문학 같은 것은 가장 정반대편에 설 터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되어 주기를 나는 바란다.
요새 고리야마 치후유가 “야구계”에 야구를 논하고, 그것을 오이 히로스케가 애독하기도 하고 부추기기도 하는 모양인데, 괘씸한 일이다. 야구니 스모니 하는 것은 그 길에서 잔뼈 굵은 프로의 언설에 견주면, 아마추어가 물구나무를 서서 겨우 한 사람 몫에도 못 미치는 정도밖에 분개할 수 없는 것이다. 물구나무를 서서 한 사람 몫에도 못 미치는 것은 쓰지 않는 편이 좋다. 문학의 입장에서 예술담 풍으로 다룬다면, 이야기는 절로 또 달라진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의 오의(奧義)에 의해 “예(藝)”를 터득하고 처세의 비오(秘奧)를 터득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걸인(傑人)이다. 문학의 오의를 터득한다면 스모의 오의도 절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자는 문학을 터득하고 있기에 값어치가 있다. 문학자가 스모 명인이 된다 한들 값어치는 안 된다. 오이 히로스케는 문학을 터득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독단의 화신이 되어, 통쾌무쌍한 새로운 형태를 빚어 주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