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소녀 — 4
의심의 소녀 — 4
강안에서 신사의 모양을 본 촌부인 중에 ‘언년어멈’이라는 남의 일 참견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보고 싶은 범네도 볼 겸 범네의 집을 찾아가 신사의 일을 고하였더라. 옹은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천연스럽게 언년 모에게 감사하였다. 언년 모가 돌아간 후 두 시 가량이나 지나 옹과 범네는 동리 이웃에게 고별하려고 이장의 집을 심방하였다. 옹이 이장의 집을 심방함도 이사 왔을 시와 이번뿐이라.
동리 머슴들이 행담(行擔) 칠팔 개와 기타 기구를 강안으로 나르고 옹과 범네의 뒤에는 그 집 여인과 인심 후한 이웃 사람들이 별로 깊이 사귀었던 정도 아니건만 전별차(餞別次)로 따라 나온다. 강가에는 마침 물아래로 가는 배가 있다.
잔잔한 파도는 명랑한 월야의 색채를 비치었다.
선인(船人)이 준비 다 됨을 고한대 옹은 서서히 전별 나온 이웃 사람들에게 고별하였다. 동리 사람들은 소리를 합하여 여중(旅中)의 안녕을 축 하였다. 그 소리에 산천까지 소리를 합하였다. 범네의 흰 얼굴은 월광을 받아 처참히 보인다. 백설 같은 담요를 두르고 오슬오슬 떠는 모양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범네도 떠는 목소리도 인사를 마치고 옹의 손을 잡고 차박차박 걸어 뱃머리에 오르다가 고개를 돌리며 둥글고 광채 있는 눈으로 동리 사람들을 한 번 더 본다…….
밤은 깊어 사방이 적막한데 옛적부터 기 억만 년의 비밀을 담은 대동강물이 고금을 말하려는 듯이 가는 물결 소리를 낸다. 배 젓는 노 소리는 지긋지긋 철썩철썩 심야의 적막을 파한다. 배가 물아래를 향하여 삼단 쯤이나 갔을 때에 특실이가 “범네야 잘 가거라 ─”하매 저편에서도 범네가 “특실 아 잘 있거라 ─”한다. 그 소리가 양금 소리같이 떨리어 들린다. 촌인들은 배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고 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그곳에서 의논이 분분하여 물이 밀어 그들의 발을 적시는 것도 몰랐더라. 이장은 저녁 때 일을 언년 모에게 듣고 머리를 기울여가며 생각하더니 한참 만에 언년 어멈을 향하여
“그래 그 신사는 어디서 옵디까?”물었다. 언년어멈은 원시(遠視)를 잘하는 양이라
“저기 보이는 우뚝 솟은 이층집에서 시커먼 것을 눈에 대고 보더니 …….”
이장은 또 한 번 머리를 기울였다.…… 한참 만에 이제야 비로소 수년래의 의심을 푼 듯이
“알았소. 범네는 그렇게 봄에 자살한 조국장 부인의 기출인 가희 아기구려.”
일동은 무슨 무서운 말을 들은 듯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장은 한숨을 지으며
“불쌍한 아해?”하고 부르짖는 듯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