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영허(盈虚)
나카지마 아쓰시
위(衛) 영공(霊公) 삼십구 년 가을, 태자가 부친의 명을 받들어 제(斉)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일이 있었다. 가는 길에 송(宋)나라를 지날 때,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기이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既定爾婁豬
盍帰吾艾豭
암퇘지는 이미 너에게 보냈은즉
어서 우리 수퇘지를 돌려보낼지어다
위 태자는 이를 듣고 안색이 변하였다. 짚이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부친 영공의 부인—태자의 친모는 아니다—남자(南子)는 송나라에서 시집온 여인이었다. 용색(容色)보다도 오히려 재기로써 영공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여인이거니와, 근래에 영공에게 청하여 송나라에서 공자 조(朝)라는 자를 불러와 위나라 대부(大夫)로 삼게 하였다. 송조는 이름난 미남이었다. 위나라로 시집오기 전에 남자와 추한 관계가 있었음은 영공 외에 모르는 자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는 지금 위나라 궁궐에서 다시 거의 공공연히 이어지고 있었다. 송나라 들에서 농부가 부른 노래 속 암퇘지와 수퇘지란, 의심할 여지 없이 남자와 송조를 가리킨 것이었다.
태자는 제나라에서 돌아오자 측근 희양속(戯陽速)을 불러 일을 도모하였다. 이튿날 태자가 남자 부인에게 문안을 들이러 갔을 때, 희양속은 이미 비수를 품고 방 한구석 휘장 뒤에 숨어 있었다. 짐짓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태자는 휘장 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갑자기 겁을 먹었던 것일까, 자객은 나오지 않았다. 세 번을 신호하였으나 검은 휘장만 부스럭부스럭 흔들릴 뿐이었다. 태자의 기이한 거동을 부인은 알아차렸다. 태자의 시선을 따라 방 한구석에 수상한 자가 숨어 있음을 알자,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소리에 놀라 영공이 나왔다. 부인의 손을 잡고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부인은 다만 미친 듯이 “태자가 소첩을 죽이려 하옵니다. 태자가 소첩을 죽이려 하옵니다” 하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영공은 군사를 불러 태자를 치게 하려 하였다. 그 무렵에는 이미 태자도 자객도 도성에서 멀리 달아나 있었다.
송나라로 달아났다가 이어 진(晋)나라로 망명한 태자는, 사람마다 만나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음부(淫婦)를 척살하려던 모처럼의 의거가, 비겁한 어리석은 자의 배신으로 실패하였노라고. 이 또한 위나라에서 함께 출분한 희양속이 이 말을 전해 듣고 이렇게 응수하였다. 당치 않은 말이다. 도리어 내 쪽이 하마터면 태자에게 배반당할 뻔하였다. 태자는 나를 협박하여 자기 의모(義母)를 죽이게 하려 하였다. 응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죽었을 것이 분명하고, 만약 부인을 능히 죽였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그 죄를 내게 뒤집어씌웠을 것이다. 내가 태자의 말에 응낙하면서도 정작 행하지 않은 것은, 깊은 모책의 결과였노라고.
진나라는 그 무렵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의 난(亂)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제·위 등 여러 나라가 반란자의 뒷배를 보아 주고 있어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진나라에 든 위 태자는 이 나라의 대들보 격인 조 간자(趙簡子)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조씨가 자못 두텁게 대접한 까닭은, 이 태자를 옹립함으로써 반진파(反晋派)인 현 위후(衛侯)에게 맞서고자 함에 다름 아니었다.
두텁게 대접하였다 한들, 고국에 있을 적의 신분과는 달랐다.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위나라 풍경과는 사뭇 다른, 산이 많은 강(絳)의 도성에서 쓸쓸한 삼 년 세월을 보낸 뒤, 태자는 멀리 부친 위후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풍문에 따르면, 태자가 없는 위나라에서는 부득이하게 그 아들 첩(輒)을 세워 위(位)에 오르게 하였다고 하였다. 나라를 떠날 때 뒤에 남기고 온 사내아이였다. 당연히 자기 이복동생 가운데 하나가 뽑히리라 여기고 있던 차여서, 자못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어린것이 위후라? 삼 년 전의 어린 모습을 떠올리매 불현듯 우스워졌다. 곧장 고국으로 돌아가 자기가 위후가 되는 일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듯싶었다.
망명 태자는 조 간자의 군에 옹위되어 의기양양 황하를 건넜다. 마침내 위나라 땅이었다. 그러나 척(戚) 땅에 이르자,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동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태자의 입국을 막는 새 위후의 군세에 막혔던 까닭이다. 척성(戚城)에 들어가는 일조차, 상복을 두르고 부친의 죽음을 곡(哭)하면서 그 땅 백성의 환심을 사며 들어가야 하였다. 일이 뜻밖에 이리 됨에 분이 났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고국에 한 발 들여놓은 채, 그곳에 머물러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처음의 짐작과 달리, 무릇 십삼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이제는 (한때 사랑스럽던) 자기 아들 첩이 아니었다. 자기가 마땅히 이어야 할 자리를 빼앗고, 집요하게 자기 입국을 막는, 탐욕스럽고 가증스러운 젊은 위후가 있을 따름이었다. 한때 자기가 눈여겨 주었던 여러 대부들이, 누구 하나 문안 인사조차 오려 하지 않았다. 모두들, 저 젊고 오만한 위후와 그를 보좌하는 짐짓 점잖은 노회한 상경(上卿) 공숙어(孔叔圉)—자기 누이의 남편 되는 늙은이다—아래에서, 괴외(蒯聵)니 뭐니 하는 이름은 진작부터 들어본 일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황하의 물만 바라보며 보낸 십여 년 사이에,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이던 백면(白面)의 귀공자가 어느덧 각박하고 비뚤어진 중년의 풍상객으로 둔갑해 있었다.
황량한 살림 속에서 단 하나의 위안은 아들 공자 질(疾)이었다. 현 위후 첩과는 배가 다른 아우뻘 되거니와, 괴외가 척 땅에 들자마자 모친과 함께 부친에게로 와 그곳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뜻을 이루는 날에는 반드시 이 아이를 태자로 삼으리라, 마음을 굳게 정해 두고 있었다. 아들 말고 또 한 가지, 자포자기에 가까운 정열의 배출구를 투계(鬪鷄)에서 찾았다. 사행심과 가학성의 만족 외에도, 늠름한 수컷의 자태에 대한 미적인 탐닉이기도 하였다. 그리 넉넉지 못한 살림 속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당당한 계사(鷄舍)를 늘어놓고 아름답고 강한 닭들을 길렀다.
공숙어가 죽고, 그의 미망인이자 괴외의 누이 백희(伯姫)가 아들 공회(孔悝)를 허울뿐인 자리에 앉혀 권세를 휘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차차 위나라 도성의 분위기는 망명 태자에게 호전(好轉)되어 갔다. 백희의 정부(情夫)인 혼량부(渾良夫)라는 자가 사자(使者)가 되어 자주 도성과 척 땅을 오갔다. 태자는, 뜻을 이루는 날에는 너를 대부로 발탁하고 사죄(死罪)에 해당하는 죄가 있더라도 세 번까지는 용서하리라고 양부에게 약조하고, 그를 손발 삼아 빈틈없이 책모(策謀)를 펼쳤다.
주(周) 경왕(敬王) 사십 년 윤(閏)십이월 모일, 괴외는 양부에게 이끌려 단숨에 도성으로 들었다. 어둑한 무렵에 여복(女服)으로 변장하여 공씨의 저택에 잠입, 누이 백희와 혼량부와 더불어 공씨 가의 당주이며 위나라 상경인 조카 공회—백희에게는 곧 아들이다—를 협박하여 한 패에 끌어들이고,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아들 위후는 즉시 출분(出奔)하고, 부친 태자가 대신 위에 올랐다. 곧 위(衛)의 장공(莊公)이다. 남자에게 쫓겨 나라를 떠난 지 실로 십칠 년째였다.
장공이 위에 오른 뒤 먼저 행하고자 한 일은 외교의 정비도, 내치(內治)의 진흥도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헛되이 흘려보낸 자기 과거에 대한 보상이었다. 혹은 과거에 대한 복수였다. 불우(不遇)했던 시절에 누리지 못한 쾌락은, 이제 성급히, 또한 충분히 채워져야 하였다. 불우했던 시절에 비참하게 굽혔던 자존심은, 이제 별안간 거만하게 부풀어 올라야 하였다. 불우했던 시절에 자기를 학대한 자에게는 극형을, 자기를 업신여긴 자에게는 상응하는 징벌을, 자기에게 동정을 보이지 않았던 자에게는 냉대를 내려야 하였다. 자기 망명의 빌미가 되었던 선군(先君)의 부인 남자가 전해(前年)에 이미 세상을 떠난 일이 그에게는 가장 큰 통한사(痛恨事)였다. 저 간부(姦婦)를 잡아 온갖 모욕을 더한 끝에 극형에 처하리라, 이것이야말로 망명 시절 가장 즐거운 꿈이었던 까닭이다. 과거의 자기에게 무관심하였던 여러 중신에게 그는 이르되, 나는 오랫동안 유리(流離)의 고초를 겪어 왔노라. 어떠한가, 그대들에게도 이따금 그러한 경험이 약이 될 듯싶지 아니한가, 하였다. 이 한마디로 곧장 국외로 달아난 대부도 두서넛에 그치지 아니하였다. 누이 백희와 조카 공회에게는 본디 크게 갚을 바가 있었으나, 어느 밤 잔치에 청하여 마음껏 취하게 한 뒤 둘을 마차에 태워, 어자(御者)에게 명하여 그대로 국외로 몰아내게 하였다. 위후가 된 뒤의 첫 한 해는 참으로 무엇에 홀린 듯한 복수의 세월이었다. 헛되이 유리 가운데 잃은 청춘을 보충하고자 도성의 미녀를 모아 후궁에 들인 일은 따로 덧붙일 것도 없다.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대로, 자기와 망명의 고초를 함께한 공자 질을 곧장 태자로 세웠다. 아직 그저 소년이라 여기고 있었거니와, 어느 결에 당당한 청년의 풍모를 갖추었으며, 어려서부터 불우한 자리에 있어 사람의 속내만 살피며 자란 탓인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으스스한 각박함을 언뜻언뜻 보였다. 어린 시절 지나친 사랑의 결과가, 자식의 불손함과 부친의 양보라는 모양새로 지금까지 남아, 곁에서 보는 이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 약함을 부친은 이 자식 앞에서만 드러냈다. 이 태자 질과, 대부에 오른 혼량부, 이 둘만이 장공의 심복이라 일컬을 만하였다.
어느 날 밤, 장공은 혼량부를 마주하여, 앞서의 위후 첩이 출분에 즈음하여 누대로 전해지던 나라의 보기(寶器)를 모조리 가져갔음을 이르고, 어찌하면 되찾을 수 있을지를 의논하였다. 양부는 촛불을 잡은 시자(侍者)들을 물러가게 하고, 스스로 촛불을 들어 공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아뢰었다. 망명하신 전(前) 위후도 현(現) 태자도 다 같이 군(君)의 자식이옵고, 부친 되시는 군에 앞서 위에 오르신 것 또한 모두 그 본심에서 나온 일이 아니옵니다. 이 차에 차라리 전 위후를 불러들이시어, 현 태자와 그 재능을 비교해 보시고 더 나은 쪽으로 다시 태자를 정하심이 어떠하올는지요. 만약 재주가 부족하다면, 그때는 보기만 거두어들이시면 족하겠나이다…….
그 방 어딘가에 밀정이 숨어 있었던 듯하였다. 신중히 사람을 물리고서 나눈 이 밀담이 그대로 태자의 귀에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안색이 변한 태자 질이 백인(白刃)을 든 다섯 장사(壯士)를 거느리고 부친의 거실로 들이닥쳤다. 태자의 무례를 꾸짖기는커녕, 장공은 그저 핏기 잃은 얼굴로 떨고 있을 뿐이었다. 태자는 종자에게 들려 온 수퇘지를 죽여 부친에게 맹세하게 하고, 태자로서의 자기 자리를 보장하게 한 뒤, 자, 혼량부 같은 간신은 즉시 죽여야 마땅하다고 다그쳤다. 그 자에게는 세 번까지 사죄(死罪)를 면하기로 약조한 바가 있노라고 공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하고 태자는 부친을 위협하듯 다짐하였다. 네 번째 죄가 있을 경우에는 틀림없이 베어 죽이실 것이지요. 완전히 기가 꺾인 장공은 그저 “낙(諾)” 하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봄, 장공은 교외의 유람지 적포(籍圃)에 정자 하나를 세우고, 담장이며 기물이며 휘장이며 모두를 호랑이 무늬 한 벌로 꾸몄다. 낙성식(落成式) 당일, 공은 화려한 잔치를 열었고 위국의 명류들이 비단옷을 두르고 빠짐없이 그 자리에 모였다. 혼량부는 본디 시동(侍童) 출신으로 화려함을 좋아하는 멋쟁이였다. 이날 그는 자색 의복에 여우 갖옷을 겹쳐 입고, 수말 두 마리가 끄는 호사한 수레를 몰아 잔치에 다다랐다. 자유로운 무례강(無禮講)이라 하여 칼을 풀지도 않은 채 식탁에 앉았고, 식사 도중에 더위를 느끼매 갖옷을 벗었다. 이 모습을 본 태자는 다짜고짜 양부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끌어내고, 백인을 그 코끝에 들이대며 따져 물었다. 군(君)의 총애를 믿고 무례를 범함에도 정도가 있을진저. 군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서 너를 베리라.
완력에 자신이 없는 양부는 굳이 항거하지도 않고, 장공을 향해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며 외쳤다. 일찍이 주군께서는 사죄 세 건까지 면하리라 신(臣)에게 약조하셨나이다. 그러한즉 가령 지금 신에게 죄가 있다 한들, 태자께서 칼을 더하실 수 없을 터입니다.
세 건이라? 그렇다면 너의 죄를 헤아려 주마. 너는 오늘, 국군(國君)의 옷이라 할 자색 의복을 둘렀다. 죄 하나. 천자(天子) 직참(直參)인 상경이나 타는 충전(衷甸) 두 마리 수말 수레에 올랐다. 죄 둘. 군 앞에서 갖옷을 벗고 칼을 풀지 아니한 채 먹었다. 죄 셋.
그것으로 마침 세 건. 태자는 아직 나를 죽일 수 없도다, 라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양부가 외쳤다.
아니, 또 있다. 잊지 말지어다. 지난밤, 너는 주군께 무엇을 아뢰었더냐? 군부(君父) 부자(父子)를 이간(離間)하려 한 영신(佞臣) 놈!
양부의 안색이 단숨에 종이처럼 하얘졌다.
이로써 너의 죄는 넷이로다. 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부의 목은 푹 앞으로 떨어지고, 검은 바탕에 금실로 사나운 호랑이를 수놓은 큰 휘장 위로 선혈이 좌악 흩뿌려졌다.
장공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 그대로, 묵묵히 자식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나라 조 간자에게서 장공에게 사자가 왔다. 위후 망명의 즈음 미흡하나마 도와드린 바이거늘 귀국 후 인사 한마디 없도다. 본인의 거동이 어렵다면 적어도 태자라도 보내어 진후(晋侯)께 한 번 인사가 있기를 바라노라, 하는 구상(口上)이었다. 자못 위세 등등한 이 말씨에, 장공은 또다시 자기 과거의 비참함을 떠올리고 적지 않게 자존심을 다쳤다. 국내에 아직 분쟁이 그치지 않은 까닭에 잠시 유예하여 달라고 일단 사자 편에 회답하였으나, 그 사자와 엇갈려 위 태자로부터의 밀사가 진나라에 닿았다. 부친 위후의 답은 단지 둘러대는 말이며, 실은 전에 신세 진 진국이 부담스러운 까닭에 짐짓 늦추는 것이니 속지 마시기를 바라노라, 하는 전갈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부친을 대신하고자 하는 책모임이 분명하였으니, 조 간자도 과연 다소 불쾌하였으나, 한편 위후의 망은(忘恩) 또한 반드시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그해 가을 어느 밤, 장공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황량한 광야에 처마도 기운 낡은 누대(樓臺) 하나가 우뚝 섰고, 거기 한 사내가 올라 머리를 풀어헤친 채 외치고 있었다. “보이는구나. 보이는구나. 외(瓜), 온통 외밭이로다.” 어딘지 낯익은 곳이라 여겨지더니 그곳은 옛 곤오씨(昆吾氏)의 옛터로서, 과연 곳곳마다 누누이 외(瓜)뿐이었다. 작은 외를 이만큼 키워 올린 자가 누구냐? 비참한 망명자를 시운(時運)을 누리는 위후로까지 보살펴 키운 자가 누구냐? 라고 누대 위에서 광인처럼 발을 구르며 외치는 그 사내의 목소리에 어쩐지 귀에 익은 데가 있었다. 어 하고 귀를 곤두세우니, 이번에는 어이없을 만큼 또렷이 들려왔다. “나는 혼량부다. 내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내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장공은 흠뻑 땀에 젖어 잠을 깼다. 께름칙한 마음이었다. 그 불쾌함을 떨쳐 내고자 노대(露臺)로 나가 보았다. 늦은 달이 들 끝에 막 떠올라 있었다. 적동색(赤銅色)에 가까운, 붉고 흐린 달이었다. 공은 불길한 것을 본 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마음에 걸리는 대로 등불 아래 친히 서죽(筮竹)을 잡았다.
이튿날 아침, 서사(筮師)를 불러 그 괘를 풀게 하였다. 해(害)가 없다 하였다. 공은 기뻐하여 상으로 영읍(領邑)을 내리기로 하였으나, 서사는 공의 앞을 물러 나오자마자 황급히 국외로 달아났다. 나타난 괘 그대로를 전하면 노여움을 입을 것이 분명한 까닭에, 일단 거짓으로 공의 앞을 꾸미고는 곧장 한달음에 도망친 것이다. 공은 다시 점을 쳤다. 그 괘조(卦兆)의 사(辭)를 보매 “물고기 지치고 병들어 붉은 꼬리를 흐름에 가로눕히고, 물가에서 헤매는 듯하도다. 대국이 이를 멸하리니 머지않아 망하려 하니라. 성문과 수문을 닫고, 이내 뒤로부터 넘어가리라” 하였다. 대국이라 함이 진(晋)을 이름이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으나, 그 밖의 뜻은 분명히 풀리지 아니하였다. 어쨌든 위후의 앞길이 어둡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남은 햇수가 길지 아니함을 깨달은 장공은, 진국의 압박과 태자의 전횡에 확고한 처치를 강구하는 대신, 어두운 예언이 실현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쾌락을 탐하려고만 오로지 서두를 따름이었다. 큰 토목공사가 잇따라 일어나고 가혹한 노역이 강제되어, 공장(工匠)과 석공들의 원성(怨聲)이 거리에 가득하였다. 한때 잊혔던 투계(鬪鷄) 탐닉도 다시 시작되었다. 자복(雌伏) 시절과는 달리, 이번에는 마음껏 호사스럽게 이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었다. 돈과 권세를 부려 국내 국외에서 뛰어난 수컷을 모조리 모았다. 그중에서도 노(魯)나라의 어느 귀인에게서 사들인 한 마리는 깃이 황금 같고 발톱이 강철 같으며, 볏이 높고 꼬리가 늠름하여 참으로 보기 드문 일품이었다. 후궁에 들지 아니하는 날은 있어도, 위후가 이 닭이 깃을 곧추세우고 날개를 떨치는 모양을 보지 아니하는 날은 없었다.
하루는 성루(城樓)에서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던 차에, 한 군데 자못 어수선하고 누추한 구역이 눈에 들었다. 시신(侍臣)에게 물으니 융인(戎人)의 부락이라 하였다. 융인이란 서방의 화외(化外) 백성의 피를 이은 다른 종족이었다. 눈에 거슬리니 거두어 치우라고 장공은 명하여, 도성 문 밖 십 리 땅으로 쫓아 보내게 하였다. 어린것을 업고 늙은이를 끌고 가재도구를 수레에 실은 천민들이 줄을 지어 도성 문 밖으로 나갔다. 관리에게 쫓겨 허둥대는 모습이 성루 위에서도 낱낱이 내려다보였다. 쫓기는 무리 가운데 한 사람, 유난히 머리가 곱고 풍성한 여인이 있음을 장공은 알아보았다. 곧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불러오게 하였다. 융인 기씨(己氏)라는 자의 아내였다. 얼굴은 곱지 못하였으나 머리의 빼어남은 참으로 빛이 날 만하였다. 공은 시신에게 명하여 이 여인의 머리카락을 뿌리째 자르게 하였다. 후궁 총희(寵姫) 가운데 하나를 위해 그것으로 가발(髢)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까까머리가 되어 돌아온 아내를 보자, 남편 기씨는 곧장 천을 씌워 아내 머리를 가리고, 아직 성루 위에 서 있는 위후를 노려보았다. 관리에게 매를 맞아도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아니하였다.
겨울, 서방에서 들이닥친 진군(晋軍)의 침공에 호응하여, 대부 석포(石圃)라는 자가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 궁궐을 쳤다. 위후가 자기를 제거하려 함을 알고 선수를 친 것이다. 일설에는 또한 태자 질과 공모한 결과라고도 한다.
장공은 성문을 모조리 닫고, 친히 성루에 올라 반군에게 외치며 화의(和議) 조건을 갖가지로 내놓았으나, 석포는 한사코 응하지 아니하였다. 부득이 얼마 안 되는 친병(親兵)으로 막게 하던 중에 밤이 깊어졌다.
달이 뜨지 않은 어둠을 타 달아나야 하였다. 여러 공자와 시신 등 소수를 이끌고, 예의 그 볏 높고 꼬리 늠름한 사랑하는 닭을 친히 안고서 공은 후문을 넘었다. 익숙지 못한 까닭에 발을 헛디뎌 떨어지매, 호되게 넓적다리를 부딪고 다리를 삐었다. 손볼 겨를이 없었다. 시신의 부축을 받으며 캄캄한 들판을 서둘러 갔다. 어쨌든 동이 트기 전에 국경을 넘어 송나라 땅으로 들고자 함이었다. 한참을 걸었을 무렵, 별안간 하늘이 어렴풋이 누런빛을 띠며 들의 검은빛에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이 뜬 것이다. 언젠가 밤 꿈에서 깨어 궁궐 노대(露臺)에서 본 것과 흡사한, 적동색에 흐린 달이었다. 께름칙하구나, 하고 장공이 생각한 그 순간, 좌우 풀숲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우르르 일어서며 들이쳤다. 도적인가, 아니면 추격하는 자들인가. 헤아릴 겨를도 없이 격렬히 싸워야 하였다. 여러 공자도 시신들도 거의 다 죽고, 그래도 공은 홀로 풀숲을 기어 달아났다. 일어서지 못하였던 까닭에 도리어 눈에 뜨이지 아니한 것이리라.
정신을 차려 보니, 공은 아직 닭을 단단히 안고 있었다. 아까부터 울음소리 하나 내지 아니한 것은, 진작에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버릴 마음이 들지 아니하여, 죽은 닭을 한 손에 들고 기어갔다.
들판 한구석에 이상하게도 인가(人家)인 듯한 것이 모여 있는 한 구역이 보였다. 공은 가까스로 그곳에 닿아, 숨이 끊어질 듯한 모습으로 길목의 한 채로 기어들었다. 부축을 받아 들어가 내어 준 물 한 잔을 다 마셨을 때, “마침내 왔구나!” 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 눈을 드니, 이 집 주인인 듯한 검붉은 얼굴에 앞니가 크게 튀어나온 사내가 가만히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무지 낯이 익지 않았다.
“낯이 익지 않다고? 그도 그럴 테지. 허나 이 사람이라면 기억이 나겠지.”
사내는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한 여인을 불렀다. 그 여인의 얼굴을 어둑한 등불 아래 보았을 때, 공은 저도 모르게 닭의 사체를 떨어뜨리고 거의 쓰러질 뻔하였다. 천을 머리에 둘러쓴 그 여인이야말로 다름 아닌, 공의 총희에게 줄 가발 때문에 머리를 빼앗긴 기씨의 아내였다.
“용서하라” 하고 쉰 목소리로 공이 말하였다. “용서하라.”
공은 떨리는 손으로 몸에 차고 있던 미옥(美玉)을 풀어 기씨 앞에 내밀었다.
“이를 줄 것이니, 부디 눈감아 다오.”
기씨는 번도(蕃刀)의 칼집을 풀고 다가서며 빙그레 웃었다.
“너를 죽인다 한들 벽옥(璧)이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한다더냐?”
이것이 위후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