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달구경의 저녁

나가쓰카 다카시

집에서 나서는 길이 워낙 늦어졌던 까닭에, 그럭저럭 볼일은 마쳤지만, 안면 있는 가게 앞에서 “아니, 오늘 밤은 달이 맑게 밝겠습죠 이렇게 되어서는, 아침나절 형세로는 아무래도 어려울까 싶었습니다만, 자아 이 정도면 보리가 잘 여물겠습죠, 보름밤이 맑게 밝으면 보리는 영락없이 잘 여문다고들 하니까요, 부디 그리되었으면 싶군요” 하고 늘어놓는 주인의 이야기에 한참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터라, 미쓰카이도(水海道)를 떠난 것은 다섯 시 지나서가 되어 버렸다,

엉덩이 쪽 자락을 한껏 걷어올리고 부지런히 걷는다, 기우는 해가 비스듬히 비쳐 오므로, 내 그림자는 비실비실 길게 늘어진 뾰족머리 모양이 되어, 들국화의 꽃이며 여뀌의 꽃을 가로질러 메밀밭으로 비치고, 다음에는 좁쌀밭, 다음에는 고구마밭으로 점점 옮겨 간다, 오야마도(小山戸)를 지나 빠져서 나카쓰마(中妻)에 다다른다, 걸음은 쑥쑥 빨라진다, 이렇게 걷고 있는 동안에, 적어도 서너 사람씩, 예닐곱 명씩 되는 일행이 남녀 섞여서 비틀비틀 마주 걸어오는 것과 잇따라 마주친다, 대개는 젊은 동무들로, 모두가 짚신 차림이다, 그것이 끊임없이 마주친다, 이들은 모두 다이호(大寶) 잔치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왕복하면 십삼사 리(약 오십여 킬로미터)는 되는 길이니까, 다소 절뚝거리는 것도 별수 없겠지만, 지쳐 버렸다는 그 모양새는 얼마간의 익살을 곁들이고 있다,

쉰 살 안팎의 곰보 얼굴 노파가, 이쪽은 단 혼자서 왼손에 겉껍질이 일어난 만주(饅頭)인지 무엇인지의 꾸러미를 쥔 채 연신 볼이 미어지게 베어 물면서 걸어온다,

“팔(八) 녀석한테 줄까 싶어 사 왔는데, 출출해서 어쩔 수가 있어야지 하나 둘 베어 물다 보니, 거 다 없어져 버렸지 뭐야, 녀석은 콩콩 여우 가면을 갖고 싶어 했으니까, 이거 그냥 주기만 하면야 그만이지만, 어디서든 또 이백 전쯤은 사다가 줘야겄어”

하고 속으로 셈하고 있는 듯하다,

젊은 무리에 섞여 유난히 지친 기색의 처녀 하나가 있다, 감색 빛(納戸) 하오리(羽織) 자락이 큰 엉덩이를 그나마 가려 주고 있다,

“우리 어머니도 도통 모르고 어쩔 수가 없네, 자기 일만 보고 있고, 자기는 가고 싶지 않다고, 언제나 늘 빈둥대기만 한다며 화만 내 가지고는, 옆집 오이네 씨 같은 이는 띠까지 새로 마련했다는데, 나는 정말이지 울고 싶어졌다니까, 어젯밤도 좁쌀 타작이 바쁘다고 늦게까지 시키더니, 결국 머리도 못 묶고 잤는걸, 새벽녘 어둠 속에 일어나서 머리 묶을라 뭐할라 했더니만, 모두에게 기다리게 해서 허둥지둥했지 뭐야,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네가 굼떠서라며 화만 내 대고는, 어젯밤도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오늘은 졸려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지나 않을까 등등 가늠해 보는 사이에 멀리까지 지나쳐 버린다,

“오늘은 비를 맞지 않아 살았네, 오요네 씨한테 홑옷을 빌려 왔으니, 더럽히면 큰일이라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

하고 말하는 듯한 처녀,

“나는 어젯밤 머리 흩뜨리면 큰일이다 싶어, 밤새 엎드린 채로 잤더니만, 새벽에 눈두덩이 부어 있더라고”

하고 말하는 처녀,

“다리를 내던져 버리고 싶어졌어”

하고 말하는 처녀, 가지각색이지만, 모두가 감물 들인 종이 같은 거친 얼굴에 큰맘 먹고 분(白粉)을 두텁게 발라 댄 모습이다, 발라 댔다기보다는, 비벼 박았다고 하고 싶다, 그러고는 그것이 땀에 절어 분이 벗겨졌다기보다는, 흘러내렸다고 할 만한 얼굴 모양새다,

해 지는 것은 빨라서, 감나무며 떡갈나무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 보이던 빛이, 나카쓰마를 빠져 나오자, 사르륵 서쪽으로 향해 흔들리는 억새의 이삭에 걸쳐 보인다, 이제는 달이 뜰 때가 되었구나 싶어 올려다보니, 지금까지는 기이한 모양의 구름에라도 가려져 있었던가, 그 구름이 흩어지면서 자리를 옮기자, 둥그스름한 달이 서너 칸(間, 약 5~7미터)이나 떠올라, 까마득히 앞쪽 삼나무 꼭대기에 옅은 빛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리고, 달빛은 약간 노란 기를 머금고, 살짝 푸른 기운을 띠게 되었다, 그와 함께 억새의 이삭에 걸쳐 있던 저녁 햇살은 이삭에서 잎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 세상은 환하다, 그 환하던 세상이 붉고 노란 듯한 빛깔로 변하고, 하늘 가장자리가 한층 타오르고, 그것이 점점 식어 가서, 발치의 바싹 마른 흙이, 희끄무레하게 환해졌다 싶어지면, 달빛은 아름다운 것이다,

짚신 차림의 무리도 더는 지나가지 않게 된다, 마지막에 열서너 살쯤 된 아이 둘이서 비틀비틀 걸어왔다,

“얼른 집에 닿았으면 좋겠네”라는 얼굴로 걷고 있다,

또래끼리 의논이 모이고, 뒷집 다케 씨도 다이호에 간다고 하니까, 나도 가도 좋겠지 싶어 어머니에게 졸라 댄 끝에, 홑옷의 허리단을 풀어 받고, 까불다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듣고서, 자아 아버지께는 숨겨 두는 거야 하고 백동전 한 닢을 슬그머니 두꺼비 지갑에 넣어 받고, 사람 붐비는 데서 떨어지면 큰일이니, 둘이서 잘 잡고 다니라는 말까지, 무엇이든 응응 흘려듣고서, 기쁨에 들떠 서둘러 가서, 큰 뱀 구경거리에 일 전, 긴목 요괴 구경거리에 일 전, 곡예에 일 전 오 리, 그러고는 경단 한 접시를 먹고 한 그릇 더를 청하지 못하고 끝났고, 배를 사고 감을 사고, 고구마 꼬치를 사고, 하치만 타로(八幡太郎) 그림책을 사고, 풍선도 사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것은 사 오면 가만 안 둔다고, 집에서 일러 두었던 까닭에 그것은 단념하고, 실컷 신나게 놀고 돌아왔으므로, 도중부터 자못 지쳐 버려, 오늘의 재미있던 이야기도 더는 나오지 않게 되어,

“얼른 집에 닿았으면 좋겠네”

하고 생각하면서 가는 것이리라, 죄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뒤돌아보니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내 걸음이 빠른 까닭이리라,

널찍널찍 펼쳐진 이 들판 길의, 바뀌기 쉬운 저녁 풍경의 흥취를 보면서 다시 마을로 들어섰다,

“안 된다니까, 너한테는 말여”

“사 올 거란 말야”

“기름은 너로는 모르니까 안 돼”

“사 온다니까 그러네”

“그러면 사 와라”

하고 말하는 것은, 마침 기름 사러 가려는 어머니의 손에 매달려, 일고여덟 살 된 아이가 호기심에 자기가 사 오겠다고 말을 듣지 않는다, 어머니가 미덥지 않아 한다, 결국 아이에게 지고 만 참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마을 한복판을 지나가니 어쩐지 갑자기 어두워졌다, 나뭇가지가 우거져 머리 위로 덮여 오는 까닭이리라, 덜컹덜컹덜컹덜컹 풍구(唐箕)로 벼 알을 까부르고 있는 집, 툭툭 툭툭 도리깨로 좁쌀짚을 두드리고 있는 집, 대개는 바쁜 일이 한창인데, 마당에서 쿵쿵 가루를 빻고 있는 것은, 이제부터 경단을 빚으려는 것이리라, 컴컴한 집 안에는 아직 등불이 켜져 있지 않다, 드물게 켜진 곳도 남포등 심지가 잔뜩 줄여져 있어 조그마하게 붉은 빛만 한 점 보일 뿐이다, 내 바쁜 걸음은 이런 분주함 한가운데서 오히려 더 빨라졌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가쓰야아, 가쓰우”

하고 큰 쇳소리로 호통친 노파가 있다, 귓전에서 호통을 들은 까닭에 나는 몹시 놀랐다, 그 어조가 일종의 다급한 원망을 담은 어조이다, 집 안에는 부뚜막 아래 지글지글 불이 타고 있을 뿐이고 사람의 기척도 없는 듯하다,

“요 계집년이, 어쨌든 다이호에 갈 거면 일찍이라도 돌아오면 좋으련만, 젊은 사내들과나 노닥거리고 있을 게야, 얄미운 계집년이로다, 아무것도 제때 못 마치겄어, 거기다 가쓰 녀석이 어디로 빠져나가 있는지, 두부라도 사 와 주면 좋으련만,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자빠졌으니, 어쩌면 좋단 말여”

와 같은 말이라, 큰맘 먹고 큰소리로 호통친 것이리라 등등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 어귀로 빠져나간다, 고카(五個)까지 오면 이시게(石下)까지 절반 길이고 여기서부터는 들길뿐이다, 늘 익히 다니는 지름길이다, 마을 한복판에서는 어두웠던 것이 들로 나오니 환해졌다, 저녁놀은 이제 자취가 거의 다 사라지고, 달빛은 더한층 아름다워졌다, 봇도랑 둑을 따라가니 흐르는 물이 희끄무레하게 빛나 보인다, 또르르 또르르 또르르 또르르 땅강아지가 잔잔하게 우는 소리를 낸다, 들판은 자못 널찍널찍 펼쳐져 있어 그늘 한 점 없는 보름달은 더욱 아름다움이 더해 가는 듯하다, 가까이로는 메밀밭이 서리가 내린 듯이 보이고, 까마득히 앞쪽으로는 쓰쿠바산(筑波山)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봉우리에 비낀 흰 구름이 그대로인 것까지가 다 보인다, 논두렁으로 나서니 거두어 세워 둔 볏가리 언저리에서, 도요새이리라, 끽끽 하고 울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한참 걷고 있는 사이에 여기저기 숲에서 논을 사이에 두고 퐁퐁 퐁퐁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들이 마키와라(卷藁)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직 어렸던 시절에 곧잘 했던 일인데, 손에 쥐기 적당히 짚을 묶어 새끼줄로 차곡차곡 감아, 그것을 들쳐 메고는 집집의 마당으로 가 힘껏 두드려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두드리면서,

“큰 보리 작은 보리, 세모밭 메밀 풍년 들어라”

하고 다 같이 목청을 합쳐 외치는 것이었다, 마키와라 안에 토란대 말린 것을 끼워 넣으면 소리가 좋다고 하여 만들어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도 얼마나 즐거울까 싶었다, 나는 이 마키와라의 소리를 자못 좋아하여, 더욱이 눈부실 듯한 메밀밭 한가운데에 서서 이 마키와라 소리를 듣는 것은 무어라 할 수 없는 좋은 정취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떠올리면서 이시게에 닿았다, 이시게 마을에서는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서양 등불(洋燈) 아래에서 저녁밥을 들고 있는 집이 있었다, 그러고는 그 집 문 앞에 차려 둔 작은 상 위의 경단을 고양이가 입에 물고 빠져나가, 상 아래 어둠 속에서 갉아먹고 있는 것을 저녁을 들고 있는 식구들은 알지 못하는 듯하였다,

바깥은 흥겹고, 달은 더한층 맑게 밝아 갔다,

이러면 보리는 풍년이 들겠지 싶었다, (메이지 삼십육년(1903년) 십이월 이십삼일 발행, 馬醉木 제칠호 게재)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