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고단 선생

사카구치 안고

나는 타고난 모방벽이 왕성해서, 누구한테든 금세 영향을 받아 버린다. 그러니 늘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만 하고 있어, 일일이 꼽자면 끝이 없다. 다만 개중에는 ‘이 사람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 하는 식으로 적의가 솟는 경우도 있어서, 이 사람 작품을 읽으면 끌려들어 가니 더는 읽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어쩌면 이쪽이야말로 진짜로 영향을 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진짜 서재 안에는 남을 들이고 싶지 않으니, 나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역사소설에 “고단(講談)”에서 배운 기법을 꽤 많이 끌어다 쓰고 있다. 고단의 기법을 소설에 도입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은 한 십 년쯤 전부터인데, 이는 프랑스 사실파의 기법이 내 관념과 어딘가 어긋나는 데가 있어, 어쩐지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실(寫實), 즉 글자로 그린다는 일은 트리비얼리즘에 빠지기 쉬워서, 정작 짚어야 할 중심을 놓치곤 한다. 소설은 본래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우선 그렇게 생각했다. 이야기하듯이 쓴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그게 아니라, “고단”처럼이라는 뜻이다. 고단은 이야기꾼의 성격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프랑스식 사실은 화자의 성격이 너무 나서서, 사물의 실체를 흐려 놓기 쉽다고 보았다.

요즘 예로 들자면 이른바 ‘아무개 참모담’ 같은 작전담이 그러한데, 거기서도 이야기꾼의 성격은 사라지고, 사실 그 자체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된다.

내가 이 점을 구체적으로 깨달은 것은 스탕달의 소설을 읽었을 때다. 스탕달이 말하자면 외국식 고단 어조의 화자인 셈이다. 스탕달은 묘사니 설명이니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일본의 고단에는 화자의 성격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인물에게도 성격이 없다. 선역과 악역이라는 정형(定型)이 있을 뿐이다. 이는 강설가의 교양과 관점이 굳어 있기 때문이고, 이런 최악의 결점이야 굳이 배울 필요가 없겠지만, 뒤집어 말하면 스탕달도 정형밖에 그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스탕달은 늘 창작하고, 진보한다. 새로운 정형이 태어난다. 이 한 가지가 고단과 다르다. 그러나 이 한 가지가 다른 탓에,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고단 자체는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지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배우든 그 값어치에는 변함이 없다.

고단은 자기가 직접 역사를 보고 온 것처럼 이야기한다. “참으로 곤란한 놈이올시다”라든가 “이렇게 말하면서 뒤로는 새빨간 혀를 날름 내밀었습니다”라든가, 어찌나 격의가 없는지, ‘내가 이렇게 똑똑히 보고 왔으니, 두말 말고 믿으시오’ 하는 명분이 아예 깔려 있다.

소설의 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성, 곧 설득력이고, 여기에는 갖가지 기술이 있다. 작자의 감상에 기대어 사실성을 유지하려 들기도 하고, 면밀한 묘사로 실감을 끌어올리려 들기도 하고, 가지각색이다. 저마다 작자가 몸에 익힌 기법이 있으니, 좋고 나쁨을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고, 자기 방식을 몸에 붙이는 일이 무엇보다 먼저다.

내가 고단의 방식을 재미있다고 본 것 또한 내 식의 사고방식이고, 나로서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고단의 화법, 곧 ‘내가 이렇게 보고 왔으니 믿으시오’ 하는 화법을 따르면, 무엇보다 먼저 시선이 사물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잘한 데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큼직한 절약이 있다. 이 절약은 단순히 손이 덜 가는 데 그치지 않고, 주제를 또렷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법이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했는가다. 그렇지만 화법이 없으면 이야기되는 것도 없고, 화법이 바뀌면 이야기되는 것도 바뀐다. 이야기하고 있는 그대로밖에는 떠올릴 수가 없고, 사물 또한 그렇게밖에 존재할 수 없다. 소설의 실재성에는 그만큼의 절대성이 있는 것이다.

소설의 기법이란 말로는 좀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소설가는 늘 소설 안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내야 하는 사람이고, 내가 지금 고단에 관해 말한 것도 뜻을 다하지 못했거니와, 다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저 고단의 어조를 조금 끌어들여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단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단이라는 말 하나를 집어 든 까닭에, 이런 식의 글이 되었을 뿐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앞으로 석 달쯤이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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