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조 상관(上官) — 부임함
제5조 상관(上官) — 부임함
부임할 때는 굳이 길일을 가릴 필요가 없다. 비가 오면 갠 뒤를 기다리면 된다.
사람마다 길일을 가리려 하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러나 봉고(封庫)로 파직된 자도 있다. 암행어사가 탐관(貪官)을 쳐서 내쫓을 때 반드시 봉고하는 것이다. 평정(貶下)을 받아 파직된 자도 있고, 부모의 상을 당해 떠나간 자도 있다. 앞의 일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또 어찌 그 자취를 밟으랴.
매번 새 수령이 임지 가까이에 도착해, 하루에 한 역참씩 가거나, 온종일 머물러 길일을 기다리는 것을 본다. 그 고을의 아전과 종복들은 속으로 비웃으며 이미 그가 슬기롭지 못함을 안다. 따라온 관속(官屬)들은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급하면서도 노자(路資)만 허비한다고 앉아 있으니, 모두 그 재앙을 저주한다. 길(吉)함이 저주를 당하기에 마땅하지 않은데, 마침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오직 상관(上官)의 날에 바람이 거칠고 비가 쏟아져 백성이 흩어지면 좋지 않다. 그러나 이는 본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굳이 가릴 일이 아니다.
부임의 날에는 의장(儀仗)을 단정히 하되 화려하게 하지 말라. 인부(印符)와 마패(馬牌)를 정중히 받들고, 객사(客舍)에 들어 임금이 계신 방향으로 절한다.
동헌(東軒)에 올라 아전과 군교(軍校)에게 인사를 받을 때, 그 얼굴을 한 번 살펴 그 사람됨을 헤아린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깊이 따져 묻지 말라. 한 며칠 살핀 뒤에야 그 됨됨이가 드러난다.
부임 첫날의 잔치는 사양하는 것이 옳다. 받으면 이미 그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것이 되어, 다스림의 첫 결단이 무너진다.
부임 첫 사흘 동안은 일을 결재하지 말라. 먼저 고을의 형편을 살피고, 아전과 백성의 마음을 듣고, 그 다음에 일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객사와 동헌의 살림이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새로 만들지 말라. 새로 만들면 그 비용이 곧 백성에게서 나온다.
고을의 노인을 불러 그 고을의 옛 풍속과 지금의 살림을 묻는다. 노인의 말 가운데 다스림의 큰 가르침이 있다.
부임의 의(義)는 가볍지 않으니, 한 발 한 발 그 자리의 무거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옛 명관들은 부임 첫날부터 그 마음의 결단이 굳어, 한 해 한 평생을 그 결단대로 다스렸다.
부임의 시작이 곧 다스림의 시작이니, 이 시작이 굳지 않으면 끝이 좋을 수 없다.
길일을 가리는 미신(迷信)에 매여서는 안 된다. 사람의 다스림은 사람의 결단에 달려 있을 뿐, 길흉(吉凶)의 날짜에 달려 있지 않다.
부임의 날에 임금의 명령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그 무거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