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은세계 (銀世界): 제1장, 강릉 경금 최본평 댁
겨울 추위 저녁 기운에 푸른 하늘이 새로이 취색하듯이 더욱 푸르렀는데, 해가 뚝 떨어지며 북새풍이 슬슬 불더니 먼산 뒤에서 검은 구름 한 장이 올라온다. 구름 뒤에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 옆에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 밑에서 구름이 치받쳐 올라오더니, 삽시간에 그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서 푸른 하늘은 볼 수 없고 시커먼 구름 천지라. 해끗해끗한 눈발이 공중으로 회회 돌아 내려오는데, 떨어지는 배꽃 같고 날아오는 버들가지같이 힘없이 떨어지며 간 곳 없이 스러진다. 잘던 눈발이 굵어지고, 드물던 눈발이 아주 떨어지기 시작하며 공중에 가득 차게 내려오는 것이 눈뿐이요, 땅에 쌓이는 것이 하얀 눈뿐이라. 쉴새없이 내리는데, 굵은 체 구멍으로 하얀 떡가루 쳐서 내려오듯 솔솔 내리더니 하늘 밑에 땅덩어리는 하얀 흰무리 떡덩어리같이 되었더라.
사람이 발 디디고 사는 땅덩어리가 참 떡덩어리가 되었을 지경이면 사람들이 먹을 것 다툼 없이 평생에 떡만 먹고 조용히 살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나, 눈구멍 얼음덩어리 속에서 꿈적거리는 사람은 다 구복(口腹)에 계관(係關)한 일이라. 대체 이 세상에 허유(許由)같이 표주박만 걸어 놓고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은 보두리 있다더라.
강원도 강릉 대관령은 바람도 유명하고 눈도 유명한 곳이라. 겨울 한철에 바람이 심할 때는 기왓장이 훌훌 날린다는 바람이요, 눈이 많이 올 때는 지붕 처마가 파묻힌다는 눈이라. 대체 바람도 굉장하고 눈도 굉장한 곳이나, 그것은 대관령 서편의 서강릉이라는 곳을 이른 말이요, 대관령 동편의 동강릉은 잔풍향양(潺風向陽)하고 겨울에 눈도 좀 덜 쌓이는 곳이라. 그러나 일기도 망령을 부리던지 그날 눈과 바람은 서강릉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지 싶을 만하게 대단하였는데, 갈모봉〔帽峯〕이 짜그러지게 되고 경금 동네가 폭 파묻히게 되었더라. 경금은 강릉에서 부촌으로 이름난 동네이라, 산 두메 사는 사람들이 제가 부지런하여 손톱․발톱이 닳도록 땅이나 뜯어먹고 사는데, 푼돈 모아 양돈 되고, 양돈 모아 궷돈 되고, 송아지 길러 큰 소 되고, 박토 긁어 옥토를 만들어서 그렇게 모은 재물로 부자 된 사람이 여럿이라. 그 동네 최본평 집이 있는데, 동네 사람들의 말이,
"저 집은 소문 없는 부자라. 최본평의 내외가 억척으로 벌어서 생일이 되어도 고기 한 점 아니 사먹고 모으기만 하는 집이라, 불과 몇 해 동안에 형세가 버썩 늘었다. 우리도 그 집과 같이 부지런히 모아보자."
하며 남들이 부러워하고 본받으려 하는 사람이 많은 터이라.
대체 최본평 집은 먹을 것 걱정 입을 것 걱정은 아니하는 집이라. 겨울에 눈이 암만 많이 오더라도 방 덥고, 배부르고, 등에 솜조각 두둑한 터이라. 그 눈이 내년 여름까지 쌓여 있더라도 한 해 농사 못 지어서 굶어 죽을까 겁날 것은 없고, 다만 겁나는 것은 염치없는 불한당이나 들어올까 그 염려뿐이라.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최본평 집 사립문 안에서 개가 콩콩 짖는데, 밤사람의 자취로 아는 사람은 알았으나, 털 가진 짐승이라도 얼어 죽을 만하게 춥고 눈보라치는 밤이라, 누가 내다보는 사람은 없고 짖는 개만 목이 쉴 지경이라. 두메 부잣집도 좀 얌전히 잘 지은 집이 많으련마는 경금 최본평 집은 참 돈만 모으려고 지은 집인지 울타리를 너무 의심스럽게 하였는데, 높이가 길 반이나 되는 참나무로 틈 하나 없이 튼튼하게 한 울타리가 옛날 각 골 옥담 쌓듯이 뺑 둘렀는데 앞에 사립문만 닫치면 송곳같이 뾰족한 수가 있는 도적놈이라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이 되었더라. 그 울 안에 행랑이 있고 그 행랑 앞으로 지나가면 사람이 있으나, 사립문 밖에서 보면 행랑이 가려서 사랑은 보이지 아니하니 여간 발씨 익은 과객이 아니면 그 집에 사랑 있는 줄은 모르고 지나가게 된 집이러라.
밤은 이경이 될락말락하였는데 웬 사람 오륙 인이 최본평 집 사립문을 두드리며 문 열어 달라 소리를 지르나 앞에서 부는 바람이라, 사람의 목소리가 떨어지는 대로 바람에 싸여서 덜미 뒤로만 간다. 주인은 듣지 못한 고로 대답이 없건마는 문 밖에서는 문 열어 달라 하는 사람은 골이 어찌 대단히 났던지 악을 써서 주인을 부르는데 악 쓰는 아가리 속으로 눈 섞인 바람이 한 입 가득 들어가며 기침이 절반이라. 사립문이나 부술 듯이 발길로 걷어차니 사립문 위에 얹혔던 눈과 문 틈에 잔뜩 끼었던 눈이 푹 쏟아지며 사람의 덜미 위로 눈사태가 내려온다. 행랑방에서 기침 소리가 쿨룩쿨룩 나며 개를 꾸짖더니 무엇이라고 두덜두덜하며 나오는 것은, 최본평 집에서 두 내외 머슴 들어 있는 자이라. 바지춤 움켜쥐고 버선 벗은 발에 나막신 신고 나가서 사립문을 여니 문 밖에 섰던 사람이 골이 잔뜩 나서 누구든지 닥치는 대로 분풀이를 하려던 판이라. 와락 들어오며, 머슴놈을 훔쳐 때리며 발길로 걷어차며, 무슨 토죄를 하는데, 머슴이 눈 위에 가로 떨어져서 살려 달라고 빈다.
머슴의 계집은 웬 영문인지도 모르고 겁에 띠여서 행랑방 뒷문을 열고 버선발로 뛰어나서서 눈이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마당으로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안으로 들어가니 그때 안 중문은 걸려 있는지라. 안 뒤꼍으로 들어가서 안방 뒷문을 두드리며,
"본평 아씨, 본평 아씨, 불한당이 들어와서 천쇠를 때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하는 소리에 본평 부인이 베틀 위에서 베를 짜다가 북을 탁 던지고 일어나려 하나, 허리에 찬 베틀 끈이 걸려서 빨리 내려오지 못하고 겁결에 잠든 딸을 부른다.
"옥순아, 옥순아! 어서 일어나거라. 불한당이 들어온다!"
하며 일변으로 허리에 매인 베틀 끈을 끄르더니 방문을 열고 나가니, 자다가 깨인 옥순이는 어머니를 부르며 우나 부인이 대답도 아니하고 버선바닥으로 뛰어나가서 사랑문을 두드리며 남편을 부르는데, 본평 부인이 어렸을 때에 그 친정에서 듣고 보고 자라나던 말투이라.
"옥순 아버지, 옥순 아버지, 불한당이 들어온다 하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하며 벌벌 떠는 소리로 감히 크게 못 하더라. 원래 그 집 사랑방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있는데 그 문은 앞뒤로 종이를 어찌 두껍게 많이 발랐던지, 문 밖에서 가만히 하는 소리는 방 안에서 자세히 들리지 아니하는지라 그 남편이 대답을 아니하고 부인이 그 말을 거푸거푸 한다. 그때 최본평은 덧문을 척척 닫고 자리 펴놓고 들기름 등잔에서 그을음이 꺼멓게 오르도록 돋워 놓고 앉아서 집뼘 한 뼘씩이나 되는 숫가지 늘어놓고 한 짐 두 뭇이니 두 짐 닷 뭇이니 하며 구실돈 셈을 놓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아니 놓을 수 한 가지를 덜컥 더 놓으며 고개를 번쩍 드는데 부인의 말소리가 최본평의 귓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응, 불한당이라니, 불한당이 어데로 들어와?"
하며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난 문을 와락 여는데, 부인은 문에 얼굴을 대고 섰다가, 문이 얼굴에 부딪쳐서 부인이 애코 소리를 하며 푹 고꾸라지니, 최씨가 문설주를 붙들고 내다보며 당황히, 어, 어, 소리만 하고 섰는데, 그때 마침 행랑 앞에서 머슴을 치던 사람들이 사랑 앞으로 와서 마루 위로 올라서던 차이라. 안으로 난 문 여는 소리를 듣고 주인이 도망하려는 줄로 알고,
"듣거라!"
소리를 하며 마루를 쾅쾅 구르고 들어오며 사랑문을 열어 젖히더니, 제비같이 날쌘 놈이 번개같이 달려들어오니 본래 최본평은 도망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불한당이 들어오는 줄로만 알고 안으로 들어가서 집안 사람들이 놀라지 아니하게 안심시키려던 차에, 부인이 얼굴을 다치고 넘어진 것을 보고 나가서 일으키려 하다가 사랑방에 그 광경 나는 것을 보고 도로 사랑으로 들어서며,
"웬 사람들이냐?"
묻는데 그 사람들은 대답도 없고 최씨를 잡아 묶어 놓으며 사람의 정신을 빼는데, 최부인은 그 남편이 곤경당하는 소리를 듣고 얼굴 아픈 생각도 없고 내외할 경황도 없이 사랑방을 들여다보며 벌벌 떨고 섰는데, 나이 이십칠팔 세쯤 된 어여쁜 부인이라.
그날 밤에, 최본평 집에 들어와서 야단치던 사람들은 강원 감영 장차(將差)인데 영문 비관(秘關)을 가지고 강릉 경금 사는 최병도(崔秉陶)를 잡으러 온 것이라. 최병도의 자는 주삼(朱三)이니 강릉서 수대 사는 양반이라. 시골 풍속에 동네 백성들이 벼슬 못 한 양반의 집은 그 양반의 장가 든 곳으로 택호(宅號)를 삼는 고로, 최본평 댁이라 하니 본평은 최병도 부인의 친정 동네이라. 그때 강원 감사의 성은 정씨인데, 강원 감사로 내려오던 날부터 강원 일도 백성의 재물을 긁어들이느라고 눈이 벌개서 날뛰는 판에 영문 장차들이 각 읍의 밥술이나 먹는 백성을 잡으러 다니느라고 이십육 군 방방곡곡에 늘어섰는데, 그런 출사 한 번만 나가면 우선 장차들이 수나는 자리라.
장차가 최병도를 잡아 놓고 차사례(差使例)를 추어 내는데 염라국 사자 같은 영문 장차의 눈에 여간 최병도 같은 양반은 개 팔아 두 냥 반만치도 못하게 보고 마구 다루는 판이라 두 손목에 고랑을 잔뜩 채우고 차사례를 달라 하는데, 최씨가 차사례를 아니 주려는 것이 아니라, 여간 돈을 주마 하는 말은 장차의 귀에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제 욕심을 다 채우려 든다.
대체 영문 비관을 가지고, 사람 잡으러 다니는 놈의 욕심은, 남의 묘를 파서 해골 감추고 돈 달라는 도적놈보다 몇 층 더 극악한 사람들이라. 가령 남의 묘를 파러 다니는 도적놈은 겁이 많지마는 영문 장차들은 겁없는 불한당이라.
더구나 그때 강원 감영 장차들은 불한당 괴수 같은 감사를 만나서 장교와 차사들은 좋은 세월을 만나 신이 나는 판이라. 말끝마다 순사도(巡使道)를 내세우고 말끝마다 죄인 잡으러 온 자세를 하며 장차의 신발값을 달라고 하는데, 말이 신발값이지 남의 재물을 있는 대로 다 빼앗아먹으려 드는 욕심이라. 열 냥을 주마 하여도 코웃음이요, 백 냥을 주마 하여도 코웃음이요, 이백 냥 삼백 냥을 주마 하여도 코웃음인데, 그때는 엽전 시절이라, 새끼 밴 큰 암소 한 필을 팔아도 칠십 냥을 받기가 어렵고 좋은 봇돌논 한 마지기를 팔아도 삼사십 냥이 넘지 아니할 때이라.
최씨가 악이 버썩 나서 장차에게 돈 한푼 아니 주고 배기려만 든다. 장차는 죄인에게 전례돈 뺏어먹기에 졸업한 놈들이라, 장교가 최씨의 그 눈치를 채고 사령을 건너다보며,
"이애 김달쇠야, 네가 명색이 사령이냐 무엇이냐? 우리가 비관을 메고 올 때에 순사도 분부에 무엇이라 하시더냐? 막중 죄인을 잡으러 가서, 만일 실포(失捕)할 지경이면 너희들은 목숨을 바치리라 하셨는데, 지금 죄인을 잡아서 저렇게 헐후(歇后)히 하다가 죄인을 잃으면, 우리들은 순사도께 목숨을 바치잔 말이냐? 우리들이 이런 장설(壯雪)을 맞고 이 밤중에 대관령을 넘어올 때 무슨 일로 왔느냐? 오늘 밤에 우리가 곤하게 잠든 후에 죄인이 도망할 지경이면, 우리들은 죽는 놈이다. 잘 알아차려라."
그 말이 뚝 떨어지며 사령이 맞넉수가 되어 신이 나서 그 말대답을 하며 달려들더니, 역적 죄인이나 잡은 듯이 최병도를 꼼짝 못 하게 결박을 하는데 장차의 어미나 아비나 쳐죽인 원수같이 최씨의 입에서 쥐 소리가 나도록, 두 눈이 툭 솟도록, 은근히 골병이 들도록 동여매느라고 사랑방에서 새로이 살풍경이 일어나는데 안마당에서 본평 부인의 울음 소리가 난다.
"애고! 이것이 웬일인고! 이를 어찌하잔 말인고? 애고 애고, 평생에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아니하고 사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 지경을 당하노? 애고 애고, 하느님 하느님, 죄없는 사람을 살게 하여 줍시사! 애고 애고 여보, 옥순 아버지, 돈이 다 무엇이란 말이오? 영문 장차가 달라는 대로 주고 몸이나 성하게 잡혀가시오."
하며 우는데 옥순이는 어머니를 부르며 악마구리같이 따라 운다. 최병도가 제 몸 고생하는 것보다 그 부인과 어린 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차에게 돈 칠백 냥을 주기로 작정이 되었는데, 장차들의 욕심이 흠쭉하게 찼던지 결박하였던 것도 끌러 놓을 뿐만 아니라, 맹세 지거리를 더럭더럭 하며 말을 함부로 하던 입에서 말이 너무 공손히 나온다.
"최서방님, 아무 염려 말으시오. 우리가 영문에 가서 순사도께 말씀만 잘 아뢰면 아무 탈 없이 될 터이니 걱정 마시오. 들어앉으신 순사도께서 무엇을 알으시겠습니까? 염문(廉聞)하여 바친 놈들이 몹쓸 놈이지요. 우리가 들어가거든 호방 비장(裨將) 나리께도 말씀을 잘 여쭙고 수청 기생 계화더러도 말을 잘 하여서 서방님이 무사히 곧 놓여 오시게 할 터이니 우리만 믿으시오. 아따, 일만 잘되게 만들 터이니 호방 비장 나리께 약이나 좀 쓰고 계화란 년은 옷 하여 입으라고 돈 백 냥이나 주시구려. 아따, 요새 그년이 뽐내는 서슬에 호사 한번 잘 시키고 그 김에 계화란 년 상관이나 한번 하시구려. 촌에 사는 양반이 그런 때 호강을 좀 못 해보고 언제 하시겠소? 그러나 딴 구멍으로 청할 생각 말으시오. 원주 감영놈들이란 것은 남의 것을 막 떼어먹으려 드는 놈들이오.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당초에 상관을 마시오. 서방님 같은 양반이 영문에 가시면 못된 놈들이 공연히 와서 지분지분할 터이니 부디 속지 마시오."
하더니 다시 사령을 건너다보며,
"이애, 사령들아! 너희들도 영문에 들어가거든 꼭 내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만 말하여라. 강릉 경금 사는 최본평이란 양반은 아까운 재물을 결딴냈더라. 그 어림없는 양반이 서울 가서 누구 꼬임에 빠졌던지? 지금 세상에 쩡쩡거리는 공사청(公事廳) 내시들의 노름하는 축에 가서 무엇을 얻어먹겠다고 그런 살얼음판에 들어앉아서 노름을 하였던지, 부자득명하고 살던 재물을 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없다네. 대체 노름빚이 얼마나 되었던지 내시 집에서 노름빚을 받으려고 최본평이라는 그 양반 집으로 사람을 내려보내서 전장문서(田莊文書)를 전부 뺏어가고 남은 것은 한 이십 간 되는 초가집 하나와 황소 한 필뿐이라 하니, 아무리 시골 양반이 만만하기로 남의 재물을 그렇게 뺏어 먹는 법이 있느냐? 하면서 풍을 치고 다니어라. 그러면, 나는 호방 비장 나리께 들어가서 어떻게 말씀을 여쭙던지 열기(熱氣) 없이 속여넘길 터이다.
이애, 우리끼리 말이지 우리 영문 사또 귀에 최서방님이 패가하셨다는 소문이 연방 들어갈 지경이면 당장에 백방(白放)하실 터이다. 또 요사이는 죄인이 어찌 많던지, 옥이 툭 터지게 되었으니 쓸데없는 죄인은 곧잘 놓아 주신다. 이애, 일전에도 울진 사는 부자 하나 잡혀왔을 때 너희들도 보았지? 그때 옥이 좁아서 가둘 데가 없다고 아뢰었더니 사또 분부에 허물한 죄인은 더러 내놓으라고 하시더니, 죄는 있고 없고 간에 거지 같은 놈은 다 내놓았더라. 이애들, 별말 말고 우리가 최서방님 일만 잘 보아 드리자. 우리들이 서방님 일을 이렇게 잘 보아 드리는데 서방님께서 무슨 처분이 계시지, 설마 그저 계시겠느냐?"
그렇게 제게 당길심 있는 말을 하면서 최씨를 위하여 줄 듯이 말을 하나, 최씨가 도망 못 하도록 잡아 두라 하는 것은 처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지라.
그날 밤에는 그런 소요로 그럭저럭 밤을 새우고, 그 이튿날 장차의 전례돈을 다 구처(區處)하여 원주 감영으로 환전(換錢)을 붙인 후에 최씨를 앞세우고 곧 떠나려 하는데, 본래 최병도는 경금 동네에서 득인심(得人心)한 사람이라 양반․상인 없이 최씨의 소문을 듣고 최씨를 보러 온 사람이 많으나, 장차들이 최씨를 수직하고 앉아서, 누구든지 그 방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터이라. 본평 부인이 그 남편 떠나는 것을 좀 보고자 하여 그 종 복녜를 사랑으로 내보내서 장차에게 전갈로 청을 하는데 촌양반의 집 종이 영문 장차를 어찌 무서워하던지 사랑 뜰에 우두커니 서서 말을 못 한다. 그때 마침 동네 사람들이 최씨를 보러 왔다가 보지 못하고 떠나갈 때에, 길에서 얼굴이나 본다 하고 최씨 집 사립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도 많은 터이라.
그 중에 웬 젊은 양반 하나가 정자관(程子冠) 쓰고 시골 촌에서는 물표 다를 만한 가죽신 신고 서양목(西洋木) 옥색 두루마기에 명주로 안을 받쳐 입고, 얼굴은 회오리밤 벗듯 하고, 눈은 샛별 같고, 나이는 삼십이 막 넘은 듯한 사람이 담뱃대 물고 마당에 섰다가, 복녜의 모양을 보고 복녜를 불러 묻는다.
"이애 복녜야, 너 왜 거기 우두커니 서서 주저주저하느냐?"
"아씨께서 서방님께 좀 뵈옵겠다고 사랑에 나가서 그 말씀 좀 하라셔요."
관 쓴 양반이 그 말을 듣더니 사랑 마루 위로 썩 올라서면서 기침 한번을 점잖게 하며 사랑방 지게문을 뚝뚝 두드리며, 영문 장교더러 할말이 있으니 잠깐 좀 내다보라 하니, 본래 영문 장차가 감사의 비관을 가지고 촌양반을 잡으러 나가면, 암행어사 출두나 한 듯이 기승스럽게 날뛰는 것들이라 장교가 불미한 소리로,
"웬 사람이 어데를 와서 함부루 그리하느냐?"
하며 내다보기는 고사하고 사령더러 잡인들을 다 내쫓으라 하니 사령 하나가 문을 열어 젖히며 와락 나오더니, 관 쓴 양반의 가슴을 내밀며 갈범같이 소리를 지르는데 관 쓴 양반이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도록 부릅뜨고 호령 한마디를 하더니, 다시 마당에 섰는 웬 사람을 내려다보며,
"이애 천쇠야, 너 지금 내로 이 동네 백성들을 몇이 되든지 빨리 모아 데리고 오너라."
하는데, 천쇠는 어젯밤에 장차들에게 얻어맞던 원수를 갚는다 싶은 마음에 신이 나서 목청이 떨어지도록 소리를 지른다.
"아랫말 김진사 댁 서방님께서 동네 백성들을 모으라신다. 빨리 모여들어라."
하면서 사립문 밖으로 나가는데, 그때는 눈이 길길이 쌓인 때라. 일 없는 농군들이 최본평 집에 영문 장차가 나와서 야단을 친다 하는 소리를 듣고 구경을 하러 왔다가 장차가 못 들어오게 하는 서슬에 겁이 나서 못 들어오고 이웃 농군의 집에 들어앉아서 까마귀떼같이 지껄이고 있는 터이라.
"본평 댁 서방님이 영문에 잡혀가신다지?"
"그 양반이 무슨 죄가 있어서 잡아가누?"
"죄는 무슨 죄, 돈이 있는 것이 죄이지."
"요새 세상에 양반도 돈만 있으면 저렇게 잡혀가니 우리 같은 상놈들이야 논마지기나 있으면 편히 먹고 살 수 있나?"
"이런 놈의 세상은 얼른 망하기나 했으면…… 우리 같은 만만한 백성만 죽지 말고 원이나 감사나 하여 내려오는 서울 양반까지 다 같이 죽는 꼴 좀 보게."
"원도 원이요, 감사도 감사어니와 저런 장차들부터 누가 다 때려죽여 없애 버렸으면."
하면서 남의 일에 분이 잔뜩 나서 지껄이고 앉았던 차에, 천쇠의 소리를 듣고 우우 몰려나오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 묻는데, 천쇠는 본래 호들갑스럽기로 유명한 놈이라, 영문 장차가 김진사 댁 서방님을 죽이는 듯이 호들갑을 부리며 어서 본평 댁으로 들어가자 소리를 어찌 황당하게 하던지, 농군들이,
"자아, 들거라!"
소리를 지르고 최본평 집 사랑 마당에 들어오는데, 제 목소리에 제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
경금 동네가 별안간에 발끈 뒤집으며, 최본평 집에 무슨 야단났다 소문이 퍼지며, 양반․상인․아이․어른 없이 달음질을 하여 최본평 집에 몰려오는데, 마당이 좁아서 나중에 오는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고 사립문 밖에 서서 궁금증이 나서 서로 말 묻느라고 야단이라.
그때 최본평 집 사랑 마당에서는 참 야단이 난 터이라. 김씨의 일호령에 원주 감영 장차들을 마당에 꿇려 앉혔는데, 김씨의 호령이 서리 같다.
"너희들이 명색이 영문 장차라는 거냐? 영문 기세만 믿고 행악을 할 대로 하던 놈들은 내 손에 좀 죽어 보아라. 민요(民擾)가 나면 원과 감사가 민요에 죽는 일도 있고, 군요(軍擾)가 나면 세도 재상이 군요에 죽는 일이 있는 줄을 너희들이 아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실례하기는 하였다. 너희들에게 할말이 있으면 내 집 사랑에서 너희들을 불러서 이를 일이나, 지금 당장에 이 댁 최서방님이 영문으로 잡혀가시는 터에, 급히 너희들더러 청할 말이 있는 고로, 내가 여기 서서 방에 있는 너더러 좀 나오라 하였다가 내가 너희들에게 욕을 보았다.
오냐, 여러 말 할 것 없다. 너희들 같은 놈은 어데 가서 기승을 부리다가 남에게 맞아 죽는 일이 더러 있어야, 이후에 다른 장차들이 촌에 나가서 조심하는 일이 생길 터이니, 오늘 너희들은 살려 보낼 수 없다."
하더니 다시 동네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이애, 이 동네 백성들 들어 보아라. 나는 오늘 민요 장두(長頭)로 나서서 원주 감영 장차 몇 놈을 때려죽일 터이니, 너희들이 내 말을 들을 터이냐?"
경금 백성들이 신이 나서 대답을 하는데 마당이 와글와글한다.
"네에, 소인들이 내일 감영에 다 잡혀가서 죽더라도 서방님 분부 한마디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하라시는 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응, 민요를 꾸미는 놈이 살 생각을 하여서는 못 쓰는 법이라. 누구든지 죽기를 겁내는 사람이 있거든 여기 있지 말고 나가고, 나와 같이 강원 감영에 잡혀가서 죽을 작정 하는 사람만 나서서 몽둥이 하나씩 가지고 장차들을 막 패 죽여라."
그 소리 뚝 떨어지며 동네 백성들이 몽둥이는 들었든지 아니 들었든지 아우성 소리를 지르며 장차에게로 달려드는데, 장차의 목숨은 뭇 발길에 떨어질 모양이라.
사랑방에 앉았던 최병도는 발바닥으로 뛰어내려오고, 안중문 안에서 중문을 지치고 서서 내다보던 본평 부인은 내외가 다 무엇인지 불고염치하고 뛰어나와서 장차들을 가리고 서고, 최씨는 동네 백성을 호령하여 나가라 하나, 호령은 한 사람의 목소리요, 아우성 소리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라. 앞에 선 백성은 멈추고 섰으나, 뒤에서는 물 밀듯 밀고 들어오는데 장차들은 어찌 위급하던지 본평 부인의 뒤에 가 서서 벌벌 떨며 살려 달라 소리만 한다. 최병도가 동네 백성이 손에 들고 있는 지게 작대기를 쑥 뺏어 들고 백성를 후려 때리려는 시늉을 하나 백성들이 피할 생각은 아니하고 섰으니, 그때 마루 위에 섰던 김씨가 동네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이애, 그리하여서는 못 쓰겠다. 장차들을 이 댁 사랑 마당에서 때려죽일 것이 아니라, 내 집 사랑 마당으로 잡아다가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자."
마당에 섰던 백성들이 일변 대답을 하며 그 대답 소리에 이어서 소리를 지른다.
"저놈들을 잡아 가지고 김진사 댁 마당으로 가자!"
하더니 장차를 붙들러 우우 달려드니, 장차가 최본평 집 안중문으로 뛰어들어가는데, 본평 부인이 뒤에 따라 들어가며 중문을 닫아건다. 최씨가 사랑 마루 위로 올라가며 김씨의 손목을 턱 붙들고 웃으면서,
"여보게 치일이, 자네가 무슨 해거(駭擧)를 이렇게 하나? 동네 백성들을 내보내고 방으로 들어가세."
하더니 최씨가 일변 동네 사람들더러 다 나가라고 다시 천쇠를 불러서 사립문을 안으로 걸라 하고, 장차들은 행랑방에 들여앉히라 하고 최씨는 김씨와 같이 사랑방으로 들어가는데, 장차들은 목숨 산 것만 다행히 여겨서 최씨의 하라는 대로만 하는 터이라. 천쇠를 따라 행랑방으로 나가 앉아서, 감히 사립문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 하고 천쇠에게 첨을 하느라고 죽을 애를 쓴다. 그때 김씨는 최씨의 사랑방에 앉아서 단둘이 공론이 부산하다.
"여보게 주삼이, 자네나 나나 여기 있다가는 며칠이 못 되어 큰일이 날 터이니 우리들이 서울이나 가서 있다가 이 감사 갈린 후 내려오세."
"자네는 이번에 일을 장만한 사람이니 불가불 좀 피하여야 쓰려니와, 나는 어데 갈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자네만 어데로 피하게."
"자네가 아니 피할 까닭이 무엇인가?"
"응, 자네는 이번에 이 일을 석 삭 동안만 피하면 그만이라, 자네같이 논 한 마지기 없이 가난으로 패호(牌號)한 사람을 감영에서 무엇을 얻어먹겠다고 두고두고 찾겠나? 나는 돈냥이나 있다고 이름 듣는 사람이라, 이 감사가 갈려 가더라도 또 감사가 내려오고, 내가 타도에 가서 살더라도 그 도에도 감사가 있는 터이라, 돈푼이나 있는 백성은 죄가 있든지 없든지 다 망하는 이 세상에 내가 가면 어데로 가며, 피하면 어느 때까지 피하겠나, 응? 뺏으면 뺏기고, 죽이면 죽고, 당하는 대로 앉아 당하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백성이 이렇게 살 수 없이 된 나라가 아니 망할 수 있나, 응? 말을 하자 하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에 다 못 할 일이라. 그 말은 그만두고 우리들의 일 조처할 말이나 하세. 자네는 돈 한푼 변통하기 어려운 사람인데, 이번에 망나니 같은 감사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고 여기 있을 수야 있나? 그러나 어데로 가든지 돈 한푼 없이 어찌 나서겠나? 내가 표 하나를 써서 줄 터이니 내 마름을 불러서 이 돈을 찾아 가지고 어데든지 잘 가 있게. 나는 이 길로 장차를 따라서 영문으로 잡혀갈 터일세."
하면서 엽전 천 냥 표를 써서 김씨를 주고 벌떡 일어나며,
"응, 친구도 작별하려니와 우리 마누라도 좀 작별하여야 하겠네."
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는데, 김씨는 앞에 놓인 돈표를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한참 동안을 앉았다가 고개를 번쩍 들며,
"응, 그럴 일이야. 주삼이 떠나는 꼴은 보아 무엇 하게?"
하더니 돈표를 집어서 부시 쌈지 속에 넣고 안으로 향하여 소리 한 마디를 꽥 지른다.
"여보게 주삼이, 나는 먼저 가네. 죽는 놈은 죽거니와, 사는 놈은 살아야 하느니, 세상이 망할 듯하거든 흥할 도리 하는 사람이 있어야 쓰는 법이라. 다 각각 제 생각 도는 대로 하여 보세."
하면서 나가는데, 최씨는 안에서 목소리를 크게 하여 외마디 대답이라,
"어이, 알아들었네, 잘 가게그려!"
하는 말이 최씨와 김씨 두 사람만 서로 알아들을 뿐이라. 김씨는 어데든지 멀리 달아날 작정이요, 최씨는 감영으로 잡혀갈 마음으로 작별하는데, 부인이 울며,
"여보 옥순 아버지, 무슨 죄가 있어서 원주 감영에서 잡으러 내려왔소?"
"응, 죄는 많이 지었지."
부인이 깜짝 놀라면서,
"여보, 그것이 무슨 말씀이오?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으셨단 말이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나는 내외간이라도 그러실 줄은 몰랐소그려. 삼순구식(三旬九食)을 못 얻어먹는 사람이라도 제 마음만 옳게 가지고 그른 일만 아니하고 있으면, 어느 때든지 한 때가 있을 것이오. 만일 그른 마음 먹고 남에게 적악을 하든지 나라에 죄 될 일을 할 지경이면 하늘이 미워하고 조물이 시기하여, 필경 그 죄를 받을 것이니 사람이 죄를 짓고 죄 받는 것을 어찌 한탄한단 말이오? 말으시오, 말으시오. 무슨 죄를 짓고 저 지경을 당하시오?"
"응, 죄를 나 혼자 지었다구? 두 내외 같이 지었지."
"여보, 남의 애매한 말 말으시오. 나는 철난 후로 죄 될 일을 한 것 없소. 손톱․발톱이 닳도록 벌어 놓은 재물을 애껴 먹고 애껴 쓰면서, 배고픈 사람을 보면 내 배를 덜 채우고 한 술 밥이라도 먹여 보내고 동지섣달에 살을 가리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된 사람을 보면 내가 입던 옷 한 가지라도 입혀 보내고 손톱만치도 사람을 속여 본 일도 없고 털끝만치도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먹은 일이 없소. 없소, 없소, 죄 될 일은 아무것도 한 것 없소. 여보시오, 여편네라고 업신여기지 말으시고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죄 될 일을 하실 때에 하느님 버력도 무섭지 아니하고 귀신의 앙화도 겁나지 아니하더라도 처자가 부끄러워서 죄 될 일을 어찌 하셨단 말이오? 영문에서까지 알고 잡으러 온 터인데 나 하나만 기이면 무엇 하오?"
"응, 마누라는 죄를 지어도 알뜰하게 잘 지었지. 우리 죄는 두 가지 죄이라, 한 가지는 재물 모은 죄요, 한 가지는 세력 없는 죄."
"여보, 그것이 무슨 죄란 말이오?"
"응, 우리나라에서는 녹피에 가로왈자같이 법을 써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고,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 죄도 벗겨 주는 세상이라. 이러한 세상에 재물을 가진 백성이 있으면, 그 백성 다스리는 관원이 그 재물을 뺏어먹으려고 없는 죄를 만들어서 남을 망해 놓고 재물을 뺏어먹는 세상이니 그런 줄이나 알고 지내오. 그러나 마누라가 지금 태중이라지? 언제가 산월이오?"
"……"
"아들이나 낳거든 공부나 잘 시켜야 할 터인데……."
"여보, 그런 말씀은 지금 할 말이 아니오. 몇 달 후에 낳을 어린아이의 말과 몇 해 후에 그 아이 공부시킬 일을 왜 지금 말씀하신단 말이오? 옥순 아버지가 영문에 잡혀가시더라도 죄 없는 사람이라, 가시는 길로 놓여 나오실 터이니 왕환(往還)하는 동안이 불과 며칠이 되겠소? 집의 일은 걱정 말으시고 부디 몸조심하여 속히 다녀오시오."
"응, 그도 그러하지. 그러나, 내가 객기(客氣)가 많고 이상한 사람이야. 요새 세상에 돈만 많이 쓰면 쉽게 놓여 나오는 줄은 알지마는 나라를 망하려고 기를 버럭버럭 쓰는 놈의 턱밑에 돈표를 써서 들이밀고 살려 달라, 놓아 달라, 그따위 청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걸. 죽이거나 살리거나 제 할 대로 하라지."
"여보시오, 그것이 무슨 말씀이오? 쉽게 놓여 나올 도리만 있으면 영문에 잡혀가던 그날 그시로 놓일 도리를 하실 일이지, 딴생각을 하실 까닭이 있소? 재물이 다 무엇이란 말이오? 우리 재물을 있는 대로 다 떨어 주더라도 무사히 놓여 나올 도리만 하시오. 여보, 재물은 없더라도 부지런히 벌기만 하면 굶어 죽지는 아니할 터이니 재물을 아끼지 말고 몸조심만 잘 하시오. 만일 우리 세간을 다 떨릴 지경이어든 사랑에서는 기직도 매고 짚신도 삼으시고, 나는 베도 짜고 방아 품도 팔았으면 호구(糊口)하기는 염려 없을 터이니, 먹고 살 걱정을 말으시고 영문에서 횡액만 아니 당할 도리만 하시오."
"허허허, 좋은 말이로구. 마누라는 마음을 그렇게 먹어야 쓰지. 내 마음은 어떻게 들어가든지 되어 가는 대로 두고 봅시다. 자 두말 말고 잘 지내오, 나는 원주 감영으로 가오."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나가더니 영문 장차들을 불러서 당장에 길을 떠나자 하니 장차들은 혼이 떴던 끝이라, 최씨 덕에 살아난 듯하여 별안간에 소인(小人)을 개 올리며 말을 한다.
"소인들은 이번에 서방님 덕택에 살았습니다. 소인 등이 서방님을 못 잡아가고 소인 등이 영문 사또 장하에 죽는 수가 있더라도 소인들만 들어갈 터이오니 이 동네에서 무사히 잘 나가도록만 하여 주십시오."
"너희 말도 고이치 아니한 말이다마는 그렇게 못 될 일이 있다. 너희들이 나를 잡아가지 아니할 지경이면 너희들이 발뺌을 하느라고 경금 동네 백성들이 소요 부리던 말을 다 할 터이니 너희 영문 사또께서 그 말을 들으시면 경금 동네는 뿌리가 빠질 터이라. 차라리 나 한 몸이 잡혀가서 죽든지 살든지 당할 대로 당하고 동네 백성들이나 부지하게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 너희들이 나를 고맙게 여길진대 이 동네 백성들을 부지하게 하여 다고. 또 실상으로 말할진대 경금 동네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느냐? 김진사 댁 서방님이 시키신 일인데, 그 양반은 벌써 어데로 도망하였을는지 이 동네에 있을 리가 만무한 터이라. 죄 지은 사람은 어데로 도망하였는데 무죄한 여러 사람에게 그 죄가 미쳐서야 쓰느냐? 그러나 관속이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라. 너희들이 이 동네 있을 때는 좋은 말로 내 앞에서 대답을 하였더라도 영문에 들어가면 필경 만만한 경금 동네 백성들을 결딴내려 들 줄을 내가 짐작한다. 만일 너희들이 내 말대로 아니할 지경이면 나는 너희들이 내 집에 와서 작폐(作弊)하던 말을 낱낱이 하고, 내가 너희들에게 차사례 뺏기던 일도 낱낱이 하여 너희들을 순사도 눈밖에 나도록 말할 터이니 너희들은 너희 몸의 이해를 생각하여 나 하나만 잡아가고 경금 동네 백성들에게는 일 없도록만 하여 다고. 그러나 너희들이 하룻밤이라도 이 동네 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니, 날이 저물었더라도 지금으로 떠나가자."
하더니 장차는 앞에 서고 최씨는 뒤에 서서 사랑 마당으로 나가는데 안 중문간에서 부인과 옥순의 울음 소리가 난다. 부인이 한참 동안을 정신없이 울다가 옥순이를 데리고 사립문 밖으로 나가더니, 그 남편 간 곳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섰는데 남편은 간 곳 없고 대관령만 높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